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3. 형상복제자 -

Articulus 2016-02-29 3


국제공항 이후까지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므로, 램스키퍼 함교 에피소드까지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들 중 스포일러를 보기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3-1 

 

 

  다음 날 점심시간.

  점심시간이 끝나기 까지는 앞으로 40분.

  이렇게 모이는 것이 힘들어서야, 어떻게 모일 수 있을까?


  유리는 계속해서 도시락에 눈을 두고 있기만 할뿐이고, 슬비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옥상 밖을 종종 쳐다보았다. 우리 외에 올 사람이 더 있는 모양인가?

  그 때 와하하하하 하고 유쾌하게 웃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옥상에 두 명의 사람이 착지한다. 사이킥 무브를 사용해서 여기까지 이동한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역시나 우리 팀이다.

  제이 아저씨와 테인이, 두 사람이 온 것이다. 아마 슬비는 이 둘을 기다린 모양이다.


  "허, 허리가…"

  "아하하하, 아저씨, 재미있어요. 이따가 갈 때도 또 해주세요!"

  "이 녀석, 어른을 그렇게 써먹으면 못써!"

  "아저씨, 그러지 마시고 한 번 만 더요, 네?"

  "안된다니까 그러네. 나 혼자 움직이기도 벅차다구."


  테인이는 아저씨의 팔에 안겨서 왔는데, 이게 상당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보통 클로저들은 자신의 위상력을 사용해서 사이킥 무브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몸을 맡긴채 이동하는 것은 보통 클로저들은 하지 않는 행동이다. 아저씨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사이킥 무브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것이 테인이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나보다.


  "왔으면 어서 앉아주세요. 저희는 점심도 아직 먹지 않았고, 바로 또 수업이 있어서 빨리 끝내야만 해요."

  "알겠어, 대장. 자, 테인아. 자리에 앉아, 응?"

  "네, 아저씨!"


  못 말리는 어른과 어린 아이다.

  저 정도의 나이차가 나는데도, 어떻게하면 저렇게 잘 맞을 수가 있을까?


  흠흠, 하고 목을 푸는 슬비.

  곧바로 브리핑이 이어진다.


  "사실 갑자기 모이라고 한 이유는 제이 씨가 요청한 거야.

  그러니 이제 제이 씨에게 발언권을 넘길게요. 어떤 이유로 우리를 부른 건지 말씀해주세요."


  말을 마치고 슬비는 유리 옆에 앉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일어나 말을 이어갔다.

 

  "유정 씨의 전달이야. 다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온 게 아니야.

  우리는 엄연히 경계 임무 중이라는 걸 잊지마. 지금 내가 전할 이야기도 이 연장선 상에서 받아들여줬으면 해."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이 평온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이렇게 쉽게 깨지는 것일까.


  "우선 우리가 당장 어떤 최전방의 작전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말해둘게.

  하지만 어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너희도 알아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어제 벌어진 사건?"

  "좋은 반응이야, 동생. 너희들 도플갱어라고 들어본 적 있어?"


  아저씨의 질문에 제일 먼저 테인이가 답했다.

  내가 아는 선상에서 도플갱어는 흔히 플레이어의 모습과 능력을 그대로 따라하는 몬스터다. 이것의 유래는 독일의 전설이고. 독일 출신인 테인이가 먼저 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말 그대로 이중으로 다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또 다른 어떤 존재."

  "맞아. 역시 독일 출신답네.

  테인이의 말대로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또다른 누군가, 그것을 도플갱어라고 해. 그리고 아마 우리 모두 비슷한 것을 본 적은 있지."



  아저씨의 말대로이다.

  끔찍한 악몽 중의 하나, 그것은 큐브이다.

  아스타로트의 강남침공이 시작되고 나서 유니온은 검은양 팀을 작전에 투입할 명분을 얻기 위해 우리를 수습 클로저요원에서 정식 클로저요원으로 승급시키려고 했었다. 그 처음과 마지막 관문은 유니온의 시험장 「큐브」를 클리어하는 것이었다.

  

  처음 큐브 안에 들어갔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들어갔다.

  유정 누나의 설명에 의하면, 그 안에서는 차원종의 입체영상만이 나와야 했었다. 물론 그것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나온 '그 녀석'은 분명히 나였다.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목소리로 말해왔던 '그것'. 그것은 나에게 자신은 나라고 하였다. 나와 같은 이세하 라고 말했던 그것은, 정확히 말해서는 차원종이 된 미래의 나.



  그놈은 나에게 어른의 눈치를 보 지 않는 차원종이 되어버리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그 당시의 나는 유니온의 상층부를 매우 미워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차원종이 되어라는 녀석의 유혹은 매우 크게 다가오기도 했었다.

