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의 통돌이는 엄청난 것을 가져왔습니다(完)
사일로시빈 2015-03-11 11
1편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822
2편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827
여기 모두의 눈 앞에는 마개조된 세탁기, 물질변환기 통돌이 MKⅢ가 있다.
정체불명의 녹색 액체에선 탄산처럼 기포가 오르고, 고정된 안테나는 해의 위치에 따라 시계마냥 돌아간다.
각종 계기판이나 방사능 발생장치에 쓸법한 두꺼운 3M가량의 케이블까지 보고나면 결코 이게 정상적인 물건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통돌이 노비스에서 어드밴스, 마침내는 익스퍼트 등급이 될 정도로 물질변환에 빠져살았던 세하는 당당히 통돌이 앞에 섰다.
이 자리의 모두가 그가 게임기를 하나 장만하고 연쇄할인마에게 낚여 컬렉션을 능히 늘릴 크레딧으로 통을 돌렸음을 안다.
전설적인 클로저 알파 퀸에게 (핵)등짝(스매싱)을 맞을지언정 빛나를 위해 도박에 가담한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한량이자 쾌남이었다.
그런 그가 엄숙히 입을 열었다.
"순서를 정하자. 자, 여기 제비뽑기가 있어."
더스트는 여전히 토끼 머리띠를 쓴 채 사슴마냥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민들레 홀씨처럼 붙은 솜털들이 하늘하늘 나부꼈다.
더스트는 조커와 같은 존재였다.
언제 어떤 시덥잖은 이유로 미쳐 날뛸지 알 수 없었고, 세하는 그런 그녀를 제어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더스트, 먼저 뽑아."
길게 가닥이 잡혀있던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이 꼬리처럼 흔들렸다.
입을 세모꼴로 오므리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평소처럼 히죽 웃는다.
"역시 아내를 먼저 챙기는 남편답구나. 답례로 키스라도 해줄까?"
"키스하기에 지금은 때가 아니지 않.... 슬비야. 그 칼은 내 옆구리를 쑤시라고 있는게 아니야."
"어머. 위상력이 깃들지 않은 평범한 칼이니까 간지럽지 않니?"
슬비는 평소에 보기 드문 상냥한 미소를 짓고있자만, 그 봄꽃 같이 싱그러운 미소 뒤에 짙은 독기를 느낀다.
얼른 손목을 잡아 힘을 주니 핏줄을 세우며 밀고들어왔다. 죽지는 않지만 평범하게 아프니까 그만뒀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 옆구리를 쑤시기 위해 들고다닌다는 시점에서 아웃이라고. 유리 너도."
"난 발등인데?"
"부위의 문제가 아니라고!"
카타나로 발등을 쑤시는 유리의 손과도 씨름하는 사이에 더스트가 제비를 뽑았다.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는듯 싶다가, 이내 다시 평소처럼 끈적하고 가벼운 표정으로 돌아온다.
"뭐,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지?"
마지막이군. 다음에 슬비가 제비를 뽑았다. 우월한 승자의 미소가 떠오른다.
"1등이네. 역시 정실에게는 1이 어울리는 거 아닐까 더스트?"
"지금 이 기집애가 나한테 구체적으로 시비거는 거 맞지?"
슬비와 더스트가 모두의 시선이 닿지않는 발끝으로 치열하게 상대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접전을 벌이는 사이에 유리가 제비를 뽑았다.
"2등이네. 최고로 HIGH브리드한 숫자야!"
"음.... 그래. 긍정적이구나, 유리는."
세하는 시계를 확인했다. 정확히 2시 22분 22초였다.
마지막으로 빛나가 제비를 뽑았다.
"에잇!"
"아니, 안 뽑아도 3등이잖아요."
"기분이에요! 뽑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역시 통돌이에게서 이상한 전파 나오는 거 아니에요? 이거 사람을 도박중독으로 만드는 세뇌머신입니까?"
세하가 따지거나 말거나 여성진들은 이미 열기가 달아오른 상태였다.
모두가 제철소의 용광로만큼 이 승부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어서 인공 실내 구름이라도 연성할 기세였다.
