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1. 두번째 보고

cllaryche 2014-12-16 0

 0.



 을 - 라001호.



 작전명 : 노심융해.

 정기 보고.

 작전목적과 진행상황.

 위상력에 소질이 있는 인간을 폭주 시켰을때의 반작용을 관찰 결과 육체적 소질이 차원종 이상으로 개발되나 정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함으로 판정.
 간혹 재정신이 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음.

 위상력에 변질을 주었을때 강해지는 강도와 변화 측정.
 육체가 눈에 띌 정도로 변화함을 확인. 클로저 요원의 위상력이 담긴 공격을 견뎌냄. 재생여부는 미확인.
 
 비능력자, 구 위상능력자의 재활이 가능한가.
 현재 진행단계에선 어떠한 것도 확언불능.

 노심 레벨 3. 반인반수.
 위상력 융해도 4. 황색.
 
 실험체 인멸 혹은 실험 연장은 윗선의 판단에 따르기로 함.



 작성자. C. L.



 + + +



 "와아아아~"
 약품냄새가 진동을 하고, 온통 하얀색이라 정서불안이 되려 정서불안에 빠질 것 같은 공간 안. 어울리지 않는 소년(?), 소녀(?)들이 성의 없이 박힌 '절대안정'이란 글자의 옷을 입은채 각자의 침대 위에 누워있다.
 그 중 소년(?)을 부정하는 남자 제이는 조용히 자신에게만 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러브레터?"
 "...훗."
 무표정하게 웃는다.
 그런 표정이 실존한다면 지금 제이의 표정과 일치할 것이다. 그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웃어보였다.
 "나도, 나도 볼래요."
 "봐라."
 빼앗듯 편지를 낚아챈 소녀(?)를 부정하는 소년(?). 미스틸테인은 제이에게서 빼앗은 종이를 크게 펼쳐들었다. 그 곳에는 크고 붉고 거대한 직사각형이 그려져 있었고 그 내부에는 '징계 통지'라고 적혀있었다.
 "난 멀쩡해!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구! 심심해 죽겠으니 어서 집에 보내줘!"
 나풀거리는 편지가 무색하지 않길 바랬는지 검은 흑발의 소녀가 이불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누워있던 소년은 뭔가 할말이 있는 듯 돌아누웠다.
 "..."
 "뭐야. 할말이 있으면 어서해."
 "까먹었어."
 "사람과 대화할땐 눈을 마주보고 대화해야지?"
 "자, 잠깐! 이것만! 이것만 깨고!"
 게임기의 디스플레이에 혼마저 나갈 것 같던 소년은 소녀의 거친 손길에 발악하며 매달렸다.
 "보스야! 이럴때 하필 보스라고! 여기서 죽으면 또 다시 처음 위치로 돌아간단 말이야! 제발!"
 "이런 상황에서 잘도 즐겁더냐!"
 "오히려 '이런 상황'일 수록 더 즐거운 척 해야하는거라구."
 "어허, 그러셔어~ 지금 만든 변명은 몇 점인가요!"
 긴 흑발의 소녀. 유리는 징계통지서로 종이비행기를 만들던 소녀(?). 미스틸테인에게 마이크를 쥔듯한 손모양을 만들어 그 입에 옮기자 미스틸테인은 제이의 썬그라쓰를 뺏어쓰고서 말했다.
 "제 점수는요. 솔직히 의욕이 변명보다 앞선거 아시죠? 우린 변명을 뽑는거지 변명 지망생을 뽑는게 아니거든요. 저는 탈락드리겠습니다."
 "큭."
 여전히 게임기에 정신을 팔고 있던 소년은 성의없이 분한척하며 다시 돌아누우려 했지만 유리의 발길질에 의해 원위치 되버렸다.
 "왜 우릴 여기에 가둔거야? 심지어 남녀를 한 병실에 가두는 건 잘못된 짓이잖아. 그렇지이?"
 "응! 응! 완전 잘못된 짓이라고 생각해요. 언니."
 "남이 쓰고 있는 걸 뺏는 것도 잘못된 짓이다. 꼬마."
 썬그라쓰를 뺏겨도 비행기에 정신을 팔고 있던 미스틸테인의 등을 끌어안은 유리는 구석에 앉아 안경을 쓴채 묵묵히 책을 읽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소란스럽게 했음에도 자기 할 것만 하고 있는 건, 같은 학교 학생이자, 신생팀 검은양의 필두.
 이슬비였다.
 가장 먼저 이상종으로 분류된 윤해창과 조우하고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이후 뒤늦게 부딫혀본 유리는 슬비가 많이 다쳤을 것이라고 여겼으나 자신보다 훨씬 멀쩡하다는 점에 의문을 두고 물었었다.
 그러나 슬비의 입은 무겁게 닫혀있을 뿐. 열리는 일이 단, 한번 밖에 없었다.
 '병원과 도서관의 공통점은 정숙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 동의한 건 게임에 영혼까지 팔아치운 겜덕후. 세하 뿐이었다. 중간에 어머니가 와서 충전기째로 압수해갔음에도 어느 샌가 또 게임기를 손에 쥐고 있는게 현실인 자의 동의였다.
 "에휴."
 결국 유리를 상대해주는 건 제이와 미스틸테인 뿐이었고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던 참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보험처리가 되서 따로 위로금이 나온다는 이야기 뿐이랄까.
 "크악!?"
 복잡미묘한 분위기 속에 제이는 모두에게 들릴만큼 큰 신음을 내며 이불 위에 머리부터 떨어졌다.
 "바, 발작!? 아저씨! 아니 오빠!"
 유리는 어쩔 줄 모르며 만세포즈가 되버렸고, 미스틸테인은 만들어진 비행기를 든채 침대와 침대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세하는 게임기를 든채로 발만 굴릴뿐. 오히려 게임을 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았다.
 "큰일났어! 대장! 제이가 쓰러졌어!"
 "..."
 "이럴땐 마우스 투! 마우스!? 투 마우스 였지!?"
 "앗!"
 슬비는 자신의 침대를 향해 달려오는 미스틸테인은 붙잡고 그대로 종이 비행기를 뺐은 뒤, 발만 굴리며 게임에 열중하던 세하의 손에 있던 게임기를 자연스럽게 빼앗고 그대로 등 뒤의 창문 밖으로 던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게임기가 아닌 자신이 떨어지는 듯한 착각적인 효과음을 내는 세하를 무시한채 유리를 밀어내 침대에 앉혀놓고 그 위에 미스틸테인을 올렸다.
 "죽은 척 해도 소용없어요."
 "..."
 "제가 받을까요? 징계를 달게 받겠다고 하셨습니다!라고 전해드리면 되겠죠?"
 슬비의 말에 거짓말처럼 제이의 몸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받으세요."
 "...마그네슘이 부족한 지금의 나는, 차마 이런 충격적인 통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제이의 발언에 슬비는 제이 옆 책상에 있던 맥주캔을 집어들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술은 잘 넘어갔네요?"
 "하루에 한 캔은 건강에 좋은 습관이지. 뿐만 아니라 그 맥주는 건강 맥주로써 칼슘, 비타민, 식물성 식이섬유, 탄수화물이 풍부해서 나같은 환자..."
 "받.으.세.요."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주며 말하는 슬비와 정면에서 마주보던 제이는 조심스레 자신의 핸드폰을 열었다.
 [대체! 언제 받는거에욧!!!]
 "크윽, 오랜 지병인 발작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군. 뒤를 부탁한다."
 쓰러지려는 제이의 앞에 슬비는 조용히 수신호를 보냈다.
 "아아! 저 손짓은 '내가. 받으면. 너는. 죽을지도. 모릅니다.'에요!"
 미스틸테인의 말에 제이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정자세로 자신의 입에 가져다댔다.
 [도대체가! 당신이라는 사람은 매사에 왜 도망만 치는거야!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아?!]
 그 외에 '또 술이나 쳐먹고 있겠지'라던가, '팔자좋게 뒹구는 주제에'라던가, '왜 자기가 대신 시말서를 대필해야 하나' 등등 여러 불만을 표해왔고, 제이는 그 불평이이 끝날때마다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를 덧붙였다.
 [하아... 다음에도 한 번만 더 약속을 펑크내면 그때는 집으로 쳐들어갈테니 그런 줄 아세요!]
 '쾅' 소리와 함께 끊어진 통화화면을 제이는 슬비에게 보여주었다.
 "참 잘했어요."
 슬비는 그렇게 칭찬하고서 다시 자신의 자리에 누워 책을 펼쳤다.
 "...화내려고 전화한거야?"
 유리는 현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 한채 잠시 휴대폰과 안그래도 흰피부에 백발인 주제에 더 더욱 하얗게 백화해버린 제이를 번갈아보며 턱을 쓸었다.
 "게임기 물어내!"
 "너희 어머니가 몇 대를 부숴도 상관없으니 마음껏 던져도 괜찮다고 하셨어."
 슬비의 빈틈없는 답변에 감동한 듯 세하는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진짜로 울기 시작했다.
 이 병실의 분위기 정말로 적응 안돼네.
 결국 유리는 다시 미스틸테인을 뒤에서 껴안고 그대로 자신의 침대에 나란히 엎어져 누웠다.
 "미스티, 심심하지 않아?"
 "응. 언니랑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
 그런 미스틸테인의 얼굴에 얼굴을 맞대며 유리는 창 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왠지 지금 봐둬야할 것 같은 기분에 이끌리듯 바라본 창밖엔 5일째에 접어든 보름달이 가로등처럼 환하게 세상을 비춘다.
 "우리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거야?"
 "..."
 유리의 질문은 분명 모두를 향한 것이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들이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루 전.
 윤해창이라는 신강고등학교 소속 2-C반의 학생과 검은양팀이 조우한 뒤. 유니온은 그를 '차원종'으로써 분류하고 제거대상으로써 하위 발견즉시 제거할 것을 명령했다.
 그 명령을 받은 검은양팀은 이의를 제기했으나 되려 병원을 감옥삼아 갖힌 꼴이 된 것이다. 사실 다섯명 모두 알고 있었다. 단지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맞받아치지 않을 뿐이다.
 "이슬비, 이세하. 너흰 정말 이대로도 괜찮아?"
 "..."
 슬비는 작은 눈동자만 굴려 안경너머에서 분한 듯이 말하는 유리를 바라보았다.
 "누나. 괜찮아?"
 "아니! 전혀 안괜찮아!"
 "솔직히 말하자면 난 너희의 보호자로써 이 병원의 난방이 알맞다는 것만은 알려주고 싶구나."
 진심으로 병원에 얌전히 누워있고자 했던 제이는 오히려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제이에게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제이에게 있는 무언가 슬퍼보이는 듯한 오라가 반발심을 죽였다. 과거가 있는 듯한 그에게 뭔가를 강하게 피력하는 건 슬비 뿐이었다.
 "이세하! 그만 짜고 어서 일어나봐!"
 "흑흑. 흑흑."
 마치 국어책을 읽는 읏한 울음소리. 그것에 의문을 느낀 미스틸테인은 조심히 베개를 들어올렸다.
 미스틸테인이 들어올린 베개 밑에는 요정마냥 숨어서 게임기를 두들기며 입으로만 '흑흑'을 뱉어내는 소라게 소년이 있었다.
 그 순간 유리가 본 것은 무표정한 인상이 아닌, 굉장한 인상의 슬비가 세하의 침대를 향해 우아하게 점프하는 장면이었다.

 

 + + +


 5일째.
 4일간 계속되던 보름달이 하늘에 멈춰있고, 해는 뜨지 않은채 5일째를 맞이했다.
 "지부장님. 제압팀의 배치가 끝났습니다."
 지부장이라 불린 남자는 자신의 안경을 살짝 올려쓰고는 눈 앞의 디스플레이를 손으로 펼쳤다. 그 안에는 괴물 같이 생긴 소년이 디지털로 나타났고 주변엔 적색, 황색, 녹색의 형형색색의 점들이 가득 나타났다.
 "A플랜은 붉은여우팀이 맡고 B플랜으로 넘어갈 경우 푸른쥐가 쫓는다."
 "나머지 팀들은 어떻게 합니까?"
 "일반 시민에 대한 보호와 정보 통제에 힘쓰도록."
 다시 한 번 얀경을 올려쓴 남자는 디스플레이를 접었다. 그 뒤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물체를 들어 귀에 가져다댔다.
 "검은양은 열외라고 했을텐데?"
 [그 건과 별개입니다. 현재 목표물은 차원종이 아니라 신강고등학교 학생인 윤해창이란 아이입니다. 발견된지 얼마 안되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처리한다는 건 잘못된...]
 남자는 무심하게 전화를 끊고서 디스플레이에 손을 넣고 빼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딸려나오는 건 어느 학생에 대한 자료였다.
 윤해창.
 신강고등학교 2-C반. 출석번호 33번. 전교 27등. 검도를 비롯해 많은 검술을 섭렬. 위상잠재력 중상.
 테스트 결과 B+.
 본인은 거부했지만 이쪽의 러브콜은 꽤나 화끈했었다. 적혀있는 거부사유는 '검도에서 서유리보다 약하기 때문에 1:1 승부로 이기기 전까지 같은 위치에 설 생각이 없다'라고 적혀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정말로 어이없는 이유였다. 세계를 지키는 일에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잔뜩 담은 이 이유는 어떻게해도 뚫을 방법이 없었다.
 왠만큼 날고 긴다는 스카우터를 보내며 갖은 방법으로 회유해봤지만 실패했고, 서유리에게 일부러 승부에서 지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그마저도 거절이었다.
 사적인 감정으로 자신들이 지키는 마을을, 지킬 힘이 있는 자들이 그것을 방관하는 것 자체에 분노를 느꼈었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건 방금 전화해온 김유정. 검은 양팀의 관리자였다.
 클로저도 사람이며 존중해**다는 이야기이다.
 그 존중은 어디까지나 세계가 안전할때나 통용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는 언제 어디서 차원종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며 사상자의 그래프는 정말로 간단히 위를 향하고 있다.
 물론 그 애들이 너무 어린 것도 문제지만 현재 차원종의 출몰량은 차원전쟁에 가까워지는 상황. 사정을 일일이 봐주기에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했다.
 윤해창.
 저 소년을 구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차원문을 하나라도 더 빨리 닫을 수 있다. 현직 클로저 요원들의 휴식을 보장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저 소년이 빨리 죽어줘야할 이유가 된다. 이 일로 인해 자신을 언젠가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 일로 인해 심판을 받게될 정도의 세계라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평화로운 세계라는 걸 의미하는 것.
 그때라면 심판 따위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무표정의 지부장은 다시 한번 안경을 올려썼다.



