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름 휴가인 척
구금 2019-07-10 1
*본 글은 검은양 팀과 김유정만 나옵니다.
*봄쯤 결성 후 이제 막 여름이 되어 가는 시점입니다.
*키워드로 #수영복과 #빙수를 사용하였으며 여기서 나오는
수영복은 작년, 2018년 수영복입니다.
“여름! 여름 하면 바다! 바다 하면 여름! 아니겠어?!”
유정이 꺼내든 공문에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건 유리였다. 굳이 바다라는 말을 꼬집어서 말한 건 어째서일까. 세하는 슬비의
부탁 아닌 명령으로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게임기를 끈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대신 눈썹을 찌푸리며 슬쩍 맞은편의 유리를 흘겨봤다. 바다 좋지 않아? 바다? 세하와
눈이 마주친 유리는 서둘러 세하를 회유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시큰둥한 반응에 곧바로 표적을 바꿨다.
“그치? 테인아?”
“여름에는 바다 말고 산도 얘기하지 않아요?”
다리를 덜덜 떨며 유정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제이와 묵묵히 유정을
바라보는 슬비를 제치고 제 의견에 제일 쉽게 동의해줄 상대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미스틸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제 옆에 앉은 유리의 바람에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가볍게 입술을 내뺀 유리는 이내 책상에 턱을 괴며 유정의 말을 기다렸다.
“유리 말대로 바다를 배경으로 할까요?”
“여름맞이 신규 클로저 모집 홍보 차로 시행하는 거지, 휴가는 아니지 않나?”
“뭐…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휴가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으니까요.”
어느 정도 정돈된 분위기에 유정이 가볍게 연 말은 아무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는 유리의 심심한 위로가 되었지만 공문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제이에게 이조차 의미 없이 느껴졌다.
여름을 배경으로 휴가를 갖는 클로저. 유리처럼 단순히 생각하면 어디로 휴가를 갈지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게 당연했지만 뒷말을 듣게 되면 당연히 그게 휴가야? 하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거다.
“유정이 누나 말은, 그러니까, 저희가, 휴가를 보내는 척, 하는
걸 홍보로 찍는다는 거죠?”
“그래, 세하야.”
팀 내에서 가장 퉁명스러운 인물을 꼽자면 역시 세하와 제이가 아닐까. 근로자의 날에도, 어린이의 날에도!
투덜거리던 둘이었다. 근로자의 날이면 근로자의 날에 일을 하는 게 그 대단한 유니온의 생각이냐며
트집을 잡았고 어린이날에는 제이는 살짝 누그러졌지만 세하는 당당히 만 18세가 되지 못한 내가, 이렇게 출근하는 게 과연 올바른 건가요?! 하며 건의하며 유정을
놀리다가 슬비가 그만하라고 주의를 줄 때 괜히 옆에 유리와 놀고 있던 미스틸을 불러 이렇게 어린 초등학생을 그렇게 부려도 되는 거예요? 하는 거다. 물론 미스틸은 늘 그 커다란 눈을 귀엽게 뜨고 있으니
미스틸을 보는 슬비도 차마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그저 유정에게 본인은 전적으로 따를 준비가 되어 있으니 괜찮다고 위로해주면 그날 일을 시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말을 뚝뚝 끊으며 유정을 괴롭히기로 했는지 무뚝뚝하게 내던지는 세하의 말에 유정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친절히 답해줬다.
“에이, 뭘 그렇게 무섭게
말해. 그냥 휴가라고 생각하면 좋잖아, 안 그래? 응? 세하야, 생각해봐! 그날 우리는 그저 느긋하게 선베드에 누워서 한껏 여유로운 척을 하면 되는 거야!”
유리는 이번에 내려온 명령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초반 유정이 공문을
읽어줄 때부터 반짝이는 눈으로 몸을 들썩거리던 마음을 숨기지 않고 풀어냈다. 세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한번 눈썹을 찌푸렸다.
“응? 세하야?”
“그래… 그럼 왜 하필 바다인 거야…? 다른 곳 많잖아. 바다는 사람도 많고 그만큼 시끄럽고 무엇보다”
“게임기가 물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거지? 하지만 전 유리 의견처럼 바다가 좋을 것 같아요. 미스틸
말처럼 산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홍보 목적에서는 산의 이미지보단 바다의 이미지가 좋을 것 같아요.”
