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1-10
한스덱 2018-09-15 0
그녀가 이런 지옥같은 전장에서 4일이나 무사히 생존하는 데 성공한 이유는, 자신이 직접 정성껏 가꾼 쑥대밭에서 전속력으로 달아나는 동시에 구상해낸, 적들의 중요 목표인 자신의 목숨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한 가지 계책 덕분이었다.
그 게릴라 공격의 작전명은 ‘숨바꼭질’이었다. 참고로 이건 그녀가 실제로 지은 작전명이다.
그녀는 차원 전쟁 시절 선두에서 팀을 이끌던 경험 덕분에 군단의 참모장 급은 아니더라도 유능한 인간 지휘관에 비견될 정도의 지혜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 지혜와 더불어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외부차원에 대한 간략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그 어떤 인간 지휘관도 지금까지 마주하지 못한 전장의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작전을 구상해냈다. 그렇게 탄생된 그 작전은 그녀를 쫓는 차원종들을 모두 술래로 만들어버릴 만큼 효과적이었다.
그녀가 직접 역전의 용사가 되어서 자신의 목숨을 4일동안 방어하는 데 성공할만큼 이 작전을 효과적으로 만든 정보는 바로, 외부차원이 내부차원보다 대략 100배는 더 넓은 전장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적들의 총 합은 일인 군대의 100억 배 이상이었고, 외부차원의 곳곳은 그 적들이 이미 점령했지만, 적들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들의 점령지를 모두 철저하게 감시할 수 있을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총 인구수가 몇 십억에 해당하는 인간들이 내부차원의 모든 장소를 두 눈 만으로 철저하게 감시하는 게 불가능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론 군단은 내부차원의 기술력과 무기의 발전에 기여할만큼 충분한 기술력도 가지고 있었지만, 내부차원에서는 정찰위성, 혹은 cctv라고 부르는, 자신들의 점령지를 감시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은 인간들 입장에선 원시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만큼만 가졌을 뿐이었다. 게다가 외부차원의 사회는, 내부차원에서는 ‘기술 독재’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대부분의 기술들이 군단 내 권력자들의 손아귀 안에 꼼짝없이 갇혀있었다.
그녀는 지구 면적의 약100배 크기라는 엄청난 넓이의 전장에 존재하던 은엄폐물들, 그러니까 하늘에 3 개의 태양이 떠 있던 숲 속 깊은 곳,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진 사원의 폐허, 심지어 그녀의 손에 박살나기 전까지는 군단이 직접 세운 거점이었던 잔해 더미나, 원시적인 부락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차원종이 살고 있던 움막 뒤 등의 장소들을 자신의 은닉처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는 반복되는 전투를 대비할 일정 컨디션의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수면을 취하거나 식사를 하는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같은 장소에 10 분 이상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군단의 그 어떤 첩보부대도 그녀의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설령 그 첩보부대가 90퍼센트의 확률로 적중할 만큼 정확하게 발견한 위치로 군단의 정예병들을 투입시켰어도, 그 정예병들은 모닥불을 피웠다는 흔적마저 깔끔하게 사라진 그 강변에서 헛탕만 친 채 강가에 있던 바위를 걷어찼다가 그 암석 덩어리가 자신의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그녀는 이 게릴라 작전의 성공에 필요한 기동성은 자신의 튼튼한 두 다리를, 생존에 필수적인 보급품을 약탈하기 위해 필요한 치명적인 위력은 자신의 위상력과 건 블레이드를 기동성과 같이 활용하였다. 그리고 이 차원의 모든 게릴라 작전의 성공을 결정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은밀함은, 군단의 정예병들이 그녀가 휴식을 위해 머무르던 그 강가에서 모닥불을 피웠다는 사실을 돌멩이 몇 개가 다른 것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는 사실로 겨우 추측할 수 있을만큼 그녀가 치밀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충당했다.
