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나비 쫓는 소녀

루이벨라 2018-06-06 9

※ 서양 동화풍
※ 지인분 썰 기반
※ 같은 썰로 쓴 먼젓번 소설과 이어지진 않습니다.





 나비를 쫓아가지 말아라.

 나비는 죽음의 끝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혼.

 나비는 지천을 떠돌며 순수한 어린 아이들을 찾는다.

 나비에게 매혹되어 숲으로 들어간 수많은 아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비를 쫓아가지 말아라.

 나비가 도착하는 그곳은 악마들의 손길이 닿는 곳이리라.



* * *



 이건 소녀의 마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소녀의 마을뿐만이 아니라 소녀의 나라에서는 제법 유명한 구전이었다. 실제로 사라진 아이들도 많았기에 아마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이 전설을 실제로 믿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은 그 나비들의 무리에게 끌려갈 뻔 했으나 간신히 살아서 돌아왔다, 혹은 친구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라는 휘황찬란한 모험담을 떠드는 이들도 있었다. 그 여부가 사실이든 거짓이든 사람들은 그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이 '나비' 소재를 읊고 다니는 음유시인은 사람들의 인기를 제일 많이 받았다.

 소녀 또한 이 구전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용감하게도 그 나비를 직접 목격하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나비를 목격했다, 그리고 끌려갈 뻔 했으나 살아돌아온 모험담을 만들고 싶다는 불순한 목적보다는, 그냥 한 번 보고 싶다, 라는 순수한 목적이었다. 어떻게 생긴 나비이길래 사람들을 매혹시켜서 스스로 끝을 걸어가게 만들까? 보자마자 현혹이 되는 예쁜 나비일까? 그게 아니면 평범한 나비의 생김새지만 마녀가 주술을 걸어 사람들을 홀리게 만드는 걸까? 소녀의 부모님은 소녀가 이런 거에 대해 너무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랬다. 당연히 그랬다. 이 세상에 자식을 잃고 싶은 부모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어영부영한 무작정 '안 돼' 라고 막는 단속은 소녀의 엄청난 호기심을 부풀리게 만들었고, 소녀는 사람들 몰래 매일 나비가 나타난다는 숲 속을 돌아다녔다.

 -숲 속, 어느 깊은 곳에, 꽃밭이 있대.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꽃밭.
 -나비가 그 꽃밭으로 이끈대.
 -그리고 그 꽃밭에는 마녀가 기다리고 있대.

 자신의 삼촌이 나비의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어느 아이의 정보였다. 소녀는 그 정보 하나만 믿고 이 무모한 숲 속 탐험을 계속 하고 있는것이리라. 마을 아이들에게는 철저한 비밀로 한 채 - 아이들이 알면 어른들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 하는 이 짧은 모험이 소녀에게는 매우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작지 않은 숲 속을 몇 번이나 꼼꼼히 다 **보았지만 아이가 말한 '꽃밭' 은 보일 기색이 없었다.

 정말 나비가 인도해야만 갈 수 있는 꽃밭일까?

 몇 달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던 소녀의 눈앞에 무언가가 지나갔다.

 "나비...?"

 처음에는 잘 볼 수 없었다. 초록색으로 우거진 이 숲 속에서 반투명한 나비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확실히 보통 나비는 아니었다. 그리고 보통 나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소녀는 이 나비가 '그 나비' 임이 틀림없다, 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예쁜 나비네...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드디어 소녀의 노력이 결실을 이룬 것인데 소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비는 천천히, 그리고 자신을 발견한 소녀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기색으로 훨훨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나비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취한 소녀는 꼭 나비를 따라가**다고 생각했다. 다른 쪽 머리에서는 '이게 꽃밭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녀의 주술일지도 모른다, 쫓아가서는 안 된다'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소녀를 설득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소녀는 나비를 쫓아갔다. 나비는 그제야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한 어느 어린 아이가 자신을 따라온다라는 걸 확신했는지 이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어느 새 소녀는 달음박질을 쳐야할만큼 달리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나비야...!'

