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세하슬비나타] 잔혹성
에베레베렙 2016-01-09 2
달빛이 건물 틈으로 새어들어왔다. 소년은 밖을 쳐다보았다. 꽤나 높은 폐건물이었다. 일반인은 떨어지기만 해도 즉사이고, 위상능력자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뼈가 나갈 정도로 아찔한 높이의 폐건물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손에 들린 이상한 검을 쳐다보았다. 날이 아예 없다시피 한 뭉툭한 날,손잡이 위에 달려있는 방아쇠. 특이한 모양의 검이었다. 그 검은 여기저기 부서지고 갈라져 있었고, 이상한 핏자국들은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소년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검을 건물의 바깥으로 내던졌다. 이 높이라면 분명히 박살이 났을 것이다.
"아- 이게 뭐야. 실망인데? 좀 더 즐겁게 해줄거라고 믿었는데 말이야."
소년은 말했다. 그의 발치에는 피투성이인 채 나뒹구는 검은 흑발의 소년이 있었다.아직 숨은 멎지 않았는지 긴박한 숨소리가 소년의 귓가에 들려왔다. 소년은 자신의 푸른 머리를 쓸어올리고는 피로 물들어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자신의 낡은 칼 두 자루를 빙글빙글 돌리고는 검은 머리의 소년을 내려다 보며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겨우 이거밖에 안 되는 거였나? 엉?"
"..그래서? 거기 넌 어떻게 생각해? 이거...아, 어차피 지금은 말도 못하지?"
소년은 뒤를 돌아보고 말하였다. 소년의 뒤에는 이상한 금속제 구속구에 두 팔과 다리가 묶여버린 분홍빛 머리의 소녀가 눈물을 흘리며 나뒹굴고 있는 흑발의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몸도 또한 여기저기 핏줄기가 흘러내렸고, 어깨의 상처는 심각했다. 마치 칼로 몇번이나 그은 듯 했고, 따뜻한 피가 계속해서 배어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년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뭐라고 계속해서 말해**만 쉴 대로 쉬어버린 목은 소리를 더이상 제공해주지 않았다.
"노려봐서 뭐 어쩔 건데."
그러나 소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시선을 헐떡대고 있는 검은 머리의 소년에게로 돌렸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나뒹구는 소년을 보고는 약간의 비웃음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소년은 그런 그의 복부를 밟고는 짓이겼다. 소년이 말했다.
"다들 내가 이기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말이야."
발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가슴 부분을 밟았다. 짓이기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밟아대기만 했을 뿐이다. 얼마나 짓밟았을까. 콰직 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부서지는 느낌까지 발을 통해 전해져왔다. 그러자 소년은 발을 치웠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킥킥 웃는 소년은 그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벌처스의 처리부대 소속이었던 소년, 나타는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었고,또한 그런 행위 자체를 재미있어 했다. 소년은 이윽고 말을 이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지? 난 멀쩡히 서 있고, 너는 꼴사납게 이딴 바닥에서 굴러다니기나 하고 있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냐?"
소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앞에는 누구도 자신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 말했던 소년, 이세하가 피를 잔뜩 흘리며 나뒹굴고 있었고, 그리고 이세하가 소속된 팀의 리더라고 하는 이슬비라는 소녀는 그저 구속당해서는 저쪽에서 소년이 잔혹하게 고문당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나타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저 먼 발치에서 쳐다보기밖에 할 수 없는 소녀,이슬비에게 잔혹하게 웃어주었다. 소년의 표정에서는 비릿한 피냄새가 흘렀다.
이슬비는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가녀린 그녀의 몸에게 구속구는 너무나도 단단했다. 그녀의 위상력은 어째서인지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이 구속구는 위상력을 흡수하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인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녀는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소리를 많이 지른 탓이었을까. 이제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 탓이었다. 자신이 너무나도 오만했었다. 다른 동료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뛰쳐 나와 혼자서 작전에 임했다. 그리고, 작전 도중 돌연히 나타난 이 소년에게 붙잡혀 이 폐건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세하는 나를 위해 저렇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세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년은 좋은 생각이 났는지 그녀에게 다다가려 했다. 그러나 발목에 잡히는 저항의 느낌에 밑을 내려다보았다. 벌겋게 부은 손이 소년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그의 표정은 사그라들지 않은 고통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었다. 떠는 듯한 느낌이 발목을 타고 몸을 진동시켰다. 나타는 한번 씨익 웃어보이더니 반대쪽 발을 들어 소년의 팔목을 즈려밟았다.
"크윽...아아악..."
"어이. 한번 막기로 한 거, 끝을 봐야 할거 아냐.....엉?!"
그의 다리가 허공을 날았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세하의 몸은 바닥을 몇 바퀴는 구르고 있었고,세하가 굴러간 길에는 핏자국이 수도없이 흩뿌려져 있었다. 나타는 그의 검을 혀로 스윽 핥았다. 비릿한 혈액의 맛과 서늘한 날붙이의 맛이 미각을 가득 채웠다. 항상 느껴본 죽음의 맛이었다. 나타는 세하의 목을 움켜쥐고 서서히 들어올렸다.