그나마 이 승부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승부의 주최자이자 상품인 이세하로, 이번엔 제발 유용한게 나왔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겸사겸사 승부를 빙자해 공짜로 통돌이를 4번이나 돌리는 시점에서 세하는 더스트를 뛰어넘는 책략가로 성장한 것이다.
신서울의 암운을 걷어내는 푸른 섬광으로써, 알파 퀸의 아들로써 세하는 우수한 통찰력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된다는 격언을 되새기며 현실을 기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슬비가 자신의 팬티를 조심스레 세탁기에 밀어넣었다. 평범하게 세탁물을 처리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이었지만,
"올 인!"
을 외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삐딱한 세하의 딴죽 세포는 이런 문구를 용납할 수가 없었기에, 또 혀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야, 올 인이라고 하면 네가 가진 팬티가 그거 한 장뿐인 것처럼 들리잖냐."
"사실이야."
"제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줘...."
슬비가 자신을 껴안는 소극적인 태도로 따스하게 물든 눈길을 힐끗 흘리며 뾰루퉁하게 말했다.
"이러면 조금 흥분되니?"
"넌 날 굉장한 **로 알고있는 모양인데, 처음부터 전제가 잘못되었으니까 제발 다시 생각해봐라."
"굳이 나한테까지 숨기려고 하지 않아도 돼."
"너에게 난 뭐냐. 라디오냐? 설거지하면서 틀어놓는 존재야?"
"넌 이 상황에서까지 나한테 시비니? 이세하. 좀 로맨틱하게 굴 수는 없어?"
"아까부터 네가 로맨스는 죄다 빈사상태의 스케빈저한테 날리는 크래쉬 비트마냥 날려버리고 있었잖냐."
"하다못해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같은 말이라도 해줄 수 있잖아."
"너무 구리지 않냐?! 1942년도 영화에 꽂힌거냐 너는!?"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에 통돌이는 리드미컬하게 꿈틀거리는 통아저씨마냥 돌아가기 시작했다.
손톱을 깨물고있던 더스트가 세하를 뒤에서 껴안았다.
연인이 서로에게 하는 무척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행동이어야 했지만, 세하는 늑골에 강한 충격을 느꼈다.
"왜 넌 남편이라고 부르는 상대에게 백드롭 예비동작을 걸고 있는 거야?"
"차원종이라도 바람은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설마 그게 복선이었냐!라고 말하기도 전에 세하는 땅에 처박혔다.
마침내 통돌이가 약을 먹기 싫어하는 어린 고양이마냥 사출구로 변환물질을 퉤-엣하고 뱉어낸다.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건을 확인했고, 직후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온 물건이 유용한지 어떤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은 고양이 귀와 꼬리 한 세트다.
이 기이한 코스튬은 수상하게도 스스로 귀가 접히던가 꼬리가 스스로 살랑거리는 동작을 보였다.
더스트가 코웃음쳤다.
"나온게 고작 그거야? 혹시 새까만게 타서 나온 건 아니니?"
"역시 가슴만큼 뇌도 콩알만 하구나 더스트. 이건 네 생각보다 훨씬 유용해."
"너한테 가슴 얘기는 듣고싶지 않았어."
슬비는 멍청이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격언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과감히 무시한 채로 볼을 부풀리는 더스트 보란듯이 그 자리에서 코스튬을 착용했다.
이슬비는 성실하고 매사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아이였다.
그녀는 흔히 여성들이 패시브로 여성성을 드러내는 내숭이나 애교, 화장 등의 자기관리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평소의 별다른 악세사리도 하지않고 가방에 인형조차 달지 않으며 열쇠에도 열쇠고리조차 달지 않는다.
귀여우면 귀엽다고 속으로 중얼거릴 뿐 남들 앞에선 내색하지 않는 아이다.
그런 슬비가 스스로 고양이 귀라는 부끄러운 물건까지 써가며 용기를 냈다.
"어, 어때? 냐.... 아, 아니... 냐까지 붙일 생각은 없었어냐... 어냐?"
머리에 붙은 아**트 조각을 털어내고 있던 세하는 마침내 슬비를 보았다.
슬비는 정식요원복을 처음 입을 때도 "치마가 너무 짧지 않나요? 이런 복장은 임무에 적합치 않습니다."라고 얘기했던 아이다.