 소녀는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런 소녀를 배려할 생각은 없는지 나비는 계속 제 속도대로 날아갈 뿐이었다. 나비만 쫓느라 자신이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조차도 소녀는 자각하지 못했다. 얼마나 그렇게 달렸을까. 목적지에 다달했는지 숲의 출구처럼 환한 빛이 내리쏟아졌다. 나비는 그곳으로 곧장 향했다. 소녀 또한 그곳으로 뛰어들어갔다. 어스름한 숲에 익숙해졌던 시야가 갑자기 쏟아진 빛에 익숙해지자, 소녀는 나비가 자신을 인도한 곳이 어디인지 볼 수 있었다.

 꽃밭이다. 숲 속을 아무리 걸어다녀도 찾을 수 없던 꽃밭이, 비현실적으로 너무 큰 꽃밭이 소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소녀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나비를 쫓았다. 쫓아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지도 뻔히 알면서 홀린 듯, 나비만을 쫓아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꽃밭. 그 아이의 말대로라면 이제 '마녀' 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방금 걸어온 길이 너무 어두컴컴해서 소녀는 머뭇거렸다. 그 때였다. 소녀의 앞에 잠시 멈춰있던 나비가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날라간 것은. 그 나비가 마지막으로 안착하는 곳은 소녀를 꼬신 어느 마녀의 어깨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소녀는 하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카더라 소문은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다는 걸.

 나비가 날아가 안착한 곳은 마녀가 아니라, 소녀의 또래로 보이는 어느 소년의 손가락 마디였다. 소년은 꽃밭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나비를 보고 살풋 웃음 짓는 모양새를 보아 나비를 한 두번 본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비가 작게 날갯짓을 했다. 그러자 소년은 나비가 데리고 온 깜짝 손님의 존재를 눈치채고 소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움찔했다. 소년의 눈동자는 선명한 황금색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영롱한 자태 때문에 소녀는 소년의 눈동자가 순간 보석인 줄 알았다.

 소년과 소녀는 말이 없었다. 아마 둘 다 낯선 이의 등장으로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
 "..."
 "..."
 "저..."

 어색한 이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서 소녀는 용기를 내고 물었다. 소년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마녀세요?"

 도리도리- 소녀는 다시 물었다.

 "악마에요?"

 두번째 도리도리. 마녀나 악마는 아니라는 모양이다. 그럼 도대체 누구라는 것인가.

 소녀는 천천히 다가갔다. 이제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당시 소녀의 눈으로 본 소년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소녀가 가까이 오자 소년의 손가락에 자리를 잡고 있던 나비는 비눗방울이 터지듯이 톡- 사라졌다. 소녀가 소년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자 소년은 움찔거렸다. 이런 거 전혀 익숙치 않나 보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빤히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마녀랑 악마가 아니면 넌 누구야?"
 "..."
 "어른들이 그랬어. 나비를 부릴 수 있는 건 악마 아니면 마녀래. 근데 넌 둘 다 아니라며. 그럼 넌 누구야?"
 "난..."

 소년의 첫마디에는 물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소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소녀는 당황해하며 자신이 입고 있는 앞치마로 소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겨우 눈물을 수습한 소년을 보며 소녀는 소년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한에서 정답을 찾아보았다.

 "그럼 넌 마법사야?"
 "..."
 "마녀도 있고, 악마도 있다면, 마법사도 있을 거 아니야? 그럼 그 나비를 부린 것도 마법인거야?"

 손뼉을 치며, 그런거냐고 묻는 소녀의 말에 소년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여러모로 비슷하긴 했다. 마법은 아니지만 마법과 비슷한 무언가. 그냥 적당히 둘러대는 편이 낫겠지.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인 소년에게 소녀는 반색을 표했다.

 "나 마법사 처음 봐! 그럼 아까 그 나비를 만든 것도 네가 마법을 부린 거야?"

 끄덕- 소년은 두 손을 깍지 낀 다음, 소녀에게 가까이 가져가 주었다. 소녀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며 소년이 손을 폈을 때, 아까와 같은 이쁜 자태의 나비가 떠올랐다. 소녀는 감탄해 마지 않았다.

 "너무 이뻐..."

 나비는 소년과 소녀의 주변을 휘휘 돌더니 소녀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나비 모양의 리본을 한 거 같은 그 생김새에 소년은 피식 웃었다. 소녀의 그 모습이 무척 어여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과는 다른 부분에서 포인트를 잡았다.

