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nights 2부 7화 악몽으로의 질주(Rush to Nightmare)
firsteve 2019-06-27 3
그녀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히 자신들처럼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쯤은 그녀도 충분히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고는 약하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냉정하고 차가웠던 살기 넘치는 그 눈이 그녀는 무서웠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의 말에 따라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대체 어째서…..어째서 다들 그 사람을 따르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설마….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던가….
아니야….차원종이니까….무슨 최면이나 세뇌 같은 걸로 잡아두는 것일지도 몰라…..그 정체를 밝혀내야 하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바이올렛이 이내 머리 속에 방금 전 개발부 쪽의 공방에서 들은 대화를 떠올렸다.
아아 맞다. 이거 성 외곽 마을 대장간에 갖다 주고 온나. 대장이 시킨 게 워낙 많아가지고 이제야 보내네. 사과의 뜻으로 이것저것 품질 좋은 걸로 넣었으니까.
아까 그 차원종은 분명히 성 외곽 마을 대장간이라고 했어. 그 말은….이 밖에 마을이 있다는 걸까? 왕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한 번 나가볼까….무기 없이 나가는 건 조금 위험하지만….신체 강화로 어느 정도 대응가능하고 공격해오면 저쪽에 항의하고 가면 되니까.
바이올렛이 옷을 바로잡고 문을 열자, 시녀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어디 가시나요?”
“성 외곽 마을에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면 되나요?”
“아 그곳이라면 금방 간답니다.”
시녀가 알려주는 대로 바이올렛이 길을 따라 나가자, 그곳에는 잘 정돈된 길과 함께 중세시대와 현대가 섞인 듯한 마을이 있었다.
“나 잡아봐라~”
“너~잡히면 혼내줄거야!”
웃으며 뛰어다니는 주민들의 모습에 바이올렛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다들….웃고 있어? 게다가 뭐야…..사람들의 얼굴에 부당하게 지배당하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마치….정말로 행복한 것 같이….
그런 그녀에게 한 소녀가 다가왔다.
“아, 인간 언니. 안녕하세요. 혹시 이세하 님의 동료 분이신가요?”
“네? 아….네….뭐….동료이긴 하죠….”
그 말에 신기하다는 듯이 보는 소녀의 모습에 바이올렛이 입을 열었다.
“이 마을은….대체 뭐죠? 이세하 씨가 만든 마을인가요?”
“네. 이세하 님께서 만드신 마을이에요. 대부분의 운영이나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의 자유권을 존중해주세요. 그리고 어떠한 종족이든 차별 없이 대해주시기 위해 만드신 마을이라고 들었어요.”
소녀의 말에 주변을 살피자, 인간의 모습을 한 주민들 사이로 흔히 차원종이라고 불리는 주민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자, 바이올렛의 머리가 어지럽게 돌아갔다.
“부당한 처사 같은 건 받지 않았나요? 예를 들면 강제징집이라던가…..강제로 가져간다던가….”
“그런 일은 없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세하 님을 따라 온 사람들이고, 강제징집 같은 건 안 시키세요. 간간히 성에서 드실
장을 보러 오시기도 하시고, 세금도 주민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 가져가시고, 또 마을에 피해가 있지 말라고 기사단 분들도 파견해서 지켜주시는 걸요.”
“호….혹시 세뇌 같은 거 받은 거 아니시죠? 이세하 씨가…..그런 일을….”
바이올렛의 말에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이세하 님하고 오랜만에 보신 동료 분이신가요? 그렇다면 이해가 되는데….이세하 님께서는 언제나 저희한테 많이 신경을 써주고 계세요. 부족한 게 있으면 성으로 지원요청 하라고 하실 때가 있고, 저희가 힘들겠다 싶으면 저희에게 물자를 나누어주시기도 하시고요. 그리고 교육도 해주고 계세요.”
소녀의 말에 바이올렛이 다시금 마을을 보았다.
중세시대와 현대가 섞여있긴 했지만, 기본적인 제도와 시설들에 부족함 같은 건 없어보였다.
오히려 신서울의 사람들이 더 불행해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그녀가 지금까지 그녀 스스로 생각해왔던 세하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럴리가 없는데….이세하 씨는 차원종….차원종이라면 당연히 힘이나 독재 같은 걸로 지배해야 하는데…..그러면 이렇게 사람들이 행복할 리가 없는데….세뇌…..아니야….세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사람들의 웃음이 순수해…..그렇다면…..정말로…..
그런 그녀의 생각이 깊어지려고 하는 그 때, 마을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 이세하 님이다! 서하연 님도 오셨네.”
소녀가 후다닥 세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자, 바이올렛도 그녀를 따라 조심스럽게 그들을 둘러싼 무리에 합류했다.
“오라버니….굳이 나오실 필요 없다니까요….저만 가도 되는데…”
“성에만 있는 건 성미에 안 맞는 건 네가 더 잘 알면서. 오히려 나는 이게 더 좋아. 이런 생기 넘치는 느낌…..마치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라서 더 좋은 걸?”
세하가 빙그레 웃으며 걸어가다가 앞 골목에서 뛰어나온 아이랑 부딪힌다.
“괜찮니? 미안해. 내가 한눈 팔았어.”
