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33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28 1
차원종을 소환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 남자의 정체는 대체 뭘까? 의문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유리와 싸울 때는 그냥 정면으로 싸우면서 나와 싸웠을 때는 왜 그냥 피했을까? 거기다가 정예 클로저를 습격한 이유는 뭘까? 단지 클로저에 대한 증오심만은 아닌 거 같았는데, 혹시 차원종과 손을 잡기라도 한 걸까?
그들과 손을 잡았다면 앞 뒤가 맞는다. 과거에도 사람과 차원종이 손을 잡았던 사례가 있다고 들었으니까. 위상 억제기가 파괴된 것도 테러행위라면 인간과 차원종이 손을 잡았다고 봐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인간이 싫어서? 과거에 무슨 사건이 있었기에 그렇게도 인간을 미워한 건지 모르겠다. 아버지라면 이럴 때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의사와 간호사들이 몇 번 왔다갔다거리면서 유리의 팔에 주사를 꽂는 것을 반복했다. 대부분 부작용이 크고, 효과가 뛰어난 약물이었다. 클로저들은 약의 부작용 내성이 있는 것도 있지만 전장에 계속 투입해야 되기 때문에 빠른 치료를 우선으로 하는 편이었다. 안 그래도 지금 인원이 매우 부족해졌는데 당연한 조치겠지.
정예 클로저들을 능가할 정도의 실력자, 그 사람이 노리는 건 대체 뭘까? 일단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추적한다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건 상층부에서 할 일이니 내 능력으로는 그저 추측만 하는 게 한계다. 유정 누나나 데이비드 국장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유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클로저의 길을 걷게 되는 이상, 이 정도 상처는 감당해야 될 일이다. 원래 이런 거니까. 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항상 겪게 되니까. 나도 어쩌면 이런 상황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끼익-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다. 고개를 돌아보자 전에 만났던 그 아저씨가 서 있었다. 그는 조용히 내게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여기는 환자가 있으니까 조용히 하려는 건가? 우선 순순히 병실 밖으로 나와서 문을 닫았다. 분명히 우리 엄마를 누님이라고 부른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동생. 나는 제이라고 해. 과거에 너희 엄마와 함께 차원종을 섬멸했던 클로저 요원이지."
"네. 안녕하세요."
"누님을 닮아서 그런지 잘생겼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거 같은데?"
흰 이빨을 드러낸 채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얼굴이 잘생겼다는 얘기는 집에서 지겹도록 들어서 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얼굴이 잘생긴 게 다 좋은 것도 아니라고 알고 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위험한 인물이라면서 다들 저 피해가던데요."
"성격은 그 사람을 닮았군. 동생, 한 가지 충고를 하지. 클로저를 그만두는 게 좋아."
"무슨 말씀이세요? 그만두라니."
선글라스를 한 손으로 끌어올리면서 표정이 갑자기 진지하게 바뀌었다. 처음에는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서서히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이 아저씨가 클로저 그만둬야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 밖에도 훤히 보일 정도로 붕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잖아.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몸도 아닌데 병원에 몇 달 입원해서 요양해야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로저 일은 위험한 일이야. 너희 애들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지. 특히 A급 차원종 이상이 나타나면 너희 정도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그거야 훈련으로 성장하다보면 된다고요.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듯이 말이에요."
"여긴 게임이 아니야. 동생. 가상 훈련은 실제의 70%밖에 되지 않아. 그런 걸로 강해지는 것보다는 실전 훈련이 더 나은 편이지."
"A급 차원종은 아저씨같은 사람들이 맡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차원종이 언제 출현할 지 어떻게 알고 대처하지? 너희가 하급 차원종들을 상대하는 동안에 갑자기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지?"
"그럼 싸우면 되는 일이에요."
클로저의 의무가 이런 거다. 적이 나타나면 싸운다. 그게 당연한 게 아닌가? 나는 차원종과 싸우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다. 유리를 도와주고 싶어서 온 거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사람을 구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모르는 사람들이 다친 사람을 돕고 구급대에 신고하는 것처럼.
"충고하도록 하지. 억지로 강요할 자격은 내게 없지만, 클로저 일은 당장 그만두는 게 좋아. 아직 나이가 어린 녀석들이 클로저 일을 하다가 파란만장한 생을 맞이하는 건 불쾌한 일이니까."
아저씨는 그렇게 말한 뒤에 발걸음을 옮기면서 어딘가로 걸어간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았다. 미성년자 클로저들은 아직 전쟁의 참혹함을 잘 모르는 나이이기 때문에 저렇게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화나 애니로 볼 때 싸우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비참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 *
이틀이 지났다. 유리 동생들은 내가 잘 돌봐주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실로 와서 그녀를 간호했다. 유정 누나와 데이비드 국장님이 찾아가시기도 했고, 차원종이 출몰하기도 했으나 그것도 잘 처리하고 왔다. 그 빨간 피부를 가진 A급 차원종 트룹 맹장이 나타난 이후에는 그 수준에 미치는 위험종이 등장하지 않았다. 나타난다해도 B급 차원종 정도다.
유리는 붕대를 풀었다. 화상이 났던 상처부위는 어느 새 다 나아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새하얀 피부를 드러냈다. 이건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었다가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되돌아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붕대를 풀어준 뒤에 밖으로 나갔고, 유리는 내 얼굴을 보고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어, 세하야! 혹시 나 간호해준거야?"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활짝 웃는 미소를 보인다. 기다린 보람이 느껴질 정도로 좋은 미소였다. 창가에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유리에게 찾아오기는 했지만 학교생활과 훈련은 정상적으로 해왔으니까 병문안 찾아온 시간은 주로 저녁이었다.
