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34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29 2
10월 중순, 중간고사 시험을 치른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 동안에 차원종도 출현해서 출동하기도 했었지만 시험 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나는 무조건 만점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목표를 향해 만점을 맞은 거지만, 나는 선생님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이런 거 뿐이다. 우리같은 위상력 능력자들은 장래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공부하나마나지만.
"아, 오늘 시험 망했다."
"기분 잡치는데 PC방이나 가자. 에이!"
시험을 잘본 학생들도 있지만 못본 학생들도 있는 법이다. 기지개를 펴면서 나도 일어나려고 했지만 옆자리에 앉은 유리는 머리를 책상 위에 박은 채로 엎드려 있었다. 시험을 못봐서 저러는 모양이었다. 불쌍한 녀석, 원래 유리는 학교가 이번이 처음이니까 지식으로 못 따라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해가 따라가는 게 어려울 만도 하겠지.
유리는 그 이후에 표정이 더 밝아졌었다. 그녀가 또 힘들어할 때가 있으면 나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기까지 했었다. 저번에 자신의 눈물을 터뜨리게 했다면서 책임을 지라고 말했었다. 자기가 멋대로 울어놓고 책임까지 지라니,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깐깐한지 모르겠다. 그래도 유리가 저렇게 밝은 모습을 보이니까 나도 좋아보였다. 데이비드 국장님의 부탁도 이걸로 들어준 거나 다름없겠지.
"너무 어려워. 세하야."
"실망할 것 없어. 공부야,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 다음에는 좋은 결과를 맞을 수 있을 거야."
"히잉. 그래도."
두 눈을 감은 채 무거운 한숨만 계속 내쉬고 있었다. 성적을 너무 못본다면 선생님들이 따로 불러서 잔소리할 거 같았다. 유리는 유니온 소속 클로저라 장래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지만 학교의 명예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교육부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을 중요시해서 수준이 낮은 학교에게는 압력을 넣는 편이니까.
"으음, 유리야. 내일 토요일인데 나와 데이트 하지 않을래?"
"응? 꺄아악! 뭐라고!?"
뭐야? 왜 허둥지둥하면서 책상 위에서 굴러떨어지는데? 위상력 능력자면서 중심을 못차린 채로 굴러떨어졌다. 다시 의자에 앉은 뒤에 양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위 아래로 흔들면서 고개를 측면으로 돌린 채로 말한다.
"저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데, 데이트? 아하하, 세하야, 난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어."
"왜 그러는 거야? 유리야. 마음의 준비라니? 그냥 같이 어디 놀러가자는 뜻에서 말한 거야."
"에? 그런 거야?"
얼굴이 붉어져 있다. 양 손을 내리며 검지로 서로 맞대면서 꼼지락거린 채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다. 뭔가 수줍어하는 소녀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내 뜻을 조금 오해한 모양이었다. 데이트를 연인끼리 만난다는 법은 절대 없다. 그냥 이성끼리 만나서 교제하는 게 데이트라고 알고 있다. 상관없지 않는가? 유리가 내 여자친구면 좋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별로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응. 장소는 어디로 할까? 가고 싶은 데 있어?"
내가 이러는 목적은 유리의 기분전환을 위해서다. 남들처럼 놀고 싶어서 놀지도 못했을 테니,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즐기게 할 생각이었다. 이왕 가는 곳은 놀이공원이 좋겠지. 그곳에 가면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만한 기구가 있으니까.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자주 가봤던 곳이니까 잘 알고 있다.
"혹시 놀이공원은 좋아해?"
"어? 글쎄. 그곳은 한 번도 안 가봤거든."
"이번 기회에 한 번 가보는 게 어때?"
"어, 응. 그럴까?"
놀이공원, 그걸로 결정 되었다. 그런데 어째 시선이 매우 따갑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는다. 그나저나 데이비드 국장님은 아직 그 남자에 대해서 알아낸 게 없으시려나? 알아내더라도 그런 건 상층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서 억지로 캐물을 생각은 없지만.
* * *
훈련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여전히 빈둥거리시면서 TV를 보고 계신다. 그러자 엄마는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내게 말한다.