 "어, 웃었다!"
 "..."
 "웃는 거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가 보네."

 천진난만한 결론에 소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아무도 오지 않는 꽃밭에 앉아 의미없는 나비 만들기에만 열중하고 있던 소년에게, 소녀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애초에 소년은 자신의 가족 이외의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소년이 만들어 낸 나비와 관련된 헛소문 때문이었다. 헛소문이지만 그 내용은 너무도 잔인하여 소년을 자연스레 마을에서 멀어지게 했다.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갸우뚱거리는 소년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손과 악수를 시킨 소녀가 신나게 통성명을 했다.

 "난 유리야! 네 이름은?"
 "..."

 알려줘도 괜찮을까? 소년은 잠시 고민했다. 그것도 잠시, 소녀의 꾸밈없는 미소를 보고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세하."

 둘은 곧 친구가 되었다.



* * *



 비밀 친구가 생긴 후, 유리는 자주 세하를 찾아갔다. 세하는 언제나 꽃밭에서 자신만의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으스스하기까지 했던 나비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오히려 더 많이 만들어달라고 세하에게 조르는 지경이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노니는 나비 수는 점점 많아졌다.

 둘 사이에는 대화가 별로 없었다. 세하는 수줍음이 많았기 때문에, 언제나 유리 쪽에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도 이야기가 통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했다. 세하와 점점 더 친해지면서 유리는 왜 이렇게 착한 아이가 악마라느니 마녀라느니 등으로 몰리는 것이 참 이상하게 생각되어졌다. 세하는 그 쪽과 관련해서는 극히 말을 더 아꼈기 때문에 유리로서는 가늠이 잘 잡히지 않았다.

 "세하는 마법을 참 잘 부리는구나."
 "마법은...아니야."
 "나비가 없던 곳에서 나오잖아! 그럼 마법 아니야? 마법으론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 날, 유리의 감탄사적인 말에 세하가 반론을 내뱉었다. 이때까지 마법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하의 말에 유리가 다시 물었다.

 "그럼 마법이 아니면 뭐야?"
 "나도 잘 몰라...엄마 말로는 그냥 어떤 '힘' 이래. 그리고 사람들은 이 힘을 가진 사람들을 무서워한다고..."

 그래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거야. 세하가 마무리를 지었다. 불행을 주는 나비라는 것도 사실은 이 '힘' 을 가진 사람들만의 연락 수단용이었다. 눈에 잘 띄이지 않게 일부러 최대한 반투명하게 만들었건만, 가끔씩 몇몇 사람들이 눈치를 채고 나비를 쫓아가다 우연치 않게 당한 사고가 많아지면서 그런 구전이 내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불행을 주는 나비는, 헛소문이었다는 것이다.

 유리는 드디어 자신의 호기심이 다 풀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마음도 먹었다. 실제로 만나본 세하는 오히려 자신이 가진 이 '힘' 을 무서워하고, 사람들 품을 그리워하는 거 같았다. 세하가 마냥 나쁜 아이가 아니었기에 유리는 세하에게 마을을 구경시켜주기로 결심했다.

 유리의 제안에 세하는 강력하게 거부하는 모습이었다.

 "왜? 세하 너도 별로 다르게 생기지 않았는데!"
 "...그냥 싫어. 안 갈래."

 이렇게 강한 반발을 한 세하를 본 적이 없기에 유리는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유리는 끈질기게 세하를 설득한 다음에, 마을로 꼭 데려갈려고 했다.

 그런데 카더라식 소문은 참 뜬금없고, 갑자기 생성이 되었다. 그쯤에 유리의 마을에서는 이상한 소문 하나가 돌기 시작했다.

 바로 유리가, 밤마다 마녀들의 잔치에서 실컷 놀고 온다는 소문이었다. 유리가 마녀들의 나비를 쫓아가는 모습을 본 사람도 속속 나타났다.

 소문의 당사자인 유리는 기가 막혔다. 세하를 본 건 항상 낮이었고, 애초에 세하는 마녀 그런 게 아니었다! 막 열심히 설명하려고 해도 한번 의심을 한 사람들은 쉽게 경계를 풀지 않았다.