 + + +



 "하아."
 14번째 만에 연결된 전화는 14초도 안돼서 끊겼다.
 "이쪽은 3번째 저지선으로 참가하게 됐는데요, 뭐래요? 그 쪽의 도도한 지부장씨는?"
 "통화종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우리쪽까지오면 그냥 보내줄게요. 해줄 수 있는게 이것 밖에 없어 미안해요."
 "아냐. 충분해. 그 정도만으로도 넘칠만큼 충분히 고마워."
 유니온 신서울지부에 온지 어연 반년. 처음 검은양팀을 맡았을때 내가 유니온이란 단체에서 축출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뒤집는데 1달도 걸리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는 축출됐을거라 생각했던 때의 몇 배였었지.
 말을 듣지 않는 베이비시터에 마이페이스형 리더. 25시간 게임 중독자, 묘하게 돈독이 올라있는 청춘 여고생. 마지막으로 왜 한국지부에 떨어진지 알 수 없었던 타국 소년까지.
 개성이 폭발하다못해 너무 강렬한 이 다섯이 모인 검은양팀은 솔직히 지금까지 붕괴없이 온 것도 기적같을 정도였다.
 이것은 그 기적을 어찌저찌 반년을 넘어가며 지켜본 팀의 첫 위기라고 할 수 있다.
 5명 중 3명은 신강고등학생이다. 그 애들 중 2명의 같은 반 학생. 그것도 위상잠재능력이 꽤 높은 랭크에 속했던 아이가 폭주했다.
 보통 폭주는 신체변형까진 안일으키는데 이 아이는 상상 이상의 형태로 검은양팀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분명 일반인에게 숨겨야할 모습이지만 이렇게 끝내는 건 옳지 않았다.
 "아직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야."
 "어어? 잠깐만요! 이 라인 안은..."
 "부탁해. 지금은 못 본척 해줘."
 "아휴, 난 이런 사람이랑 친해진거지. 정말로 곤란하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은이는 비스듬이 들고 있던 자신의 총에 탄창을 부착하고 반자동으로 설정을 돌렷다.
 "자, 언니도 어서."
 "같이 가줄거야?"
 "대신 병가 쓸때 도와줘요. 코가 삐뚤어지게 자고 싶으니까."
 "정말 고마워."
 "어이 대장! 뭐하는 겁니까?"
 "넌 거기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연차 반납시켜 버릴거야!"
 멀리서 '너무해'라는 소리가 들리기에 웃어버렸다.
 "자, 어서 가요. 작전시각까지 10분도 안남았습니다요."
 "그래.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면 밥도 살게."
 "술은?"
 "그건 생각이 필요하겠는데?"
 오전 8시. 해가 떠야할 시간이지만 달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조금은 쌀쌀한 아침의 한때였다.



 + + +



 "어라..."
 눈 앞에 강렬한 플래시백이 끝난 뒤. 정신을 차리자 손에는 특이하게 생긴 난쟁이가 불들린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몸 만큼이나 큰 머리를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내 손을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 요정은 대체 뭘까?
 호기심에 살짝 힘을 주자 생기를 잃고 축 늘어져버렸다.
 지금 심정은 마치 어릴적 개미굴에 돋보기를 들이댔던, 혹은 우연찾게 붙잡은 사마귀의 다리를 하나씩 뜯어낸 듯한 기분이다.
 내 행위가 잔인하다는 감촉이 없다.
 머리가 울린다.
 속이 흔들린다.
 다리가 얼얼하다.
 팔이 떨린다.
 "눈 앞이... 경련한다!"
 몸이 선행해서 위기를 느끼고 팔로 머리를 가렸다. 뭔가 폭발하는 음과 함께 정확히 내 몸은 3걸음을 뒤로 물러나야했다.
 틀림없는 저격이다. 방향은 정면. 정면에서 사각이 되는 곳을 향해 뛰쳐들어 엄폐했다.
 "이때야!"
 엄폐를 노렸다는 듯한 외침과 함께 아무것도 없던 눈 앞에서 붉고 긴 줄기가 날아와 내 목을 찔렀다.
 "크악!"
 직감적으로 피해내 스치기만 했지만 목이 스치듯 잘렸다. 피가 분수처럼 솓구치는 걸로 보아 경동맥까지 영향을 준 것 같다. 이런 상처는 겉으로 뿜어지는 피보다 안으로 뿜어지는 피의 양이 더 많으니 내가 살아남을 방법은 없을 터였다.
 분명 살아남을 방법이 없을터인 내 치명상은 어느새 아물어버렸다.
 "이 상처가 나았다고..."
 사람의 재생력은 감염을 차단하는 기능에 의해 죽었다. 그러나 내 몸은 그와 반대로 재생을 거듭해낸 것이다. 난 사람인가? 어째서...
 "어라?"
 무엇이 나앗다는거지? 난 왜 여기 있는거지?
 "아아. 아름다워."
 검은 캔버스에 혼자 춤을 추고 있는 저 달을 보고 있노라면 피가 끓는다. 심장이 격하게 뛰어 숨을 몰아서 토해내버린다.
 그리고.
 ―― 눈 앞이 붉게 타올랐다.
 이 순간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따뜻할 뿐이다.
 "그래! 지구촌은 한 가족이지!"
 스스로도 모를 말을 내뱉으며 피웅덩이 같은 붉음에 먹혀들어갔다.



 + + +



 오전 9시 29분.
 여전히 휘영찬란한 보름달이 세상을 내리살피던 어느 폐허. 채찍을 들고 있던 소녀는 눈 앞의 생물에 경이를 느끼고 있었다.
 치명상.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찔러넣은 편의 끝. 내출혈로 인해 자신이 언제 죽는지도 모른채 급사할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던 자신의 실력을 지금만큼은 의심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니, 어떻게해?"
 "...작전대로 했어. 저 괴물은 죽었어야 했다구!"
 붉은 여우.
 자신과 같은 팀원인 두 여자아이는 어디까지나 지원역이다. 직접적인 전투는 리더인 자신이 해**다. 그러나 지금의 직감은 여기서 한발짝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는 알파. 본부 응답바래요."
 [무슨 일인가? 알파.]
 "목표대상의 이변을 감지. 퇴각하고 싶은데요."
 [목표섬멸이 우선순위다. 퇴각은 용납하지 않겠다.]
 "...알겠어요."
 채찍을 늘어뜨린 소녀는 쌍둥이 소녀들을 살짝 밀어냈다.
 "여기서부턴 어른이 할일이에요. 어린이들은 집에 갑시다아~"
 최대한 미소지어보려 애쓰며 말했지만 아이들의 직감은 너무 좋았다.
 "우, 우리도 같이 있을래!"
 "그래! 이럴때일수록 힘을 합쳐**다고 곤드레맨이 그랬어!"
 "그 술취한 아저씨가 어제는 어떤 폭탄을 만들었나요?"
 "소주 트레인하고 맥주 카랑 와인 플래인이 합체했어."
 그거 참 대단한 폭탄로봇이네요.
 긴장을 풀어주려 농담삼아 던진 말에 웃기지도 않은 로봇이 출몰했네요.
 당장 경찰서에 어린이 보호법 위반으로 신고해야겠어요.
 뭐든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감지되는 위상력이 점점 무겁고 진득해져만 갔으니까.
 "자아~ 두 사람. 그럼 요앞 편의점에 가서 아까 말한 소주 트레인이랑 맥주 카랑 와인 플래인을 데려와주세요."
 "우리는...!"
 "그게 없으면 이 언니는 곤드레 아저씨처럼 싸우기 힘들답니다아."
 여유부리며 웃고 있지만 여유따위 부릴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의 위상력 탐지능력은 하급이지만 이 이상 강력해지면 하급이라도 저 불쾌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것이다.
 "자, Let's 심부름!이에요."
 결국 쌍둥이들은 금방 돌아오겠다며 가버렸고, 자신은 엄폐상태에서 벗어나 천천히 그 소년이 죽었어야할 묫자리로 나왔다.
 땅에 그려진 마방진.
 검푸른 연기뭉치.
 붉은 액체.
 지옥의 악마를 소환한다면 이런 세트려나. 소녀는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채찍을 두 손으로 잡아 펼쳤다.
 "자, 나오세요!"
 나오라고는 했지만 순순히 말을 들어주는게 이상하다고 자신에게 핀잔을 넣고는 다시 한번 소년을 찔렀던 기술로 채찍을 펼쳤다.
 "미안해요."
 목을 찔렀을때와 똑같이 사과하며 허공을 향해 채찍을 비산시켰다. 그러자 채찍의 반신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년이 있던 곳이 마구잡이로 먼지를 일으키며 무너져버렸다.
 "정말로 미안해요."
 "무엇을 사과하는가?"
 "뭐?"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무엇이 미안한가?"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무엇이 너를 여기 존재하게 하는가?"
 소녀는 항상 생각했다. 위상력이 말을 걸면 어떤 느낌일까. 항상 고민해왔었지만... 그래. 위상력이라는 것에 의지가 담긴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까?
 "무엇이 너를 싸우게 만드는가?"
 입술이 피가 날때까지 꺠물고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소녀는 상대를 **도 않고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자 채찍은 손잡이를 제외한 모든 몸체가 사라지고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주변을 매웠다.
 "호오? 그것은 편술? 채찍 마디를 마디별로 분활시켜 공간에 흩뿌리고 그것을 검신으로써 주변을 찢는 건가?"
 위상력은 배가 고픈 듯 끝없이 물어오는 것 같았다.
 "위상력이 폭주하면 자아를 잠식하는 건가요."
 "무엇을 알고 싶은가?"
 "당신은 누구에요?"
 소녀의 말에 소년. 아니 검붉은 갑주에 감싸여 전신에 작은 뿕과 갈기털을 내비추던 괴인은 자신의 팔에서 검을 뽑아내고 그 검을 자신의 얼굴까지 들어올렸다.
 "검론. 검으로 대화하세."
 그리고 얼굴을 지나 하늘에 닿을 듯이 높게 들어올린 소년은.
 "태산압정 브레이크!"
 이상한 기술명과 함께 소녀가 서있던 자리를 분쇄하듯 내리 찍었다. 기술명이 이상한 것은 둘째치고 파괴력 하나는 목소리 이상으로 엄청났다.
 자신이 서있던 곳에 검이 손잡이까지 박혀있는 걸 보며 소녀는 더 더욱 몸에 긴장을 새겼다.
 저런 걸 맞으면 한 번에 죽어요.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자 배가 찢어지듯 아파온다. 그 고통을 애써 감추며 채찍을 유려하게 휘둘렀다.
 "거절."
 휘둘러진 채찍을 검으로 쳐낼때마다 '거절'이라는 효과음을 넣는다. 그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괴인은 거릴 껏이 없다는 듯 쳐낼때의 리듬에 맞춰 한 발씩 소녀를 향해 다가왔다.
 "오오, 로미오. 거절. 왜 날. 거절. 밀어내는게요. 난. 거절. 여기있소. 거절. 내 사랑 이리와. 거절. 날 맞이하시오."
 "이쪽도 거절이에요! 줄리엣!"
 다섯 걸음이 남은 순간 소녀는 또 다시 채찍의 마디를 모두 공간 속으로 섞으며 괴인을 향해 발출했다.
 "거절! 거절! 거절!"
 막고, 또 막고, 막아내다 하나의 편 마디가 투구를 때린 순간. 모든 채찍 마디가 기다렸다는 듯 소년의 전신을 강타했고 채찍에 맞던 괴인의 몸이 그 충격으로 점점 떠올랐다.
 "이제 그만 사라지세요!"
 괴인의 몸이 어느 정도 떠오르자 소녀는 제자리에서 한바퀴 회전하며 채찍을 휘둘렀고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채찍은 소년의 몸을 쳐날려냈다.
 "하아, 하아, 하아."
 소년이 부딫힌 곳이 부숴지며 먼지를 내자, 소녀는 지친 듯 숨을 몰아쉬고 그대로 체면도 버린채 주저 앉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가자. 산초."
 괴인, 소년의 목소리가 자신의 눈 앞. 다섯 걸음 앞에서 들려오는 것만으로 주저앉기는 커녕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도 없었다.
 "...어떻게?"
 "사랑만, 사랑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나. 내 늙은 산초여!"
 소녀가 고개를 들었을때 본 것은, 괴인이 자신의 검을 어깨에 걸치듯이 올려든채 내밀어진 다리의 무릎을 구부리는 것이었다.
 "자, 이것이 내 사랑의 크기다."
 그와 동시 앞발을 미끄러지듯 내딛으며 괴인은,
 소년은 또 다시 소리쳤다.
 "금계독립 스매시!"
 