그런 탓에 바구니에서 꼼질대며 눈을 깜빡이는 고양이처럼 꾸벅거리는 고양이 귀와 슬비의 당황한 표정은 꽤 파괴력이 높았다.
"평범하게 귀여운데."
슬비가 귀를 벗어 얼른 뒤로 숨겼다.
"이, 이건 말투까지 강제로 변하게 하는 위험한 물건이야. 당장이라도 파기하고 싶지만 네가 정 그렇다면.... 챙겨는둘께."
슬비가 우물쭈물거리며 발끝으로 땅을 긁는동안 세하는 쑥쓰러운 표정으로 뺨을 글었다.
유리는 상쾌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러 대기를 긁었다.
"야, 서유리?!"
"미안 세하야-. 손이 미끄러졌지 뭐야? 이러면 높은 확률로 용서해준다는데, 어때?"
"너 설마 아직도 이상한 통계 믿고 그러냐? 혈액형별 성격설 같은 것도 믿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잡지에 나왔으니까 진짜잖아."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 잡지는 버리는게 어떨까."
"아깝잖아! 그럼 세하가 새로 사줄래?"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거냐...."
유리의 균형잡힌 금전감각에 세하는 묘한 공포를 느꼈다.
아마 미래의 유리가 부인이 된다면 내 통장은 내 것. 네 통장도 내 것!이라는 기적의 경제학 퉁퉁이즘을 펴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한 순간 세하는 그럼 낮에 지고 밤에 이기면 그만 아냐?라는 생각을 품었다가, 다시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매지컬 슛!"
"아니, 그런 주문 외워도 로봇이 나오진 않으니까."
"그래도 로봇이 나오면 끝내주는 거 아냐?"
"터미네이터 같은 거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좋은 거 아냐?"
"너 2편만 봤지?"
"응! 그럼 다음에 같이 보자!"
"그래."
직후 세하는 뭘 자연스럽게 부인 앞에서 데이트 약속을 잡고있냐며 다시 더스트에 의해 땅에 처박혀야 했다.
슬비는 TV에서만 보던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처음 봤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아, 나왔다!"
"에? 종이인데?"
유리가 종이를 꺼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빛나 역시 곁에서 확인했지만 역시 모르는 눈치였다.
일종의 쪽지처럼 보였는데 알 수 없는 문자가 쓰여있어서, 슬비는 자연스럽게 더스트한테 토스했다.
"더스트, 읽어봐."
"에엣?! 이슬비 너 너무 건방지지 않아?"
"설마 넌 군단장이라는 애가 글자도 못 읽는 까막눈이었니?"
"건방지구나 이슬비. 난 애국가 받아쓰기로 상도 받은 몸이야."
"난 과학의 날 글짓기로 상을 받았어. 아무리 봐도 내가 더 높지않을까?"
태클을 걸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세하는 닥치고 있는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더스트가 쪽지를 집어들고는 조그마한 입을 오물거리며 글씨를 읽었다.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적혀있는데?"
".............."
".............."
".............."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유리가 더스트의 멱살을 잡았다.
"넌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거짓말치다 걸리면 손모가지가 날아간다는 룰이 있어."
"지, 진짜야 이 바보야!"
"증거 있어?!"
"증거 내가 지금 읽었잖아?!"
"내가 글도 못 읽는다고 놀리는 거지!"
"너, 너 설마 글씨 못 읽어? 군단으로 스카웃 하려던 거 취소야."
"아니. 유리도 평범하게 나랑 같은 고등학교 다니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나도 바보가 되잖냐."라며 세하가 웅얼거렸다.
물론 땅에 처박힌채 더스트가 의자로 쓰고있던 참이기에 소리가 바깥까지 전달되지는 않았다.
유리는 곧 마침내 현실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쪽지를 찢어버리고는 조각을 밟으며 소리를 질렀다.
"뭘 유용하게 쓰겠다는 거야아아아아아!"
여성진 모두가 처량한 시선을 던졌다.
"뭐가 감사한 거냐고오오오오오!!!"
모두 유리가 안쓰럽기는 했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이다.
유리가 변환한 물건이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쓸모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주저앉아 훌쩍훌쩍 울고있는 유리를 뒤로 한 채 빛나가 조심스레 앞으로 나섰다.