  그것이 싫어 녀석녀석의 몸에 몇 번이나 건블레이드를 박아넣고 폭발시켰다.

  놈의 숨을 끊어놓기 위해 몇 번이고 몇 십번이고 찔렀고 베었다. 피는 아니지만 놈을 쓰러뜨릴 때마다 피와 같은 영상이 질량화되어 터져나왔고, 불결하고 더럽다고만 느껴졌다.


  그 끔찍한 큐브 안에서의 살생전을 무려 40번이나 한 결과, 폭주하던 큐브는 안정화되었고 나는 결국 정식요원이 되었다. 다른 동료들의 말을 들어봤을 때 그들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고 하니, 우리 모두 피를 딛고 잃어선 이들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아저씨가 말한 비슷한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아니고선 나는 도플갱어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모두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저씨는 다소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큐브에서나 존재할 줄 알았던 그 녀석이, 실제로 존재하는 모양이야."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당혹함을 감출 수 없는 그 표정은 우리 모두의 표정이었다.

  슬비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제이 씨,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말 그대로야, 대장. 그 도플갱어, 유니온에서 붙인 명칭으로는 「형상복제자」라는 차원종이 실제로 존재하는 모양이야. 그리고 그것의 출현이 발견된 모양이고."

  "그 말씀은…"

  "대장이 예상한 대로일걸. 놈들이 목격된 것은 어젯 밤이라고 해. 놈들은 딱 한 번 목격되었지만, 신고를 받은 특경대가 진압을 위해 현장에 도착했을 쯤에는 사라져있었다고 하고."

  "놈들? 복수의 개체라는 말인가요?"

  "신고자의 목격담에 의하면 그래. 자세한 건 나도 직접 채민우 경정을 찾아가봐야 알겠는걸.

  하아, 차원 전쟁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안보였던 녀석들인데…"

 

  그런 녀석들이 여럿이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나의 모습을 한 여러 명이 한꺼번에 나한테 달려드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다.

  그런데 놈들은 과연 어떤 놈들일까? 모습만 복제하는 녀석들일까?


  "아저씨, 저도 궁금한게 있는데요."

  "응, 뭔데, 동생?"

  "그 형상복제자라는 녀석들은 모습만을 복제하나요?"

  "아니, 너의 모든 것을 그대로 복제해. 녀석과 조우했을 때 네가 입고있는 옷, 심지어는 네 머릿카락의 개수마저도."

  "그렇다면 위상력도?"

  "놈들의 위상력과는 좀 차이가 있겠지만, 그 형태로만 봤을 때는 비슷, 아니 똑같지."


  정말로 모든 것을 복제하는 모양이다.

  나의 목소리, 모습, 심지어는 내가 위상력을 사용하여 발현하는 기술까지도 말이다.


  "신기하게도 놈은 강남이 아니라 강북에서 발견되었다고 해. 어제 목요일, 녀석이 출현한 곳은 남산 회현동의 시민아파트 근방. 지금 그 일대에는 특경대가 출동해서 계속해서 경계중이긴 하지만 언제 또 놈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야. 그러니 오늘 방과 후에 우리 팀 모두는 채민우 경정을 만난 뒤에 현장에 가보려고 하는데, 대장은 어떻게 생각해?"

  "제이 씨의 말씀대로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유정 누나도 거기까지 생각해둔 모양이고."

  "그럼 모두 방과 후에 정문에서 보자고. 안타깝게도 특경대 경력이 대부분 강남 복구와 강남 일대의 차원종 소탕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할 것 같아."


 

  공항에서 철수할 때도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철수했다.

  이번의 이동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구나.

  그동안 우리 팀의 이동을 담당해줬던 선우란 누나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물론 버스비는 모두 카드로 계산할 테니까, 나중에 청구하면 돈은 되돌려준다고 하니 참고하고."

  "꼭 그럴 필요까지야."

  "무슨 소리야, 세하야! 돈은 꼭 챙겨야지! 돈을 공짜로 준다는데!"

  "어차피 내가 쓴 돈을 다시 돌려주는 건데, 마이너스 플러스 제로지."

  "아~ 하하, 그, 그렇지? 자, 장난인데 왜그렇게 진심으로 받아들여, 이세하?"


  머쓱은 듯이 웃는 서유리.

  역시 돈을 밝히는 성격만큼이나 머리가 돌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니 그 남자에게 멍청하다는 악담을 들었을테고.

  뭐, 이런 모습이 녀석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자, 그럼 빨리빨리 대장의 도시락을 먹자고!"