"이제 몸은 괜찮은 거야?"
"어, 으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또 너에게 신세를 졌네. 요즘 들어서 나 계속 이러는 거 같아."
"클로저 일을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야. 누군가는 운이 좋지만, 다른 누군가는 운이 더럽게 없는 법이니까."
이 세상은 불공평하다. 누군가는 운이 좋아서 대기업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버는데, 다른 사람은 운이 없어서 회사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망해서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있으니까. 원래 그런 거다. 인생이라는 게 운명이 따라다니는 수준이었으니까.
"세하야. 할 말이 있는데, 전에 날 도와주고 싶어서 싸우겠다고 했지?"
"어, 응."
유리가 고개를 숙이면서 양 손가락을 모은 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뭔가 물어보는 것을 망설이는 듯한 얼굴이다. 그러고 보니 유리는 나를 피했었지. 깨어나서 좋긴 하지만 그 일이 생각나서 또 다시 나를 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이 약하다는 것에 자괴감이 든 거겠지.
"왜 그러는 거야? 왜 나 같은 사람에게 잘해주려고 하는 거야?"
금방이라도 울 것같은 얼굴이다. 우울해보이는 그녀의 얼굴 표정이다. 클로저가 되고 싶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들인 사실이 그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면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책감이 들기 마련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었으니까. 이해할 수 있다.
"이유는 없어. 전에도 말했듯이,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야. 유리 너처럼 가족을 생각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꾹 참는 모습이라는 걸 알고 있어. 학교에서 남자애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감당하기 어렵잖아. 그것도 꾹 참아내면서 버티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어."
"어? 으응."
쑥스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인다. 사람은 원래 칭찬하면 누구나 저렇게 되기 마련이니까. 나도 칭찬을 들으면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도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그만큼 마음 속에는 어둠으로 채워지게 되지. 유리 너는 동생들을 지키고 싶어하지?"
"응! 당연하지."
"그럼 유리는 누가 지켜주는 거야?"
"뭐?"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부모님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클로저 요원을 상대로 어떻게 지키겠는가? 나야 뭐 강한 내 힘이 있고, 엄마도 있으니까 상관없겠다고 생각이 들지만 유리는 아니었다. 힘들 때 엄마 품에 안길 수도 없고, 털어놓을 상대도 없었다. 나도 힘들 때는 엄마나 아빠에게 털어놔서 나아졌었지만.
"나는 괜찮아.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억지로 괜찮다고 말 안해도 돼. 유리야. 난 알고 있어. 아무도 ** 못한 곳에서 너는 울고 있잖아. 다른 사람처럼 놀고 싶은데도 책임감 때문에 못하고 있잖아."
"그, 그건, 난 아니야. 난 절대로 울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다. 말은 저렇게 해도 몸이 추위를 느끼듯이 떨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아 내 얼굴 앞으로 강제로 돌린 채로 말했다.
"내 눈을 잘 봐. 유리야. 난 너를 도와주고 싶어! 그러니까 숨기지 말아줘. 제발!"
유리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있는 게 보였다. 역시 내 예상대로다. 혼자서 무리한 일을 하고 책암감이 강하지만 그만큼 마음 속에는 어둠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남자애들을 상대하거나, 차원종과 싸우고, 가사 일을 하는 것, 이게 다 쉬운 줄 아는가? 절대로 아니다. 거기다가 위상력 능력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살아갈 수 없으니까.
"세, 세하야. 나, 나는, 흐아아아아앙!!"
결국 참다못해 울음을 터뜨린 유리가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갑작스러워서 놀랐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내 옷이 그녀의 눈물로 젖고 있지만 그 눈물이 내게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녀가 마침내 털어놨으니까. 그 행동으로 이미 증명이 되었다. 유리는 겉모습으로는 아무리 강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마음이 여린 소녀였다. 내가 어떻게 아냐고? 아버지에게 배워서 알고 있으니까.
겉모습이 지나칠 정도로 강한 사람에게는 마음 속에 슬픈 어둠이 숨겨져 있는 법이다. 그 어둠을 해소해주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나 연인이라고 했다. 라고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주장에는 조금 다른 게 있다. 가족과 연인? 절대 아니다. 친구나 동료 사이라도 상대방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법이니까.
유리의 얼굴을 통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녀는 내 옷깃을 꽉 잡은 채로 계속 울고 있었고, 나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녀가 눈물을 멈추기까지 기다렸다.
* * *
한 소녀가 있다. 두 사람의 묘비 앞에서 혼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늘 위에서는 먹구름이 뒤덮이고 있다가 비를 뿌리고 있었다. 비가 떨어지고 있음에도 소녀는 조용히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비가 그녀에게 떨어지지 않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뒤로 돌아보는 소녀다. 그곳에는 조용히 침묵을 유지한 채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한 소년이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소년은 우산을 그녀에게 건네준 다음에 묘비 앞에 헌화를 한 뒤에 큰 절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소년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소녀는 망설였지만 온화하고 밝은 빛을 내뿜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표정이 환해졌다.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키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둘이서 우산을 같이 쓰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년의 한쪽 어깨에는 비로 젖어 있었다. 소녀의 반대쪽 어깨에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두 사람은 상관없었다. 함께 우산을 쓰고 돌아가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었으니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