게다가 그녀는 그 게릴라 작전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소망을 맘껏 누렸을 뿐만 아니라, 군단의 중요 거점 몇 개를 분진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성과를 냈다. 게릴라 작전의 중요 목표인 생존을 오히려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성과는, 인간들 모두의 소망인 차원 전쟁의 승리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만큼 대단했다. 참모장은 이기적인 계획을 위해 외부차원이라는 거대한 신체 속에다 잡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조그맣지만 제법 치명적인 기생충 한 마리를 직접 집어넣은 꼴이었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참모장을 미워하는 군단의 일원들은 그녀가 외부차원에 납치된 이후부터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하지만, 인간이 이루어낸 기적과 같은 전설에 맞먹을 업적으로 기록될 사실들을 자신이 차원 전쟁에서 쌓아올린 것들 위에다가 올려놓고 있는 그녀는 더 이상 숨바꼭질을 즐기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4일 연속 부지런하게 뛰어다니느라 지쳐버린 것 뿐만은 아니다.
이 최정예 일’인’ 군대마저도 외부차원에서의 독자생존을 4일 이상 유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만큼 한계까지 지쳐버리고 만 것이다.
이 위의 사건들은 다른 인간들에겐 자랑과 같을 업적이겠지만, 그녀에게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그녀는 처음 외부차원에 왔을 때부터 차원압력 때문에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모두 피하거나 막는게 충분히 가능했던 공격의 일부를 몸으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전투 이후로 더욱 약해질 수 밖에 없었던 그녀가 약 4일 동안 외부차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전투로 최대한의 이득을 얻으면서도 지독할 정도로 신속하고 철저하게 움직인 덕택에, 인간들의 전쟁의 중요 보급품인 탄약과 마찬가지인 위상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지금의 그녀가 군단장보다 약한, 하지만 내부차원 기준으로 A급에 해당될 차원종으로만 구성된 정예 부대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면, 그런 부대 정도는 차원 전쟁 시절에 10 부대도 넘게 베어버린 그녀마저도 지금은 모두 베어버릴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나마 신체는 급작스러운 압력의 변화에 적응해냈지만, 그 내부차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차원압력은 한계에 도달할 만큼 지쳐버린 그녀의 몸을 여전히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대단한 영웅도 결국에는 괴물이나 악마가 아닌 인간이었다. 그래서 차원 전쟁을 견뎌낸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그녀의 정신마저 자신의 행방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감옥에 홀로 갇혀버린 상황에서 누구나 느낄 외로움과 공포, 그리고 적들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의심 때문에 조금씩 마모되고 있었다. 그나마 자신이 감상했던 외부차원의 아름다운 풍경들과, 그 어떤 반짝이는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전우들, 그리고 자신이 지켜낸 내부차원을 전부 다 준다고 해도 절대로 안 바꿀 아들을 지금 이 상황에서 추억할 수 있을만큼 그녀의 성격이 눈부셨기 때문에 정신이 마모되는 선에서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4 일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무거워진 눈꺼풀을 억지로 뜬 채, 가죽 망토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추위를 피로와 같이 견뎌내면서도 조금의 빈틈없는 철통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녀가 외부차원에서 맞이했던 다른 밤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 어떤 인간 지휘관도 이 승산없는 싸움을 포기하기 위해 주둔지 창고 어딘가에 처박힌 먼지 쌓인 백기를 찾을게 분명했지만 그녀는 아직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 외로운 전쟁에서 승리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였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승산없는 전쟁에 강제로 참전할 때부터 승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적에게 내준다는 항복마저도 포기한 지 오래였다.
이미 그녀의 목숨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아들, 전우들, 그리고 내부차원과 다시 만날 순간을 저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루는 게 불가능한 승리와, 저버리는 게 불가능한 항복 모두를 포기하는 대신, 단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목표는, 부하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는 유능한 지휘관이라면 승리가 불가능한, 하지만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의미한 굴욕을 참아내고 용감하게 내릴 명령이었다.
그렇다. 그녀가 외부차원에서 처음 마주한 그 벌판에서 승리한 이후 부리나케 달아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외부차원 생존 작전의 중대 목표는 승리도, 항복도 아닌 ‘후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화풀이라도 하기 위해 어딘가에 있을 군단장의 영역으로 무작정 돌격해버리지 않고,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이고 자신 또한 애타게 돌아가고 싶은 내부차원으로 무사히 후퇴하기 위해, 전투를 한계까지 줄여가며, 최소한의 보급품만으로 연명하며, 그러면서도 최대한의 이득을 챙기는 걸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