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외전 : 클로저스 인 뉴욕 -3-
이데아드라이브 2015-03-13 0
조사한다고 해도, 뉴욕 지부에서는 외부인이나 다름없는 내가 직접 알아볼 수 있는 곳은 매우 적다. 이 부분은 케이트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헨리 파커. 나이는 36세, 가족관계는 아내와 딸이 있지만, 5년전 사고로 사망한 모양이야.”
“사망 원인은?”
“헨리는 뉴욕에서 알아주는 펀드 매니저였는데, 작은 실수로 재산을 모두 날렸어. 그 탓에 이혼 소송으로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던 중에 화재 사고로 아내와 딸이 사망했지. 범인으로 헨리가 조사를 받았지만, 사망 보험이 없어서 혐의를 벗어난 모양이야.”
위험에 대비해서 가입하는게 보험인데 그 보험이 없어서 위험을 모면하다니, 아이러니하다.
“무죄 입증을 받았지만, 가족과 재산 모두를 잃은 헨리는 노숙자가 되었어. 그래서 그런지 행방이 묘연해. 5년 전부터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게 중요하네.”
“그걸 어떻게 알아내는데?”
“휴대폰이야.”
케이트는 헨리의 통화 이력과 요금 내역을 보여줬다.
“약 1년 전부터 헨리에게 휴대폰이 생겼어. 이건 그간의 통화량과 요금 내역이야.”
“1년이나 썼으면 훔친 것도 아니고, 전화도 여러 군데 많이 했어. 어디 영업이라도 했나?”
간단하게 통화 내역을 훑어보니, 하루에 수십 통을 한 날도 보였다. 연관성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요금 내역이랑 같이 조사하면 뭔가 나오겠지.”
그 때 케이트의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슬쩍 보고 내용을 확인한 케이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연구팀의 감식 결과가 나온 모양이야.”
“그럼 확인하러 가야지.”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케이트와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연구동이 있는 층의 버튼을 누르고 천천히 문이 닫히길 기다렸다. 아무도 타지 않은 엘리베이터는 우리 둘만 실은 채 움직였다.
“건우.”
“응?”
내 등 뒤에서 케이트가 말을 걸었다.
“내가 민감한 것 같지만, 너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그래 보여?”
“그래. 그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
내가 케이트를 돌아보니, 그녀는 답지 않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걱정 마. 이번엔 조사만 하는 거니까. 내가 나설 일은 별로 없을 거야.”
살랑살랑 손사래를 치며 웃어보였지만, 그녀는 좀처럼 걱정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다. 뭐라 더 말하려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나는 그냥 말없이 돌아 서서 복도를 걸었고, 케이트도 조용히 따라왔다.
“케이트.”
“응?”
연구실 문 앞에 서서 나는 케이트를 불렀다.
“네가 뭘 염려하는지 알고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내가 알아서 조절할 수 있으니까.”
“정말 믿어도 되는 거야?”
나는 뒤로 돌아 케이트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파트너를 믿어달라고.”
내 실없는 모습에 케이트는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았다. 그녀가 다시 얼굴을 보였을 때는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가자. 닥터가 기다리겠어.”
그녀는 날 옆으로 밀고 먼저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나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오랜만에 찾아온 연구실이었지만, 변한 건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저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과 말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흰색 가운의 연구원들, 그 가운데 우리가 찾는 사람이 있었다.
“아, 두 사람 왔군.”
우리를 발견한 닥터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가느다랗고 동그란 안경에 차분하게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과 곳곳에 보이는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는 주름은 대학교에서 정년을 앞둔 연륜있는 교수의 품격을 나타낸다. 내가 알기로 몇 안되는 품위있게 나이를 드신 분이다.
“오랜만입니다. 닥터. 잘 지냈나요?”
“난 언제나 똑같지. 그런데 이번에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들었다지?”
“그 조사를 위해 나왔습니다. 샘플 분석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왔는데...”
“여전히 일만 생각하는군. 케이트. 그렇게 딱딱하게 굴면 평생 연애 한번 못해보는 수가 있다고 누누이 얘기했는데 말이지.”
“닥터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케이트의 눈빛이 살벌해지자 닥터는 멋쩍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우리는 닥터의 안내를 받아 연구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닥터는 안쪽에 마련된 커다란 화면을 보며 우리에게 분석 결과를 설명해주었다.
“솔직히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기 때문에 뭐라 확실히 말할 수 없네. 그러니 내 견해를 듣는다고 생각해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먼저 우리 인간과 차원종이 사용하는 위상력이 다른건 알고 있지?”
닥터는 화면에 나오는 그래프를 가리켰다.
“우리가 차원종과 싸울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위상력이 차원종들의 위상력에 반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걸 이용해 그들을 물리치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가 당하기도 하는 거지.”
닥터는 다음 화면을 넘겨 그래프가 합쳐진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한 사람의 몸 안에 이 두 개의 위상력이 함께 존재하면 어떻게 될까?”
“네! 서로 다른 위상력이 반발하여 육체가 버티지 못하고 붕괴합니다.”
“정답이네. 건우.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공부한 모양이군.”
답을 맞춰 기분이 좋아 케이트를 향해 브이를 그려봤지만 그녀는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미동도 없이 무시해버린 것이다.
“닥터,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건...”
“그래. 케이트, 그 사람의 몸에는 2개의 위상력이 존재했다네. 지금은 잔재밖에 없지만 말이지.”
닥터가 보여준 다음 사진에는 특수 촬영기로 찍은 위상력의 잔상이었다. 확연히 다른 색깔의 그림자가 서로 섞이지 않고 자리다툼을 하듯,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닥터. 방금 거기에는 두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케이트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 두 개를 펼쳐보였다. 어, 나랑 같은 손모양이네.
