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팬픽] 10년 후 (1)
Contrasto 2017-03-11 17
투콱-!!
어느 평화로운 토요일, 느긋하게 게임을 하던 내 눈앞에 느닷없이 포크가 날아와 벽에 박혔다.
긴장한 나는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포크가 날아온 주방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슬비가 짜증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휴일이니 게임만 하지 말고 세리랑 슬하 데리고 산책이라도 다녀와!”
이슬비. 8년 전, 내 어색하기 그지없는 프러포즈를 아무 말 없이 받아준 그녀는 클로저를 은퇴하고 결혼생활 8년차의 전업주부가 되어 두 남매를 키우는데 힘을 쏟고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불장난이라느니, 청춘의 과오라느니, 어린 부부 취급을 받고 있지만, 20대 후반의 나이에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들이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다.
슬비는 결혼을 해서도 변함없이 예뻤다. 도저히 두 아이의 엄마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청순하고 아름다웠다. 허리께까지 내려온 분홍색 머리칼은 여전히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깊고 푸른 하늘색의 눈은 고혹적이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나에게는 과분한 여자였다.
“저기, 그렇게 인상 쓰면 이쁜 얼굴 다 구겨진다구?”
“셋 셀 동안 안 나가면 그 게임기 부숴버릴꺼야.”
아무래도 특별감면은 없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느닷없이 사형선고라니...
조금이라도 더 지체했다간 이번에야말로 포크가 아닌 식칼이 날라올까 두려워 나는 부랴부랴 일어나 세리와 슬하의 옷을 갈아입히고 밖으로 나섰다.
아무리 가을의 한복판에 있다지만, 10월의 바람은 좀 쌀쌀했다. 나는 다시 아이들의 옷을 단단히 여미고, 문득 생각난 곳에 아이들을 데려갔다.
.
10분 정도 걸었을까, 가을의 황금빛으로 물든 공원의 안뜰에서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과 가운데에 커다란 검은색의 석조 건축물이 보였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져 있었다.
“저기 아빠, 왜 이렇게 이름이 많이 있는 거야?”
그 건축물을 유심히 보던 세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거기엔 10년 전에 일어났던 큰 전쟁에서 싸웠던 클로저 영웅들의 이름들이 적혀있어.”
슬하는 컴퓨터처럼 알고 있던 지식을 술술 내뱉었다. 그것도 5살 세리의 어휘력에 맞춰서 말이다. 슬하는 아무래도 제 엄마를 닮아 똑부러지고 명석한 아이였다.
세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이름들을 보다, 유달리 크게 적힌 이름을 보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오빠 오빠! 여기 아빠 이름도 적혀있어!”
그곳에는 나의 이름뿐만 아니라 전쟁당시 내 나이와 직급도 옆에 적혀있었다.
나는 새겨진 내 이름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나답지 않게 그때 당시의 기억을 회상했다.
-
10년 전, 티어매트 사태.
그것은 유니온의 간부들이 티어매트의 봉인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대한 양의 제 1 위상력에 관심을 가져 시작되었다.
그들은 봉인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상력을 추출하여 병기화 하자는 계획을 추진하였고, 밑의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추출 실험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실험중 위상력 추출을 위해 가했던 자극이 너무 강해서 결국 봉인석이 파괴되었고, 티어매트를 세상에 풀어놓게 되었다.
다행히도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그녀의 정신세계에 침투해 위상력을 소모시켜왔으므로, 최악의 상황만은 면했다.
하지만 단지 최악의 상황만을 면했을 뿐, 아직 그녀가 가진 힘은 방대했다. 그녀는 대한민국 전체에 정신지배를 행하였고, 그녀 휘하 차원종 군단 50만 마리를 신서울의 한복판에 불러들였다.
정신지배에 어느 정도 면역이 있었던 클로저들과, 이미 캐롤리엘 박사가 개발한 기억 소거 및 정신 지배의 치유 약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어 피해의 확산을 막았고, 전 세계의 클로저들이 발 빠르게 합류하여 티어매트의 군세에 대항할 병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전쟁은 2년동안이나 지속되었고, 그 이후론 지옥만이 펼쳐질 뿐이었다.
전쟁 중, 검은양과 늑대개 전원과의 연결이 끊기고 나서 6개월 후, 신서울의 어느 폐허가 된 빌딩 옥상에서, 나는 기적적으로 슬비와 만날 수 있었다.
“나와 함께 도망치자.”
재회의 기쁨보다도.
살아있어줘서 고맙단 말보다도,
이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비열한 한마디. 그러나 나의 육체와 정신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내게 있어서 더 이상은 이 지옥에서 지낼 수 없었고, 그녀는 너무나도 소중한, 다시는 잃고싶지 않은 존재였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단지 그녀를 강하게 껴안고 흐느껴 우는 것밖에 없었다.