"....게임 오버다."
나타는 그의 심장 위 살덩이에 검 끄트머리를 조금 찔러넣었다. 조그맣게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옷이 피로 조금 물들었다. 이대로 찔러넣으면 세하의 심장은 박동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완벽한 죽음을 의미했다. 그의 눈은 감길 것이고, 그의 따뜻했던 몸뚱아리는 차갑게 식어 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ㅁ....제발...그...만..."
슬비는 어떻게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쉴 대로 쉬어버린 목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못했다. 눈물이 앞을 계속해서 가렸다. 그 때문인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팔이 계속해서 구속구를 치고,다리 또한 일어나려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머리로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생각들이 무수히 뇌를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실행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절망만이 눈 앞을 가득 메웠다.
그때였다.
"...게임...오버란....대사는....말이야..."
"뭐?"
희미한 소리가 세하에게서 흘러나왔다. 가까이 있는 나타에게도 희미하여 제대로 들리지 않은 소리였다. 잘못 들은 소리였거니 넘어갔던 나타와는 달리 이슬비는 멀리 떨어졌어도 그 소리를 명확히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그는 포기하지 않은 것이었다.
" 죽어야....할 수 있는 대사라고! "
이번에는 나타의 귀에도 명확하게 들린 소리였다. 곧이어 이상한 충격이 느껴졌다. 정전기보다 몇배는 큰 전류가 나타의 몸으로 흘러들면서 약간 마비되었던 몸은 이상한 충격 이후 발생한 파동의 여파로 꽤나 멀리 날아갔다. 이번엔 나타가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위상능력자들이 공통으로 펼칠 수 있는 기술,
'강제 캔슬' 이었다.
"쿨럭..."
이세하는 일어나면서 목을 만져보았다. 잡힌 목이 얼얼했고,마른기침이 저절로 나왔다. 몸이 힘을 서서히 되찾으면서 몸에 덮힌 무수한 상처들에서 다시 한번 격통이 찾아왔다. **듯이 내달리는 통증에 다시 몸이 떨리고 무릎이 꺾였고,입으로는 검붉은 피가 모여들었다. 그러나 쉴 틈은 없었다.
"...! **!"
입에 고여 있던 검붉은 피를 침과 퉤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뱉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타의 검 두 자루가 살덩이를 자르기 위해서 짓쳐들어왔다. 목을 자르기 위해 다가오는 검 한 자루는 어떻게든 피했지만 검이 두 자루라는 것을 잊었던 세하는 급하게 상체를 뒤로 뺐으나 그의 검을 온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가슴팍에 통증이 느껴졌다. 가슴 부분의 옷은 일자로 주욱 베이고, 그 자리는 빨간 피가 메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쓰라린 통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그러나 통증 따윌 신경쓸 시간은 없었다. 나타의 검이 다른 살들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가슴팍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을 한 걸음을 뒤로 한 채 상체를 약간 뒤로 기울여 피한 후 그는 후방으로 점프해서 자연스레 나타와의 거리를 벌렸다.
"**, 뭘 하나 했더만, 위상력이 모이기를 기다렸던 거냐?"
"...뭐 그런 거지."
"...좋은데? 역시 넌 나를 흥분시킨다니까! 키히히히...좋아! 이제 진짜로 죽여 보자고! "
나타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나를 죽이려 들었다. 저놈의 살의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나를 죽이려는 상대에게 어중간한 각오로는 이길 수 없다. 나도 그만한 각오를 다져야 이슬비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스전까지 왔는데, 이런 곳에서 비석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더이상은 못 참겠다. 검 고쳐 들어. "
주위를 살폈다. 마침 옆에 꽤나 큰 쇠파이프가 눈에 띄었다. 딱 봐도 자신의 전용 무기인 건 블레이드만한 크기였다. 건 블레이드가 밖으로 내던져진 지는 이미 오래였다. 아마도 지금 저것만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나는 쇠파이프의 끝을 올려쳤다. 그러자 쇠파이프는 위로 튀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쇠파이프를 잡아들었다. 서늘한 금속의 느낌이 손을 타고 온 몸으로 퍼졌다.
"뭐?"
"검 고쳐 잡으라고, ***아."
이윽고 쇠파이프에 푸른 기운이 일렁이듯 스며들었다. 위상력을 조금 주입한 것이다. 이걸로 저 칼과 맞부딫혀도 잘 썰리지는 않겠지. 나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 눈이야말로 살인을 원하는 눈이었다. 또한 살인밖에 할 수가 없는 눈이었고, 살인을 하며 살아가는 눈이었다. 그 눈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뚝,뚝 울려퍼졌다.
하늘이 울고 있었다. 부숴져 무너져버린 천장을 통해서 비는 짓쳐들어왔다. 빗줄기가 굵게 내리는 빗줄기는 아무래도 쉽게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그들의 몸도 또한 차갑게 젖어들어갔다. 이윽고 무수한 물방울들의 선율 아래서 한 차례의 차가운 금속성이 울려퍼졌다.
금속을 맞부딫히는 소리가 끝없이 울리며 빗줄기 또한 계속해서 굵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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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랑 연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