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우산 챙기세요
루이벨라 2018-06-14 6
-퇴근길 곳곳 소나기..."우산 챙기세요"
"아, 망했다..."
세하는 방금 전 폰에 따끈따끈하게 뜬 날씨 뉴스에 작은 한탄을 내뱉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햇볕이 쨍하고, 80%의 확률로 화창할 거라던 일기예보는 아주 당연하게(?) 빗나가서 귀가길에 비를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제야 확인해본 날씨 뉴스의 배너의 제목이 3시간 간격으로 계속 바뀌는 걸 확인한 세하는 '날씨가 참 변덕스럽네.' 라고 중얼거렸다. 근무 중에는 폰을 제때제때 확인하지도 못하고, 오늘은 유독 실내에서 일만 했기 때문에 바깥 날씨가 어떤지에 대해 확인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적지 않은 이 비를, 세하는 쫄딱 맞고 가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냥 눈 딱 감고 가면 되지 않나...'
사이킥 무브를 쓰면 단번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럴 때 쓰라고 배워둔 사이킥 무브는 아니었지만...그렇다고 비를 맞고 갈까? 자기는 일반인보다는 그래도 건강하다고 생각하니까 괜찮을 거 같았다. 그리고 아주 추운 겨울에 내리는 비도 아닌데, 독한 감기에 걸릴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생각했지만...영 찜찜했다. 사실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린다는 건 딱히 별 상관은 없었다. 그저 옷이 축축하게 젖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비가 약간 멎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비가 약간 소강상태가 되기를 기다리던 와중에, 세하의 옆에 스윽- 익숙한 인영이 눈에 비치었다. 자신과 같은 흰색 계열의 코트를 입은 팔이 불쑥- 접이식 우산을 내보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자니, 이번엔 팔이 세게 흔들린다. 나 무시하지 마!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제야 세하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유리를 보았다. 헤에~ 그제서야 봐주었다고 유리가 해맑게 웃는다. 유리의 손에 있는 접이식 우산을 보자마자 유리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짐작이 가지는 세하였다.
"..."
"뭐야, 우산 없어?"
"그렇지, 뭐...요새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서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게 미리미리 챙기고 다녀야지!"
솔직히 이 둘 중에서 누가 더 꼼꼼한지에 대해 '굳이' 따지자면 세하 쪽이었다. 드디어 세하에게 핀잔(?)할 거리가 생겼다며 유리는 참으로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사실 우산을 안 쓰고 가도 되었지만 이렇게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는 유리를 보자니 세하는 한숨과 같은 소리로 유리에게 물었다.
"미안한데 서유리, 나 우산 좀 같이 써도 되냐...?"
"맨입으로?"
"..."
"농담이야! 하지만 이런 경우 흔치 않잖아? 나도 좀 세하 기분 맛 보고 싶었다고."
도대체 내 기분이 무엇이길래?! 세하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유리에게 우산을 받아든 세하가 우산을 들었다. 우산을 빌려 쓰고 가야하는 입장이기도 했고, 세하가 유리보다 키가 더 컸기에 세하가 우산을 들고 가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접이식 우산이 그렇듯이, 보통의 장우산보다는 작은 크기였다. 혼자서 쓰고 가면 그런대로 크기가 알맞을 텐데, 하필이면 2명이서 쓰고 가고 있다.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었다. 우산이 모든 비를 막아주지 못할 건 뻔했다.
그래도 세하는 우산의 주인인 유리 옷을 젖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유리 쪽에 착 달라붙었다. 나중에 가서는 아예 유리를 옆에 끼고 걸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작은 우산을 나란히 쓰고 가는 사이 좋은 커플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세하는 별로 자각이 없었지만, 유리는 그런 생각에 머무르고 있는 모양이다. 화끈- 유리의 얼굴이 걸으면 걸을수록 빨개져간다.
'으...세하랑 너무 가까워...!'
이쯤되면 당사자인 세하는 너무도 태연스럽다는 게 참 얄미울 지경이었다! 세하의 집이 유리의 집보다 더 멀었기에, 유리의 집에 먼저 들른 다음, 세하가 유리의 우산을 가지고 그대로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유리의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유리가 극구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나, 나, 세하 집에 가도 되는데!"
"어...우산 안 돌려줄거라고 생각한다면 꼭 돌려줄게."
"그, 그게 아니야! 내, 내가 무~~지 가고 싶어서 그래! 운동 삼아서!"
"...그래?"
이 비 오는 날에 운동 삼아서 갈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세하가 그리 중얼거리는 게 들리는 거 같았다. 자기가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이유였다. 근데 이렇게 가슴이 콩닥거리는 일인데도, 좀 더 같이 걷고 싶다니 참 이상하지 않은가. 유리는 겨우겨우 마음을 추스리면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비가 오기에 걸어가는 속도가 평소보다 더딜텐데도 세하의 집에는 금방 도착했다. 이게 시간의 상대성이라는 건가...한 번 있어보이는 말을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세하가 차도 쪽으로 걷고 있던 유리를 덥썩- 옆으로 밀어붙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그 순간 난폭한 차량 하나가 물이 잔뜩 고여있는 웅덩이를 지나치는 게 보였다. 만약 세하가 유리를 옆으로 밀지 않았으면 유리가 쫄딱- 맞았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 이런 행동을 척- 척- 재빠르게 해낸 세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작 느긋하게까지 느껴졌다.
"으...다행히 흙탕물은 아니네...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흰색 특수복을..."
"세, 세하 옷이..."
"걱정 마. 곧 우리 집이잖아. 내가 맞는 게 차라리 낫지. 네가 그 먼 길을 물벼락을 맞은 채로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
"그, 그렇지...만..."
"괜찮아. 어서 갈 길이나 가자."
세하는 어차피 젖은 김에 유리만이라도 뽀송(?)한 상태로 되라고 일부러 유리 쪽에 우산을 기울어주었다. 옷이 젖는 게 싫어서 결국 우산까지 같이 쓰고 가는건데 그런 보람도 없이 물벼락을 시원하게 한 사발 맞아버렸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좋아하는 여자 아이랑 같이 찰싹- 붙어서 먼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건 결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세하의 집에 다다르자, 세하는 물기를 살짝 털어내고 유리에게 우산을 넘겨주었다.
"그럼 내일 보자고."
"아, 잠깐..."
다다랐다고 해도 세하의 집 입구까지는 그래도 거리가 되었다. 세하는 어차피 맞은 거, 저 가까운 거리에서 맞을 비가 얼마나 되겠냐며 괜찮다고 했다.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보자는 말을 다시 남기며 세하는 쏜살같이 현관으로 사라졌다. 유리는 잠시 멍했다. 우산을 건네받을 때, 손이 스친 거 같기도 했고!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유리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건 세하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비가 뜻하지 않게 와주어서 고맙다라고 할까? 집으로 들어가면서 세하는 생각했다. 일단 옷부터 세탁기에 넣어두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야지, 라고.
[작가의 말]
하다못해 이젠 뉴스 제목으로도 글 쓰는 난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