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는 위상력과 함께 20화

검은코트의사내 2017-10-22 0

<겨우 이것 밖에 안 되는 건가?>

<하지만 잠재력은 뛰어난 아이입니다.>


내가 어린 시절, 날 연구하던 과학자들의 목소리였다. Union 소속의 연구원, 그리고 어른들의 수많은 목소리, 그녀의 아들이니 당연히 클로저가 되어야된다고 말했던 사람들, 두번 다시 떠올리기도 싫었던 과거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지금 누구와 만나려고 한다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낼 거 같았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도 클로저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그냥 해야 되니까 한 거 뿐, 그 시절을 떠올리니 내 처지에 대해서도 반복적으로 말하게 된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써가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다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 식당에 취직할 걸 그랬나? 다시 생각하니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알아보고 싶은 것도 있는 건 사실이니 모험가로 당분간은 활동해야겠다.


굳이 몬스터 토벌할 이유도 없다. 그렇게 심각할 상황도 아니고, 그냥 산속에 약초나 나물을 캐러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닌가? 몬스터도 하나의 생명체다. 그들이 여기 리플렛 마을을 공격해온 것도 아닌데 이래도 되나? 그냥 그들의 영역만 침범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모험가들은 몬스터 토벌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저 명예와 돈, 그들의 잔해를 얻기 위해서 그들을 사냥하는 거 뿐이다. 그 외에는 특정한 이유가 없다. 몬스터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을 위해 복수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이해는 하겠지만 대부분 전자의 이유만으로 몬스터들을 사냥한다. 원래세계에 있는 동물들이 인간에게 사냥당하는 이유와 같은 경우다.


나도 뭐,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 없다지만 그래도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물도 차원종도, 저마다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도 차마 인간이 동물을 죽이는 것은 못볼 거 같았다. 그리고 차원종들은 알고 보면 피해자였기에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들이 내부차원으로 오게 한 장본인은 바로 인간이었다. 차원종들은 그들만의 야생본능으로 행동한 거 뿐이었다. 그것을 인간들은 차원종의 침략이라고 보았고, 클로저들을 모집해 그들을 소탕한 것이다. 그 증거로 차원종들 중에는 정미에게 들었던 맘바라는 크리자리드와 늑대개 팀의 레비아에 대한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사냥 터지기 팀에 속한 볼프강 아저씨에게서 들은 슈브라는 차원종, 그들은 알고 보면 나쁜 녀석들은 아니었다. 다른 동물들과 똑같이 야생 본능으로써 활동하는 거 뿐이다. 외부차원과 내부차원을 잇는 차원문, 그곳을 호기심으로 넘어온 차원종들은 본능대로 때려부수고 그랬을 뿐이었다. 그들이 본능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우리 엄마가 외부차원으로 갔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덤벼들었다는 것이다. 차원종들 사이에서 그녀가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덤벼들었다는 건 그들만의 본능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애쉬와 더스트,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외부차원에서 다른 차원종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서 내부차원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흥미를 갖고 자신들의 놀이상대가 되줄 상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방식이 있듯이 차원종에게 차원종만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그들이 인간으로써 지켜야 될 기본적인 예의라던가 해서는 안 될일을 잘 알 리가 없다. 그러니 악역처럼 도시를 불타게 하고, 칼바크 턱스를 상처입히고, 우리를 궁지에 모는 그런 짓을 해왔던 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애쉬는 슬비에게 흥미를 가졌고, 더스트는 나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졌다. 엄마와 똑같이 이상한 소리나 하는 게 마음에 안들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애쉬를 죽이고 흡수해버린 더스트를 내 손으로 쓰러뜨렸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 다시한번 떠올랐다. 즐거웠다고, 마지막에 내 얼굴을 보고 죽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이다. 마지막까지 얄밉게 웃으면서 죽어가는 모습, 하지만 어떻게 죽든 나는 기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차원종을 지금까지 상대하면서 단 한번도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였다면 아마 내가 착해서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겠지.


"하아..."


그들의 사령관인 아자젤을 쓰러뜨린 뒤에도 나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녀석, 마지막에 죽는 것을 똑똑히 봤으니까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벼락을 맞아서 죽었다는 사실이 좀 황당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말이다.


"바람이라도 쐴까?"


