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X바이올렛] 임시본부의 점심
롤랑베리 2017-03-11 8
쿵 쾅 쿵 쾅 거리며 규칙적으로 울리는 철이 부딪치는 소리에 잠시 멍해진 정신이 돌아와 주위를 돌아봤다.
"...하아..."
아침에 있던 일 때문인지 몰라도 세하씨가 나를 약간 피하는 것 같다.
"정말...어떻게 해야하지?"
난생 처음으로 주저앉아 다리를 모아 손으로 감싸 고개를 떨구는 자세를 취해보았다. 이런 기분에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나로써는 이렇게 머리가 시키는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평소와 같이 대할 수 없다. 평소와 같이 말을 걸 수 없었다.
누군가 해결책이라도 시원하게 내준다면 지금 당장 그 사람에게 거금을 주고 싶은 기분이다.
"아가씨, 무슨 고민이라도...?"
하이드가 뒤에서 불쑥 나타나 물어왔지만, 언제나 있는 일이기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인채로 대답했다.
"그냥...아무것도..."
'...나도 자신이 왜 이런지 모르니깐....'
"점심식사 후에도 차를 즐기시지 않다니 아가씨답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차도 안 마셨던가...평소같았으면 점심식사 후 차를 마시며 하이드가 구해온 연애소설을 읽었겠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그럼 차는 다음에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내 상태를 이해해준 하이드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이런 배려심이 있는 점은 정말 좋은 사람인 것을 알게해준다 하지만, 그런 배려심 뒤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자기가 나를 위로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침울해졌을지도.
"하아..."
하이드의 배려에도 그치질 모르고 연달아 나오는 나의 한숨은 땅이 **라 연달아 나왔다.
처음 느껴본 이런 감정에게 솔직해지고 싶지만, 그를 어떻게 대하면 대할지도 모르겠다.
"어라? 바이올렛씨?"
"...네?"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들려온 것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지만 어른들보다도 차분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단정하고 차분한 얼굴의 소녀가 있었다.
"아...검은양팀의 리더...."
"이슬비라고 불러주세요. 더는 적대관계같은 게 아니니깐요."
살짝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에 약간 근심이 날아간 기분이 들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 것 같아서 말을 걸어봤는데....괜한 오지랖이었나요?"
"아니에요. 오히려...."
"....들어드릴까요?"
"...네."
"....그건 '사랑'이네요!"
".....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런 부끄러운 말을 저런 당당한....아니 당당하기 보다는 약간 흥분하고 신난 얼굴인데...?
"바이올렛씨는 그 사람이 신경쓰이는 거잖아요? 그 사람에게 예쁘다라는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그렇게 두근거린다니....그건 이미 반했다라는 거에요. 이건 확실해요."
어리둥절해 하는 나는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잇기 시작한 슬비양은 마치 세하씨가 게임 얘기를 할 때의 그것과 너무 닮았다.
그러고보니 세하씨와 얘기할 때는 어땠더라....내가 원하는 게임을 필사적으로 찾는 모습과 내가 낑낑대는 모습을 보이자마자 나를 도와주려고 하다가...결국 자기가 게임오버 시켜버린 그 모습을 떠올렸더니 저절로 웃음이 나와버렸다.
"...."
"....응? 이슬비...씨?"
"바이올렛씨, 방금 그 사람 생각했죠?"
"!!?!"
어, 어떻게...? 라고 생각하는 내 생각보다도 슬비씨의 대답이 들려왔다.
"방금 바이올렛씨의 표정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거든요."
행복해보였다고? 내 얼굴이?
"저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바이올렛씨, 이 말은 꼭 명심해두세요. '사랑은 쟁취하는것!' "
"네...? 네...."
내가 들었던 것과 약간 다른 것 같은 사람이었다...아니지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들었으니깐 지금 상황을 드라마의 한장면같다고 생각하고 흥분한건가....?
....후자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사랑이라....."
확실히 그 사람....세하씨를 생각하면 지금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게 느껴진다.
"아~!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표출할 방법이 없어서 주먹으로 땅을 있는 힘껏 쳐버렸다. 감정이 실린 탓에 위상력이 담겨버려 큰 구멍이 생긴 것이 예상 외의 사태였지만...
"꺄앗!"
지면이 붕괴되어 중심을 잃은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응?"
"다행이네요."
쓰러졌어야 할 내 몸은 오히려 공중에 떠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공중에 떠받혀져 있었다.
"괜찮으세요?"
"세, 세하...."
"네?"
"꺄아아앗!!"
갑자기 나타난 세하씨의 얼굴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날려버렸다.
"꾸허억!"
방금 지면을 부순 것보다 큰 위상력이 담겨버렸기에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바로 반신불구가 되도 이상하지 않은 주먹이었다. 아무리 위상력을 개방한 사람이라도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 세하씨가 날아가버린 것처럼
"아...."
실수해버렸다라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하이드가 내게로 달려왔다.
"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저, 저는 괜찮아요! 그, 그보다 저기! 저기로 날아간 세하씨를 데려와주세요!"
"네, 네...?"
"빨리요!"
"아, 알겠습니다!"
하이드는 세하씨가 날아간 방향을 향해 바로 달려갔다.
다시 혼자가 되버린 나는 아까 전의 자세로 쭈구려 앉았다.
"내가 왜 그런거지...."
반성을 하고 있는 나는 방금 있던 사건을 떠올렸다.
방금 전 너무 당황했지만.....분명히 그건...
"'공주님안기'....."
입 밖으로 나온 말을 다시 상상했더니 얼굴의 온도가 올라가버린 게 느껴진다.
아무리 나라도 이정도라면 알 것만 같다. 머리는 이해하지 않았지만 몸은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이게 사랑인가봐...."
가슴이 꾹 죄여오는 말 한마디에 나는 드디어 가슴의 답답함이 풀린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