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세하유리] 눈치없음

멜라루카 2015-02-07 18

클로저스/세하유리

눈치 없음

W. 멜라루카

1.

​시끌시끌. 오랜만에 받은 하루 휴가를 학교오는데 쓴 검은양팀의 학생들. 그렇다보니 단연 화제의 중심에 올라갔다. 신강고등학교 2학년 C반. 뒷문쪽엔 늘 그랬듯 게임 좀 한다는 남학생들이 모여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운동장쪽 창가에는 여자애들과 몇몇의 남학생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있었다. 물론 이 두무리의 중심은 검은양팀의 서유리와 이세하였다. 게임기를 붙잡은 세하의 손이 그 어느때보다 빨리 움직였다. 그런 세하를 감탄하며 바라보는 남학생들. 그에 비해 여학생들과 몇몇의 남학생들에게 둘러쌓여 수다를 떠는 유리.

"유리야, 유리야. 이번 휴가는 며칠이야?"

"하루!"

"엥? 하루?"

"겨우 하루가 휴가냐? 그게 무슨 휴가야."

"야, 김정민. 나한텐 하루도 휴가야, 짜샤!"

그게 무슨 휴가냐며 비웃는 남학생의 등을 제법 세게 내려치는 유리의 손길에 주변에 있던 남학생들이 움찔, 겁을 먹었다. 서유리 하면 신강고등학교에서는 물론, 주변 학교에서까지 손이 맵기로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유리에게 등을 맞은 남학생, 정민은 닿지도 않는 곳을 손으로 비비겠다며 끙끙, 애썼고, 그걸 보다못한 유리가 미안하다며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힐끔, 세하의 눈이 정민의 등을 쓰다듬는 유리를 향했다. 그 순간, 세하의 캐릭터가 삐로링. 사망음을 내며 죽었다.

"아! 죽었다.."

"천하의 이세하가 한눈팔때도 있구나?"

"세..세하야.. 게임할때.. 한눈판적.. 별로.. 없지 않아..?"

"아, 어.."

석봉의 말에 세하는 가볍게 고갤 끄덕였다. 석봉의 말이 맞았다. 게임할때는 그 어느곳에도 한눈팔지 않던 세하가 유리로 인해 게임도중 한눈을 팔았다. 이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남학생들은 세하의 눈길이 향했던 곳을 보곤 납득한다며 고갤 끄덕였다. 개중에 몇몇은 세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그 응원을 들으면 들을수록 세하는 암담해졌다.

2.

때마침 학교에 온 날이 학급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오늘의 안건은 '축제때 C반이 할 것' 이었다. 선생님은 너희끼리 하라며, 자신도 교무회의가 있으니 믿고 맡긴다며 교실을 나섰고, 반장과 부반장이 회의를 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선생님 없이 학생들만 있는 반이 잘 굴러가기나 할까. 역시나 여기저기서 수근수근 거리더니 이내 그 수근거림이 큰소리가 되었고, 이내 교실은 반장과 부반장의 말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기들끼리 수다떨기 시작했다. 그때. 쾅. 책상을 내려치는 큰 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학급회의 해야지. 반장이랑 부반장이 얘기하잖아."

방글방글, 선한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여는 유리의 책상엔 옅은 금이 가있었다. 최대한 힘을 조절하여 내려쳤을게 분명해보이는 금이었다. 아이들은 유리의 말에 따라 조용해졌고, 반장과 부반장은 유리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그 후로 술술, 학급회의는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됬고, 금방 표결까지 끝내 선생님이 오시려면 약 한시간의 시간이 남은 참이었다. 슬슬 유리의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조금씩 떠들기 시작했다.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유리 또한 제 친구들과 모여 수다떨기 시작했고, 교실은 금새 아이들의 수다소리로 가득찼다.

"그래서 내가-"

​역시나 늘 그랬듯, 아이들의 중심에 서서 차원종과 싸운 얘기를 하고있는 유리.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다시 게임에 임하는 세하. 유리는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아이들을 보며 신나서 얘기하다가는 그러고보니 요즘 학교는 어때? 하며 운을 뗐다.

"너 없어서 조용하지. 아주 좋아."