 + + +
 
 10시 12분.
 "저기야!"
 달은 여전히 보이는 세상에 강림하듯 드리우고 있는 상태였다.
 그 세상에 개미처럼 뛰어다니는 두 여자가 있다. 한명은 사복차림의 오피스걸과는 거리가 멀지만 뭔가 있어보이는 여자였고, 또 다른 한명은 군복에 방탄복까지 걸친 여자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일어난 먼지뭉치를 향해 뛰고 또 뛰었다.
 그리고 한참을 뛰어 도달한 곳에는 하늘을 보며 **듯이 웃고 있는 검붉은 갑주와 자신의 오른쪽 허리를 손으로 막은채 피를 토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
 등 뒤에 방탄복을 입은 여자. 송은이는 망설였다. 여기서 총을 쏴 갑주에 도탄될 경우 여자애가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저 괴물의 시선을 끌었다간 일반인인 두 사람이 모두 다 위험할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여자. 김유정의 이성적인 판단을 믿으려 했다.
 타앙!
 밤 공기는 가르며 울려퍼지는 한발의 총성.
 김유정은 송은이의 기대와 다르게 이성적이지 못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총을 하늘을 향해 쐈다는 사실일 뿐. 여전히 현재가 최악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녀석의 시선을 끌게. 저 아이를 부탁해."
 "너무 무모하잖아."
 "목적을 잊었어? 내 목적은 쓰러져있는 저 애가 아니라 저 갑주를 뒤집어쓴 애를 구하는거 였어. 이게 맞는 수순이야."
 "지금 나보고 언니를 버리고 가라는 거야? 이렇게 잔인한 여자인줄 알았으면 말조차 섞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은이가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사선을 넘긴 것을 유정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와중 얼마나 많은 전우를 보냈었는지도. 그렇기에 이 선택을 강요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
 "알았어. 일 끝나면 술도 살테니까."
 "한잔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줄 알아."
 "응."
 살아남아 반드시 술을 꼭 사**다는 것처럼 말하는 송은이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유정은 또 다시 총을 한 발. 허공을 향해 쏘아올렸다.
 "신강고등학교 2-C반 33번. 윤해창. 네 이름 맞지?"
 "무엇이 궁금한가?"
 드디어 자신에게 관심이 생겼는지 갑주의 목이 반쯤 돌아갔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입안에 고인 침을 모두 삼켜낸 유정은 재차 입을 열었다.
 "나와 가자. 널 고쳐줄 수 있을거야."
 떠오른 건 현재 신강고등학교로 발령온 대학동기. 캐롤라인이다. 그녀에게 안전하게 데려간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 믿었다.
 "고친다? 고친다 함은 무엇을 고친다는 것인가?"
 "너의 모습은 원래대로..."
 "무엇이 나의 모습인가? 원래대로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설득해내**다.
 "네 부모님도 널 걱정하고 계셔!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가족과 친구, 사랑과 우정. 좋은 소재로군. 춤을 출때는 격렬하게 춰야하는 법."
 괴인의 몸이 완전히 유정을 향해 돌아섰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너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 돌아가자."
 "돌아간다. 고향을 향해? 빛을 쫓아서 떠난다. 나는 방랑자,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배게 삼으며, 바람을 벗 삼아 사는 나는 슬프고 기쁜 방랑자라네."
 노래하듯 운율있게 말하며 또 다시 한발을 내딛었다.
 "그런 너는 어떻지? 무엇이 그 총을 들고 여기 서있게 하는가? 무엇이 널 존재하게 하는가?"
 "널 구해내는 것. 지금의 내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야."
 "그렇군. 그런 넌 강한가?"
 "뭐?"
 소년의 몸이 사라졌다. 아니, 너무 빨라서 ** 못 했지만 느껴진다. 등 뒤에 뭔가가 숨을 쉬는 감각이. 차디찬 칼날이 목을 치려는 느낌에 눈을 감아버렸다.
 "키가 크는 시간은 밤 11시부터 새벽 2시가 피크다! 애송이!"
 바이크의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 등 뒤에 있던 무언가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린 시선엔 백피백발의 남성과 미치광이 라이더가 자신의 애마인 헥사부사로 드리프트를 해내고 있었다.
 "제이! 란!"
 반가움, 분노, 어정쩡함, 감사. 온갖 기분이 칵테일처럼 뒤섞여 심란했으나 어느새 다가온 제이는 유정을 등 뒤로 밀어냈다.
 "비타민 부족인 네가 서있기에 여기는 너무 위험해. 그러니 이걸 가지고 돌아가도록."
 제이는 자신의 품 속에서 시판되는 유명한 레X나 스틱을 유정에게 건네고서 갑옷이 쓰러진 곳을 향해 다가갔다.
 "자, 잠깐!"
 몸이 약한 제이가 걱정된 유정은 말려보려 했지만 어느새 나타난 은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우린 여기까지야. 돌아가자."
 "무슨..."
 복부에 날카롭게 들어온 은이의 주먹에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유정은 눈을 감았다.
 "우란아!"
 "선우 란. 똑바로 불러줘."
 "하하, 그랬지 참. 아무튼 란. 이 아이를 부탁할게."
 은이는 헥사부사의 뒤에 숨을 몰아쉬며 열을 내는 소녀를 태웠다. 몸 여기저기에 붕대가 매어진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지혈은 되어있었다.
 "살살 몰도록 해. 겨우 지혈..."
 말이 끝나기 애석하게 헥사부사는 공기를 찢으며 사라졌다.
 "그럼 우리도 가볼까."
 은이는 유정을 허리째 어깨에 들쳐매고서 현장을 이탈했다.
 
 + + +



 11시 32분.
 "어라? 제이는?"
 "몰라."
 평소 이 시간대의 제이는 자신의 침대에서 어린이 방송이 보며 지상파 채널의 건강방송보다 더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고 있어야 했다.
 이유는 지상파는 따라할 수 없는 방식의 지식이나 구하기도 어려울만큼 귀하고 비싼 음식으로 건강을 챙기라고 주장하지만 어린이 방송은 따라하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해서라고 했다.
 그런 제이가 자신의 침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건강을 생각해서 밥은 물론이고 꼬박꼬박 챙겨먹던 약도 그대로 남아있다.
 "화장실이라도 간거 아냐?"
 게임기와 일심동체가 된채 무심의 영역에서 말을 하는 소년. 세하는 유리의 갖은 관심이 가끔은 개인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읽었는지 그 뒤에서 그대로 세하를 껴안는다.
 "무, 무슨 짓이야!"
 "후후, 부끄러워 하긴."
 "부, 부, 부끄러운게 당연하잖아! 그보다 부끄러워 해**다고!"
 "역시 세하는 재밌어."
 "사신 같은 말투하지 말고 저리 비켜!"
 "왜에~ 심심해. 놀아줘!"
 그 반응에 옆 침대에 누워 얌전히 그림을 그리던 소년(?). 미스틸테인 또한 세하의 침대로 이사왔다.
 "형이 놀아주는거야?"
 "응. 그런거야."
 "그런 적 없거든!"
 끝내 게임기는 병실 바닥에 떨어졌고 두 사람의 스킨쉽게 이세하는 항복했다. 덕분에 벌어진 게임은 시체놀이었다.
 "..."
 "..."
 "..."
 침대에 최대한 편하게 누워있던 세 명의 아이는 어느새 정말로 사이좋게 잠들어버렸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슬비는 중간에 자신도 끼고 싶다는 충동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스스로 한심함을 느끼던 참이다. 깨우지 않아도 밥이 올때쯤이면 일어나겠지.
 그리 생각하며 바닥에 떨어진 세하의 게임기를 집어들었다.
 본래라면 병실에 마련된 세하의 개인 서랍에 올려놓으려 했으나 잠깐 보이는 사람의 이름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직사각형 디스플레이 속에 여자의 얼굴이 있고 그 아래에 대화창처럼 보이는 직사각형이 걸쳐져있다. 그 여자애의 이름은 유리라고 되어있었다.
 적당히 몇 번 조작하자 다른 여자가 나오며 이번엔 슬비라고 씌여있는게 눈에 많이 띈다.
 "..."
 그걸로도 모자라 제이와 미스틸테인과 유정과 은이까지 나온다. 그제서야 세하가 사람 이름 짓는 부분이 귀찮아서 주변 이름을 모두 적어 넣었다는 사실을 추리해낼 수 있었다.
 "멍청이."
 그 사실에 뭔가 화가 난 슬비는 결국 오늘도 세하의 게임기를 지상낙하실험에 참가 시켜버렸다.



