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남녀구분없이맛좋으면그만 2015-06-28 2

그 날 본 하늘은 황혼을 닮아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칼 사이로 비춰본 그 하늘과 함께 소년의 하루도 끝났다.

피로하고 피곤하다. 어깨가 축 늘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친구하나 없이 하교하는 그에게 귀가길은 그리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탈 균형능력도 없어서 언제나 40분 이상을 걷는다.

소년은 통칭 사회성 부족이었다. 실어증 증세도 약 3년 가까이 앉고 있던 데다가 많은 것에 겁을 먹고,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어릴적, 휴향지로 여행을 갔던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이후, 그리고 그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이후 그에게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죽음은 언제나 가깝다.

어떤 이유로도 죽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이 만들어 낸 것이 그리 대단치 않은 거라는 사실을. 자신이 세상에서 참으로 무가치한 존재인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라고 하는, 소년에게 있어 신이나 다름 없던 위대한 자의 죽음에도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년은 왜소해졌다. 말 수가 적고 공상에 빠져 있는 시간이 좀 길었지만 어딜봐도 정상인이었던 그는 가족의 죽음 이후 매우 연약한 사람이 되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소년이라는 말을 들었다.

소년은 괴롭힘을 당했다. 잘 차려진 밥상과 같은 모습일 터였다. 소년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약 3개월 이상을 괴롭힘을 당하며 살았다.

평소라면 얻어맞고 돌아왔을 소년을 위해 가족은 비상대책을 소집하고 형은 야단치겠다며 자신을 괴롭힌 이들의 집을 찾아가려고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얼마든지 싸우라며 격려할 것이고, 어머니는 다친 자신을 위로하며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누나는 바보냐 뭐냐 하면서도 신경을 써줄 것이고, 일이 잘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못 이기는 척 선물이라도 사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게 없다.

가족이의 죽음 이후 소년은 혼자서 사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공부를 했다. 필사적으로 공부를 했다. 얻어맞아 가면서, 심부름을 하면서, 갖은 수치와 모욕을 겪으면서 전교 1등에 올라섰다.

각오가 꺾일 일도, 의지가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인형대신 침대 옆에 놔두었던 가족 사진을 보면서 새로이 마음을 굳히길 반복했다.

나름 사회에서 자랑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소년은 모두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게 있었던 일을 잊을테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를 괴롭히거나 타박하는 이를 잊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전교 1등이라는 이 점수를 시작으로 나는 여기의 누구보다 큰 사람이 되어 그들을 죽을 때까지 괴롭히겠다!"

 

괴롭힘은 사라졌다.

소년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가족의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우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일을 헤쳐나갔다.

회사를 설립하고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조금씩 성장해가고, 그리고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와 결혼했다.

그가 바라던 가족이 있었다.

아직은 부부뿐인 가정이지만 그 가정은 나쁘지 않았다.

분명히 그랬다.

 

 

먼 기억을 훑으면 그 곳은 하얀 병실

몇겹이나 되는 시설에서 세균을 떼어내지 않으면 들어 올 수도 없는 병동의 심부.

여인은 히이히이 하고 힘없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스물여섯 차례의 수술.

대수술이라고 할 만한 것도 네번.

장기는 대부분 쓸모 없게 변했고 얼마나 가르고 찢어댔던지 몸에 생채기가 없는 곳이 없었다.

언젠가는 소중히 품을 수 있을거라고 여겼던 아가방, 즉 자궁 또한 적출되고 남지 않았다.

여인은 그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진 않았다.

차라리 없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을 수 없겟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옅게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당신."

 

여인의 메마른 손을 붙잡고 소리없이 오열하는 남자가 있다.

매스컴에서는 철혈의 주인, 대기업의 총수, 국가의 자랑, 혼자서 국내 총생산의 10%를 올리는 거인 등으로 불리는 이었다.

35세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젊어보이는 그는 체격도 당당하고 품채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내가 되어서 차마 입을 열지도 못하고 어깨로 울고 있었다.

 

"당신 울지 말아요."

 

여인은 그런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언제나 남편 곁에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과 결혼한다는 사실에 엉엉 울기도 했던 그녀는 나름대로 결혼 생활을 하자 남편과 꼭 닮은 아들을 낳아서 으쓱 댈거라고도 말했던 바 있었다.

그런 여인은 남편의 정적, 혹은 몰락시키기 위한 이들에게 납치되었다.

감금되었다.

더럽혀졌다.

부셔졌다.

으깨졌다.

일그러졌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눈은 한쪽 사라져 있고, 이빨도 몽땅 나가고, 장기 주엥서 쓸모있으면서 돈이 되는 것들은 털렸고, 그녀의 몸은 수십명이 넘는 사내들이 더렵혔다. 불로 태우고, 지지고, 구멍을 뚫고, 발을 지지고, 엄지를 자르고, 끊고, 부수고, 으깨고.......

반년이 지나 구출되었던 여인은 이제 나름대로 진정할 수 있었다.

도리어 그녀를 볼 때마다 오열하는 남편을 위로할 수 있었다.

 

"나는 결정했어."

 

남편이 울음을 삼키고 말했다.

 

"나는 반드시 이 세상에 복수을 할거야.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너를 제외한 이 세상 모두가 멸망할지라도. 그것만을 위해서 살아가기로 결심했어."

 

"그러지 마요."

 

여인은 대답했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남편의 눈믈을 닦아주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었다.

심전도를 알리는 희미한 궤적이 줄어간다.

남편은 남편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다.

