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필연 - 17
비랄 2017-03-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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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운. 넌 뭘 위해서 존재하는거야?"
"존재하는 것 그 자체. 다른 것은 부가 요소에 불과하지."
"나도 그래?"
"…자기도 그러면서."
"그렇지 않아.."
"그럼 증명해봐.."
[어떤 존재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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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히 평범한 지성체다. 그것도 평범한 인간의 것을 기반으로 만든 지성을 사용하는 존재. 애시당초 나도 전에는 평범한 인간이니 아무리 삶이 파란만장했어도 일반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그렇기에 이세하를 죽인게 얼마나 악행인지는 인간으로서 피를 토할 정도로 이해한다. 그의 친구들과 지인, 유일한 가족인 그의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될지 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알고 있어도, 느끼고 있어도, 정말이지 나란 존재는 다른 의미로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전지. 그리고 모든 것에 능하는 전능. 나는 이런 힘으로 인해서 매우 인간적인 사고를 가진 지성체임과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평범한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들은 전지전능에 있어서 무엇도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것이든 감흥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창조한 요소와 전지전능이 어우러진 존재. 흔히 피조물과 접촉하는 전지전능의 창조주나 신이 이런 부류다. 피조물의 것을 지니고 그들과 접촉하기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전지전능하되 저딴 것은 절대 아니다. 저런 부류야말로 진정한 기만의 결정체니 말이다.
단언컨데 이 세상에서 평범하게 종교로 추양받는 신들이나 진정한 신이라 부를 수 있지, 나나 저런 부류는 절대 존경받을 존재가 아니다. 한없이 자애롭고 착해도 전지전능하단 부류의 존재들에겐 그건 코스프레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이렇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전지전능이다. 때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전혀 이해가 안되는 존재란 것이다. 이걸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건 진정한 모순이리라.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나는 전지전능이 아니라 그 모순에 들어간다. 나도 뭐라 설명할지 모르는, 전지전능이라고 불러야하는 모순. 게다가 그래서 그런지 나랑 같은 부류의 녀석들이 복수 존재하고, 나를 포함해서 하나같이 의미가 없어도 의미가 있는 것 같은 혼돈의 삶을 보내고 있다.
이렇기에 나의 모순이자 혼돈은 인간의 정신임이도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의 것을 탐닉하는 것이다. 정말 장대하지만 나는 이해되지 못할 존재. 그렇기에 나는 이런 영양가 없는 쓸데없이 긴 설명을 하는 것이다.
결국은 내가 이세하를 죽인 것은 이해되지 못할 일. 그렇기에 이해하려고 하지 말지어다. 어차피 무의미할테니.
***
…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로.
나는 저 쓸데없이 장황한 생각을 이세하의 시신을 보고 슬퍼하는 본부의 일원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정말이지 나는 이해하지 못할 쓰레기다.
"흑.. 흑..."
"세하야아아!!"
'…역시 마음이 썩 좋지 않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기도 해...'
분명히 인간적으로 슬프고, 눈물도 날 정도이며, 정신적으로도 정말 그러고 있다. 하지만 나라는 모순 덩어리는 무언가 그것 긍정하면서도 부정한다. 이 행위의 궁극적인 목직이 이런 나를 탐닉하려는 목적인데,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매우 허무한 느낌만 든다.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떠냐. 어차피 이야기는 진행된다. 자신이 뿌린 가능성으로. 비록 그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은 내 마음이나 다름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발단은 반드시 저들이 제공해야만 한다.
"…노운. 잠시 이야기해도 괜찮겠나?"
"티나. 뭐지?"
"…너는 나한테 영혼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후세계.. 죽은 자의 세계가 있다고 했지. 너는 거기에 갔다 왔다고도 말했고 말이다."
이렇게 내가 뿌린 씨앗에서 말이다. 지금 티나의 질문을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한테 집중된다. 그 시선은 희망. 가능성 중에서 가장 달콤한 것. 그렇지만 내가 그것에 응대할 의무는 없다. 나의 가능성은 생각만 자유롭게 하게 해줄 뿐.
"그렇지.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노운. 사람을 살릴 수.."
"…그만. 그 이상은 말하지 마."
정해진 대사를 말해주자. 그럼 저들은 자기들 생각을 할테니까.
"…있나보군."
정해진 리액션을 취해주자. 모르는 사람들은 착각하고, 오해한다.
"쯧.."
거기에 못을 박아두자. 대본의 존재조차 알 수 없게 말이다.
***
노운은 원래 그 무엇도 아닙니다. 지금은 하고싶은 것을 하고있는 하나의 지성체에 불구하죠. 오직 그의 판단만이 이 이야기의 전부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