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29)
벨리에나 2018-04-12 0
리버스휠이 도착하기 하루 전, 베를린지부.
"자네까지 돌아와주니 든든하군, 미스틱."
열중쉬어 자세로 슈타인 앞에 서 있던 미스틱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제 고향과도 같은 곳이 위험한데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죠. 죄송해요, 너무 늦게 온 것 같네요."
"아냐. 늦지 않았어. 아, 아이들은 서울로 떠난 상태야. 저번에 알려줬던 사냥터지기 팀의 신규 요원 맥스는 총본부로 떠난 상태고."
"볼프강은 남아있는 건가요?"
"그래. 밤이 늦었으니 아마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겠지."
미스틱은 우아한 자세로 한손을 배에 감싸며 인사했다.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슈타인은 미스틱이 뒤도는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충고를 했다.
"남의 방에 들어갈 때는 문을 사용하도록."
"예, 예."
미스틱은 발걸음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나면서 문을 통과했다. 슈타인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누구보다도 사람과의 관계를 원하면서 소마처럼 무조건적인 미소는 보이지 않는다. 경계, 파악, 그리고 결과. 미스틱이 사람을 판단하는데 거치는 세 가지 과정이다. 경계하며, 상대를 파악하고, 상대가 안전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악수라는 결과를 내놓지만 상대가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자신의 검으로 목을 겨눈다. 참고로 볼프강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검을 겨누기도 했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볼프강은 지금처럼 검은책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다. 책 내부에 있던 사념이 흘러 나오면서 미스틱의 경계를 부른 것이다. 두 사람은 겨우 합의점을 보면서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의 발걸음은 어둠에서도 빛난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춤추기 전의 스텝처럼 보이기도 한다. 잘 빠진 허리와 무희로도 보이는 아름다운 미모가 그녀를 갖추는 요소였다.
미스틱은 볼프강이 쉬고 있는 방에 도착했다. 원래 같았다면 그림자를 통해 문을 뚫고 들어가겠지만 슈타인의 충고가 기억나면서 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잘 겁니다."
"나야."
"...... 설마 그 한 마디로 누구인지 파악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여전하네, 미스틱이야."
"맙소사."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볼프강이 다가왔다. 볼프강은 방의 불을 켜면서 문을 열었고 문 앞에 있는 미스틱을 맞이했다.
"이야, 오랜만인데? 너도 복귀한 거야?"
"응. 들어가도 될까?"
"물론, 어서 들어와."
볼프강은 미스틱을 방으로 들이면서 문을 닫았다.
미스틱은 볼프강의 방이 익숙한 듯 편안한 자리에 앉았다. 볼프강은 오랜만에 만난 동료를 위해 커피라도 타주려고 했으나 밤이 늦은 걸 깨달았다. 그는 맨손으로 미스틱의 앞에 앉았다.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애들이랑 흑지수도 그리워했다고."
"오세아니아."
"뭐?"
"원래는 이것보다 더 일찍 복귀할 수도 있었어. 맥스라고 했던가? 그 사람과 흑지수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서 내가 대신 오세아니아에 가게 된 거야."
그리고 침묵. 이야깃거리가 없어진 볼프강은 볼만 긁적거렸다. 미스틱은 싱긋 웃어주며 그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소식은 들었어. 총장이 그렇게 문제라면서?"
"어. 심각하게 문제야.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도망치고 싶어."
"그리고 아이들의 코드도 문제지."
미스틱도 슈타인에게 코드의 사실을 듣게 되었다. 볼프강은 그렇게 놀라워하지 않았다. 미스틱이라면 언젠가 알려줘야만 했다. 오히려 설명할 필요가 없어져서 편해졌다.
"재리가 알려준 뒤로 코드에 관한 걸 조사해봤어. 앨리스에겐 비밀로 하면서 코드에 관한 기록들을 얻기도 했고. 거기서 한 가지 선례가 있었어. 너도 아는 사람이 겪은 일이야. 미스틸테인."
"...... 창, 그 아이 말이야?"
"데이비드라는 자가 코드를 발동하여 미스틸테인을 강제적으로 조종했어. 완전한 복종. 해제 방법이 조금 신기했어."
"그게 뭔데?"
"오염된 위상력을 주입하여 코드를 망가뜨리는 거야. 예를 들면 차원종의 위상력이라던지."
미스틱은 자연스럽게 볼프강이 쥐고 있던 검은책을 보았다. 볼프강도 그녀의 시선을 보면서 책을 뒤로 치웠다.
"이건 안 돼. 이 책이 가진 사념을 해방했다간 아이들의 코드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신마저 오염 당해."
"하지만 방법은 있다는 걸 기억해둬. 최악의 경우라도 할 수 있다면 나처럼...... ."
미스틱이 말 끝을 흐렸다. 그녀는 볼프강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볼프강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미스틱. 그 아이는 너 때문에 그런 것이...... ."