"아들, 시험보느라 수고했을 텐데 엄마와 내일 데이트하지 않을래?"
"죄송해요. 내일 선약이 있거든요."
"어머, 여자니? 데이트야? 그런 거지?"
도끼눈을 한 엄마가 얼굴을 내 쪽으로 들이대면서 말한다. 마치 나를 머리로 찍어눌릴 기세다. 혹시 내가 여자친구와 같이 가는 줄 알고 이러시는 모양이었다. 절대 여자친구가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그저 같이 놀이공원에 놀러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곧바로 등을 보인 상태에서 쭈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검지로 땅을 긁고 있었다. 이럴 때 조명까지 더해지면 완벽히 만화를 재현하는 거다.
"미안해요. 엄마. 다음에는 같이 갈게요."
"누구야? 우리 세하를 유혹한 여자애가? 혹시 그녀니? 네가 도와주고 싶다는 여자애?"
"네."
솔직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엄마 얼굴이 무섭게 보였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불타오르는 듯한 살기와 주먹 하나를 쥐면서 다른 손바닥에 힘있게 충돌시키는 걸 보니까 당장이라도 유리를 팰 기세였다. 아들 장가 안 보낼 일 있나? 아무리 아들 바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일 데이트 갈 준비해야 되니까 여기까지 하죠."
저녁밥을 차리러 부엌으로 간다. 오늘은 뭘 만들어줄까? 아, 그렇지. 두부 스테이크를 만들어야겠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우리 형편에는 부담스럽지 않으니까 충분히 가능했다. 내일 갈 때 도시락 용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역시 우리 아들이 만든 요리가 제일 맛있어."
"그 말은 저번에도 여러번 들었어요."
이 아들 바보 엄마같으니라고. 뭐, 상관없겠지. 엄마도 기운이 넘치는 거 같아서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으니까 기분이 좋을 거 같았다. 매주 주말에는 학교를 쉬니까 기분이 좋다. 데이트를 즐기는 도중에 차원종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휴대폰 배터리 충전은 100%로 채워놓는 것도 중요하다. 일단 목적만 달성하면 그걸로 되는 일이다.
내가 만든 두부 스테이크를 포함한 저녁식사를 했다. 그 다음에 설거지를 한 뒤에 내일 요리해먹을 음식재료들을 사기로 했다. 데이트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데다가 피곤할 수도 있으니 미리 사놓은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아들, 나가는 거니?"
"내일 아침 먹을 거 사올게요."
어차피 내일 아침 식사를 만들 재료도 없었기에 곧바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 * *
대형마트로 왔다. 역시나 식료품을 사는데 마트 만한 데가 없지. 일단 고기 종류로 물건을 다 쓸어담았다. 밥을 먹는데에는 역시나 고기가 최고지. 물론 야채도 고르는 편이다. 다만 고기가 너무 편중되어있어서 문제점을 지적당할 뿐이지. 컵라면도 사갈까? 가끔 요리하고 싶지 않을 때 끓여먹여도 될 거 같으니까.
"어? 세하 아니니?"
어? 유정 누나네. 이제 막 퇴근하고 장을 보시는 모양이었다. 곧바로 공손하게 인사를 한 다음에 카트에 담긴 물건을 보았다. 맥주 캔이 들어있었다. 누나도 어른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지만 왜 이렇게 많이 사는 건지 모르겠다. 그 외에는 캔으로 되어있는 식료품들이 들어있었다. 그것을 따서 후라이팬에 볶기만 한다면 간단하게 완성 될 수 있는 간편 요리재료였다.
"혹시 이제 퇴근하시는 거에요?"
"응. 오늘도 할 일이 너무 많았단다. 집에 먹을 것도 떨어져서 사갈려고."
"힘드시겠네요. 관리요원이라는 직업도 만만치 않죠?"
"어? 응. 난 괜찮아. 이제 익숙해졌으니까."
전혀 그런 거 같지가 않았다. 말로는 해맑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몸이 약간 비틀거리면서 식료품을 고르는 걸 보면 많이 지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가 구두를 신고 걸어가시니까 발의 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을 거 같기도 하다. 신경이 쓰여서 쇼핑이 집중이 안 될 정도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