 + + +



 오전 12시 12분.
 쓰러져 잠든 듯한 검붉은 갑주의 앞에 서있는 제이는 약간 후회하고 있었다.
 12시에 기본 편성된 '작은 하마의 대모험'을 볼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번주면 전 부인인 까마귀와 주인공인 작은 하마가 목숨을 걸고 싸울 예정이었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건강에 대한 토막상식[배에 칼빵을 맞으면 건강에 해롭습니다.]도 아주 유익한 방송이었다.
 추가로 점심밥을 거르게 된 것 또한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일어나라."
 "..."
 "흠."
 어째서인지 검붉은 갑주는 바이크에 탄채로 휘두른 자신의 주먹에 맞고 날아가서는 의식 불명상태다. 그렇기에 잠시 관찰하다 이내 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몸에 박힌 채찍 조각과 그 흔적이 오버데미지를 가리킨다. 이 녀석은 이미 한계에 빠져있다. 더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의 피해가 몸에 쌓인 것이다.
 "하긴 레드폭스의 머리라면 이 이상도 가능했겠지."
 윗선의 생각은 옳았다. 완전변이라 불리는 차원종화의 끝. 물극필반 상태의 윤해창을 행동불능으로 만들 정도 였음에도 종극에는 패한 듯이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할까.
 사실 제이가 이곳에 있는 건 팀원들 때문이었다. 애써 밝은 척하는 유리와 모르는 척하는 슬비. 거기에 게임 속으로 도피한 세하까지. 겉으로 살짝씩 티를 내면서도 구하러 가자고 말도 못한다.
 애들은 애들이다.
 그렇게 생각한 제이는 모두가 한눈을 판 사이 병실에서 뛰쳐나왔고 선우 란에게 작전내용을 브리핑 받은 뒤 현장까지 한 걸음으로 달려왔다.
 선우 란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건 옛 지인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이용한 것이다. 약간 양심에 찔리는데? 유니온에서 해고되면 나도 벌처스로 가도록 할까.
 심각히 이직을 고민하던 제이의 눈 앞에 붉은 빛이 일기 시작했다. 갑주의 균열을 타고 빛이 흡수되더니 이내 쓰러진 몸이 아무런 준비자세도 없이 일어났다.
 "흠. 과연. 산초는 도망쳤나. 어쩔 수 없지. 나에겐 아직 용맹한 명마가 남아있으니."
 "윤해창."
 "오! 나의 친애하는 친우이자 악우이며 동시에 호적수인 실버스터 경 아니신가? 337번째 결투를 시작해볼까?"
 대화가 통하는 상태는 아니다. 무엇보다 어떤 원리로 회복해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 이 녀석이 날 향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제이는 속주머니에서 동봉된 캡슐을 꺼냈다. 그것에는 30%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하아. 지금부터 섬멸에 들어간다. 죽을 것 같으면 항복이라고 외쳐. 물론 그 전에 죽지 않았을때의 권고다."
 "우리가 언제 서로의 목숨을 탐닉한 적이 있었나? 친우!"
 윤해창은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마치 팬싱을 하는 듯한 자세로 고쳐쥔채 몸을 가지런히 모았다.
 "제자리에. 착검."
 제이는 소년의 자세를 보고서 몸을 웅크리며 권투의 기본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서로 양보하듯 그 자세 그대로 굳은채 눈만 굴릴 뿐이다.
 "엇! 저기!"
 제이는 갑자기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검붉은 투구는 잠시 기우뚱하며 하늘을 향했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두 걸음 파고든 뒤 가벼운 잽을 어깨를 향해 날렸다.
 "칫."
 신체균형을 무너뜨린뒤 마운트할 생각이었던 제이의 의도와 다르게 붉은 갑주의 칼등이 그 주먹을 막아내었다.
 "과연 내 호적수답군. 답례다! 태산압정! 똑바로 서라!"
 태산압정.
 단순히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는 기본 검법 중 하나이자, 왕도로써 검을 단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쓰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이 윤해창의 검을 타고 땅에 박힌 순간 주변의 땅이 진동하며 무너진다.
 어떻게 똑바로 서라는거지?
 제이는 떠오른 모순에 잠시 의문을 느꼈지만 문제의 의도를 파악할 여유도 없이 검이 날아들었다. 그 검을 가볍게 쳐낸채 뒤에 닿은 벽을 오른발로 박차며 채찍처럼 다리를 휘둘렀다.
 놈을 노리고 찬 것 아니다. 단순히 물러나게 하기 위한 발길질이었으나 다리에 묵직하게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큭!"
 일부러다. 놈은 지금 피해를 감수하며 버텨낸 것이다.
 "골단골참. 뼈를 주고 뼈를 벤다!"
 휘둘러진채 회수하지 못한 오른발에 차디찬 감촉이 느껴지자 제이는 썬그라스를 내려쓰고서 자신을 집어 던지려는 괴인의 왼팔을 왼다리로 감싸며 갑주의 머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머리로 박았다.
 그 충격에 휘청거리는 갑주에게서 겨우 빠져나오긴 했으나 강하게 충돌했던 다리가 고통을 호소한다. 맞추려고 휘두른 것이 아니기에 힘조절을 안한 것이 실수였다.
 "흠. 부러졌는가."
 불행중 다행인 것은 다리의 고통과 녀석의 팔을 바꿨다는 것이다. 갑주에 매달려 덜렁거리는 놈의 오른팔은 거의 끊기듯 부러져 있었다.
 폐건물 잔해의 뒷골목.
 부상을 주고 받아 싸움에 흐름이 끊긴 두 사람은 건물 외벽의 그림자 속에 녹아든채 서로를 주시했다.
 바람 소리만 가득하게 울려퍼지는 이 어둠 속에 달빛이 드리워진 순간.
 "월견검! 공간가르기!"
 기술명과 함께 날아드는 발도에 재빨리 썬그라스를 고쳐쓴 제이는 말도 안될 정도로 몸을 뒤로 젖혀냈다.
 발검은 제이의 옷 앞을 자르고 앞머리를 스치듯 자른채 지나쳤고 그 순간 재빠르게 몸을 튕기며 일어난 제이는 갑주의 뒷통수를 향해 뛰어올랐다.
 "레스베라트롤 킥!"
 갑주의 외침에 수긍하는 듯한 외침을 지르며 제이는 공중에서 세바퀴를 돌고, 네 바퀴째에 왼발의 뒷꿈치를 벼락이 내리치듯 내려찍었다.
 그 순간 제이가 본 것은 뒷통수가 아닌 붉은 갑주의, 윤해창의 얼굴 부분이었다. 놈은 스스로 자신의 공격을 향해 돌아선 것이다.
 놀란 제이가 힘을 뺄 여유도 없이 그 얼굴의 한가운데로 내리꽂혔다.
 레드 와인의 영양소로 지은 괴상망측한 기술명이었음에도 주변의 땅을 진동시킬 정도의 풍압을 동반했고 그 킥을 정통으로 맞은 붉은 갑주는 유리가 깨지듯 흩어지며 찢어진 교복을 입은 소년을 뱉어냈다.
 "보험처리... 해주려나."
 오른쪽 정강이, 왼발 뒷꿈치. 두 뼈가 비명을 질러온다. 부러진 것 같진 않지만 금이 갔거나 뼈가 놀랐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뼈가 튼튼해진다던데 왜 난 점점 약해지는지 정말로 알 수 없군."
 쓰러진 윤해창의 앞에 주저앉은 제이는 목의 맥을 짚었다. 다행히도 죽진 않은 듯 했다.
 "하아."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약통을 꺼내 손에 털자 방부제만 하나 튀어나올 뿐이다.
 "이것참."
 옆에 쓰러진 녀석처럼 눈이라도 감고 싶은 충동이 솓구치나, 여기서 잠들면 입이 돌아가며, 나아가 건강에 해롭다. 그렇기에 제이는 다리를 절뚝이며 일어났다.
 "곤란해."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제이는 반사적으로 얼굴에 가드를 올리며 물러섰다.
 "누구냐."
 가드를 올린 팔에는 자그마한 바늘 같은 물체가 꽂혀있다.
 "우리 구면이잖아. 벌써 잊어버린거야?"
 "미안하지만 기억력에 좋다는 등푸른 생선을 난 싫어하는 편이거든."
 "그래?"
 바닥에는 보랏빛무리가 올라와 쓰러진 소년을 향해 차오르고 시작했다.
 "아무튼 지금 내 기분은 굉장히 안좋아. 그래도 나와 놀고 싶다면..."
 "아니, 사양해두지. 난 놀만큼 놀았으니까."
 "착한아이네. 원한다면 너한테도 상을 줄게."
 눈 앞의 아이는 상이라고 말하며 윤해창의 몸에 알 수 없는 빛을 마구잡이로 쑤셔박았다.
 "그것도 사양하겠다."
 그렇게 말하며 제이는 약통이 들어있던 반대쪽 품 속에서 총을 한 정 들어 한 발은 윤해창에게, 한 발은 꼬마에게 쏘고 확인도 안한채 다리를 절둑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흠, 어때, 또 쟤랑 놀아볼래?"
 소년은 매력적으로 웃으며 눈이 풀려있던 윤해창의 손을 붙잡았다.



 + + +



 오후 1시 18분.
 작전실 내부의 공기는 무겁다 못해 무진공 상태가 의심될 정도로 숨 쉬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것은 어느 남자의 표정이 숨소리조차 거슬려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전투 상황을 관측해낸 원격 영사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본 남자는 검은 양의 관리자 김유경과 송은이를 봤을때 한 번 분노했고, 선우 란과 제이가 나타났을때 분기를 견딜 수가 없게 되었었다.
 그래도 붉은 여우의 리더를 구했기에 참을 수 있었고, 제이의 기술 중 꽤나 큰 것이 그 머리에 꽂힌 순간 환호하고 싶었다. 그러나 제이는 다 끝내놓고 죽이지 않았다.
 분명히 검은양에게도 윤해창의 처우에 대해서 전달했음에도 명령거부를 저지른 샘이었다. 어떻게 제이를 괴롭힐지까지 정한 그는 한숨을 내쉬다말고 나타난 소년에 의해 숨을 삼켰다.
 '애쉬'
 칼바크건에 엮인 기이한 소년이다. 소년이라곤 하나 그 위험도는 차원전쟁에서 나타났던 넘버즈들 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현재 이 알 수 없는 연계 상황에서 그는 자신에게 주기적으로 보고해오던 한 여자를 떠올렸다.
 그 여자가 저쪽으로 넘어간 것인가, 아니면 저 녀석이 단순히 윤해창을 주워버린 것인가.
 이 일이 다른 지부의 귀에 들어갔다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목표 로스트. 전원 철수하시기 바랍니다."
 온갖 생각이 그의 머리를 속을 괴롭히는 사이 이번 작전의 보고 서류가 책상 위에 올려졌다. 지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페이지를 넘겼고 자신의 오른쪽에 한무더기로 준비되어 잇는 종이중 3장을 차례대로 꺼냈다.
 그 곳엔 직사각형으로 붉은 네모에 '징계 통지'라는 글자와 함께 3장의 종이 모두 징계 대상란에 '제이'라고 선명하게 프린팅 되어있었다.



 + + +



 오후 1시 44분.
 "미안합니다."
 "올 거면 미리 온다고 관리자인 내게 말을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애초에 명령하지도 않은 짓이잖아요! 또 징계가 3건이나 발령된 건 알고있어요?"
 "몰랐습니다."
 검은양팀의 입원실. 두 다리에 깁스를 한 백발 청년의 양 옆으로 두 명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한명은 병문안을 올 복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 민폐가 되는 여자였고,
 다른 한명은 병문안을 왔다기 보다 가볍게 편의점에 왔다고 해야할만큼 가벼운 반팔, 반바지 차림의 여자였다.
 "너무 그러지마. 그래도 덕분에 살았잖아."
 "몸도 안좋은 사람이... 멋대로 무리하니까!"
 "괜찮다. 평소에 너보다 많은 비타민을 섭취하고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아는데?"
 "피부를 보면 알 수 있지. 너의 피부 노화 속도는 나에 비해 1.2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정의 주먹이 제이의 얼굴에 꽂혔다. 그러자 유리의 다리 위에 앉아있던 미스틸테인이 그 품에서 뛰어내려 유정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엄마! 아빠 때리지 마!"
 "...뭐?"
 "비록 아빠가 도박이랑 술에 젖어살지만 우릴 때리진 않았잖아!"
 "죄송합니다. 애가 드라마를 많이봐서요."
 유리는 미스틸테인을 자신의 품에 회수하고서 침대에 앉았고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검은양팀의 관리관 김유정은 일어서 중앙에 섰다.
 "흠흠, 여러분에겐 추가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오, 드디어 나가는건가? 이제 할만한 게임도 없어서 심심했는데 잘 됐어. 원정나갔다 와야지."
 "변이차원종 윤해창에 대한 각 팀의 대처수준이 레드가 되었습니다."
 "뭐!?"
 "...그 말은 윤해창을 넘버즈로써 인식했다는 건가요?"
 "웃기지 말라구! 해창인 사람이야!"
 "오늘 오전 윤해창을 소멸시키기 위한 작전이 있었어."
 "어떻게 됐는데!"
 "놓쳤어. 게다가 이쪽은 부상자도 나왔거든. 덕분에 지부장은 이제 이 문제를 자존심 싸움이라고 생각하나봐. 한 번 실패한 시점에서 웃음거리가 되었거든."
 은이가 말하자 김유정은 가만히 서서 주변에 누워있는 다섯을 주시했다. 모두 시선은 따로 움직이지만 생각은 비슷해보인다.
 "잘 들어. 검은양팀은 병원에서 대기할 것. 유니온의 처분은 여전히 변화없음이야. 이 상황에서 이 병실을 나간다는 건 꽤 큰 댓가를 치뤄야할 수도 있어."
 제이의 경우 덕분에 3명이 살았기에 가벼운 처분으로 끝난 것이다. 그러나 팀 전체가 명령을 위반하는 경우는 다르다. 잠재력도 높다 해도 통제가 되지 않은다면 그들에게 있어서는 걸림돌로 보일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팀의 해체, 그리고 팀원들 전부 다른 팀으로 한명씩 흩어지는 것이다.
 이제 겨우 친해졌는데 이런 식으로 헤어지는 것은 싫었다. 그것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혼자 가겠어요."
 "무모해. 붉은 여우도 당했어. 게다가 여기있는 건강맨도 졌다구!"
 "...진건 아니다."
 "현실에 졌잖아!"
 은이의 일침에 건강맨은 입을 닫고서 천장에 매달린 TV로 도피했다.
 "나도 일전에 빚을 갚아야 해."
 "누나들 가면 나도 갈게요."
 "여기서 나가면 명령불복종이야! 이건 나와 그 녀석 문제니까 너희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구."
 슬비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책을 덮었다. 단순한 행동 속에서 결심을 엿본 유리는 미스틸테인을 붙잡았다.
 "미스티는 여기 있어."
 "싫어요. 누나들이 없는 검은양팀에 남아 있을 생각은 없다구요!"
 유리는 감동한 듯 미스티를 끌어안았고 구석에 찌그러진 게임폐인을 바라보았다.
 "왜? 모두 왜 날 쳐다보는데?"
 "넌 어떻게 할래?"
 "나? 난 여기서 따뜻한 난방을 쬐며 하던 게임이나 마저할게."
 세하의 말에 건강맨은 기침을 세번 내뱉었다.
 "왜? 난 딱히..."
 "갈 거지?"
 유리의 프레셔!
 효과는 굉장했다!
 세하는 게임기를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같은 반이기까지 했으면서 왜 그렇게 무감정한거야?"
 "...귀찮잖아."
 반항적인 세하의 태도에 유리가 더 쏘아붙이려 하자 은이가 그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말했다.
 "세하 등에 있던 창문 봤어?"
 "창문?"
 "내가 유리에 반사된 세하의 게임기 화면을 봤는데 검은색이더라구."
 "끄, 끈거야! 그때 딱 끈거라고!"
 "에이, 버튼이 부서져라 열심히 눌러대고 있었으면서."
 부끄러운 듯 고개를 홱 돌리는 세하를 보며 병실 안에 있던 모두 웃어버렸다. 단, 한 남자를 제외하고.
 "그 녀석. 윤해창과는 반드시 1:1로 싸우도록. 기절시키지 말고 혼자서 싸워 이겨**다."
 "무슨 뜻이야?"
 "녀석과 싸울때... 투구를 쓰고 있어서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웃고 있었다. 놈은 자신을 정면으로 쓰러뜨려줄 사람을 찾고 있을 거다. 그게 나는 아니었던거지."
 제이의 의미심장한 말에 유리는 자신의 빈손을 꽉 쥐었다.
 "잠깐! 너희말이야. 관리관인 날 두고 명령을 어길 샘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유정은 은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군복을 입은 남자 둘이 큰 은색 케비넷을 두 개 펼쳐든다.
 "나도 동참하게 해줄거지?"
 케이스의 안에는 검은양팀의 개인무장들이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0.