"통돌아! 주인은 나야! 이번엔 실패하지 마?"
물론 통돌이는 말이 없다. 단순한 흔들림과 섬광 후 빛나는 문을 열었다.
정체불명의 약병이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두통약처럼 생긴 캡슐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차원종의 물건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빛나는 약병에 써진 글씨를 읽었다.
"아포톡신 4869...? 이게 뭘까요? 톡신이라는 접미사를 보면 독극물인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름을 들은 슬비가 홀로 눈을 빛냈다.
"세하한테 먹이죠."
"왜 나냐?! 날 죽일 셈이야?!"
"걱정마 이세하. 만화에 의하면 넌 단순히 어려지는 정도로 끝날 거야."
"단순하지 않다고! 게다가 출처가 만화냐!"
"분명 미스틸만큼 귀여워질 거야."
"됐다고!"
"설마 넌 로리콘이니까 내가 먹어서 유아화되길 원하니?"
"아냐!"
더스트가 "넌 거기서 더 유아화되면 뭐가 남니?"라고 놀리자 슬비는 지체없이 규율의 칼날을 날렸다.
고개를 돌려 유리를 보니 약을 하나 들고 입을 벌리고 있다. 빛나가 팔을 잡아당길동안 세하가 설득을 시도했다.
"유리야 안돼. 기다려. 공짜라고 막 먹는 거 아냐."
"..........왜?"
"독이라니까. 혀 내밀지 마."
"조금만 핥아볼께."
"핥지마. 착하지? 내려봐. 그렇게 불쌍한 표정으로 쳐다봐도 안돼. 그거 내려놓으면 돈까스 사줄께."
"한우로."
"너 이런 상황에서까지 나랑 협상하는 거냐?"
물론 진짜 먹을 생각은 없었기에, 이후 유리는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하며 약병을 버렸다.
하지만 어쩐지 제이가 약이라면 기뻐할 것이라 생각해서 하나를 감춰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빛나는 어쩐지 쓸모없는게 나온 거 같아 무척 시무룩해했다.
세하는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슬비와 유리가 칼을 들고 곁에 있는 동안에는 얌전히 있는게 빛나를 도와주는 일일 터다.
마침내 더스트가 앞으로 나섰다.
"드디어 주인공의 차례네! 너희들이 너무 형편없어서 뭐가 나와도 이기겠는걸? 물론 아무리 시원찮은게 나와도 이세하는 날 고를 거야."
"안 고르면 네가 다 죽일 거 같아서 좀 무서운데."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이세하! 넌 죽이기 아까우니까 살려둘 거야."
"이거 차라리 죽는게 편한 부분 아니냐?"
더스트는 물질변환이 처음이었기에 무척 서툴러해서 빛나가 곁에서 도와줘야했다.
더스트는 그다지 기계와 친하지 않았다.
저번에는 세하에게 컴퓨터가 고장났다고 전화를 하고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세하에게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사건이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안녕, 이세하! 너의 사랑스러운 여친님이야!"
".......전화 잘못 거셨네요. 끊겠습니다."
"끄, 끊지마! 끊으면 화낼 거야!"
"안 사요."
"계속 이럴 거야?"
"전화하지 말랬잖아."
"그렇게 나랑 직접 만나고싶어?"
"끊는다."
"이잇! 끊으면 침략할 거야?"
"........하아.. 그래. 왜?"
"컴퓨터가 고장났나봐."
"너네 컴퓨터도 쓰냐. 그럼 차원종 서비스 센터에나 가라고."
"너희 인간들 거를 훔친 거야!"
"훔치지 마라."
"아무튼 너한테 메일을 보내려던 와중에 갑자기 전원이 나갔어."
"그럼 일단 전원을 켜."
"거기에 기껏 내가 예쁘게 찍은 사진 잔뜩 있었단말야. 전부 날아갔어!"
"아냐. 안 날아갔으니까 침착하게 컴퓨터를 켜."
"그런데 왜 이렇게 이거저거 설치하라고 하는 거야? 이거 다 해야 해?"
"아냐. 너 또 액티브 X 막 깔았지?"
"백신은 좋은 거지?"
"아냐.... 몇 개나 있어?"
