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자리 - 1

하프르 2015-07-21 0



 10년 전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댁에서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하늘이 탁 트인
마루에 누워 별을 보았다. 큰아버지가 다니는 회사 건물이 갑자기 부서져 내려
큰일이다는 둥 어른들은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귀를 막고
별이나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별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을 보았다. 옆에서
같이 별을 보던 선이가 "오빠, 왜 눈을 찡그리고 있어?"라고 물은 것으로 보아
별을 보려고 눈에 너무 힘을 주었던 듯 하다. 선선한 밤바람과 배불리 먹어
온몸에 피어오르는 훈훈한 기운, 좁쌀처럼 작은 별빛들이 좋았다. 지루한 학교
와 학원보다 좋았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선이는 손가락을 들어 밤하늘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저게 뭐야?"
 "뭐?"
 "별 세 개가 이어져 있는 거."
 선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별 세 개가 가로로 나란히 이어진 모양. 오리온자리의 허리띠였다.
 "오리온자리? 저걸 오리온자리라고 하는 거야?"
 "아니…저건 허리띠고, 좀 더 크게 보면 커다란 사람 모습이 보일 거야."
 선이는 그 말에 눈에 힘을 주고 별들을 유심히 보았다.
 "찾았어?"
 "못 찾겠어
…. 오빠는 보여?"
 "응
…."
 사실 책에서 안 봤다면 나도 못 찾았을 거야, 라고 말할 뻔했지만 왠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비운의 죽음을 맞은 거인의 허리띠는 죽은 후에도 밤하늘에 매달려 있다. 오리온자리의 다른 부분들도 멋지지만, 가장 밝게 빛나는 그 허리띠가 유난히 인상깊었다. 마치 신화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오리온이 진짜 살아있었던 존재라는 기묘한 감각에 몸이 달아올랐다. 나와 선이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밤하늘을 쭉 바라보았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았던 그 때, 그 짧은 순간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고,
나도 모르는 새에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2017년 4월. 스물 한 살의, 아직 앳된 끼를 벗지 못한 청년이 폐허 앞에 서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짓밟고 간 것처럼, 한 때 청년의 유년이 서렸던 집은 볼품없는 파편 무더기로 화해 있었다. 청년은 한두 번 와본 것이 아닌 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폐허 주변을 서성였다. 그의 할머니가 옥수수를 기르던 텃밭은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쩍쩍 말라붙었고, 손자가 올 때마다 쟁여두었던 장아찌들을 꺼내던 장독대들은 가루로 변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청년은 추억에 잠긴 채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생각에 잠겨, 폐허에 발걸음이 더욱 가까워졌다.
 
 삐-익. 삐-익.

 갑자기 그의 호주머니에서 맹렬한 경고음이 울렸다. 청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뛰었다. 호주머니에서 꺼낸 단말기는 경고음을 사정없이 뿌리고 있었다.

 - 주의, 위험구역입니다.

 "알고 있어."
 청년은 단말기에 짜증을 담아 대꾸하고 거칠게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폐허에 더 가까이 가면 위험했다. 그것은 청년이 잘 알고 있었다. 클로저라 불리는 특별한 자들이 아닌 한, 다가가면 이차원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무언가에 오염되어버린다는 것을.
 청년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누가 본다면 머리카락이 뽑히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세게 긁었다. 숱이 많아 머리가 자주 간지러운 청년의 습관이었다.
  "선이가 또 뭐라 하겠네. 여기 왔다고."
 청년은 체구는 작지만 자주포에 버금가는 주먹을 가진 소녀의 무서움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왔던 길로 되돌렸다. 이제 그가 바라던 소박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마음 속에 되새기면서.

 이형(異形)의 괴물들이 들개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며 질주하고 있었다. 수는 대략 다섯 마리. 그들이 질주하는 곳에는 피난민들의 보호소가 차려져 있었다.
 이곳은 천안. 한 때 충청남도의 교통 중심지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그 좋은 길목이란 특성 때문에 차원종들이 들끓는 지역이었다.
 강철보다 단단안 외갑을 두른 다섯 괴물들은 순전히 파괴본능에만 휩싸여 있었다. 단단한 발톱으로 인간들의 살갗을 찢고 피를 마시고, 그들의 공포어린 얼굴을 부수고 싶다는 잔혹한 파괴충동. 질주하는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커다란 괴물은 입꼬리를 씨익 말아올렸다.
 이곳은 천안의 외곽지역. 주변으로는 광활한 - 농지였던 땅들만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보호소의 병력이라고 해봐야 그리 질 좋은 수준은 아닐 것이다. 아니, 과연 있기나 할 것인지. 거의 목적지에 다 도착할 무렵까지, 그들은 승리의 기쁨에 미리 도취되어 있었다.
  "어쭈, 요것들 봐라. 기분나쁘게 웃으면서 달리고. 우에엑."
 있을리 없는, 명랑한 소녀의 목소리가 그들의 옆에서 들린다.
 '옆에서?' 괴물들은 당혹감에 젖었다. 그들의 질주는 한낱 인간이 쫓아올 정도로 느려터지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옆에서 같이 달리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어디서 들린 것이지?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왼쪽으로 꺾었다.
2024-10-24 22:36:5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