 을 - 라001호.



 작전명 : 노심융해.

 정기 보고.

 작전목적과 진행상황.

 위상력에 소질이 있는 인간을 폭주 시켰을때의 반작용을 관찰 결과 육체적 소질이 차원종 이상으로 개발되나 정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함으로 판정.
 간혹 재정신이 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음.

 위상력에 변질을 주었을때 강해지는 강도와 변화 측정.
 육체가 눈에 띌 정도로 변화함을 확인. 클로저 요원의 위상력이 담긴 공격을 견뎌냄. 재생여부는 미확인.
 
 비능력자, 구 위상능력자의 재활이 가능한가.
 현재 진행단계에선 어떠한 것도 확언불능.

 노심 레벨 3. 반인반수.
 위상력 융해도 4. 황색.
 
 실험체 인멸 혹은 실험 연장은 윗선의 판단에 따르기로 함.



 작성자. C. L.



 + + +



 "와아아아~"
 약품냄새가 진동을 하고, 온통 하얀색이라 정서불안이 되려 정서불안에 빠질 것 같은 공간 안. 어울리지 않는 소년(?), 소녀(?)들이 성의 없이 박힌 '절대안정'이란 글자의 옷을 입은채 각자의 침대 위에 누워있다.
 그 중 소년(?)을 부정하는 남자 제이는 조용히 자신에게만 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러브레터?"
 "...훗."
 무표정하게 웃는다.
 그런 표정이 실존한다면 지금 제이의 표정과 일치할 것이다. 그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웃어보였다.
 "나도, 나도 볼래요."
 "봐라."
 빼앗듯 편지를 낚아챈 소녀(?)를 부정하는 소년(?). 미스틸테인은 제이에게서 빼앗은 종이를 크게 펼쳐들었다. 그 곳에는 크고 붉고 거대한 직사각형이 그려져 있었고 그 내부에는 '징계 통지'라고 적혀있었다.
 "난 멀쩡해!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구! 심심해 죽겠으니 어서 집에 보내줘!"
 나풀거리는 편지가 무색하지 않길 바랬는지 검은 흑발의 소녀가 이불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누워있던 소년은 뭔가 할말이 있는 듯 돌아누웠다.
 "..."
 "뭐야. 할말이 있으면 어서해."
 "까먹었어."
 "사람과 대화할땐 눈을 마주보고 대화해야지?"
 "자, 잠깐! 이것만! 이것만 깨고!"
 게임기의 디스플레이에 혼마저 나갈 것 같던 소년은 소녀의 거친 손길에 발악하며 매달렸다.
 "보스야! 이럴때 하필 보스라고! 여기서 죽으면 또 다시 처음 위치로 돌아간단 말이야! 제발!"
 "이런 상황에서 잘도 즐겁더냐!"
 "오히려 '이런 상황'일 수록 더 즐거운 척 해야하는거라구."
 "어허, 그러셔어~ 지금 만든 변명은 몇 점인가요!"
 긴 흑발의 소녀. 유리는 징계통지서로 종이비행기를 만들던 소녀(?). 미스틸테인에게 마이크를 쥔듯한 손모양을 만들어 그 입에 옮기자 미스틸테인은 제이의 썬그라쓰를 뺏어쓰고서 말했다.
 "제 점수는요. 솔직히 의욕이 변명보다 앞선거 아시죠? 우린 변명을 뽑는거지 변명 지망생을 뽑는게 아니거든요. 저는 탈락드리겠습니다."
 "큭."
 여전히 게임기에 정신을 팔고 있던 소년은 성의없이 분한척하며 다시 돌아누우려 했지만 유리의 발길질에 의해 원위치 되버렸다.
 "왜 우릴 여기에 가둔거야? 심지어 남녀를 한 병실에 가두는 건 잘못된 짓이잖아. 그렇지이?"
 "응! 응! 완전 잘못된 짓이라고 생각해요. 언니."
 "남이 쓰고 있는 걸 뺏는 것도 잘못된 짓이다. 꼬마."
 썬그라쓰를 뺏겨도 비행기에 정신을 팔고 있던 미스틸테인의 등을 끌어안은 유리는 구석에 앉아 안경을 쓴채 묵묵히 책을 읽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소란스럽게 했음에도 자기 할 것만 하고 있는 건, 같은 학교 학생이자, 신생팀 검은양의 필두.
 이슬비였다.
 가장 먼저 이상종으로 분류된 윤해창과 조우하고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이후 뒤늦게 부딫혀본 유리는 슬비가 많이 다쳤을 것이라고 여겼으나 자신보다 훨씬 멀쩡하다는 점에 의문을 두고 물었었다.
 그러나 슬비의 입은 무겁게 닫혀있을 뿐. 열리는 일이 단, 한번 밖에 없었다.
 '병원과 도서관의 공통점은 정숙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 동의한 건 게임에 영혼까지 팔아치운 겜덕후. 세하 뿐이었다. 중간에 어머니가 와서 충전기째로 압수해갔음에도 어느 샌가 또 게임기를 손에 쥐고 있는게 현실인 자의 동의였다.
 "에휴."
 결국 유리를 상대해주는 건 제이와 미스틸테인 뿐이었고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던 참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보험처리가 되서 따로 위로금이 나온다는 이야기 뿐이랄까.
 "크악!?"
 복잡미묘한 분위기 속에 제이는 모두에게 들릴만큼 큰 신음을 내며 이불 위에 머리부터 떨어졌다.
 "바, 발작!? 아저씨! 아니 오빠!"
 유리는 어쩔 줄 모르며 만세포즈가 되버렸고, 미스틸테인은 만들어진 비행기를 든채 침대와 침대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세하는 게임기를 든채로 발만 굴릴뿐. 오히려 게임을 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았다.
 "큰일났어! 대장! 제이가 쓰러졌어!"
 "..."
 "이럴땐 마우스 투! 마우스!? 투 마우스 였지!?"
 "앗!"
 슬비는 자신의 침대를 향해 달려오는 미스틸테인은 붙잡고 그대로 종이 비행기를 뺐은 뒤, 발만 굴리며 게임에 열중하던 세하의 손에 있던 게임기를 자연스럽게 빼앗고 그대로 등 뒤의 창문 밖으로 던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게임기가 아닌 자신이 떨어지는 듯한 착각적인 효과음을 내는 세하를 무시한채 유리를 밀어내 침대에 앉혀놓고 그 위에 미스틸테인을 올렸다.
 "죽은 척 해도 소용없어요."
 "..."
 "제가 받을까요? 징계를 달게 받겠다고 하셨습니다!라고 전해드리면 되겠죠?"
 슬비의 말에 거짓말처럼 제이의 몸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받으세요."
 "...마그네슘이 부족한 지금의 나는, 차마 이런 충격적인 통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제이의 발언에 슬비는 제이 옆 책상에 있던 맥주캔을 집어들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술은 잘 넘어갔네요?"
 "하루에 한 캔은 건강에 좋은 습관이지. 뿐만 아니라 그 맥주는 건강 맥주로써 칼슘, 비타민, 식물성 식이섬유, 탄수화물이 풍부해서 나같은 환자..."
 "받.으.세.요."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주며 말하는 슬비와 정면에서 마주보던 제이는 조심스레 자신의 핸드폰을 열었다.
 [대체! 언제 받는거에욧!!!]
 "크윽, 오랜 지병인 발작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군. 뒤를 부탁한다."
 쓰러지려는 제이의 앞에 슬비는 조용히 수신호를 보냈다.
 "아아! 저 손짓은 '내가. 받으면. 너는. 죽을지도. 모릅니다.'에요!"
 미스틸테인의 말에 제이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정자세로 자신의 입에 가져다댔다.
 [도대체가! 당신이라는 사람은 매사에 왜 도망만 치는거야!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아?!]
 그 외에 '또 술이나 쳐먹고 있겠지'라던가, '팔자좋게 뒹구는 주제에'라던가, '왜 자기가 대신 시말서를 대필해야 하나' 등등 여러 불만을 표해왔고, 제이는 그 불평이이 끝날때마다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를 덧붙였다.
 [하아... 다음에도 한 번만 더 약속을 펑크내면 그때는 집으로 쳐들어갈테니 그런 줄 아세요!]
 '쾅' 소리와 함께 끊어진 통화화면을 제이는 슬비에게 보여주었다.
 "참 잘했어요."
 슬비는 그렇게 칭찬하고서 다시 자신의 자리에 누워 책을 펼쳤다.
 "...화내려고 전화한거야?"
 유리는 현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 한채 잠시 휴대폰과 안그래도 흰피부에 백발인 주제에 더 더욱 하얗게 백화해버린 제이를 번갈아보며 턱을 쓸었다.
 "게임기 물어내!"
 "너희 어머니가 몇 대를 부숴도 상관없으니 마음껏 던져도 괜찮다고 하셨어."
 슬비의 빈틈없는 답변에 감동한 듯 세하는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진짜로 울기 시작했다.
 이 병실의 분위기 정말로 적응 안돼네.
 결국 유리는 다시 미스틸테인을 뒤에서 껴안고 그대로 자신의 침대에 나란히 엎어져 누웠다.
 "미스티, 심심하지 않아?"
 "응. 언니랑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
 그런 미스틸테인의 얼굴에 얼굴을 맞대며 유리는 창 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왠지 지금 봐둬야할 것 같은 기분에 이끌리듯 바라본 창밖엔 5일째에 접어든 보름달이 가로등처럼 환하게 세상을 비춘다.
 "우리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거야?"
 "..."
 유리의 질문은 분명 모두를 향한 것이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들이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루 전.
 윤해창이라는 신강고등학교 소속 2-C반의 학생과 검은양팀이 조우한 뒤. 유니온은 그를 '차원종'으로써 분류하고 제거대상으로써 하위 발견즉시 제거할 것을 명령했다.
 그 명령을 받은 검은양팀은 이의를 제기했으나 되려 병원을 감옥삼아 갖힌 꼴이 된 것이다. 사실 다섯명 모두 알고 있었다. 단지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맞받아치지 않을 뿐이다.
 "이슬비, 이세하. 너흰 정말 이대로도 괜찮아?"
 "..."
 슬비는 작은 눈동자만 굴려 안경너머에서 분한 듯이 말하는 유리를 바라보았다.
 "누나. 괜찮아?"
 "아니! 전혀 안괜찮아!"
 "솔직히 말하자면 난 너희의 보호자로써 이 병원의 난방이 알맞다는 것만은 알려주고 싶구나."
 진심으로 병원에 얌전히 누워있고자 했던 제이는 오히려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제이에게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제이에게 있는 무언가 슬퍼보이는 듯한 오라가 반발심을 죽였다. 과거가 있는 듯한 그에게 뭔가를 강하게 피력하는 건 슬비 뿐이었다.
 "이세하! 그만 짜고 어서 일어나봐!"
 "흑흑. 흑흑."
 마치 국어책을 읽는 읏한 울음소리. 그것에 의문을 느낀 미스틸테인은 조심히 베개를 들어올렸다.
 미스틸테인이 들어올린 베개 밑에는 요정마냥 숨어서 게임기를 두들기며 입으로만 '흑흑'을 뱉어내는 소라게 소년이 있었다.
 그 순간 유리가 본 것은 무표정한 인상이 아닌, 굉장한 인상의 슬비가 세하의 침대를 향해 우아하게 점프하는 장면이었다.

 

 + + +


 5일째.
 4일간 계속되던 보름달이 하늘에 멈춰있고, 해는 뜨지 않은채 5일째를 맞이했다.
 "지부장님. 제압팀의 배치가 끝났습니다."
 지부장이라 불린 남자는 자신의 안경을 살짝 올려쓰고는 눈 앞의 디스플레이를 손으로 펼쳤다. 그 안에는 괴물 같이 생긴 소년이 디지털로 나타났고 주변엔 적색, 황색, 녹색의 형형색색의 점들이 가득 나타났다.
 "A플랜은 붉은여우팀이 맡고 B플랜으로 넘어갈 경우 푸른쥐가 쫓는다."
 "나머지 팀들은 어떻게 합니까?"
 "일반 시민에 대한 보호와 정보 통제에 힘쓰도록."
 다시 한 번 얀경을 올려쓴 남자는 디스플레이를 접었다. 그 뒤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물체를 들어 귀에 가져다댔다.
 "검은양은 열외라고 했을텐데?"
 [그 건과 별개입니다. 현재 목표물은 차원종이 아니라 신강고등학교 학생인 윤해창이란 아이입니다. 발견된지 얼마 안되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처리한다는 건 잘못된...]
 남자는 무심하게 전화를 끊고서 디스플레이에 손을 넣고 빼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딸려나오는 건 어느 학생에 대한 자료였다.
 윤해창.
 신강고등학교 2-C반. 출석번호 33번. 전교 27등. 검도를 비롯해 많은 검술을 섭렬. 위상잠재력 중상.
 테스트 결과 B+.
 본인은 거부했지만 이쪽의 러브콜은 꽤나 화끈했었다. 적혀있는 거부사유는 '검도에서 서유리보다 약하기 때문에 1:1 승부로 이기기 전까지 같은 위치에 설 생각이 없다'라고 적혀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정말로 어이없는 이유였다. 세계를 지키는 일에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잔뜩 담은 이 이유는 어떻게해도 뚫을 방법이 없었다.
 왠만큼 날고 긴다는 스카우터를 보내며 갖은 방법으로 회유해봤지만 실패했고, 서유리에게 일부러 승부에서 지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그마저도 거절이었다.
 사적인 감정으로 자신들이 지키는 마을을, 지킬 힘이 있는 자들이 그것을 방관하는 것 자체에 분노를 느꼈었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건 방금 전화해온 김유정. 검은 양팀의 관리자였다.
 클로저도 사람이며 존중해**다는 이야기이다.
 그 존중은 어디까지나 세계가 안전할때나 통용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는 언제 어디서 차원종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며 사상자의 그래프는 정말로 간단히 위를 향하고 있다.
 물론 그 애들이 너무 어린 것도 문제지만 현재 차원종의 출몰량은 차원전쟁에 가까워지는 상황. 사정을 일일이 봐주기에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했다.
 윤해창.
 저 소년을 구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차원문을 하나라도 더 빨리 닫을 수 있다. 현직 클로저 요원들의 휴식을 보장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저 소년이 빨리 죽어줘야할 이유가 된다. 이 일로 인해 자신을 언젠가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 일로 인해 심판을 받게될 정도의 세계라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평화로운 세계라는 걸 의미하는 것.
 그때라면 심판 따위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무표정의 지부장은 다시 한번 안경을 올려썼다.