“괘…괜찮아요 세하 님…..아…..”
아이가 일어나다가 세하의 옷에 묻어버린 자신의 아이스크림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죄…죄송해요! 제….제 아이스크림이….세하 님의 옷을 더럽히다니….”
벌벌 떠는 아이의 모습에 세하가 무릎을 구부려 아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미안해, 꼬마 아가씨. 내 옷이 꼬마 아가씨의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먹어버렸네. 사과하는 의미에서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줄까 하는데 괜찮을까?”
“괘….괜찮아요…..그…..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아니야. 앞을 안 보고 있었던 내 잘못도 있어. 하연아. 아이스크림 3개 정도 사올래? 꼬마 아가씨 거랑 내 거랑 네 거랑. 아. 아니다. 혹시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 사람? 맛있는 건 다 같이 먹어야지.”
세하의 말에 아무도 손을 안 들자, 세하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너희들, 너희들의 왕을 너무 쪼잔하게 보는 거 아니야? 내가 언제 내 입으로 말한 거 안 지키는 거 봤어? 솔직하게 먹고 싶은 사람 손 들어봐. 내가 사줄게.”
“저요!”
“오케이 꼬마 도련님 몫까지 4개. 또 먹고 싶은 사람?”
그러자 쭈뼛거리던 사람들이 손을 들기 시작하자, 세하가 피식 웃으며 아이스크림 가게에 모두의 몫을 주문한다.
“자, 꼬마 아가씨랑 꼬마 도련님 몫. 그리고 하연이.”
“가…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세하 님!”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두 아이들의 모습에 세하가 웃으며 그들을 쓰다듬었다.
“그래. 많이 먹고 쑥쑥 크라고. 그리고 네 손으로 네가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킬 수 있게 힘을 기르는 거야. 할 수 있지?”
“네!”
“열심히 먹어서 세하 님처럼 큰 사람이 될 거에요!”
“오, 꿈이 큰데? 어디 열심히 해봐. 열심히 하면 내가 직접 너를 기사로 임명해줄 테니까.”
세하의 말에 아이가 환하게 웃자, 세하도 기분 좋은 듯이 웃음을 짓는다.
이윽고 모든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준 세하가 원래 정해두었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세….세하 님!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쩐 일로….”
“누추하기는. 얼마나 멋진 곳인데. 개발부 애들은 내가 요구한 걸 만든다고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직접 건네주러 왔어.”
세하가 커다란 주머니를 점장에게 넘겨주며 웃음을 지었다.
“요즘 마을 분위기는 어때? 다치는 사람들은 없고?”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요즘은 세하 님 흉내를 내려는 애들이 많아지긴 했습니다만, 그건 세하 님이 잘 다스려주고 계신다는 뜻이겠죠.”
그게 제일 위험한 거잖아.
세하가 한숨을 쉬자, 하연이가 옆에서 쿡쿡 거리며 웃었다.
“나중에 누가 제일 오라버니를 잘 따라 하는지 대회라도 열어볼까요?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놀리지 마…..하지만 생각보다 그것도 재미있겠다. 애들이 나의 어떤 이미지를 따라 하려고 하는 건지 궁금하니까.”
세하가 피식 웃음을 짓다가, 문 뒤에서 빤히 자신을 보고 있는 아이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많이 컸네. 올해로 5살이던가?”
“네. 벌써부터 절 따라 하려고 매일 같이 여기 들리고 있습니다. 위험하니까 오지 말아달라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듣네요.”
“난 자식을 길러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동경하게 되니까.”
세하가 피식 웃음을 짓고는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안녕, 꼬마 아가씨? 나 기억하니?”
“응. 왕 님이잖아. 그런데 왕 님. 오늘은 뭔가 기뻐 보여. 기분 좋아?”
“그럴 일이 있었어. 역시 우리 아가씨는 눈치가 빠르네.”
세하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품에서 조그마한 문장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선물이야, 꼬마 아가씨. 다음에 올 때까지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내 부적이야. 잃어버리지 마?”
“응, 왕 님! 고마워! 나 나중에 크면 왕 님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게! 헤헤…”
아이다운 순수한 웃음에 세하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일어섰다.
“슬슬 갈게. 작전 준비도 있고 하니까. 또 무슨 일 있으면 기사단으로 연락해. 지원물자 보내줄 테니까.”
“살펴가십시오, 세하 님.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그대의 앞길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세하가 웃으며 밖으로 나오더니 옆에서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연아. 나, 거기에 들렀다가 갈게. 미리 가서 준비 좀 해줘.”
“너무 늦게 오지는 마세요.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또 무슨 일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하연이 사라지자, 세하가 느긋한 걸음으로 꽃들을 사며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그런 그를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따라간 바이올렛이 본 것은 수 많은 검과 비석으로 이루어진 묘지였다.
묘지…..야? 이게 다…..묘지….라고?
그런 그녀가 따라왔는지도 모르는 듯 비석들 앞에 선 세하가 입을 열었다.
다들 잘 있었냐? 미안. 요즘에 일이 많아서 이번엔 조금 늦게 왔다.
