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런 사람들-3화
백수광부 2015-05-14 0
2화-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2988/
다음날이었다. 유리가 밤에 일러준 대로 입은 그의 트레이닝 복은 하얀색이었다. 어쩌다 보니 제이 아저씨와 같은 옷을 입고 온 것을 깨달은 세하는 순간 두려워졌다. 유리가 제저씨에게 보내는 찬사와 눈길은, 둔감하기가 바위를 능가하는 그조차도 그 야릇야릇한 욕정을 느낄 수 있늘 정도였던 것이다. 평소에도 활달하고 잘 웃는 성격이었지만, 그녀는 제저씨 앞에만 오면 눈웃음을 사르르 흘리며 장미처럼 ** 향기를 뿜었다.
세하는 주변을 둘러 보다가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있는 슬비를 보았다. 아마 매일 꾸준히 하는 운동일 테지 하고 어림짚었다. 발돋움을 할 때마다 군살 하나 없는 팔과 허벅지에서 잔근육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덕분에 그녀의 모습이 더욱 요염해 보였다. 게다가 톡톡 뛰면서 날리는 땀방울 덕에 말그래도 화사하게 빛나는 벛꽃 같았다. 그녀의 분홍 머리칼은 발자국이 도약하는데 맟춰 리듬이라도 타듯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
그 귀여운 분홍 머리에 취해 잠시 멍해있던 세하는 말문을 틀 요량으로 인사를 했다. 그와 그녀는 본부에서 차원종 이야기나 전투지역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잔소리 외에는 대화를 나누질 못했기 때문에, 밖에서 만나면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세하는 그보다 그녀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역력했다.
"으응 아 안녕. 바, 밖에서는 거의 처처처, 처음이네."
"그러고 보니 그렇네. 학교에서도 자주 못 만나니까... 언제 같이 소영이 누나네 분식집이라도 가자구!"
"데... 데이트는 아직... 아니 내가 무슨 소리람!"
"안되는거야?"
"되, 되지 물론! 나 떡볶이 좋아한다고."
생각보다 다정한 반응에 세하는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일을 할 때에는 차갑고 냉정하지만, 밖에 나오면 그녀도 평범한 소녀였다. 세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더 대화하고 싶은 그의 눈에 슬비의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검은양 팀에서 지급해준 검은 후드티와 검은 반바지였다. 그리고 귀에는 하얀 이어폰이 끼워져 있었다. 운동을 위해 적당히 편한 옷을 입은 것이었지만, 세하에 눈에는 귀여워 보였다.
"무슨노래 듣고 있어?"
"음? 아 장기하라고... 오래된 가수인데..."
"아! 나도 그 사람 좋아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었네?"
세하는 공통점을, 그것도 이렇게나 특별한 부분에서 찾아낼 줄은 몰랐다. 몇 십년 된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리 둘러봐도 없었다. 그런데 정확히 슬비와 맞아들어가다니, 분명히 천생적인 연분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고 말았다.
"허허, 여기는 운동하는 곳이지 연애하는 곳이 아니라고."
"맞아요 제이 오빠."
어딘가 피곤한 듯 하면서도 20대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늙다리 처럼 꼬부라진, 그 힘없게 아스라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제이였다. 그리고 그 뒤로 긴 생머리의 우월한 바스트와 ** 넘치는 허벅지를 가진 육감적인 몸매와 얼굴의 소녀 유리가 따르고 있었다. 그녀는 눈에서 레이져라도 나올 듯 반짝거리는 눈으로 제이를 바라봤지만, 제이는 그 눈빛을 그저 레이져 포인트 볼펜에서 나오는, 그 빨간 불빛 정도로 생각하는지 거들떠 **도 않았다.
"아 제이 아저씨, 오셨어요?"
"아저씨 말대로 운동좀 하고 있었어요."
"아저씨가 아니라 형... 그냥 넘기자. 어쨌건 다들 무리들 하지 말고. 건강이 최고니까. 그건 그렇고 슬비야, 오늘도 괜찮지?"
"물론이죠."
서유리는 런닝머신을 멈추고 위상력을 이용해 훈령용 미트를 몇개 끌어왔다. 제이도 잽을 툭툭 날리고 스텝을 밟아보는 둥 몸을 풀었다.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링 위로 올라갔다. 슬비는 염동력을 이용해 미트를 제이에게 던졌고, 제이는 미리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척척 그것들을 다 받아내었다. 슬비의 위상력 사용의 속도와 세밀함, 제이의 신체능력 둘을 한번에 늘릴 수 있는 훈련이었다.
세하는 온몸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일하는 제저씨와 슬비를 보면서 속으로 조금 감탄했다. 자신이 게임을 할 때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힘든 것에 그만큼이나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유리는 속으로 이를 갈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서 제이가 움직일 때 맞춰 함성을 질렀다. 언뜻 보기에는 정신에 약간 이상이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으으! 슬비이! 여우같은 녀석! 꺄아! 제이 오빠 멋져! 슬비, 언젠가복수할 거야! 꺄아! 쨉쨉! 오빠 멋져!"
"유리야. 여기는 헬스 타운이고, 정신병원은... 으악! 등위에 올라타서 다리를 꺽어 새우처럼 만들지 말아줘! 무릎 관절은 그쪽으로 꺽이진 않... 으아악! 목은 뇌로 가는 혈관이 모인 곳으로 그렇게 팔과 함께 조르면..."
문득 그는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과,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는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