 유리가 마을에 겉돌게 되었을 때, 그 소문을 어째서인지 세하도 알게 되었다. 유리를 보자마자 세하는 미안하다고 대뜸 사과했다. 세하는 애꿎은 자신의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유리가 아무리 세하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세하는 계속 자기를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을 사람들의 눈 탓에 오래 만나지도 못해 곧장 떠나는 유리를 향해 세하는 갑자기 말을 꺼냈다.

 "나, 곧 떠나."
 "떠나...?"

 떠난다니. 설마 나 때문에?! 유리의 토끼 같이 놀란 눈에 세하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주기적으로 거주지를 옮긴다고 했다. 마침 때가 다가오기도 했고, 유리의 마을에 소문도 퍼지기 시작해서 그리 결정했다, 라고.

 유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뒤에 이어진 세하의 말은 더 청천벽력이었다.

 "어쩌면 다시는 안 올 수도 있어."
 "어, 어째서...?"
 "한번 크게 의심을 산 마을은...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 규율이라."

 유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 놈의 규율이야! 마을 사람들도, 세하네 식구들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다들 의심을 하고, 변명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건데!? 유리의 이런 하소연에 세하는 담담히 말했다. 익숙해졌어, 이런 거.

 유리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버럭했다.

 "거짓말!"
 "..."
 "세하 표정이 안 괜찮은 걸!"

 너무 정곡을 찔려서 세하는 잠시 주춤했다. 그래도 가**다며 시선을 피하는 세하의 모습에 결국 유리가 울음을 터트렸다. 다시는 안 돌아올 사람처럼 말하고, 이제 같이 놀 수도 없고...사실 울고 싶은 건 세하도 마찬가지였다. 입술을 앙 다문 세하는 유리에게 약속했다. 답지 않게 확고하게 내뱉은 그 말은 지금도 유리는 계속 기억한다.

 "만날 수 있을거야!"
 "...정말?"
 "응..."

 언젠가는 분명,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어딘가에서 계속 정착하며 살지는 않고, 그리고 가끔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돌아다니기도 하니까...시간이 얼마나 걸릴진 모르지만 세하는 다시 재회하게 될 순간을 약속했다. 유리는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떠나야 할 시간이라며, 세하와 유리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며 약속을 했으니, 서운치는 않았다. 둘 다 같은 마음이었다.



* * *



 그게 벌써 10년이 지나간 이야기다. 세하네 가족이 떠난 직후, 유리에 대한 뜬소문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잠잠해졌다. 이렇게 단칼같이 잘려서 유리는 참 당혹스러웠다. 정말 세하가 말한대로 자기 탓이라는 걸까? 아니다. 애초에 유리는 그런 소문이 생긴 것이 세하의 탓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세하가 떠난 이후로도 유리는 가끔씩 둘이 놀던 꽃밭을 찾아갔다. 꽃밭에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것은 그냥 들어가는 길이 아주 복잡했을 뿐이었다. 그 점 때문에 유리는 혼자 있고 싶을 때면 항상 그 꽃밭을 찾아갔다. 혼자 있는 이 적막감이 참 좋았다. 이 꽃밭에 오면 항상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찬찬히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어김없이 꺼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항상 날라다니던 그 나비가 없다는 점인데...

 "...?"

 오늘도 꽃밭을 찾아온 유리는 잠시 움찔했다. 한참 자기 혼자 추억보따리를 푸는 와중에 예의 그 익숙한 '나비' 한 마리가 자신의 옆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모양새도 색도 너무 똑같다.

 유리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기억보다 더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다. 유리는 믿을 수 없다, 며 뒤를 돌아보았다. 구름이 그늘을 만든 쪽에 인영 하나가 서 있다. 체구는...당연히 그 때보다 더 컸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안 자란 게 더 이상했다. 구름이 걷히면서 인영 쪽으로 빛이 들어왔다. 빛이 들어오자마자 먼저 보인 건 토파즈 같은 눈동자 한 쌍.

 유리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오래 걸렸지만, 정말로 와 주었다. 유리는 거의 안기듯이 달음박질치며 다가갔다. 입꼬리가 도무지 내려가지 않았다! 그런 유리를 보며 상대방도 덩달아 옅게 웃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만났다.





[작가의 말]

삽화는 여기에서 같이 볼 수 있습니다.
2024-10-24 23:19:4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