샤아악!
날카로운 검이 공기를 가르면서 볼프강의 옆에 멈췄다. 한순간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해낸 일이었다. 미스틱의 눈은 살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그 말은 꺼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관리국장님께서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자책할 생각이야? 네가 화를 낼 대상을 똑바로 정하라고."
미스틱은 볼프강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검을 회수했다.
"알아. 내가 화를 낼 대상은 그 아이를 실험실에 가둔 그 여자야. 그래, 알고 있어. 하지만 내 책임도 있는 거야. 그 아이를 그대로 냅뒀더라면, 내가 도망치게 하지 않았더라면...... ."
미스틱의 가녀린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그녀는 고개를 점점 숙이고 있다. 볼프강은 그녀를 위한 행동을 했다.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팔을 쓸어내렸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떨리던 손을 잡아주었다.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면 그 여자를 네 손으로 보내버리고 싶었겠지. 미스틱, 넌 견뎌냈어. 더 이상 그 여자는 아이들을 건들지 못해. 아직 트라우마가 남은 아이들이 있지만...... 우리가 보살피면 돼. 눈 앞의 아이들을 지켜내면 되는 거야. 지금부터라도."
김재리는 느린 발걸음으로 이제야 리버스휠 착륙 지점에 도착했다. 사냥터지기 팀에게서 떨어져있는 김도윤과 에릭, 소마를 안아주고 있던 미스틱, 미니휠을 향해 거칠게 말하는 볼프강, 현재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떨고 있는 루나.
"앨리스. 대체 왜 그런 거야? 당신도 잘 알잖아? 당신이 신뢰하던 유니온은 없어. 그들과는 협력 관계가 되도 모자를 판국에 왜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
미니휠을 향해 말해봐도 현재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마침내 저 멀리서 검은 기체가 착륙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볼프강은 미니휠을 내버려두고 앞장 서서 걸어갔다. 먼저 사과해야해. 저들과는 대립해선 안 돼. 지부장께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우리의 뜻은 밝혀야해.
많은 사람들이 램스키퍼에서 내리고 있다.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 각각 다섯 명에 그들의 지도자 한 명씩. 그 외에 그들을 따라온 오세린, 베로니카, 쇼그, 김가면까지.
미스틸테인은 그리운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 앞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가리켰다. 금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사내, 볼프강이었다. 이세하는 예전에 봤던 그대로라고 생각하며 별다른 일이 없길 빌었다. 제이는 은근히 자신과 비슷한 역할로 보이던 볼프강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서유리는 이슬비에게 저 사람 잘생겼다며 칭찬했고, 이슬비는 서유리의 상황 파악 능력에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검은양 팀은 대부분 볼프강을 긍정적으로 여겼지만 늑대개 팀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나타의 혼잣말을 들 수 있다.
"뭐야, 저 거추장스러운 생김새는?"
볼프강은 자신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여인을 만났다.
"그쪽이 볼프강 슈나이더 요원인가요?"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이자 신서울 임시지부장 김유정이었다. 그녀와는 한 번, 간접적인 접촉이 있었다. 흑지수를 잃을 수도 있던 상황에서 김유정 덕분에 흑지수는 무사히 사냥터지기 팀 곁에 있게 되었다. 볼프강은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반갑습니다. 김유정 지부장님. 볼프강 슈나이더입니다. 예전, 당신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예...... . 저도 알고 있어요. 그렇기에 더더욱 찾아온 거예요. 우리도 당신들을 의심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
김유정은 램스키퍼에서 내리기 전, 이세하의 간절한 부탁으로 사냥터지기 팀과의 신중한 대화를 하기로 결심했다. 트레이너도 사과를 받을 수 있다면 그들과는 대화를 먼저 하겠다고 했다. 김유정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하이드에게 기대어 있는 바이올렛을 보고, 그 다음에 볼프강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는 늑대개 팀의 바이올렛 요원이에요. 보시다시피 부상 당한 상태죠. 사냥터지기 팀의 소마 요원에게 말이에요."
"저도 방금 전달 받았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직접 말해**다고 생각합니다."
볼프강은 자신을 따라온 사냥터지기 팀과 몇몇 사람들 중에서 소마를 가리켰다.
볼프강을 따라온 김도윤은 김가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도윤은 그에게 현재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통신 기구를 꺼냈다. 지금 몰래 김가면에게 가기엔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통신 기구는 에러가 뜬 상태로 파란빛을 띄고 있었다.
"바, 방해 전파?"
상황은 김가면도 동일했다. 김도윤을 발견한 김가면은 정보를 전달 받기 위해 통신 기구를 켰으나 마찬가지로 에러가 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절망한 표정을 발견했다.
볼프강은 미스틱 옆에 있던 소마,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을 때 소마와 함께 있던 루나를 불렀다. 볼프강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해결해**다고 믿었다. 그 전에, 미스틱이 다가와 김유정에게 소마를 가리켰다.