중간에 세하의 말을 가로챈
슬비는 세하가 무어라 항의하기 전 빠르게 제 의견을 정리해 내놨다. 산의 이미지라면 역시 건강? 밝은 아침? 하며 말을 꺼내는 제이에게 옅게 입꼬리를 올린 슬비는
곧장 제가 생각하는 바다의 이미지를 나열했다.
“우선 상쾌함과 청명함
그리고 무엇보다 촬영하기 편하기 때문이에요. 바다에서는 물놀이 하는 장면이나 뭐, 바비큐 파티? 정도 하면 될 것 같은데 산은 등산하는 모습 외에는
명확히 잡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확…실히 그럴 것 같구나.”
“와아, 저 한국 와서 바다는 처음 가 봐요!”
“바비큐 파티 고기는
한우 안 되나요?!”
슬비의 말에 그럴 것 같다며 천천히 고개를 흔드는 유정으로 인해 이미
분위기는 바다로 좁혀졌고 제 의견이 간단히 묵살당하자 세하는 다시 한번 눈썹을 찌푸려봤지만 아쉽게도 변하는 건 없었다. 확실히 바다는 물이 있어 제 게임기가 고장 날지도 모른다고 한 생각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도 많고 그만큼 시끄럽고 무엇보다 휴가는 당연히 조용한 곳에서 보내는 거 아닌가? 게다가 보내는 척, 척하는 건데 굳이 바다까지? 간단히 집에서 쉬는 모습을 찍고 빠르게 끝내도 되지 않는가.
“세하 동생, 난 세하
동생이 말하려던 의견도 존중해.”
“그럼 뭐해요. 이미 끝났는데.”
세하의 옆에 앉아있던 제이가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세하를 조심스레
위로했지만 이미 책상 건너편 세 인물, 슬비, 유리, 미스틸은 바다 얘기로 한참 열을 올렸고 유정은 자기가 빠트린 내용이 없나 다시 한번 꼼꼼히 제 손에 들린 공문을
읽고 있었다. 분위기를 읽는데 탁월한 세하는 지금 본인이 구태여 입을 열면 나올 반응을 간단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 그냥 내가 가만히 넘어가지, 뭐. 애용하던 해결 방법이었고 습관처럼 게임기를 붙잡은 세하는 슬쩍
슬비를 쳐다보고 그대로 게임기 전원을 켰다. 그런 세하를 바라보던 제이는 되레 제가 세하의 마음을 무시한
것처럼 머쓱해 하더니 기운이라도 차리라는 심정으로 제가 챙겨 먹던 비타민 음료를 건네줬다. 물론 이미
게임기를 켠 세하의 시야에서는 책상에서 뭔가 쓱 하고 움직이더니 제 앞에 놓였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럼 바다로 하기로 하고. 촬영
콘셉트는 휴가인데 어떻게 할까?”
“바다! 물놀이! 선베드! 바비큐 파티!! 폭죽놀이요!”
바다로 결정된 사실에 신나던 유리는 제가 머릿속에 상상한 걸 빠르게
내뱉으며 서둘러 슬비나 미스틸이 이를 거들어주길 기대했다. 아까까지 신나게 얘기했던 거 있잖아?! 같은 눈빛을 반짝이며 올곧게 유정을 바라봤고 유정은 사람 좋게 입꼬리를 당겼다.
“그래, 그럼 수영복이랑
폭죽이랑 바비큐 파티 때 쓸 고기나 채소 사러 가면 되겠다.”
“지원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 데이비드 국장님이
가능하다고 하셨어. 공문에도 모든 비용은 유니온에서 지급하겠다고 했고.”
미스틸의 물음에 다정히 답해주는 유정은 은근히 토라져 있는 세하를
다독여주기 위해 최대한 세하가 관심이 갈 만한 단어를 사용해 입을 열었다.
“그 외에 물건들도 다 회사 카드를 사용해도 좋대. 뭐, 선베드에 누워서 게임을 하고 싶다면 그 게임을 사도 좋을 것
같은데?”
