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1. 철수 -

Articulus 2016-02-26 2

국제공항까지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므로, 국제공항 에피소드까지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들 중 스포일러를 보기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왜 이 길을 걸어가기로 결정했던 것일까?

 

.

.

.

 

  언제나와 같이 나는 집에 들어왔다.

 

  "학교 다녀왔어요."

  "세하, 왔니?"

 

 

  잠깐 안을 들여다보았다.

  엄마와 함께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마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낯설다고 해도, 이런 풍경은 낯설지는 않다.

  

   우리 집은 조금은 특별하다. 우리 집에는 가끔 누군가 - 엄마는 공무원들이라고 말했다 - 찾아온다.

  물론 그 가끔라고 하는 것은 여섯 달에 한 번 꼴. 우리 집을 찾아오는 그 사람들은 1년 주기로 계속 사람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이 찾아올 때면 엄마에게서는 왠지모를 당혹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관심없다. 그 사람들이 누구이건, 나와는 결국 관계가 없는 사람들일테니까.

 

 

  이번에 온 사람은, 처음보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인사를 마치고 바로  2층의 내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 앞에 섰다. 그 때 엄마가 나를 불러세운다.

 

  "세하야, 잠시만."

  "왜요?"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을 보았을 때, 나는 이내 내가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언컨대 나는 한 번도 엄마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우리 엄마는 바보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표정을 지으면 나 역시 저절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걱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엄마는 어느새인가 내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엄마는 말없이 내 손을 꼭 양손으로 잡아주었고, 나는 뭔가 심상치않은 일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 왜 이래요? 무슨 일 있어요?"

  "……"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다.

  답답하다. 나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대신 엄마의 양 어깨를 잡아 누르듯 하여 앞뒤로 흔들었다.

 

  "무슨 일이냐니까!"

 

 

  그 때, 거실에서 앉아있던 그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말쑥한 검은 정장차림의 남자. 그 남자는 나보다 키가 약 10cm 정도는 더 커 보였다.

  인상은 나쁘지 않았고, 웃는 표정이 꽤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가슴 왼쪽의 주머니에는 그 남자의 신분을 상징하는 공무원증 같은 것이 케이스에 담긴채로 걸려있었고, 대충 훑어봤어도 그의 소속이 어디인가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남자의 사진 바로 아래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혀있는 이름, 직급, 소속을 지나 맨 아래에 적혀있는 기관명은, 그 남자가 유니온(UNion)에 소속된 공무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웃음이 잘 어울리는 남자는 말없는 엄마 대신에 나에게 말했다.



  "반가워, 너가 이세하 군이지?"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 내 소개부터 했어야했는데.

   내 이름은 한재민, 소속은 내 요원증에서 보다싶이 유니온이고. 정확히는 유니온 신서울지부 산하의 특수능력자 아카데미에서 위상능력자들을 관리하는 사람이지. 잘 부탁해?"

 

 

  특수능력자 아카데미. 익히 들어본 바 있다.

  위상능력자 양성시설 중의 하나로서, 위상능력자들을 그들이 능력을 바로 사용할 수 있게끔 교정하고 교육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다. 18년 전 차원전쟁 이후 위상능력자들의 잠재력과 힘을 알아챈 세계는, 각 국가별로 위상능력자의 관리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 때문에 위상능력자로 태어나게 되면 어릴 적부터 국가의 관리와 보호 - 보호라는 감시 - 를 받게 된다.

 

  어릴 때도 나는 종종 강남에 있는 어느 시설에서 위상력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학교가 방학할 때 쯤이면 그곳에 들어가 한 달 가량 어떤 프로그램들을 계속해서 이수해오기도 했고. 아마 이 사람은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일 것이다.

 

  "유니온의 사람이 왜 우리 집에 온 거죠?"

  "너무 그렇게 날 세우지마, 이세하 군. 난 절대 너를 잡아먹으려거나 그러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니까."

  "이유나 말해요. 나 게임해**단 말이에요."

 

 

 

  남자는 싱긋 상큼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데이비드 국장님께서 너를 발탁하셨어.

  축하해, 이세하 군. 너는 오늘부터 '클로저'가 된거야."

 

.

.

.

 

 

 

  "ㅅ하야."

  "으음..."

  "이세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부드러운 목소리다.

  잔소리꾼 리더. 그런 녀석.

  아마 이렇게 진지한 목소리로 부르는 걸 보면 분명히 또 나에게 한소리를 하려는 모양이겠지, 내가 낮잠에 빠졌다는 이유로.

 

 

  "하아암."

 

  기지개를 크게 켜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잔소리를 들을 준비를 했다.

 

 

  "너, 이런 상황에서 잠이 와?"

  "어떻게 해, 너무 피곤한걸."

  "너도 참…"

  "무슨 일이야? 잔소리를 여기에서 끝내고?"

  "유정 누나로부터의 전언이야. 우리 팀은 이만 강남으로 철수할거래."

 

 

  예상된 수순이다.

  아마 이슬비, 이 녀석도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서유리, 테인이, 그리고 아저씨까지도.

 



  '그 남자'의 배신으로 우리 검은양 팀은 더이상 임무를 속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배신이 가져다준 충격이 우리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고 있는 이 녀석도, 아마 속으로는 나나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테지.

 

  나는 어른을 본래부터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그 남자'는 나도 모르게,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었다.

  G타워에서의 처음 만남으로부터 지금까지 정말로 목숨을 걸고서 차원종과의 전장을 누볐기에 그 신뢰의 벽은 무척이나 두터웠을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충격은 더욱 컸을지도 모른다.

 

  나도 참 무뎌졌다.

  어째서 어른을 신뢰하게 된 것일까?

  기대하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었을텐데.