"소마 요원도 총상을 입었어요. 저기, 총을 들고 있는 요원에게 말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물론 있어요. 티나 요원."
티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장치를 가동시켰다. 하나의 장면이 텔레비전처럼 떠오르더니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의 영상이 나왔다. 멀리서 기술을 사용하며 날아오는 소마, 그런 소마를 말리기 위해 나서는 바이올렛과 루나. 그리고 티나에게 먼저 공격을 시도한 소마. 볼프강과 미스틱은 소마의 행동을 우발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소마의 행동은 고의적인 느낌이 강했다.
모두 영상을 집중하여 보고 있을 때였다. 소마를 향해 다가가던 미니휠. 그 모습을 발견한 트레이너와 제이는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이를 눈치 채지 못한 볼프강은 미스틱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소마에게 말했다.
"소마, 이건 아무리 봐도...... ."
철컥.
영상이 끝나기도 전, 소마는 톤파를 꺼내들었다. 소마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몸을 피하거나, 그녀를 말렸다. 소마를 말린 것은 볼프강과 미스틱, 루나, 김유정의 앞으로 나서던 트레이너와 제이, 그리고 티나까지. 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일반인을 보호하거나 주변의 사람을 지켰다.
"소마, 이게 무슨 짓이야!"
"그만둬, 소마!"
전격이 톤파에 모이면서 그녀에게는 어떠한 공격도 허용되지 않았다. 간신히 닿을 수 있던 것은 볼프강과 미스틱의 손길. 루나는 이번에는 막으리라 다짐하며 방패를 들었다. 그러나 소마의 공격은 그들이 예상하던 것이 아니었다. 소마는 순간이동처럼 빠르게 레비아에게 날아가며 그녀를 향해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빠른 공격을 했다.
"꺄, 꺄아아아악!"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레비아를 구출할 수 있던 사람은 트레이너였다.
콰직!
트레이너도 소마와 마찬가지로 순간이동과 같은 움직임으로 소마에게 다가가 그녀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몸이 옆으로 접힐 정도로 강한 공격을 받은 소마는 긴 체공 시간과 더불어 벽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트레이너의 과잉 대응에 깜짝 놀랐다. 트레이너는 레비아를 일으켜주며 볼프강에게 말했다.
"당사자가 잘도 말하는군. 이게 내 대답이다."
"이게 무슨 짓이야......?"
사람들의 그림자를 따라 걸으며 트레이너의 눈 앞에 도착한 미스틱. 트레이너는 그녀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트레이너가 과하다고 생각했던 검은양 팀은 트레이너에게 붙어서 그를 말렸고, 늑대개 팀은 위험한 표정을 하고 있던 미스틱을 말렸다. 미스틱이 꺼내들고 있는 검에는 오오라와 같은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다들 그만둬요!"
"멈춰요! 제발 멈춰요!"
김재리는 비실비실한 몸을 이끌고 사람들을 말렸다. 김재리와 같이 오세린, 베로니카도 흥분한 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먼저 나섰다. 그들이 나서면서 상황은 조금 정리되는 듯 싶었다.
루나는 소마에게 다가가 그녀를 일으켰다. 소마는 뼈가 뒤틀려서 몸이 꺾여있었지만 그녀의 치유 능력이 자연적으로 발동되어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루나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두려워하며 무서워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정신 좀 차려봐, 소마야."
소마는 허리가 돌아오면서 점점 눈을 떴다. 동공이 사라져있던 소마의 눈에 동공이 돌아왔다. 루나는 소마가 정신을 차린 것을 보고 기뻐했지만 소마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두려움에 떨며 루나를 붙잡았다.
"루나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야?"
"진짜...... 소마야?"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나는 지금...... ."
"소마."
루나와 소마의 곁으로 다가온 미니휠. 루나는 미니휠이 문제라도 여기며 방패를 치켜들었다. 미니휠에서는 빠르게 목소리가 나왔다.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 넌 내 자랑스러운 아이야. 그러니 엄마 말을 들어야지?"
콰직! 콰직! 콱!
루나는 미니휠을 부쉈다. 몇 번이나 내려치면서 산산조각을 냈다. 루나는 숨을 헐떡이며 뒤돌았다.
"이제 괜찮아, 소마......?"
소마는 톤파를 꺼낸 채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입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마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기쁨과 슬픔이 섞여있었다.
"네...... 엄마."
볼프강은 미스틱을 곁으로 데려오며 소마를 찾았다. 저 멀리, 루나는 털썩 앉은 상태로, 소마는 톤파를 든 채 서있었다. 아직 소마는 멀쩡하지 않다. 볼프강이 내린 결론이다. 볼프강은 외치고 싶지 않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미스틱의 말처럼 현재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코드 뿐이라고 생각했다.
소마가 온 몸에 불길을 휘감으며 달려오자, 볼프강은 소마 쪽으로 뛰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