대놓고 본인을 풀어주려고 하는 점이 거슬리긴 했지만 세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슬비가 무어라 하기 전 서둘러 세이브 포인트로 이동해 전원을 껐다. 어찌하든 본인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반대되는 의견임을 알아듣고 미안하다는 표현이었으니 말이다. 비록 제 마음이 다 풀리고
모든 걸 수용 가능한 상태로 변한 게 아니라 들어줄 마음 정도는 생긴 거니 세하는 게임기를 책상에 놓고 그래서요?
하는 표정으로 유정을 바라봤지만 이미 유정은 그런 세하의 속내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한시름 덜었는지 웃어 보이며 서둘러 다른 의견을
받았다.
“혹시 뭐 더 필요한 거 있을까?”
“음… 여름 하면 빙수죠! 빙수
하면 여름이구요! 빙수도 먹어요!”
곰곰이 생각하던 유리는 여름 하면!
하는 공식을 질리지 않고 말했다. 이제 와선 정말 휴가가 되어버린 임무에 굳이 누군가 토를
달지 않았다. 돈 쓰는 휴가인 척하는 임무를 즐기며 후에 나올 수당을 기다리면 되는 거였다.
* * *
“이게… 한국 바다에서 휴가를 보내는 방식인가요?”
유정이 안내한 곳은 한적하다 못해 사람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부산
외곽의 펜션이었다. 1박 2일로 잡은 이번 촬영은 잠을 자기
위해서도, 바비큐 파티 장면을 찍기 위해 숙소가 필요했다. 하나는
노을 진 바다를 배경을 해서, 하나는 펜션의 따뜻한 불빛이 비치는 걸 배경으로 해서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보더라도 그 펜션이 쉬기 편하고 포근해 보여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지금 검은양 팀 앞에
놓인 펜션은 딱 봐도 급하게 처분한 티가 나는 허름한 곳이었다. 미스틸의 말을 들은 제이는 서둘러 여기가
다소 별난 곳이 말했지만 미스틸은 그다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유리의 호들갑에 휘말려 얼떨결에
챙겨 입은 수영복의 외투를 여미며 트렁크에 넣어놓은 짐을 꺼내 들었다. 그래도 응달은 아닌지라 유리가
미스틸에게 꽂아준 핀 세 개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유니온에서 정한 곳이라서 장소는 어쩔 수가 없었어….”
“하, 하긴! 거의 순식간에 정해진 일인걸요! 그, 그래도 외부는 이래도 내부는 근사할 거예요, 그렇죠?!”
“유리 말처럼 이길 바라요….”
미스틸을 따라 짐을 챙긴
슬비는 역시나 유리에 휘말려 이미 수영복을 입은 상태였다. 상의에는 귀여운 토끼 핀이 꽂혀 있었고 하의에는
하얀색으로 동물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사실 차 안에서는 쑥스럽다며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회유의 달인이라
말할 수 있는 유리가 옆에서 귀엽다는 둥, 이래저래 입을 놀리자 슬비도 이내 혹하는 심정으로 내리자마자
티셔츠를 벗었다. 왼쪽으로 머리카락을 모아 묶은 유리의 옆에 서기 위해 슬비는 오른편에 서서 짐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일단 외부 구경은 구경이었고 보고는 보고였다. 보고를
위해 유정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숙소를 등지고 일렬로 설 걸 얘기했고 트렁크에서 단체 짐을 빼던 제이와 세하가 천천히 펜션에 다가갔다.
“아, 맞다! 우리 보고용 사진 말고 단체로 놀러 온 기념으로 다 같이
사진도 찍자! 나 셀카봉 챙겨왔어! 유정 언니 도망가면 안
돼요!”
우리 슬비, 우리 테인이, 하면서 슬비와 미스틸을 양쪽에 끼고 기다리던 유리는
문득 유정 옆에 놓인 짐을 바라보며 생각났다는 듯이 얘기했다. 수영복 차림인 너희랑? 하며 은근히 피하려는 유정과 달리 세하는 눈에 띄게 엑, 하는 소리를
내며 싫어하더니 이내 보고용 사진을 위해 나란히 섰을 때 유리가 적극적으로 회유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려 하자 그래, 그래, 하며 대신, 제이
아저씨가 먼저 수영복 차림일 때야, 하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모두 유리의 꼬임에 넘어가 수영복을 차려입었지만 제이는 슬비처럼 여전히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유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연약한 아저씨 정도야 무력을 써서라도 벗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대놓고 아저씨, 들었죠!? 소리쳤고 제이는 웃음을 내보이며 쉽사리 그에 응했다. 뭐, 이왕 놀러 온 거 분위기를 내서 나쁠 게 뭐가 있으랴.