"세기 귀찮아."
"그 정도냐!? 일단 전원을 키라고."
"전원 켜져있어."
"그런데 화면이 안 보여?"
"응."
"마우스 흔들어봤어?"
"지금 들고있어! 설마 너 나한테 짜증내는거니?"
"아냐. 모니터 선은 확인해봤냐?"
"모니터가 뭐야?"
"하아.... 너 모니터도 모르면서 컴퓨터 하냐?"
"뭐, 뭐야! 너 지금 나한테 짜증낸 거 맞지? 이세하 주제에 건방져!"
"..............."
김유정은 여자들이 그럴 때는 집에 와서 봐달라는 거라고 조언해주었다.
물론 세하는 그 여자애가 차원종 군단장인데 제가 놀러가도 될까요?라고 물어볼 수 없었다.
더스트에게 시달린 기억을 되새기던 사이 통돌이는 작동을 끝낸듯 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더스트가 토닥토닥 걸어가 오븐에서 갓 구워진 빵을 꺼내는 요리사마냥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자, 이게 바로 이 더스트님의..... 팬티?"
더스트가 빛나를 노려보자 빛나가 창백해진 얼굴로 변명했다.
"아, 실패한게 아니에요! 잘 보세요! 디자인이 다르잖아요! 물질변환은 절대로 변환이 되지않은 경우는 없다구요!"
"어라? 그러네. 검은색이지만 달라."
더스트가 눈을 깜빡이자 유리가 고개를 기울여 의문을 표했다.
"그거 남성용 아냐?"
슬비가 코웃음 쳤다.
"팬티를 넣어서 팬티가 나오다니 너도 참 수준을 알만하구냐."
"...이슬비. 너 왜 고양이귀 장착하고 있어?"
"넌 처음 봤을 때부터 토끼 머리띠를 쓰고있었어냐."
"에? 에엣?! 이거 뭐야!?"
빛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거 제 물건인데 돌려주세요...."
"그게 왜 내 머리에 있는건데?!"
하지만 경악해서 머리띠를 벗는 더스트와 달리 유리는 팬티를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이후 오, 하고 입을 오므리며 손짓했다.
"더스트! 이거 이름 써있는 거 같은데?"
"뭐어? 친하게 부르지 말아줄래? 그리고 서유리 넌 남자 팬티면 이세하 물건이 아니라도 좋니?"
"읽기나 해, 더스트."
"이슬비 넌 아까부터 너무 명령조 아냐? 네 입장을 모르겠니?"
"어머, 너와 나는 상하관계가 아닐까?"
"아하하하! 오늘 널 죽여야 내 맘이 편할 거 같아 이 년아."
"그런 것보다, 읽어줘 더스트!"
"서유리... 지금 끼어들 때가 아니잖... 응? 애쉬?"
애쉬는 그다지 사람 이름으로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빛나를 제외하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 이름을 지닌 남성을 알고있었다.
정적이 흐른 후 고위험 차원종 경보와 함께 애쉬가 차원문을 열고 나타났다. 자연스러운 순서인지라 모두 놀라지 않았다.
세하는 이런게 바로 데자뷰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애, 애쉬?"
더스트가 식은 땀을 흘리며 위를 올려다보나, 곱상하게 생긴 새하얀 미소년은 싱긋 미소지었다.
"이번 장난은 너무 심했어 더스트. 내가 승급전을 할 때는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그랬지?"
"아, 아니.... 난 그게.... 그, 내가 그런 거 아냐! 얘가 그랬어!"
더스트는 애쉬의 팬티를 손에 쥔 채 빛나에게 삿대질을 시전했다.
빛나는 창백해져서 사시나무처럼 바들거렸지만, 애쉬는 코웃음을 쳤을 뿐이다.
"지금 위상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벌레같은 인간이 내 팬티를 훔쳐갔다는 거야?"
더스트가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마개조된 세탁기, 물질변환기 통돌이 MKⅢ를 가리켰다.
"이, 이걸 써서 그런 거야 얘네가! 내가 장난친 거 아니라고!"
애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통돌이를 보았다.
정체불명의 녹색 액체에선 탄산처럼 기포가 오르고, 고정된 안테나는 해의 위치에 따라 시계마냥 돌아간다.