세하가 담담한 목소리로 묘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요즘 말이야…..내가 늘 입에 달고 살던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어. 너무나도 행복하고 너무나도 안심이 되서 잠도 예전보다 오래 잘 수 있게 됐어…..그런데 그럴 때마다 문득 너희들 생각이 나더라.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너희들도 내 소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너희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내가 조금만 더 신중한 성격이었다면 너희들이 그곳에서 죽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어. 내 목숨은 너희들 덕에 살아난 거니까.”
세하가 술을 뿌리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조금 있으면 또 다시 생명을 거두어야 해. 얼마나 많은 원한이 나한테 깃들지는 모르겠지만….그래도 해야겠지. 너희들이 이렇게 언제나 이곳에서 미련한 왕인 나를 지지해주고 있으니까.”
세하가 사왔던 꽃들이 하늘에 흩뿌렸다.
그것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천천히 하늘을 수놓으며 비석들과 무기들에 내려앉았다.
“…..또 올게, 얘들아. 그 때는…..좀 더 너희 앞에서 가슴을 펼 수 있는 당당한 왕이 되려고 노력해볼게.”
세하가 뒤돌아 걸어오는 모습에 황급히 몸을 숨기려고 한 바이올렛이었지만, 그녀의 위치를 오기 전부터 알고 있던 세하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수수하죠, 저?
매도의 말이 들릴 줄 알았다.
그를 믿지 못한다며 처음부터 불신을 표한 그녀였는데.
지금도 그저 의심으로 찾아온 거라는 걸 알고 있을텐데.
그럼에도 그는 웃고 있었다.
뉴욕에서 그의 소중한 어머니의 클론을 무단으로 만들고, 그것으로 자신을 공격했을 때, 그가 보여준 얼굴처럼.
그는 엉망진창인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이세하 씨….제가 당신을 따라다니고 있었단 건 알고 있었을 것 같으니까 물을게요….지금까지 한 말이나 행동에 거짓은….없나요?”
“거짓이 없다고 말하면 믿어주실 건가요?”
그저 질문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왠지 모르게 잔인할 정도로 슬프게 들려왔다.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질문에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대답이나 해주세요….정말로…거짓 없이 한 행동이었나요?”
“네. 거짓 같은 건 없었어요. 믿어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요.”
세하가 천천히 그녀를 지나갔다.
“너무 늦게 오진 마세요. 트레이너 씨를 구할 때는…..누나의 힘이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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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방에 돌아와서도 바이올렛의 생각은 멈춰지지 않았다.
자신들의 앞에서 보여준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하고 냉정한 그의 모습과, 마을 사람들을 보며 친하게 지내며 웃는 예전처럼 다정한 모습이 계속해서 교차했다.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라고 하기에는 둘 다 너무나도 진짜 같았다.
차원종이잖아. 그렇지만 아까 전에 그 모습들은 분명 7년 전의 세하 씨의 모습이었어. 그렇지만 캐나다에서 보여준 모습과 내게 했던 모습들을 보면 그건 세하 씨 같지 않은 잔인한 차원종의 모습이었어…..어느 쪽이 맞는 거야? 난….뭘 믿으면 되는 거지?
어느 것을 택해도 합리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7년 전처럼 그를 믿기에는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그래도….사과해야겠지….다짜고짜 심한 말을 한 건 나였고…..그리고 예상과 다르게 우리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있으니까…..그래…..우리가 겪었던 것처럼…..세하 씨한테도….무언가가 있었다고…..그렇게 한 번만 더 믿어보자…..하이드도….그랬고…..
바이올렛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작전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
그렇기에 지금 이야기를 하면 적어도 작전 때까지 응어리를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디 있으려나……회의실이었나…..그 쪽에 있으려나……
바이올렛이 방을 나와 조심스럽게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회의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세하가 하연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를 눈치채고는 인사를 했다.
“아직 시간 조금 남았을 텐데 어쩐 일이세요, 누나?”
“…..제 말을….정정하러 왔어요, 이세하 씨.”
예상치 못한 말에 세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바이올렛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해요, 이세하 씨. 제가…..조금 실수를 한 것 같아요. 당신이 차원종이 되었다는 사실과 저희 앞에서 보여준 힘 때문에 오히려 당신을 믿지 못하고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 때문에 두려운 마음에 말이 조금 심하게 나간 것 같아요. 그 점 사과 드릴게요. 물론, 의심을 아예 지운 건 아니에요. 당신이 차원종이 된 것에는 분명 무슨 사정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당신이 차원종의 왕인 이상, 의심을 거둘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렇지만…..당신이 지금처럼, [인간]을 위해 행동해주신다면 티나 씨의 말대로…..두 사람을 되찾을 때까지 협력하도록 할게요.”
솔직하게 정면에서 부딪혀오는 바이올렛의 모습에 세하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돌려 말할 줄 모르는 누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고 자신에 대해 평가해주는 것에 대해서 그는 고맙게 생각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여전히 무른 [인간]이었으니까.
“저에 대한 거북함을 참아주셔서 감사해요. 그 보답으로….확실하게 되찾게 해드릴게요. 트레이너 씨를. 그리고….나타를. 늑
대는 무리를 짓는 동물이니까요.”
세하가 웃음을 지었다.
믿어준 그 사실만으로도 힘이 난다는 듯 웃음을 머금은 그의 모습에 바이올렛이 어깨에서 힘을 뺐다.