안에서 끙끙 앓는 것보다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기분전환하는 게 우선일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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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마을을 돌아다닌다. 막상 밖으로 나왔는데 뭐해야될 지 몰라서 그냥 걸어다니다가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 다투는 거 같은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장사하는 분과 손님인 거 같은데 손님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 같았다. 그가 들고 있는 건 크레이프, 미카누나의 추천으로 의뢰를 요청한 식당 주인에게 알려준 레시피였다. 그 외에 아이스크림이나 케익같은 것도 알려주었고 말이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크레이프 파는 아저씨가 손님이 내민 화폐를 보고, 다른 화폐를 달라고 말하는데 손님은 이거 밖에 없다면서 곤란해하고 있었다. 처음보는 화폐다. 대체 뭐지?


"저기, 실례합니다. 그 크레이프, 제가 살게요."


일단 그 남자는 여기 리플렛 마을 사람이 아닌 건 확실했다. 어쩌면 이센 출신일 수도 있어서 이참에 이센에 대해서 이야기 들을 겸 내가 한번쯤은 구입하기로 했다. 크레이프 값을 대신 지불해주자 손님은 내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아뇨. 곤란해하는 분을 돕는 건 당연하니까요. 그런데 처음보는 화폐네요. 신기하군요."

"헤에? 저는 그쪽 분이 가지고 계시는 도구들이 더 신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으음, 하긴 내가 말할 처지는 아닌 거 같았다. 어? 잠깐만, 나는 품 안에다가 도구를 넣은 상태인데 내가 게임기나 스마트폰 같은 도구를 가진 걸 어떻게 알고 있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혹시 손님의 그 두 붉은 눈동자가 투시역할이라도 하는 건가? 자세히 보니 하얀 머리에 여기 이세계와는 안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었고, 목도리를 두르는 거 까지 보였다.


"아, 네. 저는 이세하라고 해요. 그쪽은요?"

"엔데. 그게 제 이름입니다. 혹시 그쪽 분도 이세계 사람이신가요?"
"네? 네... 그렇다면 엔데도?"

"하하하. 나이도 비슷한데 그냥 말을 놓아도 될 거 같은데? 같은 이세계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자고."


이세계는 다른 세계를 뜻하는 말이니 엔데가 나와 같은 지구에서 온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여기 세계 말고 또 다른 이세계가 있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아, 그것보다... 혹시 이런 사람 본 적 있어?"


엔데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하얀머리 소녀, 꼭 레비아같이 생겼다. 하지만 확실히 다른 게 티가 난다. 복장부터가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공주님 같은 이미지였다.


"미안, 잘 모르겠어. 찾는 사람이 누구야?"

"아, 내가 사는 세계의 공주님인데 여기 세계로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래서 찾고 있었는데 사람 찾기란 역시 쉽지가 않더라고. 미안해. 좀 더 얘기하고 싶지만 이분을 찾는 게 그만큼 급해서 말이야. 이만 가볼게."

"아, 잠깐만."

"응?"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돈이 필요할 텐데 그 화폐로는 못쓰잖아."

"음. 그렇네. 확실히 이대로라면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 화폐를 내가 사는 걸로 할 게. 부족한 돈이지만 당분간은 식비는 괜찮을 거야."

"어? 그래도 돼?"

"응. 물론이지."


엔데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금화 10개정도를 건네주었다. 수중에 있는 돈의 절반수준, 나도 먹고 살아야되니까 어쩔 수 없다. 의뢰가 항상 들어온다는 법은 없다. 그렇기에 최대한 돈을 아끼려고 하는 수밖에 없다. 엔데는 정말로 고맙다면서 화폐를 주었고, 내게 선물할 게 있다면서 목걸이를 주었다.


"이게 뭐야?"

"마력을 증폭시키는 장치야. 너에게서 강한 마력이 느껴졌거든. 혹시 마법사가 아닌가 생각했었어. 그 목걸이를 찬 다음에 <매직 소어> 라고 말하면 돼. 너는 여기 세계 사람이 아닌 이세계 사람이니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매직 소어? 엔데가 말한 거라면 여기 세계의 마법아이템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으음. 고마워. 어라?"


고맙다고 인사하려는 데 엔데는 어느 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이 목걸이, 시험삼아서 매직 소어라고 주문을 외우자 거짓말 같이 내 마력이 넘쳐흐르는 게 느껴졌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이런, 시선이 더 모여들기 전에 어딘가로 재빨리 뛰쳐나갔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17:3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