  "맞아! 슬비표 도시락!"

  "와하하, 슬비 누나의 도시락, 빨리 먹고 싶어요!"


  슬비는 옆에 놔두었던 도시락의 뚜껑을 열어 천천히 펼쳐놓았고, 도시락의 한 층이 펼쳐질 때마다 모두의 입가에는 침이 고여간다.

  내가 스스로 음식을 해먹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나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음식을 좋아한다. 음식의 향이 내 코를 자극해왔고, 나 역시 입가에 침이 고여왔다.


  "이세하, 안 먹을거야?"


  멍하니 음식을 바라만보고 있던 나에게 수저를 건네는 슬비.

  먹겠다고 말한 후에, 나도 젓가락을 들어 반찬 하나를 집어 입가로 가져갔다.

  맛이 정말로 좋았다, 된다면 매일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네, 정말."

  칭찬을 들은 슬비가 살짝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나도 거기에 맞춰 웃음을 지어주었다.




  ◆ 3-2


  "강남 일대에는 아직도 차원종들이 종종 출물한다고 하니까 다른데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갈 수 있도록. 방과후 자습할 학생들은 저녁 식사 후 교실에서 7시부터 출석체크하니, 다른 데 가지 말도록 하고.

  그럼 여기까지. 반장."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반 담임인 류음태 선생님의 종례와 함께 모든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쏟아져나간다.

  한창 뛰어놀고 싶은 나이인 우리 또래는 이렇게 계속해서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을 매우 따분한 것으로 생각한다. 교실에서 영어 수업을 듣는 것보다 운동장에서 체육활동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뭐, 나는 이렇든 저렇든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야, 이세하."

  "응?"


  우정미다. 또 무슨 일일까?


  "유리한테 들었어. 오늘 밤에 또 작전 나간다면서."

  "작전, 까지는 아니고. 음, 탐사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작전이잖아. 혹시 차원종 잔당세력과 싸울 수도 있는 일이고."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게 왜?"

  "이거 받아."

  

  정미는 나에게 어떤 병을 건네주었다.

  병을 받아 쥐었을 때, 안에 어떤 약과 같은 액체가 들어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소리도 들리고. 이게 뭘까?


  "이게 뭐야?"

  "캐롤리엘 씨에게 배운대로 약을 만들어봤어. 무, 물론 임상실험도 다 끝났으니 몸에 안좋은 건 아니야."

  "이런걸 왜 나에게 주는거야?"

  "모, 몰라! 그거 마시고 작전 중에 쓰러지지나 말라고! 너 생각보다 약하다고 들었으니까!"

  "아하하, 그러셔."

 

  고맙게 받아야겠다.

  안그러면 저녀석은 또 악담을 퍼부어놓을테니까.

  그나저나 정미는 아직도 캐롤리엘 씨 밑에서 계속해서 화학과 약물학을 배우고 있는 중이구나.

  여간 힘든게 아닐텐데 아직까지도 이어가는 걸 보면, 그 끈기와 노력은 인정해줘야만 하는걸까. 실제로 유니온 내부에서도 정미는 칭찬을 듣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구나.


  고맙게 마시겠다고 인사도 못했는데, 우정미는 나에게 약만 건네준채 교실 밖으로 벌써 빠져나가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던 유리가 그때 교실로 들어왔다.

  "세하야, 이제 가자. 슬비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응. 알았어."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거, 그거 뭐야? 약이야?"

  "어? 아, 이거? 응, 엄마가 챙겨준거야."

  "그래? 나도 마셔도 돼?"

  "안돼. 이건 내거니까."

  "칫, 치사해."


  유리는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서 가방만 쥐고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뚜껑을 따고 병 안에 든 것을 목으로 넘긴다.


  처음에는 바커스 비슷한 맛이 났지만, 이내 유니온에서 지급해주는 위상력 촉진제의 맛이 났다.

  아마도 다른 약과 위상력 촉진제를 섞은 것인가보다.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에는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쉽게 쓰러뜨릴 것 같은 생각만으로 머리는 가득했다.

  고마워, 우정미.


.

.

.


  교문에서 아저씨와 테인이는 기다리고 있었다.

  테인이는 초등학교에 다니니까 우리보다 훨씬 먼저 끝났겠지. 끝나고 나서는 아저씨와 함께 쭉 있었던 모양이다. 유리가 손을 흔들어 그들에게 인사했다.


  "많이 기다렸죠!"

  "사실 테인이나 내가 여기에 온건 5분도 채 안돼."

  "네? 그러면 미스틸이랑은 어디에 계셨던 거예요?"

  "PC방."