“세하야. 슬슬 작전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어라? 바이올렛 언니. 먼저 와 계셨네요.”
“아, 네…..좀…..이야기를 할 것이 있어서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슬비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잘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리고…..고마워요, 언니.
주어가 생략되어 있었지만 그녀가 이야기 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7년 전에도 그랬다.
부서져가는 마음을 부여잡고 일어선 그의 곁에 모여든 사람들은 합리성이라는 벽에 감추어진 자신을 끌어당겼다.
그건 지금도 변함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훈훈한 분위기가 되어서 조금은 다행이군. 그럼 서하연. 슬슬 작전에 대한 최종 브리핑을 해주겠나?”
“네. 작전에 대해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하연이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회의실이 어두워지며 중앙에 홀로그램으로 그들이 가야 할 장소가 나타난다.
“우선 이쪽이 저희가 움직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곳에 도착하면 오라버니가 나서서 문을 열어달라고 말할 겁니다. 뭐….언제나처럼 그저 안될 확률도 높기 때문에 형식적인 요청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 후, 협상이 결렬되면 그대로 차를 몰고 다리를 타고 그 사무실로 가시면 됩니다. 예상되는 공격은 특경대 차량에서의 공격, 공중에서의 폭격, 바다의 전투함에서 날아오는 공격 정도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중의 미사일은 보호막으로 막더라도 폭염에 의한 중압감이 있기에 되도록이면 슬비 님과 레비아 님의 보호막에 닿기 전에 처리해주시길 바랍니다. 바이올렛 님은 강화를 걸어주십시오. 오라버니도 강화 쪽으로 가주시면 고맙겠지만 제 생각에는 강화보단 부족한 견제력을 맡아주시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피 님은 공격이 어디에서 날아오는 지 봐주세요.”
“적절한 인원배치군.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준비에 들어가지. 늑대의 우두머리를 사냥해간 것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지.”
티나가 총을 들며 미소를 짓자, 하피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판은 벌어졌고 배팅된 건 잃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니….이번만큼은 조금 진심으로 가보죠.”
의지를 불태우는 그들의 모습에, 세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부서진 의지를 모아 이길 수 없다고 말하던 적을 향해 달려가던 그들의 빛이 되살아났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너무나도 기뻤다.
7년 전에 끊어져 더 이상 같이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한 동료들이 어느새 자신의 옆에 모두는 아니어도 꽤 모였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안심이었다.
들려오던 소리가 잦아들어가는 느낌에 세하의 미소가 깊어졌다.
좋은 일 있어?
귀에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슬비가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같이 싸우는 구나 싶어서. 괜히 감성에 빠졌어.”
그들에게 7년, 자신에게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꿈에 그렸다.
자신이 떨어지더라도 그들의 빛을 되돌리고 싶다고.
설령 그 끝에 도달하는 곳이 모두에게 적으로 규정 받아 그들의 손에 죽게 되는 곳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그들이 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닿고 싶었다.
그것은 이세하가 부서지지 않는 이유니까.
비어가는 마음 속에서 절대 버릴 수 없는 행복의 기억이었으니까.
그런 그의 복잡한 얼굴에 슬비가 그를 끌어안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어떠한 말로도 그를 달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도 그녀는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힘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온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금까지의 고생을 위로할 말을 담아 그녀는 그를 꼭 껴안았다.
따뜻하네. 이거.
울려오는 그의 말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났다.
미안해…..이것 밖에 줄 수 없어서 미안해, 세하야.
괜히 눈물이 흘렀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이러는 건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눈물이 멎지 않았다.
머리보다 가슴이 앞서는 상황에 정신 없이 그를 끌어안았다.
그가 있으면 모든 게 괜찮다는 듯이.
그가 있어준다면 얼마든지 울어도 괜찮다는 듯이.
벚꽃은 별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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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별에게 물드는 그 시각…..캐나다에서는 청년이 피가 묻은 창을 털며 암호를 입력했다.
“팀장님. 곧 움직일 것 같습니다. 예상된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좋아. 환영 준비는 완성되었어?”
“네. 주셨던 레플리카 창으로 특경대를 세뇌해두었습니다. 아마도, 열심히 막아줄 겁니다. 목숨을 걸고 말이죠.”
그런 그의 말에 청년이 성호를 그었다.
“신이시여. 당신께 찾아갈 순결한 순교자들의 어린 영혼을 부디 보듬어주소서.”
그런 청년의 말에 옆의 벽에 기댄 여자가 쿨럭거리며 말했다.
“너…..대체….무슨 짓을….하려는 거야…..”
“….말은 그다지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에요. 죽지 않을 정도로 내장을 헤집은 거지, 치명상이 아니라는 건 아니니까요.”
그 말에 총을 꺼내 발포하려는 여자의 손을 창으로 가볍게 꿰뚫은 청년이 미소를 짓는다.
“여기서 기다려요. 혹시 알아요? 누나가 죽기 전에 이세하가 나타나서 누나를 구해줄지.”
“너……천벌 받을 거야…..”
여자가 피 섞인 침을 그에게 뱉자, 그가 피를 쓱 닦아내고는 여자의 배를 창으로 헤집었다.
푹.
푹.
푹.