“첫 번째, 헨리는 위상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위상력에 눈뜨지 못한 사람이 차원종의 위상력과 반발을 일으켜 폭발했다는 점은 이상합니다.”
“그 친구 이름이 헨리였군.”
“두 번째, 그런 인간의 몸에서 차원종의 위상력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이게 가능한가요?”
케이트의 질문을 받는 닥터의 눈은 학구열에 넘치는 우등생을 보는 눈이었다. 내가 닥터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정말 어디 교수님 아니셨나?
“차근차근 설명해주겠네.”
다음 화면에 나온 사진에는 혈액 샘플이라 쓰여 있었고 그 안에는 누가 봐도 이질적으로 보이는 세포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여기 보이는 것들이 차원종 위상력의 근원이라네.”
닥터는 여기저기 곰팡이처럼 피어 있는 차원종의 세포들을 가리켰다.
“혈액 안에 차원종 세포가 섞여있는 건가요?”
“정확하게 말하면 침식이지. 수거해온 모든 혈액 샘플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네. 아마도 지속적으로 약물 같은 종류를 복용한 것 같아.”
간단하게 헨리는 지속적으로 차원종의 약물을 먹고 위상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럼 위상능력자의 무언가를 계속 먹으면 다른 사람도 위상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나? 복잡하네.
“그리고 하나 정정하자면, 헨리는 이미 위상력을 가지고 있었네.”
“그건, 능력자였다는 건가요?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헨리는 분명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능력자가 된지 얼마 안됐다는 거네요.”
“그래. 그리고 능력자가 되버린 탓에 체내에 있는 차원종의 위상력과 반발이 일어났다는 거라네.”
나는 지금까지 닥터가 들려준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간단히 정리해봤다.
첫 번째, 헨리는 차원종의 위상력이 실린 약물을 계속 복용하고 차원종의 위상력을 개방했다.
두 번째, 그런 와중에 헨리가 가진 인간의 위상력을 갖게 되어 능력자가 되었다.
세 번째, 두 개의 위상력을 가진 헨리는 몸 안에서 붕괴 현상이 일어나 폭발한 것이다. 핏줄 사이사이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이 사실을 뒷받침했다.
닥터는 그 이외에도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지만, 위에 알려준 것들의 근거들이었다.
“그럼 더 질문 있나?”
어느새 강의처럼 되어버린 탓인지 약간 지루해지기 시작해 입을 가리고 하품하느라 침묵으로 긍정을 표시했고, 케이트도 이제 더는 질문이 없어 보였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또 다른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겠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닥터.”
이렇게 인사하니까 꼭 강의 끝난 느낌이 들었다. 결과를 다 듣고 닥터의 배웅을 받으며 연구실을 나온 우리는 다시 관리부로 돌아왔다. 하지만, 닥터에게 들은 이야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기에 서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갔다.
“퇴근시각이네.”
시계를 보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 이 상황에 퇴근이 문제야?”
“뭐?! 공무원에게 정시 퇴근이 얼마나중요한데!”
대한민국 공무원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의 제 1 원칙을 당당하게 외치는 나를 케이트는 한심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 다른 작업을 하기도 여의치 않아 그녀도 퇴근 준비를 했다.
정리를 마친 우리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탔다. 물론 난 조수석에 탔고 케이트는 운전석에 앉았다. 차는 금새 주차장을 빠져나와 뉴욕의 러시아워에 합류했다.
“건우.”
“응?”
신호를 기다리며 케이트는 내게 조심히 말을 건넸다. 그녀는 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시간을 두고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어떻게 할까...”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처음 나는 자체조사를 마친 뒤, 가능하다면 우리끼리 사건을 해결할 생각이었고 케이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미 우리 손으로 해결 가능한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상부에 보고서를 올리고 본부에서 대대적으로 조사해야만 하는 사건이다.
하지만, 지금 시기에 본부에서 조사를 하려고 할까?
가뜩이나 정상회담으로 바쁜 와중인데다, 이번 회담의 주요 내용은 클로저들의 권한 축소에 관련된 의논이다. 예산이 걸린 예민한 문제에 이런 커다란 사건이 주목을 받게 되면 높으신 분들의 사정으로 조사 범위를 축소하거나 심하면 이대로 묻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둘이 독자적으로 조사해도 되나? 그렇게 해도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조사를 마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가뜩이나 민감한 시기에 우리 같은 아웃사이더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 곧바로 태클을 걸어올 곳이 지금 당장에라도 몇 군데 떠오른다.
“난 조사하고 싶어.”
한참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사이 케이트가 먼저 단호하게 말했다.
“케이트?”
“이건 우리가 해야만 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건우?”
케이트 답다고 하면 답다고 해야 할지,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그녀는 이번 일에도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마치 3년 전 시간의 광장으로 뛰어들던 때의 날 떠올리게 만들었다.
“에이, 그래. 될 대로 되라지!”
양팔을 머리 뒤로 둘러 팔배개를 만들고 자동차 시트에 몸을 묻으며 나도 결심을 굳혔다. 보이진 않았지만 케이트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때마침, 신호가 바뀌었고 자동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이번에 떨려나면 어디로 발령 나려나?”
“그러게, 요하네스버그는 어때?”
“거긴 어디야?”
“있어. 남아공에 있는 도시인데...”
“잠깐, 어디라고?!”
우리들의 잡담은 대로에 줄줄이 서있는 자동차 소리에 묻혀버렸고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오늘 하루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