 + + +



 "하아."
 14번째 만에 연결된 전화는 14초도 안돼서 끊겼다.
 "이쪽은 3번째 저지선으로 참가하게 됐는데요, 뭐래요? 그 쪽의 도도한 지부장씨는?"
 "통화종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우리쪽까지오면 그냥 보내줄게요. 해줄 수 있는게 이것 밖에 없어 미안해요."
 "아냐. 충분해. 그 정도만으로도 넘칠만큼 충분히 고마워."
 유니온 신서울지부에 온지 어연 반년. 처음 검은양팀을 맡았을때 내가 유니온이란 단체에서 축출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뒤집는데 1달도 걸리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는 축출됐을거라 생각했던 때의 몇 배였었지.
 말을 듣지 않는 베이비시터에 마이페이스형 리더. 25시간 게임 중독자, 묘하게 돈독이 올라있는 청춘 여고생. 마지막으로 왜 한국지부에 떨어진지 알 수 없었던 타국 소년까지.
 개성이 폭발하다못해 너무 강렬한 이 다섯이 모인 검은양팀은 솔직히 지금까지 붕괴없이 온 것도 기적같을 정도였다.
 이것은 그 기적을 어찌저찌 반년을 넘어가며 지켜본 팀의 첫 위기라고 할 수 있다.
 5명 중 3명은 신강고등학생이다. 그 애들 중 2명의 같은 반 학생. 그것도 위상잠재능력이 꽤 높은 랭크에 속했던 아이가 폭주했다.
 보통 폭주는 신체변형까진 안일으키는데 이 아이는 상상 이상의 형태로 검은양팀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분명 일반인에게 숨겨야할 모습이지만 이렇게 끝내는 건 옳지 않았다.
 "아직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야."
 "어어? 잠깐만요! 이 라인 안은..."
 "부탁해. 지금은 못 본척 해줘."
 "아휴, 난 이런 사람이랑 친해진거지. 정말로 곤란하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은이는 비스듬이 들고 있던 자신의 총에 탄창을 부착하고 반자동으로 설정을 돌렷다.
 "자, 언니도 어서."
 "같이 가줄거야?"
 "대신 병가 쓸때 도와줘요. 코가 삐뚤어지게 자고 싶으니까."
 "정말 고마워."
 "어이 대장! 뭐하는 겁니까?"
 "넌 거기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연차 반납시켜 버릴거야!"
 멀리서 '너무해'라는 소리가 들리기에 웃어버렸다.
 "자, 어서 가요. 작전시각까지 10분도 안남았습니다요."
 "그래.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면 밥도 살게."
 "술은?"
 "그건 생각이 필요하겠는데?"
 오전 8시. 해가 떠야할 시간이지만 달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조금은 쌀쌀한 아침의 한때였다.



 + + +



 "어라..."
 눈 앞에 강렬한 플래시백이 끝난 뒤. 정신을 차리자 손에는 특이하게 생긴 난쟁이가 불들린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몸 만큼이나 큰 머리를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내 손을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 요정은 대체 뭘까?
 호기심에 살짝 힘을 주자 생기를 잃고 축 늘어져버렸다.
 지금 심정은 마치 어릴적 개미굴에 돋보기를 들이댔던, 혹은 우연찾게 붙잡은 사마귀의 다리를 하나씩 뜯어낸 듯한 기분이다.
 내 행위가 잔인하다는 감촉이 없다.
 머리가 울린다.
 속이 흔들린다.
 다리가 얼얼하다.
 팔이 떨린다.
 "눈 앞이... 경련한다!"
 몸이 선행해서 위기를 느끼고 팔로 머리를 가렸다. 뭔가 폭발하는 음과 함께 정확히 내 몸은 3걸음을 뒤로 물러나야했다.
 틀림없는 저격이다. 방향은 정면. 정면에서 사각이 되는 곳을 향해 뛰쳐들어 엄폐했다.
 "이때야!"
 엄폐를 노렸다는 듯한 외침과 함께 아무것도 없던 눈 앞에서 붉고 긴 줄기가 날아와 내 목을 찔렀다.
 "크악!"
 직감적으로 피해내 스치기만 했지만 목이 스치듯 잘렸다. 피가 분수처럼 솓구치는 걸로 보아 경동맥까지 영향을 준 것 같다. 이런 상처는 겉으로 뿜어지는 피보다 안으로 뿜어지는 피의 양이 더 많으니 내가 살아남을 방법은 없을 터였다.
 분명 살아남을 방법이 없을터인 내 치명상은 어느새 아물어버렸다.
 "이 상처가 나았다고..."
 사람의 재생력은 감염을 차단하는 기능에 의해 죽었다. 그러나 내 몸은 그와 반대로 재생을 거듭해낸 것이다. 난 사람인가? 어째서...
 "어라?"
 무엇이 나앗다는거지? 난 왜 여기 있는거지?
 "아아. 아름다워."
 검은 캔버스에 혼자 춤을 추고 있는 저 달을 보고 있노라면 피가 끓는다. 심장이 격하게 뛰어 숨을 몰아서 토해내버린다.
 그리고.
 ―― 눈 앞이 붉게 타올랐다.
 이 순간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따뜻할 뿐이다.
 "그래! 지구촌은 한 가족이지!"
 스스로도 모를 말을 내뱉으며 피웅덩이 같은 붉음에 먹혀들어갔다.



 + + +



 오전 9시 29분.
 여전히 휘영찬란한 보름달이 세상을 내리살피던 어느 폐허. 채찍을 들고 있던 소녀는 눈 앞의 생물에 경이를 느끼고 있었다.
 치명상.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찔러넣은 편의 끝. 내출혈로 인해 자신이 언제 죽는지도 모른채 급사할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던 자신의 실력을 지금만큼은 의심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니, 어떻게해?"
 "...작전대로 했어. 저 괴물은 죽었어야 했다구!"
 붉은 여우.
 자신과 같은 팀원인 두 여자아이는 어디까지나 지원역이다. 직접적인 전투는 리더인 자신이 해**다. 그러나 지금의 직감은 여기서 한발짝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는 알파. 본부 응답바래요."
 [무슨 일인가? 알파.]
 "목표대상의 이변을 감지. 퇴각하고 싶은데요."
 [목표섬멸이 우선순위다. 퇴각은 용납하지 않겠다.]
 "...알겠어요."
 채찍을 늘어뜨린 소녀는 쌍둥이 소녀들을 살짝 밀어냈다.
 "여기서부턴 어른이 할일이에요. 어린이들은 집에 갑시다아~"
 최대한 미소지어보려 애쓰며 말했지만 아이들의 직감은 너무 좋았다.
 "우, 우리도 같이 있을래!"
 "그래! 이럴때일수록 힘을 합쳐**다고 곤드레맨이 그랬어!"
 "그 술취한 아저씨가 어제는 어떤 폭탄을 만들었나요?"
 "소주 트레인하고 맥주 카랑 와인 플래인이 합체했어."
 그거 참 대단한 폭탄로봇이네요.
 긴장을 풀어주려 농담삼아 던진 말에 웃기지도 않은 로봇이 출몰했네요.
 당장 경찰서에 어린이 보호법 위반으로 신고해야겠어요.
 뭐든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감지되는 위상력이 점점 무겁고 진득해져만 갔으니까.
 "자아~ 두 사람. 그럼 요앞 편의점에 가서 아까 말한 소주 트레인이랑 맥주 카랑 와인 플래인을 데려와주세요."
 "우리는...!"
 "그게 없으면 이 언니는 곤드레 아저씨처럼 싸우기 힘들답니다아."
 여유부리며 웃고 있지만 여유따위 부릴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의 위상력 탐지능력은 하급이지만 이 이상 강력해지면 하급이라도 저 불쾌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것이다.
 "자, Let's 심부름!이에요."
 결국 쌍둥이들은 금방 돌아오겠다며 가버렸고, 자신은 엄폐상태에서 벗어나 천천히 그 소년이 죽었어야할 묫자리로 나왔다.
 땅에 그려진 마방진.
 검푸른 연기뭉치.
 붉은 액체.
 지옥의 악마를 소환한다면 이런 세트려나. 소녀는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채찍을 두 손으로 잡아 펼쳤다.
 "자, 나오세요!"
 나오라고는 했지만 순순히 말을 들어주는게 이상하다고 자신에게 핀잔을 넣고는 다시 한번 소년을 찔렀던 기술로 채찍을 펼쳤다.
 "미안해요."
 목을 찔렀을때와 똑같이 사과하며 허공을 향해 채찍을 비산시켰다. 그러자 채찍의 반신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년이 있던 곳이 마구잡이로 먼지를 일으키며 무너져버렸다.
 "정말로 미안해요."
 "무엇을 사과하는가?"
 "뭐?"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무엇이 미안한가?"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무엇이 너를 여기 존재하게 하는가?"
 소녀는 항상 생각했다. 위상력이 말을 걸면 어떤 느낌일까. 항상 고민해왔었지만... 그래. 위상력이라는 것에 의지가 담긴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까?
 "무엇이 너를 싸우게 만드는가?"
 입술이 피가 날때까지 꺠물고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소녀는 상대를 **도 않고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자 채찍은 손잡이를 제외한 모든 몸체가 사라지고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주변을 매웠다.
 "호오? 그것은 편술? 채찍 마디를 마디별로 분활시켜 공간에 흩뿌리고 그것을 검신으로써 주변을 찢는 건가?"
 위상력은 배가 고픈 듯 끝없이 물어오는 것 같았다.
 "위상력이 폭주하면 자아를 잠식하는 건가요."
 "무엇을 알고 싶은가?"
 "당신은 누구에요?"
 소녀의 말에 소년. 아니 검붉은 갑주에 감싸여 전신에 작은 뿕과 갈기털을 내비추던 괴인은 자신의 팔에서 검을 뽑아내고 그 검을 자신의 얼굴까지 들어올렸다.
 "검론. 검으로 대화하세."
 그리고 얼굴을 지나 하늘에 닿을 듯이 높게 들어올린 소년은.
 "태산압정 브레이크!"
 이상한 기술명과 함께 소녀가 서있던 자리를 분쇄하듯 내리 찍었다. 기술명이 이상한 것은 둘째치고 파괴력 하나는 목소리 이상으로 엄청났다.
 자신이 서있던 곳에 검이 손잡이까지 박혀있는 걸 보며 소녀는 더 더욱 몸에 긴장을 새겼다.
 저런 걸 맞으면 한 번에 죽어요.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자 배가 찢어지듯 아파온다. 그 고통을 애써 감추며 채찍을 유려하게 휘둘렀다.
 "거절."
 휘둘러진 채찍을 검으로 쳐낼때마다 '거절'이라는 효과음을 넣는다. 그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괴인은 거릴 껏이 없다는 듯 쳐낼때의 리듬에 맞춰 한 발씩 소녀를 향해 다가왔다.
 "오오, 로미오. 거절. 왜 날. 거절. 밀어내는게요. 난. 거절. 여기있소. 거절. 내 사랑 이리와. 거절. 날 맞이하시오."
 "이쪽도 거절이에요! 줄리엣!"
 다섯 걸음이 남은 순간 소녀는 또 다시 채찍의 마디를 모두 공간 속으로 섞으며 괴인을 향해 발출했다.
 "거절! 거절! 거절!"
 막고, 또 막고, 막아내다 하나의 편 마디가 투구를 때린 순간. 모든 채찍 마디가 기다렸다는 듯 소년의 전신을 강타했고 채찍에 맞던 괴인의 몸이 그 충격으로 점점 떠올랐다.
 "이제 그만 사라지세요!"
 괴인의 몸이 어느 정도 떠오르자 소녀는 제자리에서 한바퀴 회전하며 채찍을 휘둘렀고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채찍은 소년의 몸을 쳐날려냈다.
 "하아, 하아, 하아."
 소년이 부딫힌 곳이 부숴지며 먼지를 내자, 소녀는 지친 듯 숨을 몰아쉬고 그대로 체면도 버린채 주저 앉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가자. 산초."
 괴인, 소년의 목소리가 자신의 눈 앞. 다섯 걸음 앞에서 들려오는 것만으로 주저앉기는 커녕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도 없었다.
 "...어떻게?"
 "사랑만, 사랑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나. 내 늙은 산초여!"
 소녀가 고개를 들었을때 본 것은, 괴인이 자신의 검을 어깨에 걸치듯이 올려든채 내밀어진 다리의 무릎을 구부리는 것이었다.
 "자, 이것이 내 사랑의 크기다."
 그와 동시 앞발을 미끄러지듯 내딛으며 괴인은,
 소년은 또 다시 소리쳤다.
 "금계독립 스매시!"
 
