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 클로저스x자작] 춤추는 칼날 : 〈Chap.1 - 검을 버린 소녀(2)〉
나예령 2015-05-19 1
유리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은빈은 뒤돌아** 않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어디로든 달려가 버리고 싶은 걸 굳이 억누른 건, 유리가 그녀를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로든 도망쳐버리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빠르게 걸어가는 그녀의 어깨를 확 잡아채는 손길에 은빈이 걸음을 멈춘다.
“빈아!”
“유리야…….”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유리의 목소리를 듣자, 겨우 억눌렀던 눈물이 새어나왔다.
왈칵 터져나온 눈물이 볼을 타고, 턱을 타고 흘러내리며 은빈이 스르륵 주저앉았다. 입가를 가리며 펑펑 울음을 터트리는 은빈을, 유리가 감싸 안았다.
은빈이 우는 건, 유리로서도 처음이었다.
항상 차분하고 침착하게, 화를 낼 때도 언성을 높이는 일이 많지 않았던 은빈이 이렇게 울음을 터트릴 정도로, 이번 대회에 나가고 싶었다는 것일 터다. 그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것만 같았다.
유리가 기운 없어 할 때마다 은빈이 그러했듯이, 유리는 은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빈아, 힘내…….”
그저, 그 말 이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울음을 토해내는 친구에게, 그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게 유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그리고, 더더욱 의지를 굳히게 되었다.
나갈 수 없게 된 은빈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 대회에서 우승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유리의 가슴 한편에 피어올랐다.
은빈의 어깨를 토닥이며, 유리는 말했다.
“빈아, 약속할게. 반드시, 내가 우승해서 우리 빈이한테 꼭…… 우승 트로피 안겨 줄게. 내가, 꼭…… 갖다 줄 테니까!”
“응, 응…….”
유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은빈은 울음을 조금씩 멈추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 동안 목표로 했던 것이,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도 가슴이 먹먹하고 아려와서, 은빈은 유리의 품에 안겨서 그저 기대어 있었다.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 줄곧.
.
“서유리, 승!”
심판의 선언이 떨어진다.
유리는, 숨을 격하게 몰아쉬며 손에 든 죽도를 내렸다.
상호 간에 예의를 갖춰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회장에서 물러나, 대기실로 돌아온 유리는 선생님과 만나고 나서는 정말로 자신이 미쳤거나, 아니면 세상이 돌았거나, 라고 무심결에 생각할 정도로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유리는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오랜 기간 꿈꿔왔던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
저도 모르게, 유리의 언성이 높아졌다.
“반칙패라구요?! 에이, 선생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네? 우승 기념 서프라이즈인가?”
유리는 아하하, 하고 웃으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으나 선생님의 침중하게 가라앉은 안색은 변하지 않았다.
“선생님……?”
“농담이 아니란다, 유리야. 나도 믿기진 않지만…….”
선생님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말을 이었다.
“네가 상대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보고 의문을 가진 후, 다시 한 번 비디오 판독을 한 결과, 확실해졌다고 하더구나.”
“확실해졌다구요……?”
“그래. 네가 그 때, 《위상력》을 사용했다고 말이야.”
유리의 표정이 한 순간 굳어졌다.
“위, 위상력이요? 그, Tv에 나오는 클로저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 같은 거 말이죠? 선생님도 참, 잘 아시잖아요! 저 그런 거 없어요! 있으면 난리 났겠다! 막 하늘도 날아다니고 그러던데…….”
아하하, 하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유리에 반해 선생님은 여전히 침중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유리는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해서는 안 되었다.
그녀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약속했다, 은빈에게 우승 트로피를 안겨줄 거라고.
이렇게, 이렇게…… 쉽게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런 건 어릴 때부터 훈련받아야 생기는 거 아니에요? 아니, 태어날 때부터 있다고 했었나? 아무튼 전 그런 거 잘 몰라요~. 뭔가 착오가 있었을 거예요. 아, 어쩌면 제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심사위원 아저씨들이 착각…….”
“……유리야. 일단 진정하고 위상력 능력자 테스트를…….”
선생님의 말에, 유리는 호구를 끌어안았다.
“선생님! 저, 드디어 우승했단 말이에요……!”
믿을 수 없었다.
그게 유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너무나도 돌발적인 상황이었기에.
믿을 수 없다고, 그럴 리 없다고 몇 번이고 부정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고, 운동신경이 유난히 좋다고 평가받아 어릴 때부터 검도를 시작했었던 것이 유리가 검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이유였다.
이왕 시작한 거, 대회 같은 데 나가서 상금을 얻게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검도에 즐겁게 매진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은빈을 만났고, 서로 세부적인 목적은 달랐지만 우승을 위해서 서로 격려하며 응원하고 노력했다.
위상력이라던가, 클로저라든가.
유리에게 있어서 그런 건, TV에나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유리야…… 믿을 수 없는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이건 이미 결정이 된…….”
“겨우, 겨우 우승했단 말이에요……. 빈이한테 약속했단 말이에요……!”
“유리야…….”
약속했다.
은빈에게 반드시, 꼭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겠다고.
우승 트로피를 갖다 주겠다고.
은빈의 몫까지 싸워서, 우승하겠다고.
“전 인정 못해요……!”
“유리야, 떼를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조금은 진정하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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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유리 스토리 보면 이런 일도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