날카로운 이물질이 몸을 헤집는 질척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정말 의지가 강하네요…..누나는…..그 의지로….유니온을 도와주셨다면…..저희를 도와주셨다면…..얼마나 좋았을까요.”
“쿨럭…..사양….할게…..이래뵈도…..용병 짓 하면서도 나름 양심에 찔리는 짓은 안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거든….경찰이
된 지금도….그렇고.”
여자가 흔들림 없는 의지를 눈에 담아 말하자, 청년이 열린 문을 향해 그녀를 무시하고 들어갔다.
“팀장님. 저 여자는….”
“내버려둬. 내버려둬도 죽을 부상이야. 지금은…..이 연구소에 있는 자료들의 회수가 우선이다.”
걸어가던 청년이 멈춰서더니, 뒤에 있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요원을 돌아보았다.
“검은 늑대. 너는 나와 함께 7층 서쪽 구역으로 간다. 나머지 요원들은 동쪽 구역으로 가서 늙은 늑대의 마지막 조정에 집중하
도록.”
“네. 팀장님.”
요원들이 들어가자, 문이 닫히면서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
그런 정적을 피투성이가 된 여자가 기침을 하며 깼다.
잊어버리기 전에…..기록….해…..내가…못 버텨도…..세하가….와서…..이걸 열 수 있게…..방금 본….모든 정보를….
여자가 흥건한 피를 손가락에 묻혀가며 벽면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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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분 뒤…..
하품을 하며 경계를 서던 특경대원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보았다.
“하암…..어이. 아까 그 요원이 이쪽으로 범죄자들이 온다고 안 했어? 이 시간쯤이 예상 시간 아니었던가?”
“혹시 엄중한 경계에 놀라서 꽁무니를 뺐다던가? 하하하!”
“있을 법해. 7년 전에도 꽁무니 빠지게 도망갔다고 한 녀석들이니까 하하하!!”
특경대원들이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그 때….
누가 꽁무니 빠지게 도망갔다는 거죠?
특경대원들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여기는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다. 신속하게 퇴장해라!”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아주세요. 이쪽은 굳이 폭력을 폭력으로 갚을 생각은 없어요. 저희는 그저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이
다리를 통과해서, 저쪽에 있는 연구소에서 저의 동료들을 되찾고 저 연구소를 가라앉히려는 것뿐이니까요.”
들려오는 말에 특경대원들이 총구를 그에게 겨눈 채 묻는다.
“대체….넌….누구냐?”
그 말에 사람의 그림자가 빛이 보이는 곳까지 나오자, 특경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이….이세하다!!!!전 특경대원!!!진돗개 하나 발령!!!진돗개 하나 발령!!!!
특경대원들의 무전에 세하가 한숨을 쉬었다.
예상대로인가…..
세하가 특경대원들을 보았다.
그저 적으로만 자신을 보는 그들의 모습에는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킹 송신. 플랜 알파는 실패했다. 플랜 베타를 이행한다. 전원 탑승했는지 보고 바란다.”
“울프 3 송신. 울프 3을 비롯한 작전 인원 전원 탑승. 플랜 베타를 이행해주길 바란다.”
라져. 킹 아웃.
세하가 뒷면을 쓱 보고는 검으로 허공을 내려그었다.
그러자, 베어진 공간 사이로 거대한 차량이 나타나며 경적을 울렸다.
“오라버니!”
하연이의 외침에 세하가 차량의 뒷문을 열고 탑승하자 바이올렛이 운전석을 보며 외쳤다.
“하이드. 밟아요!”
“꽉 잡으십시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차량이 바리케이트를 밀어버리며 달려갔다.
“휘우~이거 스릴 넘치는데요~!”
“지금 스릴을 따질 때가 아니다, 하피. 언제 공격이 들어올 지….쳇….빠르군. 서하연. 공격이 감지됐다. 위치는?”
“본 차량 후방. 특경대 차량들이 고속접근 중입니다! 무장은 대전차무장을 비롯한 대위상력장비!”
“아주 무장을 하고 왔군…..좋아. 그러면 이쪽도 당하고만 있을 순 없겠지….하이드. 최고 속도로 밟아라. 추적은 우리가 막아
볼 테니까.”
티나가 거칠게 뒷문을 열어젖히며 자신이 애용하는 대전차라이플을 꺼내들었다.
“잠시 동안만 악령으로 돌아가주마. 악령을 맞이해라.”
티나의 총이 불을 뿜자 차량 하나가 바퀴를 잃고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넘어졌다.
그러나 그것 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곧바로 차량들이 밀고 들어오며 공격을 개시했다.
“무차별 사격인가….칫….슬비야, 레비아! 방어막을 쳐!”
“알았어!”
“네, 세하 오빠!”
두 사람의 위상력으로 짜여진 방어막이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총알 세례를 받아내자 묵직한 소리들이 울려퍼졌다.
“일반적인 총알이 아니다. 한 발 한 발이 맞으면 몸이 찢길 정도의 철갑탄이다. 방어를 늦추지 말고 집중해라.”
그 말에 세하가 공중에서 건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걸려온 시비를 안 받아줄 만큼 착하지는 않거든요!”
무거운 소리와 함께 건블레이드가 불을 뿜었다.
