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에게 판타지를 경험시켜주자 (2)

비랄 2017-04-08 0


***



각설하고 말하겠다. 지금 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만든 안노운을 쳐죽이고 싶... 지는 않은 것 같다.


-끼룩 끼룩


파도 소리와 함깨 정적을 타고 들려오는 갈메기(나중에 듣자하니 갈메기가 아니라 신수라나) 소리.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백사장. 그를 끼고 있는 청렴하기 짝이 없는 고고한 바다. 그리고 주변에 즐비한 각종 휴양 시설들 까지. 정말이지 그 광신의 말처럼 휴양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만약 이곳에 강제적으로 들어온 입장이 아니었다면 기분이 이리도 더럽지는 않았을 거다. 애시당초 지구 어디의 휴양지도 비견할 수 없을 이런 휴양지라면 두팔 벌려 환영하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권하지도 않고 강제 여행을 보내다니, 그 광신도 참으로 어지간하다고나 할까?


"쿠오오오오!!!!!"


"발사아아~!!!!"


-퍼엉! 퍼엉! 콰앙! 쿠과과과과과...!!!


……정정. 저기 저 날아다니는 배에 있는 해적 꼬마하고 그 옆에서 대포에 얻어맞고 있는 하얀 드래곤에 비한다면 노운은 정말이지 성인군자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휴양지 바다에서 천지개벽의 대 전쟁을 벌이는 존재들이라니.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크하하하하하!! 데피! 미안하지만 이번 싸움은 내 승리다!! 권속들이어!"


-구오오오오오오!!!!!!!!!


…** 짱 쎈 하얀 드래곤이 울부 짖었다. 여하튼 그 드래곤은 ** ㅆ.. 아니, 이게 아니지. 어쨌든 멀리 떨어진 이 해변에서도 속이 울릴 정도의 대포에 맞고 있던 하얀 드래곤이 갑자기 땅이 흔들릴 정도로 포효를 외치더니 그 주위에서 수 많은 빛의 덩어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구 마음대로? 얘들아 가라!"


그 빛이 어떤 형상을 이루기 시작하자 하늘에 떠있던 배에서 어떤 것들이 빛들을 향해서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몇번이고 봤던 순백의 섬광이 다시 수평선 너머를 덮어버렸다. 정말이지 저런 싸움이 눈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펼쳐지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결계가 멀쩡한 걸 보면 아직 승부는 안났나?"


-[HP가 둘다 1할은 남았어. 아츠는 용화를 해제했고, 데피는 배가 침몰. 이제 신나는 캣 파이트의 시간이지.]


"보통 캣 파이트면 아츠가 지지?"


-[져주는 거지. 저걸 봐라. 아무리 봐도 저건… 11살의 초딩 꼬마랑 탄탄한 근육질 성인 남성의 싸움이라고. 지금 상태에서 걸린 제한을 생각한다면 데피가 십중팔구는 져.]


"그래도 아츠가 질걸? 지금까지 데피한테 이긴 적이 없으니 말이야."


-[쯧쯧.... 저렇게 착해서야. 데피는 왜 저런 녀석하고 사귄다냐.]


지금 내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여성과 무언가 사람이 말하는 것 같은데 기계음처럼 딱딱한 목소리의 대화. 나는 이걸 경험상 신경쓰지 않는게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귀를 기울이고 있다. 딱히 큰 반응이 없다면 저 여성도 뭐라 참견하진 않을테니 말이다. 사실 어떤 경우에도 그 광신과 같은 이상한 기행은 벌이지 않을 인상으로 보이지만 조심은 해**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후훗.. 여자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고 코드?"


-[…애휴. 저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잊은거 아니지?]


"이제와서 무슨 말? 어차피 사랑이란 것은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있다고 봐야 정상이라고."


-[…쯧. 망할 전지전능은 얼어죽을. 지성체 존재도 이렇게 힘드니 원...]


문제는 신. 이들이 문자 그대로 전지전능하다는 것이다. 지금 저들이 우리와 같이 이러고 있는 것도 단지 지성을 가지고 활동하기에 그런 것이다. 듣자하니 존재할 때의 디자인은 전부 본인들이 직접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안노운도, 저기 싸우고 있는 데피와 아츠도 자신들의 모든 것을 스스로 정했단 의미라는 것. 정말이지 이상한 신들이다. 


-[…어이. 거기 소년.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한번 지성체로 존재하는게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미칠 것 같은지 알기나 하냐?]


"…모르겠네요. 애초에 알 수 없잖아요? 저흰 저희고 당신들은 당신.... 어!? 뭐야 이거!? 으아아아아!!"


-[내가 만든 몬스터를 상대로 한눈을 팔다니.. 배짱이 두둑하다?]


뭐, 그 이상한 신에게 게임을 받고 플레이하는 내가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받은 게임이 참으로 어렵다. 조작법은 평소 하던 게임하고 똑같은데 아슬아슬하게 히트&런을 하는게 고작일 정도니 말이다. 게다가 감을 잡았다 싶으면 갑자기 패턴이 확 바뀌어선 농락한다. 악취미도 정도가 있지..


-[후후후. 프레임 단위로 회피하지 않는다면 포션이 다 나갈거라고?]


"젠자아아앙!"


하지만 이번엔 격이 다르다. 프레임 단위로 날아오는 매우 하드한 공격들, 도저히 휴대용 콘솔에서 나올리가 없는 몬스터의 압도적인 존재감, 거기에 옆에서 깔짝거리는 짜증나는 말까지. 집중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이대로라면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은 불가능 하리라.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오기가 생긴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입으론 괴성밖에 못내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





-"훌륭하다 용사여.. 신이시어.. 이 저주받을 운명을 다했습니다.... 세상이어.. 부디 나를 용서치 마라..."


-[헐.]


-<멸계룡(滅界龍) 인테마가 쓰러졌습니다! 세상의 영웅! 신이 안배한 특별한 보상이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이겼다아아아아아아아ㅏ!!!!!!!!!!!!!!"


길고긴 전투 끝에 드디어 결착이 났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ㅏ'가 튀어나올 정도로 괴성을 질러댔다. 그 만큼이나 이 망할 게임의 최종 보스는 강했으니 말이다.


-팟


손에 들린 게임기 화면이 잠깐 반짝이더니 손가락 마디만한 검은 구슬을 토해냈다. 발밑 모래에 떨어진 그걸 집어보니 붉은 색의 기묘한 문장들이 드문드문 보이는데 이게 도데체 무슨 물건인지 모르겠다. 그런 내 고민을 재빠르게 캐치했는지 구슬에서 한글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크기는 작은데 이상하게도 잘만 읽히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멸계룡(滅界龍)의 정수(기간제 3일). 섭취하신다면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부작용은 없으며, 씹어 먹으셔도 되고, 그냥 알약처럼 삼키셔도 됩니다. 참고로 맛은 당신이 살면서 먹은 것 중에서 가장 맛있던 초코의...>


…근데 읽어보니 이거 뭔가 터무니 없다. 멸계룡의 정수? 설명만 읽어봐도 무언가 무지막지한 것을 얻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게 뭐에요?"


애석하게도 평범한 소시민의 마음을 가진 나는 장난이라도 이걸 웃어넘길 수 없다. 신들이란 애시당초 기준이 다르니 더더욱 말이다.


그러니 나는 얼빠지게 내 손에 들린 구슬에 대해서 물어보고,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




쓰레기 한덩이 대령이여~ 하하하하 귀찮아~ 하하하하~




2024-10-24 23:14:5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