각종 계기판이나 방사능 발생장치에 쓸법한 두꺼운 3M가량의 케이블까지 보고나면 결코 이게 정상적인 물건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 물건은 세탁기였다.
"위상력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여자가 세탁기를 써서 나한테 누나 팬티를 입혔다고?"
"마, 맞아....."
"말이 된다고 생각해?"
"흐우....."
더스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같은 표정이었지만 유리와 슬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돼. 안 변호해줘. 변호해줄 생각 없어. 돌아가.
모두가 눈짓만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더스트의 잿빛 눈동자에 물기가 그렁그렁 차올랐다.
"아주 군단장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어 더스트. 여기서 인간들이랑 노닥거리기나 하고말야."
"뭐, 뭐야! 너야말로 한석봉이라는 애랑 노닥거리고 있었잖아!"
발끈해서 따지는 더스트였지만 애쉬는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올렸을뿐이다.
"저번에 내 컴퓨터를 고장낸게 누구였지?"
".........읏..."
애쉬 컴퓨터였냐!하고 세하는 뒤늦게 딴죽을 걸었지만 더스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난 누나가 이세하를 얼마나 좋아하든 딱히 방해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보답이 나한테 누나 팬티를 입히는 거야?"
"아니,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이, 이세하! 뭐라고 말 좀 해! 어서 날 도우라고!"
"이젠 하찮은 인간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추해 더스트. 당분간은 말도 섞고싶지 않아. 앞으로 저녁은 혼자 먹도록 해."
"애, 애쉬?! 기다려! 내가 다 설명할테니까아!"
애쉬는 뒤도 돌아** 않고 문을 열고 사라졌다.
더스트도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바로 뒤쫓아갔기에, 신서울의 치솟았던 위상변곡율은 급격히 안정화되었다.
침략을 진두지휘하던 두 참모장 중 하나인 애쉬의 가출 때문인지 이후 차원종의 출현율은 눈에 띄게 급감했다.
빛나의 물질변환은 이 사건으로 인해 굉장한 관심을 받았고, 그 공을 인정받아 정부의 지원으로 이빛나 재단을 설립하는데 성공했다.
빛나는 이 모든게 전부 세하 덕분이라며 사복을 입고 들뜬 표정으로 찾아와 금방 햇빛에 마른듯한 뽀송뽀송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세하는 더스트에게 입은 타격이 만만찮았기에 병원에서 늑골과 경추 골절에 대한 치료를 받았다.
슬비는 세하가 깨어날 때까지 옆에서 엎드린채 새근새근 잠을 자다가, 세하가 깨어나자 사과를 깎으러 온 것뿐이라며 툴툴거렸다.
세하는 입원 중에는 게임을 해도 슬비가 뭐라 하지않는다는 사실에, 입원은 꽤 괜찮은 보상이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다.
유리는 세하에게 새 게임기를 구해다주며 슬비가 깎아놓은 사과를 착실히 집어먹었다.
이후에 차례대로 검은양팀이 병문안을 오고, 제이가 왔을 때 유리는 주머니에 저번에 챙겨놓았던 약을 떠올렸다.
"아, 아저씨! 저번에 먹던 약 다 떨어지셨다고 그랬죠?"
"아저씨 아니라니까... 응? 그건 무슨 약이냐?"
유리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빛나의 말에 의하면 접미사가 톡신인 약은 독에 관련된 약이었다.
아마 이건 해독제일 것이다.
"간에 좋은 약이요! 저도 받은 거에요! 아저씨 생각해서 몰래 챙겨뒀어요. 헤헤."
"후, 마침 잘됐군. 고마워. 그런게 있으면 좀 더 구해달라고."
제이는 APTX4869를 받아들고 정수기를 찾아 유유히 복도로 걸어나갔다.
유리는 게임할 때는 안기지 말라는 세하의 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에 얼굴을 비비면서, 일이 다 잘 풀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fin
**
웃자고 썼지만 팬소게와는 안 어울리는 글이었네요... 헤헤... 죄송합니다...
게다가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저 약은 명탐정 코난에 나온 약입니다. 먹으면 어려지는 부작용이...
그 외에도 심하게 많은 패러디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