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삶 (02)
비랄 2017-03-0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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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시작하기도 이전에 존재할 세상의 근원. 훗날 여러 이름으로 불릴지도, 아예 인식되지 못해도. 그것들은 세상이 있는 한은 존재할거다. 아니, 그들은 세상으로서 존재할거다.
그런 근원의 이름을 누군가는 '월드 코어'라 불렀다.
[기계(Rule)의 메모 파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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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놀라운 일을 연속으로 겪으면 그쪽 감각이 무뎌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감각은 날카롭게 갈아둬야만 한다. 정작 감각이 발휘되어야 할때 무디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이니 말이다.
'…하얀 천장? 건물?'
여기 한 소녀를 예로 들어보자. 그녀는 어린 나이에 온갖 최악의 경험을 했고, 기적 끝에 살아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만 연속으로 겪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는 것은 온갖 기연에 체념해서 마음을 놓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고 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누워 있는건가? 어디 불편한 곳은.. 크게 없네. 이건 소독약 냄새.. 팔에 이거 링거인가? 그럼 여긴 병원이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없이 사지에서 도망치며 살아온 그녀는 극도로 감각이 발달하고, 기척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신이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어디 숨고, 도망치고, 상황 파악하는데 극도로 특화한 능력이 있다. 그럼 문제다. 그런 그녀가 할일은 뭘까?
'…적대 기척 없음.. 감시도 없음... 카메라는.. 근방에는 없는거 같네.'
이런거다. 그녀의 목적은 생존이었다. 악착같이 살아남고, 무엇이든 이용하며, 정신이 아무리 흔들려도 냉정하게 사고한다. 정말 끝이라면 체념하겠지만 그런 일은 딱 한번을 제외하곤 없다. 딱 한번 말이다.
"…."
그녀를 살려준 검은 차원종. 그의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감만이 천천히 죽어가던 제릴을 체념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았지만, 살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던 의지가 한순간에 사라질 정도로 그 존재감은 굉장했다. 지금은 앞으로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니, 일단… 나는 도데체 왜 여기에 있지?'
하지만 다짐은 마음 속에서나 일어날 일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마음먹는다고 원하는 것이 나올 곳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정**를 곳에서 이렇게 있는 것 자체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된단 말이다.
"…일단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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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Unknown).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지 마시길 희망ㅎ..]
-픽
"시끄러.'
어느 건물 옥상. 그곳에 홀로 서있는 어떤 남자는 생각했다. 요약하자면… '지켜보는 여자가 흥미롭다.', '그녀의 재능은 보통이 아니다.', '이건 지켜봐야 한다. 팝콘이라도 뜯으면서 말이다!' 등등... 순수한 관객의 입장이지만 말이다.
"엄청나게 귀엽구만. 저런 역할에 저런 배우라니! 이건 다시 못볼 기회라고!"
제릴을 첫눈에 보고는 '이건 대박이다!' 같은 감상을 느낀 그는 뭐가 되었든 이 구경을 놓칠 생각이 없다. 어떤 잔소리가 들어와도 말이다. 가뜩이나 자극이 필요한 삶인데 이런 기회를 놓칠 그가 이를 놓칠리 없다. 하지만 이런 걸 지켜보는 이는 그리 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순(Unknown). 이쪽을 통해서 폭풍(Tempest)의 콜 사인이..]
"…지금은 다른 일이 있으니까 나중에. D"
[…그래.]
설령 얼마 안되는 친우가 뭐라고 해도 한번 발동걸린 그다. 애시당초 정면으로 클레임을 거느니 같이 이를 지켜볼 친우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 못하지는 않을거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친우여.
[그러냐..]
그렇게 말해도 친우의 어이없는 인식이 거둬지는 일은 요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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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은 노운의 지인 중에서도 노운 다음가는 여행자입니다. 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