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나는 누구를 좋아하고 있는 거지?
설현은바이올렛 2018-08-25 0

1
은발의 소년이 손가락을 앞으로 가르킨다.
휭~ 휭~ 휭~
보라색 위상력이 공중에 수없이 생기며 빛을 뿜어낸다.
쾅쾅쾅-!
"빠르네." 군단 참모 애쉬
이세하는 재빠르게 사이킥 무브해서 애쉬의 사선으로 파고들었다. 반쯤 부러진 건 블레이드를 휘둘러 목을 베었다고 생각했을 때,
사라졌다! 눈앞에서 애쉬는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빠르게 이동한 게 아니다. 존재 자체가 아예..
"욱...!" 뒷목을 잡히며 땅에 처박히는 이세하
애쉬는 텔레포트를 사용해 이세하를 제압했다.
"움지이지 마!!" 이슬비
슬비가 타게팅을 마치고 경고했다.
애쉬는 멀거니 위를 바라보았다. 버스 두 대가 요격대기중이었다.
"바로 추락시켰어야지." 슬비에게 핀잔을 준 후 손을 뻗어서,
보라빛 위상력이 용처럼 위로 승천했다.
콰가가아아아앙~ 버스 두 대가 불타서 박살나버렸다.
그 사이에 세하는 개처럼 기어서 도망쳤다.
"괜찮아, 세하야?!" 슬비
"어, 응.." 이세하
애쉬는 다시 손짓했다. 그에 반응해 보랏빛 구가 수없이 생성되고 요격할 준비를 갖췄다.
"죽이기 전에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애쉬
레벨이 다르다. 고작 검 하나 들고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이세하는 자신 수준의 클로저 100명이 있어도 저 은발 소년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는 혹시 사람이야?" 이슬비
"농담한 거지? 화나게 하자 마라." 애쉬
"저런 괴물이 사람일 리가 없잖아.." 녹초가 된 세하
"하지만 말도 하고 외형도 사람처럼.." 이슬비
피융-! 피융-! 피융-!
보라색 구체에서 빔이 쏟아졌다.
"자기장 방출!!" 슬비의 주위로 보호막 같은 게 형성됐다. 하지만..
쾅! 쾅쾅!! 쾅쾅쾅!!
수없이 쏘아진 빔은 그런 약하디 약한 자기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었나?" 머리를 긁적이는 애쉬
폭발로 인한 먼지가 사라지자..
화력으로 인해 상의가 군데군데 찢겨진 세하가 보였다. 세하가 감싸안아 슬비는 안전했다.
"세하야, 괜찮아..?" 슬비
"응, 아직 살아있는 거 같아 아마도.." 세하
세하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마 등은 화상으로 인해 끔찍하게 변했을 것이다.
자신한테 몸을 던져가면서까지 여자를 지키려고 할 정도로 기사도가 있다는 것을 세하는 처음 알았다.
"분명 저런 센 기술을 사용하면 쿨타임이 있을 거야. 지금 반격을.." 세하
그런 세하의 바람과는 다르게,
휘윙~ 휘윙~ 휘잉~
애쉬의 손짓에 곧바로 보라색 구체가 다시 전장을 메웠다.
절망하는 이세하.
"정찰 삼아서 트룹을 보냈는데 바로 요격당해버렸네. 어떻게 안 거지?" 애쉬
"알게 뭐야.." 이세하
"인간들이 차원문을 만드는 장소를 예측할 수 있게된 거냐?" 애쉬
이세하는 삶을 포기했다. 저런 괴물 같은 거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나마 안도하는 건 유리를 살렸다 정도일까. 하지만..
세하는 옆을 바라보았다. 슬비도 함께 죽을 것이다. 지켜낼 수 있는 방법도 힘도 없다. 서유리를 살린 대신에 이슬비를 죽게 만들었다. 나는 구제불능이다.
"미안해.." 세하
"뭐가?" 슬비
"괜히 끌어들여서.. 죽게 만들어서 미안." 세하
슬비는 애쉬에 대한 경계를 풀고 세하에게로 다가가 안아주었다.
품에 안겨 놀라는 세하.
"나 잘은 모르지만 세하는 노력한 거지?" 슬비
"응..?" 세하
"사람들을 구하려고 날 필요로 했던 거잖아. 잘했어, 수고했어." 슬비는 부드럽게 세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또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격려받았다. 저주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애쉬 쪽에서 보라색 위광이 번쩍인다. 이건 막을 수 없다. 곧 온몸이 폭발로 인해 너덜너덜해지겠지.
"고마워, 세하야. 그동안 나한테 잘해줘서." 마지막에 슬비는 웃었다.
그 기억을 끝으로 세하는 죽었다.
2
띵동~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세하야~ 어, 문 열려있네. 들어간다?" 서유리
이세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벌벌 떨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분위기에 유리는 움찔했다.
"어디 아파? 괜찮아?" 유리
"유리..?" 세하
세하가 훈련에 나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아 집에 찾아온 유리였다.
"나.. 모르겠어. 너무 이상해.." 세하
"나한테 얘기해줘. 고민 상담 같은 거 잘은 못하지만 그래도.. 너한테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유리
뭐라고 얘기하면 좋은 거지?
죽으면 8월 24일 아침으로 되돌아 온다고? 곧 차원종이 사람들을 죽일 거고 현장에 가면 우리도 죽을 거라고?
말을 해도 문제고 말을 하지 않아도 문제였다. 그것이 세하를 미치게 만들었다. 진실을 말하더라도 정신병처럼 보이겠지.
"이길 수 없는 적이 있어. 가만 있어도 지고 싸워도 지고 도망치는 것도 안 돼. 어떻게 해야 해..?" 세하
"그건 음.." 유리
세하의 말이 두루뭉술해 이해할 수 없는 유리였다. 뭐라고 조언해야 좋을까..
"마치 악마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아." 세하
".........." 유리
유리는 세하에게 입을 맞췄다. 달콤한 키스를 서로 느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멈추게 만들고 싶은 걸지도.
"잠깐.." 세하
숨을 쉬는 사이 세하가 뭔가 말했지만 유리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계속 키스하면서 옷을 벗었다.
그를 응원해주고 싶다. 그를 외롭게 하고 싶지 않다. 이런 마음에서 나온 순수한 행동이었다.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지 마. 나.. 네가 처음이니까." 부끄러운 유리
"어, 응.." 아래에서 여자를 올려다 보는 건 기묘한 경험이라고 세하는 생각했다.
이런 와중에 떠오르는 건.. 슬비의 마지막 웃는 얼굴. 나는 누구를 좋아하고 있는 거지?
지금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가? 뭔가 다른 노력을, 머리를 굴려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자책의 목소리는.. 서유리의 나신을 보는 순간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