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 클로저스x자작] 춤추는 칼날 : 〈Chap.1 - 검을 버린 소녀(3)〉

나예령 2015-05-20 0

선생님은 고개를 떨구었다.

유리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대기실로 찾아와 있던 은빈에게 그 이야기를 먼저 전하고, 그 대신에 트로피를 받아줄 것을 말했지만 거절하고 매몰차게 나가버리던 은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고개를 도저히 들고 유리의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죄책감이 가슴을 좀먹었다.

알량한 실적에 눈이 멀어, 이 대회에 나오지도 못한 은빈에게 트로피를 대신 수상하라는 염치없는 말까지 할 정도로 실적에 눈이 멀었던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유리가 울면서 뛰어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유리가 오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은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어왔다.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일구어낸 성과인데.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말도 안돼요, 선생님! 실격이라니……. 그것도 반칙이라고요……?”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어 올린 소녀의 항의에 검도부의 고문을 맡고 있기도 한 선생님 쪽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주은빈朱夽彬.

검도계에서는 전설이라 불리는 주한규의 단 하나뿐인 친손녀이자 , 지금 막 우승을 몰수당한 서유리와는 어릴 적부터 친분을 쌓아온 오랜 단짝이다. 그 사이는 실로 끈끈한 면이 있어, 혹은 사귀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은 특별한 점이 있었다.

검도부에 동시에 입부해, 지금까지 줄곧 검도대회 우승을 위해서 쉴 새 없이 서로를 격려하며 달려온 친구가 우승 문턱에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진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

인정할 리가, 없지 않은가.

 

어째서예요……! 유리가, 유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시잖아요……!”

은빈아.”

 

선생님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유리가 상대에게 날린 마지막 일격…… 기억하니?”

……그게, 문제인가요?”

 

은빈의 반문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지막 일격에…… 유리가 위상력을 사용했다는구나.”

……!”

 

더더욱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고작, 고작 그런 이유로…….

유리의 오랜 꿈이었던 대회 우승을 몰수해 갔다는 걸까.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는지 손에서 뿌득 소리가 났다. 입술은 너무 꽉 악다문 나머지 하얗게 핏기가 가셔 창백한 빛을 띄었다.

그럴 리가없잖아요……. 유리는, 유리는…….”

 

지금까지, 평범한 소녀였지 않은가.

지금까지, 아무런 징조도 없지 않았던가.

선생님의 말에, 유리와의 사이에 벽이 생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유리.

항상 밝고 활기찬, 바보 같이도 순진한 친구였다. 유리와 함께 우승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은빈은, 지금까지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밝은 성격인 유리와 함께 지낸 시간 시간이 은빈에게는 너무도 즐거웠다. 유리, 정미와 함께 지낸 시간은 은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두 소녀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서로 천재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런 재능을 가진 두 소녀는 서로를 질시하기 보다는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단 하나의 목표, 우승을 위해서.

 

……아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은빈아. 그래서 네가, 유리 대신에…….”

 

선생님의 말에, 헛웃음을 기운 없이 흘린 은빈은 몸을 돌렸다.

 

필요 없어요.”

은빈아!”

그딴 트로피, 많이 가지세요. 전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요…….”

 

문을 열어젖힌 은빈은 뒤돌아** 않고 대기실을 잰걸음으로 빠져나갔다. 선생님이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은빈은 더 이상 그 목소릴 듣고 싶지 않아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계속 걷고 걸어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은빈은 걸었다. 하염없이 걸었다.

그래. 이젠 필요 없었다. 유리와 함께 세운 목표, 같이 이룰 유리가 위상력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몰수당한 꿈 따위 더 이상 가치가 없다. 더 이상 유리는 그 꿈을 꿀 수 없을 것이다.

위상 능력자는, 이런 대회에 나올 수 없는 게 당연시되고 있으니까... 유리를 검도대회장에서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검도부에도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유리와 함께 지낸 시간을 홀로 남아 되새길 바에야, 차라리 떠나는 게 나았다.

그래, 관두자. 유리가 없는 검도부 따위, 이젠 어떻게 되든 좋아.

 

유리야…….”

 

눈물이 났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유리와 세웠던 목표,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너무나도, 차갑게 부서져버렸다.

 

유리야…….”

 

눈물이 났다.

자신에게 우승 트로피를 꼭 갖다 주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던 유리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눈가를 타고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

빈아, 빈아…….”

 

대기실을 박차고 나온 유리는 눈물을 훔치며 은빈을 찾아다녔다.

오늘 꼭 우승하라면서 자신을 응원하러 온 은빈이었다. 그래서 더욱 힘을 내서 경기에 임했다.

은빈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목표로 하던 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뿐이었다.

그런데, 부메랑은 엉뚱한 곳에서 돌아왔다.

 

빈아……!”

 

주은빈.

줄곧,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시간 동안, 가장 오래 그녀와 지내온 두 명의 단짝친구 중 한 명이다.

우정미, 주은빈, 그리고 서유리.

이렇게 셋이서 얼마나 즐겁게 지냈던가.

얼마나 즐겁게, 서로 힘들어도 격려하고 응원하며 달려왔던가.

그렇게나 힘든 훈련도, 서로 격려하면서 이겨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데…….

 

이제야, 이제야 겨우우승했다구…….”

눈물이 났다.

저도 모르게 또 눈물이 났다.

 

빈아, 어딨어빈아……!”

 ///

 

 

업로드 되나?!

2024-10-24 22:27:2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