“좋아. 이대로라면 막을 수 있…..윽!”
슬비가 웃음을 지으려다가 방어막에 가해진 엄청난 압박감에 신음소리를 내버렸다.
“오라버니! 공중에서 미사일 다수 확인!”
“공중이라고? 이것들이 진짜…!!”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격들에 방어막을 넘어 열기가 전해졌다.
“이 열기는…..네이팜탄인가?! 같은 편까지 말려들게 할 생각인가!”
티나가 드물게 놀란 말투로 상황을 판단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네이팜탄의 지속적인 고열에 화상을 입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 때, 슬비가 세하를 보았다.
“세하야. 공중은 내게 맡겨줘. 어떻게든 해볼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려고? 방어막 밖은 총알의 밭이야!”
“알아. 하지만 이대로는 열에 눌리고 말잖아! 할 수 있어. 보내줘!”
슬비가 강하게 주장했다.
그것은 그녀의 특징적인 부분이었다.
자신이 확신을 가진 부분에 대해서는 물러나지도 굽히지도 않는 외골수적인 강한 말투.
오랜만에 듣는 변하지 않은 그녀의 말투에 세하가 슬비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차 천장 정도면 되겠어?”
“하늘만 보이면 돼! 잠깐만 시간을 벌어줘!”
그 말에 한 손으로 차량의 위를 잡은 채 철봉을 잡고 거꾸로 서는 요령으로 차량 위에 올라탄 세하가 하늘에 떠 있는 헬기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7년 만의 공중전 코스는 뭐야?”
“마른 하늘의 날벼락으로 하려고. 시간 좀 벌어줘. 한 방에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거니까.”
슬비가 전하들을 조작하기 시작하자, 세하는 하늘에서 그녀를 공격하려고 드는 드론들을 건블레이드와 화염으로 격추시키기 시작했다.
“이세하 씨! 중간 지점 돌파했어요! 그리고 해상 함선에서 미사일 발포 징후에요!”
쉴 틈을 안 주네!
세하가 멀리서도 보이는 해상 함선의 분주한 움직임에 건블레이드를 꺼내들려고 하자, 티나가 그를 불렀다.
이세하, 이걸 써라. 대 함선용 미사일 발사장치다.
티나가 건네주는 미사일 발사장치에 세하가 묵직한 무게를 어깨에 매고는 목표지점을 조준해 발사하기 시작했다.
오렌지 색 긴 꼬리를 흩날리며 날아가는 미사일들이 함선에 적중하자, 적중한 부위에서 불꽃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세하야! 준비 완료야!”
“그래. 부탁해, 슬비야!”
세하가 슬비를 자신의 품에 안은 채 방어막을 펼치자, 슬비가 모아둔 전하와 헬기들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떨어져라아아아아!!!”
슬비가 지휘를 하듯 손을 내리자,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번개가 헬기들을 덮치고는 그대로 밑에 있는 특경대 차량에게까지 내
려 꽂혔다.
“후우….성공했다…”
슬비가 지친 표정으로 그의 품에 안기자, 세하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고 차량 안으로 돌아왔다.
“예상보다 간단하게 끝났네요. 설마 헬기랑 차량들을 동일선상에 둔 채 날려버리실 줄이야….”
“과….과찬이세요…..그나저나 이걸로 끝인가요?”
“네. 저희의 계산이 맞는다면 이대로 연구소까지는 문제 없을 겁니다.”
그 때 연구소 앞을 보고 있던 하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 앞에 벽이!
벽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적어도 출발하기 직전까지 분석한 지도에서는 벽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오기 전에 저러한 벽이 설치되었거나, 또는 자신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연구소의 방어 시스템이라는 소
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차량의 속도를 줄이는 것보단 다른 루트를 찾아서 계산하는 게 빨랐다.
하연이 들고 있던 노트북을 두드리며 모든 루트를 계산했다.
“이세하! 연구실 정면에 폐쇄 벽이다. 해킹이나 다른 수단으로 어떻게든 저걸 뚫어야 한다. 방법은 있나?”
“하연아. 최적 루트 계산은?”
“최적루트는 저 벽을 정면 돌파 하는 겁니다. 돌파 시 10분 내로 연구실 심층부까지 돌파 가능합니다. 돌아가게 될 경우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안되겠군. 여기서 내 모든 탄약을 사용해서 벽을 뚫어보겠다.”
티나가 허수공간에서 무기를 꺼내려고 하자, 세하가 그녀를 막았다.
제가 할게요. 탄약은 아껴두세요. 그리고…..고열과 충격파에 주의해주세요.
세하가 차량 위로 올라타서는 자신의 오른쪽 팔의 옷을 걷었다.
“오랜만에…..조금 실력을 내어볼까…..”
세하가 오른손에 검은 색의 불꽃들을 모으며 웃기 시작했다.
올라와 있는 벽은 꽤나 두꺼워 보였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열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할 정도로 두꺼웠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한계까지 억제하고 있던 힘이 조금씩 풀려났다.
손에 동그랗게 보인 검게 빛나는 구체를 든 채 세하가 뛰어올랐다.
검은 별에……잠겨라.
벽에 닿는 순간, 폭발보다 한 발 늦게, 충격파와 굉음, 그리고 엄청난 고열이 그들을 덮쳐왔다.