"김~정~​민~"

​유리의 말에 정민이 말을 던지자 정민의 이름을 느릿느릿 부르며 유리가 정민을 돌아봤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정민을 향해 합장을 하며 동시에 명복을 빕니다. 하고 말했고, 정민은 자길 구출해줘도 모자랄 판국에 명복이라니! 하며 따라오는 유리를 피해 도망가다가 갑자기 멈춰섰다. 게섯거라! 하면서 따라가던 유리는 갑자기 멈춰선 정민의 등에 얼굴을 박고 멈춰버렸다. 한발 떨어져 코를 잡은 유리는 정민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야!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 아야 내 코.."

"그러게 누가 덤비래! 벌이다, 서유리!"

"아하하하, 간지러, 간지러워!"

코를 잡고 울상을 짓는 유리를 보며 정민은 씩, 웃고 벌이라며 유리의 옆구리를 마구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그에 유리는 웃으며 도망쳤고, 정민은 그런 유리를 집요하게 쫓아가며 간지럼을 태웠다. 그 모습을 보는 아이들은 이번엔 유리가 당하네? 하며 웃었고, 세하는 하던 게임마저 멈춘체 둘의 모습을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보고있었을까, 갑자기 세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유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세하의 주변에 있던 남학생들은 드디어 결실을 맺는구나. 하며 눈물 흘리는 시늉을 해보였다.

"어? 세하야?"

"이세하?"

다가온 세하를 보곤 멈춰서는 유리와 정민을 번갈아 바라본 세하는 정민과 딱 붙어있는 유리의 팔을 붙잡아 제 품에 가뒀다. 당황한 유리가 뭐하는거냐고 바둥바둥 거렸지만 그런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세하는 정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3.

"세하야? 이세하? 나 좀 놔줄래?"

​유리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세하와 정민은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분명 같은반 클래스메이트지만 정민과 세하는 자주 마주친적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정민은 유리랑만 다녔고 세하는 정식요원때문에 자리를 비운날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없었을때, 정민이 유리를 좋아하는것같다는 말을 친구를 통해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지금 이상황을 보기 전까진.

"이세하, 유리가 놔달라잖아."

"내껀데."

"……뭐?"

정민의 말에 세하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당찬 세하의 대답에 정민은 당황해 어이없단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 정민을 바라보던 세하는 유리의 손을 잡고 자신과 나란히 세웠다. 흥미진진한 둘 사이에 반 아이들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하의 말에 얼굴이 새빨개진 유리는 자유로운 한손으로 입을 막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말도안돼. 작게 중얼거린 유리는 고갤 들어 세하를 바라봤다. 한치의 미동도 없이 정민을 바라보는 세하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게 무슨……."

"서유리, 내꺼라고."

"유리가 왜 니껀데? 넌 유리한테 고백한적도 없잖아."

마지막 발악인지, 자신은 고백했었다는것을 빌미로 세하에게 고백도 안한놈이 자기꺼라고 하기는…. 하며 한심하단 표정을 지어보였고 팔을 뻗어 유리를 데려가려 하자 세하는 유리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이에 화가난 정민이 세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꼭, 고백해야 사귀는거냐?"

"뭐?"

세하는 정민을 바라보며 픽, 웃고는 그대로 유리의 손을 잡아 반을 나섰다. 교실에서는 길길이 날뛰며 저** 잡으러 갈꺼라는 정민의 목소리와 그를 말리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4.

세하에게 손이 잡혀 뒤뜰로 향하는 동안, 유리의 머릿속은 엄청난 혼란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좋아해? 세하가 나를? 내가 자기꺼라고? 휘몰아치는 생각과 감정들에​ 뒤뜰에 도착한줄도 몰랐다. 세하가 자신의 손을 놓자 그제서야 유리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눈앞의 세하를 바라봤다. 게임할때만 짓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하의 표정에 펑. 유리의 얼굴이 다시한번 붉어졌다.

"서유리."

"으, 응!"

"……순서가 거꾸로 되버렸지만, 좋아해."

오, 마이, 갓. 하느님. 오늘처럼 기쁜날은 또 없을것같아요. 유리는 세하의 말에 휘청,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그런 유리를 잡아 다시금 양손을 꼭 잡아주는 세하. 유리는 세하에게 기대며 몸에 힘을 주어 자신의 힘으로 섰다.

"나도."

"응?"

"나도 좋아해, 세하야."

돈보다 니가 더 좋아. 덧붙인 유리의 말에 세하도 웃으며 말했다. 게임보다 니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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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2:22:5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