프강 프강 볼프강.
Drayrans 2017-09-29 0
악몽은 고통을 담고 있는 기억의 순환이다. 정말로 끔찍하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머리 한 구석에 밀어두었던 기억들을 끌어올려, 사람의 아픈 곳을 박박 긁어대는 그것이, 악몽이다.
"또야?"
바짝 말라있는 공기. 비릿한 냄새, 시야를 가득 채우는 붉은 액체.
어디서인가 본 적이 있던 광경. 기억하고 싶지 않아, 밀어두었던 광경.
"우리의 주인이여."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엘리고스라는, 증오스러운 존재가 서 있었다.
그, 볼프강 슈나이더.
"그만해."
허공에 대고 외쳐봐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계속 겪게되는 이 순환을 바꿀 수 없었다. 끊을 수 없었다.
아, 어째서 이렇게 되는 것인가. 이런 나날이 반복되어 버리는 것인가.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책의 책장을 넘겼다. 넘겨도 넘겨도,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과거, 고통, 그리고 순환."
푹, 하고 무언가가 뚫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바라보자 않아도 어떤 일이 일어났지는지는, 이제 어떻게 될 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한적인 순환 속에서 보고, 보고, 또 봤으니까.
울컥, 누군가가 피를 쏟아내는 소리에 결국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이 부분에서는 그럴수가 없었다. 지금 그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린다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죄책감을 건드려서, 끌어올리는 일이었으니까.
"이제 가."
그는 책장 위에 손을 얹는 동시에 마검을 휘둘렀다. 이 고통과 가증스러운 존재를 일격에 베어버릴 수만 있었다면ㅡ, 그리 생각하며 몇번이고 허공에 칼질을 해댔다.
허나 모두 가짜. 닿지 않고, 맞지도 않는다. 결국 부질없는 짓. 그걸 다시 깨달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바닥에 내던졌다. 책은 그리 멀지 않은 곳,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곳에 떨어졌다.
"선배."
죄책감, 분노, 고통.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의 얼굴이 그 책의 옆에 있었다. 그 사람의 눈은 죽어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 처럼. 아니, 지금은 이미 죽은 상태인가?
점점 무감각해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그는 웃었다. 이렇게라도 자신을 비웃지 않으면, 깎아내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우리의 주인이여. 어째서 이 사실을,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아니. 이미 받아들였어. 인정하지 못할뿐이지."
"그건 모순. 모두 가짜이니."
"아니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축축한 것이 자신에 손에 묻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차갑지 않은, 온기가 남아있는. 비린내가 훅 끼쳐오는,
붉은 피였다.
"......"
손바닥을 펼치자 피 비린내가 더 심하게 코 끝을 파고들었다. 누군가의 피인지 이미 알고 있던 그는 그 손을 휘둘러 붉은 피를 털어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악몽은 계속되리라."
그게 녀석의 마지막 말이었다. 점점 모래로 변해가는 엘리고스의 모습을 보며 그는 작게 혀를 찼다. 그리고 죽어버린 누군가의 옆에서 굳은, 검은 책을 들고 있는 남성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다. 멍청아."
그는, 검은 책의 사서는 비극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이어져가는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기 위해, 오늘도.
"오늘도 휴가 없이 일 해볼까."
오늘도 휴가는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빌어먹을 힘을 가졌으면, 그 대가만큼 일해야지."
그는 책을 덮었다.
볼프강 선배 죽인 거까지 암.
관련된 이야기 더 안 나오나...궁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