  "네?"

  "PC방에서 맞고를 치면 참 재미있지. 안그래, 미스틸?"

  "네! 맞고라는 거 정말 재미있었어요!"

  "어린애한테 뭘 가르치신 거예요!"


  아저씨는 분명히 늠름하고 든든하지만, 가끔 저런 모습이 있다.

  저것도 아저씨의 매력이겠지만, 이번 사례는… 글쎄.


  "제이 씨,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벌써 해가 다 져가고 있어요. 그 전에 채민우 경정님을 만나야죠."

  "아, 그렇지. 빨리 움직이자고. 어차피 여기에서 채민우 경정이 있는 곳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으니, 천천히 가도 되겠지만."

  "전혀 가깝지 않아요. 여기에서 거기까지는 버스를 타도 30분이라고요."

  "아, 알았어. 미안해, 대장. 잔소리는 그만하고 움직이자구."


  슬비의 잔소리는 여전하다.

  이것도 저 녀석의, 매력이…지?


  우리는 버스를 타고 채민우 아저씨가 한창 복구작업에 힘쓰고 있는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신논현역 근방이라, 슬비 말대로 우리 학교에서는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다. 

  정말로 이렇게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본 것은 오랜만이다.

   

.

.

.


  "충성! 어서 오십시오! 또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원님!"

  "채민우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정말 오랜만이군요. 요원님들께서 송은이 경정님께서 계신 국제공항에서 테러리스트들을 몰아내는데 큰 공로를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저희가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리고…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정말 데이비드 지부장이 배신한 것이 사실입니까?"

  "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은 우리에게 큰 마음의 짐으로 있었기에,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것을 빠르게 눈치챈 것인지 금세 그는 화제를 다른데로 돌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그나저나 어떤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지난 밤에 강북에서 출현했다던 「형상복제자」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어요."


  리더인 슬비가 그의 질문에 답했다.

  속은 어떠할지 모르지만 겉은 정말로 강한 녀석이다.


  "아, 그거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그 녀석들에 대한 데이터는 저희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쪽 일대를 담당하는 특경대 간부의 말을 빌리자면, 이미 출동했을 때는 사라져서 없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특경대는 거기에 출몰한 그 차원종이 정말로 「형상복제자」인지조차도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초 신고자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초 신고자는 그 일대 주민인 서태민 씨로, 직장 회식 후 만취한 채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자신과 똑같이 생긴 네 명의 또다른 누군가를 보고 깜짝놀라 신고했다고 했습니다. 신고받은 경찰은 차원종으로 파악하여 특경대에 출동요청을 했고, 현장으로 출동한 특경대가 신고자를 발견했을 당시에 그는 근방의 골목에 숨어서 떨고 있었다더군요. 신고자가 신고 당시 만취한 것을 감안하자면, 아마 그가 헛것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특경대는 우선 「형상복제자」가 출현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가능성을 높게 보 지는 않습니다. 아마 이대로 그 차원종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1주일 내로 사건은 종료되겠지요."


  김이 새는 느낌이다.

  술에 취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에 의하면 술에 취하면 정말로 헛것이 보이기도 한 모양이다. 아마 신고자도 같은 상황 아니었을까?

  이제 우리 팀의 이동은 슬비의 판단에 달렸다. 슬비도 생각에 빠진 것인지 잠시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곧 그녀의 답이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정보 공유에 감사합니다, 채민우 경정님."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요원님들께서는 그곳에 가보실 생각이십니까?"

  "현장 답사는 한 번은 해봐야할 것 같아요. 차원종이 출현했다면 위상력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테니."

  "과연 클로저들이라면 할 수 있을법한 일이군요. 하지만 차원종의 출현을 특경대가 사전에 포착하지 못하고 신고를 받고 늦게서야 출동한 이유는 그 일대의 위상변곡률이 정상치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상복제자」 정도의 차원종이 출현했다면 분명히 위상변곡률이 불안정하게 되었을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소득도 못 얻으실 수도 있을텐데, 굳이 가시겠습니까?"

  "지난 신서울 사태를 겪으면서 저희는 모든 이상상황에 대해서는 먼저 의심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지금 신서울 사태가 해결되어가는 지금에도 마찬가지이겠구요."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충성! 조심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거수경례를 붙이는 채민우 아저씨.

  우리도 목례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선 뒤돌아섰다.

  부디 우리가 가는 것이 헛수고가 되는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적어도 더이상 차원종이 출현하지 말았으면…


 

  ◆ 3-3

 

  남산 쪽으로 가는 버스.