 + + +
 
 10시 12분.
 "저기야!"
 달은 여전히 보이는 세상에 강림하듯 드리우고 있는 상태였다.
 그 세상에 개미처럼 뛰어다니는 두 여자가 있다. 한명은 사복차림의 오피스걸과는 거리가 멀지만 뭔가 있어보이는 여자였고, 또 다른 한명은 군복에 방탄복까지 걸친 여자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일어난 먼지뭉치를 향해 뛰고 또 뛰었다.
 그리고 한참을 뛰어 도달한 곳에는 하늘을 보며 **듯이 웃고 있는 검붉은 갑주와 자신의 오른쪽 허리를 손으로 막은채 피를 토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
 등 뒤에 방탄복을 입은 여자. 송은이는 망설였다. 여기서 총을 쏴 갑주에 도탄될 경우 여자애가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저 괴물의 시선을 끌었다간 일반인인 두 사람이 모두 다 위험할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여자. 김유정의 이성적인 판단을 믿으려 했다.
 타앙!
 밤 공기는 가르며 울려퍼지는 한발의 총성.
 김유정은 송은이의 기대와 다르게 이성적이지 못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총을 하늘을 향해 쐈다는 사실일 뿐. 여전히 현재가 최악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녀석의 시선을 끌게. 저 아이를 부탁해."
 "너무 무모하잖아."
 "목적을 잊었어? 내 목적은 쓰러져있는 저 애가 아니라 저 갑주를 뒤집어쓴 애를 구하는거 였어. 이게 맞는 수순이야."
 "지금 나보고 언니를 버리고 가라는 거야? 이렇게 잔인한 여자인줄 알았으면 말조차 섞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은이가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사선을 넘긴 것을 유정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와중 얼마나 많은 전우를 보냈었는지도. 그렇기에 이 선택을 강요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
 "알았어. 일 끝나면 술도 살테니까."
 "한잔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줄 알아."
 "응."
 살아남아 반드시 술을 꼭 사**다는 것처럼 말하는 송은이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유정은 또 다시 총을 한 발. 허공을 향해 쏘아올렸다.
 "신강고등학교 2-C반 33번. 윤해창. 네 이름 맞지?"
 "무엇이 궁금한가?"
 드디어 자신에게 관심이 생겼는지 갑주의 목이 반쯤 돌아갔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입안에 고인 침을 모두 삼켜낸 유정은 재차 입을 열었다.
 "나와 가자. 널 고쳐줄 수 있을거야."
 떠오른 건 현재 신강고등학교로 발령온 대학동기. 캐롤라인이다. 그녀에게 안전하게 데려간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 믿었다.
 "고친다? 고친다 함은 무엇을 고친다는 것인가?"
 "너의 모습은 원래대로..."
 "무엇이 나의 모습인가? 원래대로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설득해내**다.
 "네 부모님도 널 걱정하고 계셔!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가족과 친구, 사랑과 우정. 좋은 소재로군. 춤을 출때는 격렬하게 춰야하는 법."
 괴인의 몸이 완전히 유정을 향해 돌아섰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너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 돌아가자."
 "돌아간다. 고향을 향해? 빛을 쫓아서 떠난다. 나는 방랑자,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배게 삼으며, 바람을 벗 삼아 사는 나는 슬프고 기쁜 방랑자라네."
 노래하듯 운율있게 말하며 또 다시 한발을 내딛었다.
 "그런 너는 어떻지? 무엇이 그 총을 들고 여기 서있게 하는가? 무엇이 널 존재하게 하는가?"
 "널 구해내는 것. 지금의 내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야."
 "그렇군. 그런 넌 강한가?"
 "뭐?"
 소년의 몸이 사라졌다. 아니, 너무 빨라서 ** 못 했지만 느껴진다. 등 뒤에 뭔가가 숨을 쉬는 감각이. 차디찬 칼날이 목을 치려는 느낌에 눈을 감아버렸다.
 "키가 크는 시간은 밤 11시부터 새벽 2시가 피크다! 애송이!"
 바이크의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 등 뒤에 있던 무언가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린 시선엔 백피백발의 남성과 미치광이 라이더가 자신의 애마인 헥사부사로 드리프트를 해내고 있었다.
 "제이! 란!"
 반가움, 분노, 어정쩡함, 감사. 온갖 기분이 칵테일처럼 뒤섞여 심란했으나 어느새 다가온 제이는 유정을 등 뒤로 밀어냈다.
 "비타민 부족인 네가 서있기에 여기는 너무 위험해. 그러니 이걸 가지고 돌아가도록."
 제이는 자신의 품 속에서 시판되는 유명한 레X나 스틱을 유정에게 건네고서 갑옷이 쓰러진 곳을 향해 다가갔다.
 "자, 잠깐!"
 몸이 약한 제이가 걱정된 유정은 말려보려 했지만 어느새 나타난 은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우린 여기까지야. 돌아가자."
 "무슨..."
 복부에 날카롭게 들어온 은이의 주먹에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유정은 눈을 감았다.
 "우란아!"
 "선우 란. 똑바로 불러줘."
 "하하, 그랬지 참. 아무튼 란. 이 아이를 부탁할게."
 은이는 헥사부사의 뒤에 숨을 몰아쉬며 열을 내는 소녀를 태웠다. 몸 여기저기에 붕대가 매어진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지혈은 되어있었다.
 "살살 몰도록 해. 겨우 지혈..."
 말이 끝나기 애석하게 헥사부사는 공기를 찢으며 사라졌다.
 "그럼 우리도 가볼까."
 은이는 유정을 허리째 어깨에 들쳐매고서 현장을 이탈했다.
 
 + + +



 11시 32분.
 "어라? 제이는?"
 "몰라."
 평소 이 시간대의 제이는 자신의 침대에서 어린이 방송이 보며 지상파 채널의 건강방송보다 더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고 있어야 했다.
 이유는 지상파는 따라할 수 없는 방식의 지식이나 구하기도 어려울만큼 귀하고 비싼 음식으로 건강을 챙기라고 주장하지만 어린이 방송은 따라하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해서라고 했다.
 그런 제이가 자신의 침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건강을 생각해서 밥은 물론이고 꼬박꼬박 챙겨먹던 약도 그대로 남아있다.
 "화장실이라도 간거 아냐?"
 게임기와 일심동체가 된채 무심의 영역에서 말을 하는 소년. 세하는 유리의 갖은 관심이 가끔은 개인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읽었는지 그 뒤에서 그대로 세하를 껴안는다.
 "무, 무슨 짓이야!"
 "후후, 부끄러워 하긴."
 "부, 부, 부끄러운게 당연하잖아! 그보다 부끄러워 해**다고!"
 "역시 세하는 재밌어."
 "사신 같은 말투하지 말고 저리 비켜!"
 "왜에~ 심심해. 놀아줘!"
 그 반응에 옆 침대에 누워 얌전히 그림을 그리던 소년(?). 미스틸테인 또한 세하의 침대로 이사왔다.
 "형이 놀아주는거야?"
 "응. 그런거야."
 "그런 적 없거든!"
 끝내 게임기는 병실 바닥에 떨어졌고 두 사람의 스킨쉽게 이세하는 항복했다. 덕분에 벌어진 게임은 시체놀이었다.
 "..."
 "..."
 "..."
 침대에 최대한 편하게 누워있던 세 명의 아이는 어느새 정말로 사이좋게 잠들어버렸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슬비는 중간에 자신도 끼고 싶다는 충동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스스로 한심함을 느끼던 참이다. 깨우지 않아도 밥이 올때쯤이면 일어나겠지.
 그리 생각하며 바닥에 떨어진 세하의 게임기를 집어들었다.
 본래라면 병실에 마련된 세하의 개인 서랍에 올려놓으려 했으나 잠깐 보이는 사람의 이름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직사각형 디스플레이 속에 여자의 얼굴이 있고 그 아래에 대화창처럼 보이는 직사각형이 걸쳐져있다. 그 여자애의 이름은 유리라고 되어있었다.
 적당히 몇 번 조작하자 다른 여자가 나오며 이번엔 슬비라고 씌여있는게 눈에 많이 띈다.
 "..."
 그걸로도 모자라 제이와 미스틸테인과 유정과 은이까지 나온다. 그제서야 세하가 사람 이름 짓는 부분이 귀찮아서 주변 이름을 모두 적어 넣었다는 사실을 추리해낼 수 있었다.
 "멍청이."
 그 사실에 뭔가 화가 난 슬비는 결국 오늘도 세하의 게임기를 지상낙하실험에 참가 시켜버렸다.