“그나저나 아저씨 비실비실하게
다니시면서 은근 운동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
찍은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바라보던 유리는 단체 짐을 옮기던 제이에게 다가가 찍은 사진 속 담긴 제이를 구태여 확대하여 보여주며 말했다.
“봐요! 아저씨 옆에 있는 세하는 워터레깅스에 위에도 가렸는데 아저씨는 당당하시잖아요.”
“아저씨 아니고 오빠. 그리고 건강은 틈틈이 챙겨야 하는 거야.”
“네, 네. 얘들아! 무리하지
마라! 건강이 제일이야! 이거 말하는 거죠?”
어설프게 제이를 따라
하는 유리의 모습을 보고 제이는 웃어 보이며 이왕 온 김에 유리에게도 할당분을 넘겨줬다. 평소 유리는
구태여 제 일을 피하는 편도 아니고 되레 도와줄까, 선뜻 나서는 쪽이었으니 그런 제이의 부탁에 응해
짐을 날랐다. 이따금 어후, 제법 무겁네요. 하며 말을 꺼냈지만 이미 본인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도 아니면 후딱후딱 옮기고 놀 생각으로 가득한 건지 빠지지는
않았다. 셋이서 짐을 옮기고 남은 셋은 방을 정리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했고 당연히 짐을 옮기는 일은
쉽게 끝났다.
“생각보다 안은 깔끔하네요. 방이 세 개라는 점은 아쉽긴 하지만요.”
“데이비드 국장님이 그래도
청소는 되어 있을 거라고 했는데 거짓이 아니라 다행이구나.”
“어, 그럼 저희 방을 어떻게 나누죠?”
미스틸의 물음에 유정과
슬비는 동시에 눈을 마주치더니 서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지금 상황으로써는 결국 둘둘씩 방에 들어갈
게 확실했고 남은 한방은 이성끼리 써야 했다. 그리고 그건 물론
“슬비랑 유리가 한방, 제이 씨랑 세하가 한방, 그리고 나랑 미스틸이 한방을 쓰면 되겠다.”
아마 지금 인원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조합일 거다. 유정은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을 보였고 곧장 밖에 있는 사람들이
들고 온 짐을 정리하자고 입을 열었다. 냉장고에 들어갈 물건은 냉장고에. 바깥에 있어야 할 물건은 그대로 바깥에. 안으로 들어온 셋도 같이
짐을 정리했고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끝난 지금, 이제부터 휴가인 척하는 임무를 즐기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누나, 홍보 촬영인데 사진 찍어주시는 분은 따로 없는 거예요?”
“아쉽게도 내가 그 일을
담당하려고 같이 온 거란다.”
꼭두새벽 서울에서부터
부산까지 내달린 탓에 운전자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피곤할 만한 거리였고 특별히 사진사가 있지 않다는 말에 미스틸은 잠시 방에서 낮잠을 자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런 미스틸의 말를 운전사였던 제이가 환영하며 본인도 한숨 자려고 했고 튜브에 바람을 넣고
있던 유리는 기겁했다. 세하는 꼬셔도 같이 물놀이를 해줄 것 같진 않고 유정은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며
내뺄 것 같고 그렇다면 남은 건 슬비뿐이지만 슬비도 아까부터 꾸벅꾸벅 조는 모양새였다.
“모처럼 다 같이 놀러
온 여름 휴가인데 물놀이 안 하는 거야?! 수영복도 입었잖아…!”
아쉽게도 그런 유리의
말에 응해주는 건 아무도 없었다. 다들 은근히 잠을 자는 쪽으로 표를 몰았고 유리는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뺐지만 본인도 내심 졸리긴 한 모양인지 아직 바람이 덜 찬 튜브를 끌어안으며 엉엉 우는 척을 할 뿐 특별히 무언갈 더 주장하진 않았다.
“낮잠이니까 같이 모여서
자면 안 돼요?”