  퇴근 시간대인지라 버스는 복잡했다. 다행히 우리는 신논현역이 발차점인 버스를 탔기 때문에, 우리가 탈 무렵에는 버스 안에는 자리가 널널했다. 우리 팀은 버스 뒤쪽에 탔는데, 나와 슬비가 한 자리에 앉고 테인이와 유리가 한 자리, 그리고 우리의 바로 뒤의 혼자 앉는 자리에는 아저씨가 앉았다.


  우리가 버스를 탈 때, 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매우 반가운 모습을 보이면서 인사했다.

  우리가 목적지에 갈 때까지 버스에 타는 사람들마다 우리에게 고맙다거나 반갑다거나 사진 같이 찍어줄 수 있냐는 등의 멘트들로 인사했다. 우리가 이 정도로 유명인사가 된 것일까?

  한참동안 그런 소란이 이어지다가, 우리가 완전히 버스 안을 가득메운 사람들로 가려질 때 쯤이 되어서야 소란은 그쳤다. 버스 안은 다시 기사 아저씨가 켜놓은 라디오의 소리와 사람들의 기침 소리, 버스의 엔진소리만이 가득했다.

  이래야 정말 버스답다.


  버스가 커브를 돌면서 내쪽으로 방향이 쏠렸고, 그 때 문득 슬비와 나의 몸이 붙었다.

  같은 자리에 앉았어도 나와 슬비는 몸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살결이 닿는 이 느낌은 정말 아찔했다.

  나나 슬비나 서로와의 접촉을 피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일까? 슬비의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슬비는 아마 내가 싫은걸까.


  "야, 이슬비. 너무 싫은티 내지말아줘."

  "내가 언제 그랬어!"

  "지금 그러고 있잖아?"

  "아, 아니야!"

  "그러면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간건데?"

  "그, 그건. 모, 몰라도 돼."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구… 고칠테니까."

  "싫어하는 거 아니라니깐!"


  슬비의 목소리가 커졌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슬비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건지 일제히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모두의 시선을 느낀 슬비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채 얼굴을 푹 숙였다.

  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흩어지자 그제서야 슬비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이 달아오른 것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눈가가 촉촉했다.

  설마 이 녀석, 우는건가?


  "이슬비, 너 울어?"

  "안 울어."


  나지막하게 슬비가 말했다.

  주위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서일까, 슬비는 정말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잘못한 걸까?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아냐, 세하는 잘못한거 없어. 괜찮아."

 

  슬비는 눈가에 작게 맺혀있던 눈물을 금방 닦아내었다.

  그리고 평소처럼의 모습을 보였다. 어느새 그녀와 나의 몸은 떨어져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난 저 녀석을 싫어하지 않는데. 녀석은 이걸로 나를 더 싫어하게 된걸까.


  나와 슬비는 아무말 없이 있었다.

  나는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슬비는 말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슬비를 힐끗 보고선 다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버스는 목적지에 가까워져 가는지, 남산타워가 창 밖으로 보였다. 벌써 한 밤이 되어버린 지금, 남산타워의 불빛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기회가 된다면 슬비와 단 둘이 저녁에 저곳에 가서 서울의 야경을 보고 싶었는데, 오늘 단 둘은 아니지만 팀원 전체와 함께 이곳에 왔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어라? 내가 잘못 본건가?

  눈을 깜빡이고 비빈 후에 나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쪽, 그 상공에는 ''가 있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그 녀석은,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슬비야…"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 쯤엔, 그 녀석이 갑자기 건블레이드를 들었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그 녀석은 곧바로 이곳을 향해 그 끝을 겨누더니, 그 녀석의 건블레이드는 푸른빛의 불꽃을 토해냈다.


  "피해!!"

  "무?! 꺅!"

  "으아아아악!"



  퍼엉!

  버스의 바로 옆의 도로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다행히 버스가 차로를 변경하는 덕분에 그대로 불꽃에 관통되지는 않았지만, 불꽃은 도로와 충돌하여 폭발을 일으켰고, 폭발의 기세로 밀려난 공기가 버스를 세차게 때려서 그대로 옆으로 버스를 넘어뜨렸다.

 

  버스 뒤를 따라오던 차들도 곧 연쇄추돌을 일으키면서, 금세 남산 아래의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끔찍한 밤의 참사였다.






  어딜가나 일을 터뜨리는 검은양 팀.

  물론 그들이 원해서 그런건 아니지만, 그들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악역님들.


  국제공항의 송은이의 말이 생각나네요.

  "으, 내가 오기만 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그나저나 세하슬비 연애라인은 처음인지라 떨리네요.

  언제쯤부터 얘들을 엮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4-10-24 22:59:3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