 + + +



 오전 12시 12분.
 쓰러져 잠든 듯한 검붉은 갑주의 앞에 서있는 제이는 약간 후회하고 있었다.
 12시에 기본 편성된 '작은 하마의 대모험'을 볼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번주면 전 부인인 까마귀와 주인공인 작은 하마가 목숨을 걸고 싸울 예정이었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건강에 대한 토막상식[배에 칼빵을 맞으면 건강에 해롭습니다.]도 아주 유익한 방송이었다.
 추가로 점심밥을 거르게 된 것 또한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일어나라."
 "..."
 "흠."
 어째서인지 검붉은 갑주는 바이크에 탄채로 휘두른 자신의 주먹에 맞고 날아가서는 의식 불명상태다. 그렇기에 잠시 관찰하다 이내 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몸에 박힌 채찍 조각과 그 흔적이 오버데미지를 가리킨다. 이 녀석은 이미 한계에 빠져있다. 더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의 피해가 몸에 쌓인 것이다.
 "하긴 레드폭스의 머리라면 이 이상도 가능했겠지."
 윗선의 생각은 옳았다. 완전변이라 불리는 차원종화의 끝. 물극필반 상태의 윤해창을 행동불능으로 만들 정도 였음에도 종극에는 패한 듯이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할까.
 사실 제이가 이곳에 있는 건 팀원들 때문이었다. 애써 밝은 척하는 유리와 모르는 척하는 슬비. 거기에 게임 속으로 도피한 세하까지. 겉으로 살짝씩 티를 내면서도 구하러 가자고 말도 못한다.
 애들은 애들이다.
 그렇게 생각한 제이는 모두가 한눈을 판 사이 병실에서 뛰쳐나왔고 선우 란에게 작전내용을 브리핑 받은 뒤 현장까지 한 걸음으로 달려왔다.
 선우 란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건 옛 지인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이용한 것이다. 약간 양심에 찔리는데? 유니온에서 해고되면 나도 벌처스로 가도록 할까.
 심각히 이직을 고민하던 제이의 눈 앞에 붉은 빛이 일기 시작했다. 갑주의 균열을 타고 빛이 흡수되더니 이내 쓰러진 몸이 아무런 준비자세도 없이 일어났다.
 "흠. 과연. 산초는 도망쳤나. 어쩔 수 없지. 나에겐 아직 용맹한 명마가 남아있으니."
 "윤해창."
 "오! 나의 친애하는 친우이자 악우이며 동시에 호적수인 실버스터 경 아니신가? 337번째 결투를 시작해볼까?"
 대화가 통하는 상태는 아니다. 무엇보다 어떤 원리로 회복해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 이 녀석이 날 향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제이는 속주머니에서 동봉된 캡슐을 꺼냈다. 그것에는 30%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하아. 지금부터 섬멸에 들어간다. 죽을 것 같으면 항복이라고 외쳐. 물론 그 전에 죽지 않았을때의 권고다."
 "우리가 언제 서로의 목숨을 탐닉한 적이 있었나? 친우!"
 윤해창은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마치 팬싱을 하는 듯한 자세로 고쳐쥔채 몸을 가지런히 모았다.
 "제자리에. 착검."
 제이는 소년의 자세를 보고서 몸을 웅크리며 권투의 기본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서로 양보하듯 그 자세 그대로 굳은채 눈만 굴릴 뿐이다.
 "엇! 저기!"
 제이는 갑자기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검붉은 투구는 잠시 기우뚱하며 하늘을 향했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두 걸음 파고든 뒤 가벼운 잽을 어깨를 향해 날렸다.
 "칫."
 신체균형을 무너뜨린뒤 마운트할 생각이었던 제이의 의도와 다르게 붉은 갑주의 칼등이 그 주먹을 막아내었다.
 "과연 내 호적수답군. 답례다! 태산압정! 똑바로 서라!"
 태산압정.
 단순히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는 기본 검법 중 하나이자, 왕도로써 검을 단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쓰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이 윤해창의 검을 타고 땅에 박힌 순간 주변의 땅이 진동하며 무너진다.
 어떻게 똑바로 서라는거지?
 제이는 떠오른 모순에 잠시 의문을 느꼈지만 문제의 의도를 파악할 여유도 없이 검이 날아들었다. 그 검을 가볍게 쳐낸채 뒤에 닿은 벽을 오른발로 박차며 채찍처럼 다리를 휘둘렀다.
 놈을 노리고 찬 것 아니다. 단순히 물러나게 하기 위한 발길질이었으나 다리에 묵직하게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큭!"
 일부러다. 놈은 지금 피해를 감수하며 버텨낸 것이다.
 "골단골참. 뼈를 주고 뼈를 벤다!"
 휘둘러진채 회수하지 못한 오른발에 차디찬 감촉이 느껴지자 제이는 썬그라스를 내려쓰고서 자신을 집어 던지려는 괴인의 왼팔을 왼다리로 감싸며 갑주의 머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머리로 박았다.
 그 충격에 휘청거리는 갑주에게서 겨우 빠져나오긴 했으나 강하게 충돌했던 다리가 고통을 호소한다. 맞추려고 휘두른 것이 아니기에 힘조절을 안한 것이 실수였다.
 "흠. 부러졌는가."
 불행중 다행인 것은 다리의 고통과 녀석의 팔을 바꿨다는 것이다. 갑주에 매달려 덜렁거리는 놈의 오른팔은 거의 끊기듯 부러져 있었다.
 폐건물 잔해의 뒷골목.
 부상을 주고 받아 싸움에 흐름이 끊긴 두 사람은 건물 외벽의 그림자 속에 녹아든채 서로를 주시했다.
 바람 소리만 가득하게 울려퍼지는 이 어둠 속에 달빛이 드리워진 순간.
 "월견검! 공간가르기!"
 기술명과 함께 날아드는 발도에 재빨리 썬그라스를 고쳐쓴 제이는 말도 안될 정도로 몸을 뒤로 젖혀냈다.
 발검은 제이의 옷 앞을 자르고 앞머리를 스치듯 자른채 지나쳤고 그 순간 재빠르게 몸을 튕기며 일어난 제이는 갑주의 뒷통수를 향해 뛰어올랐다.
 "레스베라트롤 킥!"
 갑주의 외침에 수긍하는 듯한 외침을 지르며 제이는 공중에서 세바퀴를 돌고, 네 바퀴째에 왼발의 뒷꿈치를 벼락이 내리치듯 내려찍었다.
 그 순간 제이가 본 것은 뒷통수가 아닌 붉은 갑주의, 윤해창의 얼굴 부분이었다. 놈은 스스로 자신의 공격을 향해 돌아선 것이다.
 놀란 제이가 힘을 뺄 여유도 없이 그 얼굴의 한가운데로 내리꽂혔다.
 레드 와인의 영양소로 지은 괴상망측한 기술명이었음에도 주변의 땅을 진동시킬 정도의 풍압을 동반했고 그 킥을 정통으로 맞은 붉은 갑주는 유리가 깨지듯 흩어지며 찢어진 교복을 입은 소년을 뱉어냈다.
 "보험처리... 해주려나."
 오른쪽 정강이, 왼발 뒷꿈치. 두 뼈가 비명을 질러온다. 부러진 것 같진 않지만 금이 갔거나 뼈가 놀랐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뼈가 튼튼해진다던데 왜 난 점점 약해지는지 정말로 알 수 없군."
 쓰러진 윤해창의 앞에 주저앉은 제이는 목의 맥을 짚었다. 다행히도 죽진 않은 듯 했다.
 "하아."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약통을 꺼내 손에 털자 방부제만 하나 튀어나올 뿐이다.
 "이것참."
 옆에 쓰러진 녀석처럼 눈이라도 감고 싶은 충동이 솓구치나, 여기서 잠들면 입이 돌아가며, 나아가 건강에 해롭다. 그렇기에 제이는 다리를 절뚝이며 일어났다.
 "곤란해."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제이는 반사적으로 얼굴에 가드를 올리며 물러섰다.
 "누구냐."
 가드를 올린 팔에는 자그마한 바늘 같은 물체가 꽂혀있다.
 "우리 구면이잖아. 벌써 잊어버린거야?"
 "미안하지만 기억력에 좋다는 등푸른 생선을 난 싫어하는 편이거든."
 "그래?"
 바닥에는 보랏빛무리가 올라와 쓰러진 소년을 향해 차오르고 시작했다.
 "아무튼 지금 내 기분은 굉장히 안좋아. 그래도 나와 놀고 싶다면..."
 "아니, 사양해두지. 난 놀만큼 놀았으니까."
 "착한아이네. 원한다면 너한테도 상을 줄게."
 눈 앞의 아이는 상이라고 말하며 윤해창의 몸에 알 수 없는 빛을 마구잡이로 쑤셔박았다.
 "그것도 사양하겠다."
 그렇게 말하며 제이는 약통이 들어있던 반대쪽 품 속에서 총을 한 정 들어 한 발은 윤해창에게, 한 발은 꼬마에게 쏘고 확인도 안한채 다리를 절둑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흠, 어때, 또 쟤랑 놀아볼래?"
 소년은 매력적으로 웃으며 눈이 풀려있던 윤해창의 손을 붙잡았다.



 + + +



 오후 1시 18분.
 작전실 내부의 공기는 무겁다 못해 무진공 상태가 의심될 정도로 숨 쉬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것은 어느 남자의 표정이 숨소리조차 거슬려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전투 상황을 관측해낸 원격 영사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본 남자는 검은 양의 관리자 김유경과 송은이를 봤을때 한 번 분노했고, 선우 란과 제이가 나타났을때 분기를 견딜 수가 없게 되었었다.
 그래도 붉은 여우의 리더를 구했기에 참을 수 있었고, 제이의 기술 중 꽤나 큰 것이 그 머리에 꽂힌 순간 환호하고 싶었다. 그러나 제이는 다 끝내놓고 죽이지 않았다.
 분명히 검은양에게도 윤해창의 처우에 대해서 전달했음에도 명령거부를 저지른 샘이었다. 어떻게 제이를 괴롭힐지까지 정한 그는 한숨을 내쉬다말고 나타난 소년에 의해 숨을 삼켰다.
 '애쉬'
 칼바크건에 엮인 기이한 소년이다. 소년이라곤 하나 그 위험도는 차원전쟁에서 나타났던 넘버즈들 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현재 이 알 수 없는 연계 상황에서 그는 자신에게 주기적으로 보고해오던 한 여자를 떠올렸다.
 그 여자가 저쪽으로 넘어간 것인가, 아니면 저 녀석이 단순히 윤해창을 주워버린 것인가.
 이 일이 다른 지부의 귀에 들어갔다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목표 로스트. 전원 철수하시기 바랍니다."
 온갖 생각이 그의 머리를 속을 괴롭히는 사이 이번 작전의 보고 서류가 책상 위에 올려졌다. 지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페이지를 넘겼고 자신의 오른쪽에 한무더기로 준비되어 잇는 종이중 3장을 차례대로 꺼냈다.
 그 곳엔 직사각형으로 붉은 네모에 '징계 통지'라는 글자와 함께 3장의 종이 모두 징계 대상란에 '제이'라고 선명하게 프린팅 되어있었다.



 + + +



 오후 1시 44분.
 "미안합니다."
 "올 거면 미리 온다고 관리자인 내게 말을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애초에 명령하지도 않은 짓이잖아요! 또 징계가 3건이나 발령된 건 알고있어요?"
 "몰랐습니다."
 검은양팀의 입원실. 두 다리에 깁스를 한 백발 청년의 양 옆으로 두 명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한명은 병문안을 올 복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 민폐가 되는 여자였고,
 다른 한명은 병문안을 왔다기 보다 가볍게 편의점에 왔다고 해야할만큼 가벼운 반팔, 반바지 차림의 여자였다.
 "너무 그러지마. 그래도 덕분에 살았잖아."
 "몸도 안좋은 사람이... 멋대로 무리하니까!"
 "괜찮다. 평소에 너보다 많은 비타민을 섭취하고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아는데?"
 "피부를 보면 알 수 있지. 너의 피부 노화 속도는 나에 비해 1.2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정의 주먹이 제이의 얼굴에 꽂혔다. 그러자 유리의 다리 위에 앉아있던 미스틸테인이 그 품에서 뛰어내려 유정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엄마! 아빠 때리지 마!"
 "...뭐?"
 "비록 아빠가 도박이랑 술에 젖어살지만 우릴 때리진 않았잖아!"
 "죄송합니다. 애가 드라마를 많이봐서요."
 유리는 미스틸테인을 자신의 품에 회수하고서 침대에 앉았고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검은양팀의 관리관 김유정은 일어서 중앙에 섰다.
 "흠흠, 여러분에겐 추가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오, 드디어 나가는건가? 이제 할만한 게임도 없어서 심심했는데 잘 됐어. 원정나갔다 와야지."
 "변이차원종 윤해창에 대한 각 팀의 대처수준이 레드가 되었습니다."
 "뭐!?"
 "...그 말은 윤해창을 넘버즈로써 인식했다는 건가요?"
 "웃기지 말라구! 해창인 사람이야!"
 "오늘 오전 윤해창을 소멸시키기 위한 작전이 있었어."
 "어떻게 됐는데!"
 "놓쳤어. 게다가 이쪽은 부상자도 나왔거든. 덕분에 지부장은 이제 이 문제를 자존심 싸움이라고 생각하나봐. 한 번 실패한 시점에서 웃음거리가 되었거든."
 은이가 말하자 김유정은 가만히 서서 주변에 누워있는 다섯을 주시했다. 모두 시선은 따로 움직이지만 생각은 비슷해보인다.
 "잘 들어. 검은양팀은 병원에서 대기할 것. 유니온의 처분은 여전히 변화없음이야. 이 상황에서 이 병실을 나간다는 건 꽤 큰 댓가를 치뤄야할 수도 있어."
 제이의 경우 덕분에 3명이 살았기에 가벼운 처분으로 끝난 것이다. 그러나 팀 전체가 명령을 위반하는 경우는 다르다. 잠재력도 높다 해도 통제가 되지 않은다면 그들에게 있어서는 걸림돌로 보일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팀의 해체, 그리고 팀원들 전부 다른 팀으로 한명씩 흩어지는 것이다.
 이제 겨우 친해졌는데 이런 식으로 헤어지는 것은 싫었다. 그것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혼자 가겠어요."
 "무모해. 붉은 여우도 당했어. 게다가 여기있는 건강맨도 졌다구!"
 "...진건 아니다."
 "현실에 졌잖아!"
 은이의 일침에 건강맨은 입을 닫고서 천장에 매달린 TV로 도피했다.
 "나도 일전에 빚을 갚아야 해."
 "누나들 가면 나도 갈게요."
 "여기서 나가면 명령불복종이야! 이건 나와 그 녀석 문제니까 너희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구."
 슬비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책을 덮었다. 단순한 행동 속에서 결심을 엿본 유리는 미스틸테인을 붙잡았다.
 "미스티는 여기 있어."
 "싫어요. 누나들이 없는 검은양팀에 남아 있을 생각은 없다구요!"
 유리는 감동한 듯 미스티를 끌어안았고 구석에 찌그러진 게임폐인을 바라보았다.
 "왜? 모두 왜 날 쳐다보는데?"
 "넌 어떻게 할래?"
 "나? 난 여기서 따뜻한 난방을 쬐며 하던 게임이나 마저할게."
 세하의 말에 건강맨은 기침을 세번 내뱉었다.
 "왜? 난 딱히..."
 "갈 거지?"
 유리의 프레셔!
 효과는 굉장했다!
 세하는 게임기를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같은 반이기까지 했으면서 왜 그렇게 무감정한거야?"
 "...귀찮잖아."
 반항적인 세하의 태도에 유리가 더 쏘아붙이려 하자 은이가 그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말했다.
 "세하 등에 있던 창문 봤어?"
 "창문?"
 "내가 유리에 반사된 세하의 게임기 화면을 봤는데 검은색이더라구."
 "끄, 끈거야! 그때 딱 끈거라고!"
 "에이, 버튼이 부서져라 열심히 눌러대고 있었으면서."
 부끄러운 듯 고개를 홱 돌리는 세하를 보며 병실 안에 있던 모두 웃어버렸다. 단, 한 남자를 제외하고.
 "그 녀석. 윤해창과는 반드시 1:1로 싸우도록. 기절시키지 말고 혼자서 싸워 이겨**다."
 "무슨 뜻이야?"
 "녀석과 싸울때... 투구를 쓰고 있어서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웃고 있었다. 놈은 자신을 정면으로 쓰러뜨려줄 사람을 찾고 있을 거다. 그게 나는 아니었던거지."
 제이의 의미심장한 말에 유리는 자신의 빈손을 꽉 쥐었다.
 "잠깐! 너희말이야. 관리관인 날 두고 명령을 어길 샘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유정은 은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군복을 입은 남자 둘이 큰 은색 케비넷을 두 개 펼쳐든다.
 "나도 동참하게 해줄거지?"
 케이스의 안에는 검은양팀의 개인무장들이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2024-10-24 22:21:0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