미스틸은 은근히 서로
사이좋게 모여 있는 걸 좋아했으니 미스틸이 할 만한 말이었다. 그런 미스틸을 바라보며 옅게 웃어 보인
슬비는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고 이는 곧 거실에서 자야 함을 의미했다. 다들 침대를 고집하는 성격도 아니었으니
방에서 각자 이불과 베개를 챙겨 미스틸을 중심으로 하나둘 모인 검은양 팀은 제법 다정하게 모여 눈을 감았다. 미스틸은
유정도 이에 동참하길 바랐지만 타이밍 좋게 전화가 오는 바람에 유정은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해줬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함께 숙소에서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를 들으며 슬며시 잠을 자던 유리가 눈을 뜬 건 저녁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제 앞에 보인 건 깨끗이 정리된 거실이었고 화들짝 놀란 유리가 지금 몇 시야?! 하며 몸을 일으키자
마침 부엌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보던 세하가 간단히 정리해줬다.
“여섯 시 아, 이제 십칠 분.”
“뭐?! 내, 내 물놀이는?!!”
“끝났지, 뭐.”
으악 하며 벌떡 일어난
유리는 믿고 싶지 않았는지 제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해봤지만 세하가 알려준 그대로였다. 물론 해는
아직 살아 있었지만 물놀이를 할 시간은 아니었다. 조금 있으면 밤이 찾아왔고 무엇보다 처음 온 바다에서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몸을 담그는 건 제아무리 유리라도 해선 안 될 짓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빙수 먹어.”
“말도 안 돼… 내 여름
휴가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있는 유리를 내버려 둔 세하는 묵묵히 제 앞에 있는 제빙기로 얼음을 갈고 팥과 시럽 그리고 여러 과일을 얹어 유리를 불렀다. 여름 휴가니 뭐니 구시렁거리던 유리는 이내 세하가 만들어준 빙수를 먹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맛있다….”
“너 빼고 다들 한 번씩
먹었어.”
언제 투덜거렸는지 모를
정도로 팥빙수를 오물오물 먹던 유리는 이내 생각을 바꾸기로 했는지 주위를 둘러보고 제법 넓은 이 숙소에 본인과 세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아해했다.
“다들 어디 있어?”
“유정이 누나랑 미스틸이
회 사러 가고 제이 아저씨랑 이슬비는 마당에서 불 피우고 있어. 난 너 언제 일어나나 기다리고 있었고.”
“그냥 깨우지.”
혼자 심심하게 기다렸을
세하를 생각하니 미안해서 나온 말이었지만 만약 본인이 세하를 기다리는 입장이었다면 당연히 세하처럼 기다릴 게 뻔했다. 여름 휴가였는데 말이다. 첫 여름 휴가.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게 본인이라는 점 때문에 괜스레 여름 휴가를 망치게 한 주범같이 느껴졌다.
“여름 휴가인데 물놀이도
못 하고….”
“휴가가 아니고 임무, 그리고 원래 물에는 안 들어갈 생각이었거든. 수영 잘 못해.”
“뭐, 진짜? 물놀이 안 해봤어?!”
“물놀이랑 수영이랑 다르지
않나?”
아. 하긴. 그렇지. 하며
다시 우물우물 빙수를 먹던 유리는 바닥이 보이는 빙수 그릇을 세하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래도 빙수는 맛있었어.”
“하나 더 해줘?”
“응. 히히.”
핸드폰을 가지고 사진
찍어도 돼? 하는 유리는 아직 시무룩해 보여 세하는 흔쾌히 그러라 말했고 유리는 제빙기를 돌리는 세하
사진, 세하가 만들어 내놓은 빙수 사진, 이를 먹는 제 사진
한 장을 더 찍고서야 기분이 풀렸는지 후다닥 빙수를 먹어 치우고는 세하의 손을 잡아끌며 고기 먹자, 고기, 고기! 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훗날 유리에게 첫 여름 휴가인 척하는 임무는 수영복 입고 찍은 단체 사진과 수영복 입고 제빙기를 돌리는 세하 사진, 마지막으로 빙수 외의 음식 사진밖에 찍지 못해 다시 한번 그곳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 쓰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때마다 유정은 자기 핸드폰에는 수영복을 입은 채 거실에서 잠든 검은양 팀의 사진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