 

   

  "너도 알고 있어. 1시간 이내로 우리는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게 될거야.

  송은이 언니나 샤오린 씨 같은 분들에게 인사라도 해둬."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나는 자리를 옮겨 은이 누나가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만큼이나 이 누나도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특경대의 간부이기에 오랫동안 유니온의 많은 사람들을 알아왔을 터, 그렇다면 그의 배신에 받은 충격도 우리만큼이나 클 것은 뻔하다.

  은이 누나가 먼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세하야, 강남으로 돌아간다면서…"

  "네, 그렇게 되었어요."

  "같이 작전을 하는 것은 여기에서 끝인 것 같네. 테러리스트 녀석들도 물러갔고, 이 공항은 이제 한숨 돌린거야. 다 너희 덕분이야."

 

 

  누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는 아무래도 억지스러웠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기분이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나도 웃어주는게, 아무래도 도리이겠지?

 

  "하하, 저희 덕분이라뇨. 우리 모두가 함께 물리친거죠."

  "그래. 돌아가서도 그렇게 웃어줘, 세하야. 너희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건 나도 보기에 여간 힘든게 아니니까."

  "누나는 계속해서 이곳에서 계시는 거예요?"

  "응. 공항수비대로 계속 이곳에 남아있을 것 같아. 테러리스트의 습격 때문에 공항 이곳저곳 복구해야할 곳이 많고, 그래서 당분간은 이곳에서 꼼짝없이 있게 생겼지 뭐야.

  뭐, 그래도 혹시나 강남에 잠깐이라도 가게되면 연락할게, 같이 식사라도 하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은이 누나와 작별했다.

  아마 꽤 오랫동안은 이 누나와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국제공항의 이곳저곳을 돌며 샤오린과 김도윤 씨와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베리타 여단을 물리치는데 그들의 도움도 매우 컸기 때문이다. 그냥 강남으로 떠나게 되면 그들이 무척이나 아쉬워하겠지.

 

 

  인사를 다 마치고 나는 유정 누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그 앞에 도착할 쯤, 다른 팀원들도 모두 도착해있었다. 아마 내가 제일 늦게 도착해서, 다들 나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짧게 미안하다는 말로 용서를 청한 뒤, 유정 누나의 브리핑을 기다렸다. 

 

 

  "세하도 왔으니, 본격적으로 브리핑을 시작할게.

  슬비에게 전달받은대로, 검은양 팀은 이 시간부로 국제공항에서 철수할 예정이야.

  데이비드 리… 그 사람의 배신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커다란 짐이 되었어. 유니온 총본부에서도 우리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결국 검은양 팀은 강남으로 돌아가서 평시의 임무를 계속해서 수행하라고 지시를 내려왔어."

 

 

  유정 누나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침울했다.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그 남자의 배신은 그녀에게도 버거운 짐일 것이다.

 

  누나의 말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별다른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그것을 깨고 아저씨는 조용히 물었다.

 

  "유정 씨, 그렇다면 우리가 강남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하지? 평소처럼 대기인가?"

  "총본부는 별도의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 평소의 경계임무만 담당하라고 했어요. 즉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같아요. 마침 신강고등학교도 복구작업이 완료되었다고 하니, 모두 별 일 없이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제이 씨를 제외하고 모두 학교로 돌아가는거죠…"

  "나를 제외하고라니, 너무 말이 슬픈걸."

 

 

  아저씨는 살짝 웃었다.

  우리 중 가장 태연한 사람이다. 그와는 18년 전의 차원전쟁 때부터 연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걱정 말아요, 제이 씨는 저 대신 이 아이들을 관리해주는 역할을 맡게 될 테니까."

  "내가 관리역을? 유정 씨는 어쩌고?"

  "저는 당분간 이곳에 남아 이곳에서의 뒷일을 처리하게 될 것 같아요. 당장 총본부에서 감사가 나온다고 하니, 그것부터 준비해야겠지요. 강남으로 돌아가는대로 제이 씨는 저와 연락을 종종 취하면서, 아이들을 저 대신 관리해주셔야 할 거예요. 할 수 있겠죠?"

 

 

  아저씨는 이마를 오른손으로 감싸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의미의 한숨인지는 나는 잘 알 수 없지만, 결코 긍정의 반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거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연장자인 그는 모범을 보여야하기 때문이리라.

 

  "알겠어, 유정 씨.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철수하면 되지? 선우란 요원을 통해서인가?"

  "안타깝지만 선우란 요원은 이 근방의 순찰을 계속해서 맡아주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움직이기 어려워요. 다행히도 공항철도가 정상 운행한다고 하니, 그것을 타고 강남으로 돌아가시면 될 것 같아요."

  "윽, 지하철이라니.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르는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아이들을 잘 부탁해요, 제이 씨. 그리고 슬비, 세하, 유리, 미스틸테인, 모두 힘내고. 알았지?"

 

 

  유정 누나의 말에 모두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누나와의 작별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손만 흔들고서 우리는 그 끔찍한 곳을 그 어떤 때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여 빠져나왔다.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본능이었다.

 

 

  공항 지하로 내려가 막 도착한 지하철을 타고서, 우리는 신서울로 되돌아갔다.

  차원종이 아닌 같은 사람을 베고 찌르고 쓰러뜨려야 했던 이 처참한 지옥이 멀어져가는 것을 창 밖으로 보면서, 우리 모두는 무거웠던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다.

 

  한참동안 지하철을 타고 가다, 눈에 익은 재개발 지역인 구로 옆을 지날 때에서야 우리는 서울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그리운 강남에, 우리는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네이버 카페에서는 BGM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은데, 이곳은 그게 안되니 아쉽네요.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4-10-24 22:59:2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