 

"당신"

 

여인은 손가락 끝에 힘을 주려고 노력했다. 힘줄이 잘려 있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남편이 놀란 표정을 보아서는 제대로 전해졌다고 생각했다.

 

"난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도 당신의 아내로 태어나고 싶어."

 

눈이 감긴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하얗고 하얀 병실이 점점 멀어져 간다. 남편의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릴 텐데도 점점 작게 들린다.

 

"당신 곁에서 살아가고 싶어."

 

아득해지는 심정.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싶었던 마음, 그 끝에서 그녀가 본 것은.....

 

 

 

심전도의 궤적이 멈췄다. 남자는 체내에 모든 수분을 내놓기라도 한듯 눈물을 흘렸다.

그는 죽은 여인을 끌어안고,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혹시 기억해, 당신.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눈물 흘렸던 그 때를."

 

말도 제대로 못했다. 누나의 도도한 눈매가 생각났기 때문이였다. 여인의 모습은 그의 누나와 닮았었다.

 

"혹시 기억해, 여보. 당신이 처음 음식을 만들어 줬을 때 눈물 흘렸던 그 때를."

 

머뭇머뭇거리며 음식을 만들어 건넸을 때 그는 울었다. 어머니의 손맛이 난다고 했다. 여인은 고마워하며 언제나 요리를 해줬다.

 

"혹시 기억해, 여보. 당신과 함께 정원을 꾸밀 때 어떻게 할지 몰라서 당황했던 때를."

 

"혹시 기억해, 여보. 잊지 못할 과거에 비명지르고 고통받았을 때 당신이 부른 노래에 위로받고 행복해하다가 부끄러워 하던것을."

 

"난 모두 기억하고 있어."

 

"여보, 아니 수아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나는 죽는 그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영원히 당신과 함께야."

 

더이상 흐를 눈물이 부족해진걸까. 남자는 피눈물을 흘렸다.

남자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인 가족은 이미 죽었다.

아버지가 일구었던 가정의 사후 없어진 가족을, 남자는 노력 끝에 다시 완성시켰다.

그의 가정을.

그의 세계를.

그가 꿈꾸던 미래를.

남자의 모든 것을.

죽음이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원하는 것이 있었다.

이 세상 모든것을 내던져 버린다고 해도 복수하고 싶었다. 과거를 되찾고 싶었다. 원하고 있었다.

그의 뇌리속에 타오르는 것은 겁화의 불꽃.

불 속에 있는 은발의 소년 소녀가 그를 초대했다.

 

"혹시 힘을 원해?"

 

남자는 낯선 곳에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라도 좋다.

어떤것을 해도 좋다.

자신은 반드시 해야할 것이 있다.

자신이 바라던 과거를 되찾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 복수하는 것.

 

"그러면 그 힘 우리가 줄게."

 

그들은 흉악한 미소에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닮아 말했다.

 

"너는 힘을 가질 수 있어. 더욱 악랄한 악마가 되어 그들을 멸하고 위대한 힘을 사용할 수 있어. 대신 너는 더 이상의 시간에 의미가 없고 다른 선택을 후회하면서 모두에게 악마라고 불리겠지. 그리고 악마를 불러낼거야."

 

"그리고 다른 선택도 있지. 힘과 지혜를 잃어버린 후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로 갈 수 있어. 그리고 사후 너는 지옥 중의 지옥으로 떨어져 억겁동안 고통 받을거야. 너를 제외한 모두는 이 위대한 희생을 알지 못해."

 

단점과 장점 모두 밟히며 그들이 물었다.

 

""너는 무엇을 원하지?""

남자는 대답했다.

실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실제로는 1초의 시간도 흐르지 않은.

머리가 빠질 정도로 골몰했고, 실제로도 머리가 모두 빠져버린 그는.

남자의 선택은.

선택은......

 

 

시간이 흘러

선택을 마친 남자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 하늘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앞으로 그의 시간이 더이상 흘러가는 일은 없다. 그는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었을 미래를,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자질을, 희망을, 가능성을, 시간을, 영광을, 가족을, 가정을, 세계를 져버리고 힘을 얻었다. 대신 그는 악마가 되었다. 더 이상 미래로 향하는 진행이 막힌 그는 영원히 황혼에 물든 하늘을 올려다 보아야 할 것이다.

남자는 손을 들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자신의 몸.

힘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완전히 변하지 못하였다. 반쪽짜리 인간. 그들은 충분히 힘을 줬다고 하지만 변하지 못한 ㅣ이유. 남자는 알고있었다.

 

"당신은...... 내가 살기를 원했던걸까."

 

저 아래에서 계획을 방해하는 녀석들이 올라온다. 그는 이제 고개를 숙여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시간이다.

반쯤 무너져버린 그의 얼굴에 가면을 쓰고 지퍼백을 올린다.

 

자 어서와라.

 

뚜벅... 뚜벅...

 

마천루에 올라온 그들을 맞이하자. 가면속에 감춰진 그의 눈이 붉게 물들은다.

 

"내 이름은 칼바크 턱스."

 

"주인님의 충실한 종."

 

 

 

 

 

-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원래의 설정을 깡그리 무시한 설정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즐겁게 봐주세요.

평소 덕수형을 흠모했던 전 이 글을 쓰자고 마음먹고 공들여서 다 썼더니 제 친구가 이걸보고.

'야 덕수형 사실 연구원이고...'

.... 전 그때서야 알았던 걸 찢어버릴까 고민했습니다.

뭐 그래도 올리고 보자는 심정이죠.

전 주인공들 이야기보다는 엑스트라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에 더 올리고 싶습니다.

다음은 하얀사신이나 해볼까요...

2024-10-24 22:29:1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