눈이 멀듯한 빛이 터진 뒤 보인 것은 폭발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융해가 되어버린 연구소를 지키던 두꺼운 성벽 같은 벽이었
다.
이게…..세하의......힘…….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신서울에서의 힘을, 캐나다에서 늑대개 팀을 구할 때의 힘을 보았기에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이 힘은 지금까지 보여준 힘이 장난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티나가 중얼거렸다.
걸어 다니는 재앙이군.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여전히 이세하였고, 여전히 착해빠지고 무른 이세하일 뿐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되고 조금 냉정하게 됬다고는 해도 여전히 자신의 마음 속 가장 안 쪽에서 자신을 일으켜주는 단 한 사람이었으
니까.
이윽고 차가 안으로 도착하자, 모두가 차에서 내려서 우두커니 서 있는 세하를 향했다.
“이세하 씨 고마워요….덕분에 한 번에 들어올 수 있….?!”
바이올렛이 다가가다가 세하 앞에 펼쳐진 피투성이의 지옥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세하 씨가 한 걸까.
아닐 거야.
하지만 세하 씨 밖에 없잖아.
하지만 세하 씨는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지 않을텐데.
뭐야.
뭐야.
뭐야.
바이올렛이 숨을 쉬는 법을 잊은 것처럼 연신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슬비가 주먹을 꼭 쥔 채 세하에게 다가왔다.
“세하야……네가…..죽인…..거야?”
“……아니야. 내가 온 시점에서…..전부 죽어 있었어…..”
세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7년 전 내부차원에서 사라질 때 자신을 보며 은이와 경례를 해주었던 특경대원들이었다.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만남을 원하진 않았다.
이미 늦어서 되돌릴 수 없는 이런 잔혹한 만남을….원하진 않았는데…..
세하가 묵념을 하듯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콜록거리는 소리가 슬비의 귀에 들려왔다.
“세하야….방금….콜록거리는 소리가….”
“…..나도 들었어. 이쪽이야. 희미하게 사람의 기척이 느껴져.”
세하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데리고 천천히 기척이 나는 곳으로 향했다.
아…..오랜만이네….다들…..잘들….지냈어?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였다.
한 번씩 꿈에서도 들었던 목소리였다.
자신이 인간의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해준 7년 전 마지막 만남을 되새길 때마다 생각나던 그 목소리였다.
만나고 싶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었다.
하지만….이런 만남을 원한 건 아니었다.
부서진 장비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군데군데 살점이 흩뿌려진 채 애써 출혈 부위를 누른 채 억지로 웃고 있는 그녀를 보고 싶
은 건 아니었다.
“은이….언니….”
“이야…..우리 슬비 잘 지냈어? 어째 볼 때마다 더 예뻐지니, 너는?”
걱정하는 슬비를 애써 달래듯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 세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그 말에 은이가 웃음을 지었다.
“평범한 이야기야. 범국가적인 권력들이 협조를 요청해서 온 곳에서 범국가적인 권력들이 은폐하려는 것을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것을 막으려다가 이곳에서 죽어가는 이야기….쿨럭…”
은이가 피 섞인 기침을 토하자, 슬비가 황급히 달려가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다.
만지지 마!!
갑자기 큰 소리를 낸 세하의 모습에 슬비가 멈추었다.
“세하야….왜…? 언니가 다쳤잖아! 빨리 치료해야지!”
“…..만지지 마, 슬비야. 저주 옮을 지도 모르니까…..”
“저….주?”
슬비가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자, 엘리가 은이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파악하기 시작했다.
“…..어때….할 수 있겠어?”
“…..무리. 치료 할 수 없어…..지독한 저주가 심장까지 침식되어 있어…..이대로면….길어봤자 10분일 거야…..내가 할 수 있는
건….이 사람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진통제를 놓아주는 것 정도일 것 같아….”
“그럴 수가….꼬마 아가씨! 어떻게든 안되나요?”
“……미안해. 하지만….치료를 하려고 해도 늦었어. 이미 신체 기능의 대부분이 유실된 상태야. 어떤 의사가 와도 살릴 수 없
어….”
“그럴 수가……세하야! 어떻게든 해줘! 너 우리 치료도 해줬잖아! 그러니까 이런 것도 할 수 있을 거잖아!”
그런 그녀의 표정에 하연이가 한숨을 쉬며 팔을 걷었다.
“오라버니.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하지 말라는 명령은 내리지 마세요. 저는 이런 걸로 오라버니나 다른 분들이 슬퍼하는 걸 두
고 볼 수 없으니까요.”
하연이가 자신의 손가락을 작은 단검으로 베고는 그녀의 양팔과 양 다리 그리고 이마에 문장을 그리며 은이에게 말했다.
“이건 저주를 태우는 술법입니다. 이걸로 송은이 님의 저주를 해제하고 안을 치료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극도의 아픔과 통증이
동반됩니다. 그러니 부디….이 악물어 주시길 바랍니다.”
“아아…..당신….되게 친절하네….후훗….그래도 상관 없어. 아픈 거에는 은근히 일상화 되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그럼 부디….버텨주시길…..”
저주여. 불타라. 상처여. 사라져라. 원초의 불 가동.