그녀는 순간 놀란 듯 했지만, 이윽고 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마치 어린아이 같던 나를 달래주었다.
그녀는 목적도 이유도 잃고 부서져만 갔던 나에게 다시 일어난 용기와 싸워야만 할 의미를 주었다. 아마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절대로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고, 전쟁 또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빠, 아빠!"
"으..으응?"
회상에 잠겨있던 나를 세리의 목소리가 다시 현실에 돌려 놓았다.
"그럼 아빠는, 세상을 구한 영웅님인거네?"
세리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듣는 내가 낯부끄러워질 호칭을 붙이며 말했다.
"으..응 뭐, 그렇...지"
내 목소리엔 확신이 없었다. 그런게, 나는 이미 한번 현실을 등지고 도망갈려했던 비겁자였으니까...
"어라? 세하 아냐!"
다시 슬픈 기억에 잠기려던 나의 정신을,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깨워 주었다.
"너 오랜만이다? 여기서 다 만났네! 산책이라도 나온 거야?"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유리였다. 그녀의 쾌활함과 미모는 10년이 지나도 전혀 바라지 않았다. 단지 좀 더 성숙해진 얼굴과, 클로저가 아닌 유니온의 국장이란 직급을 가졌을 뿐.
"우와아, 너희 애들 많이 컸다~ 얘얘, 세리야. 누나 기억해?"
"유리언니다! 언니 보고 싶었어!"
세리는 환하게 웃으며 유리의 품속에 뛰어들었고, 유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었다.
"자자, 슬하도 누나한테 오렴?"
옆에서 슬하가 어쩌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눈치 빠르게 한쪽 팔을 슬하에게 내어주었다.
슬하도 기다렸다는 듯이 유리의 품에 안겼고,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기쁜 표정을 지었다. 제아무리 슬하가 제 엄마처럼 똑부러지고 의젓하다고 해도, 아직 어리광쟁이인 7살일 뿐이었다.
한참동안 안겨서 남매의 사랑을 보급 받은 유리는, 고개를 들어 나에게 제안을 했다.
"저기, 애들 본부 구경시켜주고 싶은데 시간 돼?"
"...뭐 늦으면 연락하면 되겠지. 유니온이라 하면 슬비도 이해할 꺼야. 그나저나 애들을 어떻게 안에 들이려고? 민간인 출입 금지잖아?"
의혹에 찬 목소리로 물어보자, 그녀는 자랑스러운 듯이 그녀의 국장 ID카드를 보여주며 말했다.
"헤헹~! 그건 이 국장님의 힘을 이용하면 되지! 견학이라고 하면 들여보내줄꺼야!"
밑에서 누군가 내 셔츠자락을 잡아당겼다. 밑을 바라보니, 세리와 슬하가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아빠! 나 가보고 싶어! 구경하고 싶어!"
"아, 아빠...!"
드물게도 슬하가 조르는 모습을 보자, 안될 것도 없어서 유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유리의 차를 타고 시내를 15분정도 달리자, 눈앞에는 거대한 빌딩이 드러났다.
10년 전 완파된 유니온 본부를 새로 지었지만, 아직도 웬지모를 그리움과 옛 느낌이 남아 있었다.
유니온에 출입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야했지만, 유리는 차창 밖의 검사관에게 선글라스를 내리고 눈짓을 주자, 선뜻이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안에서도 경비원들이 막아섰지만, 유리가 ID카드를 보여주며 짧게 "견학" 아라고 말하자 군 말없이 보내주었다.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언제쯤 멈출지 의심이 갈 때쯤, 엘리베이터는 멈췄다.
엘리베이터는 45층에서 멈췄다.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스카이뷰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마 밤에 보면 더욱 아름답겠지. 하지만 매일매일 업무에 시달리는 그녀에게 있어선 결코 좋은 풍경은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걷자, 커다란 검은색 문이 드러났고, 우리는 거기서 멈췄다. 문에는 [램스 키퍼]라고 적힌 문패가 달려있었다. 아마 유리가 이끄는 새로운 팀의 이름이겠지. 아득할 정도로 그리운 느낌이 드는 건 결코 기분탓이 아닐 것이다.
순간 이였지만, 그 문패를 보던 유리의 눈이 살짝 가라앉은 것을 난 놓치지 않았다. 유리는 잠시 뜸을 들이고, 활짝 문을 열며 말했다.
“어서와! 여기가 새 클로저팀, [램스 키퍼]의 본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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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의고사 보다가 갑자기 영감을 받아 쓰기 시작한 팬픽입니다. 첫 작품이라 지저분하고 재미없을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재밌게 읽어주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