은이의 몸에 그려진 문장에서 불길이 솟아나더니 그대로 그녀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은이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송은이 씨! 세하 씨. 지금 서하연 씨는 뭐하는 거에요?!”
“…..좀 무식하게 하는 거죠. 시간이 없으니까 말 그대로 최대출력으로 저주를 해제하니까, 저주의 해제의 불길의 뜨거움이 안
에서 날뛸 거고, 동시에 정지되었던 신체 기능을 태워버리고 그 기능을 다시 재생하고 있으니…..사실상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는 기분일 거에요.”
버둥거리던 그녀가 거친 숨을 멈추고 서서히 편안한 숨을 내쉬자, 하연이 미소를 지었다.
“이런 무모한 술법을 견디시다니….역시 오라버니의 동료 분이시네요…”
“헤헤….죽을 뻔 했다고….”
은이가 휘청거리며 하연의 품에 안기자, 하연이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보낼 게이트를 열었다.
잠시 쉬고 있어주세요. 금방 이 분들을 모시고 돌아갈 테니까요.
그녀를 영역으로 보낸 하연이 돌아서자, 슬비가 달려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하연 씨…..하연 씨….고마워요….은이 언니를 살려주셔서….고마워요…..”
울먹거리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하연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인 걸요. 저야말로 감사해요. 고맙다고 말해주셔서.”
자신의 품에 파고 드는 슬비의 작은 몸에 하연이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
이런 작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짐을 지게 했던 것일까.
지금도 겨우 25살 밖에 안된 아이인데.
내부차원에서는 7년 전부터 이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살아왔을 작고 여린 아이.
그리고 그런 그녀와 함께 망가지다 못해 마모가 되어버린 자신의 오라버니.
그리고 그런 두 사람과 닮아있는 두 사람의 동료들.
가슴이 미어졌다.
이런 작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고마워 하는 이 작은 아이가.
너무나도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누나는?”
“의료기사단에 바로 보냈어요. 지금 안정을 취하게 하기 위해 회복실에 보내두었다고 연락이 왔네요.”
그 말에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 슬비와 달리, 앞에 써져 있는 은이가 남긴 메시지들을 보고 있던 세하의 표정은
굳어져만 있었다.
“세하….야?무슨 일 있어?”
“…….생각보다 빨리 만나겠다 싶어서. 그 녀석들을.”
“그 녀석….들?”
슬비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자, 세하가 뒤에 있는 특경대들의 상처를 보며 중얼거렸다.
“…..특경대 분들의 몸에는 자상(찔린 상처)만 있는 게 아니야. 날카로운 무언가에, 그것도 정확하게 목의 동맥 부분이 찢겨져
있었어. 그리고 상처가 나는 방식은…..”
세하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 확신은 없었다.
어쩌면 그 녀석처럼 어디선가 살아남은 실험체로서 이용당하던 불쌍한 생명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수라도를 헤쳐 나오면서 얻은 기술이 그 녀석 하나만의 전유물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추측에 근거한 말을 더 이상 내뱉지 않았다.
괜한 엇나간 추측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망가지는 건 보기 싫었으니까.
망가지는 건 자신 뿐이면 족하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착각한 것 같아. 들어가자. 은이 누나가….여는 법을 남겨두었으니까.”
세하가 은이가 필사적으로 써내려간 정보들을 내려보며 암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철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하연이가 이동하면서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둘로 나누어서 작전을 진행합니다. 이곳은 동쪽 연구실과 서쪽 연구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동쪽 연구실은 늑대
개 여러분께서 가주세요. 그곳에서 트레이너 씨로 추정되는 분이 실험당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서쪽에서는 저희가 연구실의
자료나 그 분의 실험에 관련된 자료가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지도에 관한 건 이걸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연이가 내부 지도를 담은 손목시계 형태의 장치를 건네자, 티나가 받아들고는 자신의 데이터와 동기화 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세부적인 지도이군. 고맙다. 서하연. 나중에 트레이너가 큰 부상을 입거나 하면 그 때는 연락하겠다. 지원해주겠나?”
“물론입니다. 기사단은 여러분의 뒤에 있을테니까요.”
티나가 먼저 앞으로 향하자, 늑대개 팀도 그녀를 따라 동쪽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세하 씨. 이슬비 씨를…..잘 부탁드려요.”
“맡겨주세요. 털끝 하나 못 건들게 할테니까요.”
그의 평소 같은 말투에 하피가 미소를 지어주고는 늑대개 팀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그럼 우리도 가볼까?”
웃으며 앞장서 간 세하가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표정을 지우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네가 뭘 꾸미든 무슨 짓을 하든 내 동료들에게 손대기만 해봐라….너의 그 자랑인 창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하게 부숴줄 테
니까.
흔들리는 빛 뒤로 세하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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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firsteve입니다.
이것저것 사정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오니까 이상하리만큼 게시판이 활발하군요.
어쨌든 드디어 시작된 대립의 시작입니다.
과연 지도에 표시조차 되지 않는 곳에 있는 비밀은 무엇일지.
그리고 세하가 말하는 그 녀석들이란 누구인지.
다음 편을 기대하며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여러분.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하루에 행복한 일이 가득하기를 멀리서 바랍니다.
지금까지 firsteve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