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로저스] 하이브리드 -혼성체- ] 6
칼질중독 2015-01-28 1
- 은하수 -
강남 유니온 사무실의 취조실. '은하수'는 특경대들을 통해, 수갑이 체워진체 이곳으로 끌려왔다. 너저분하고 정리가 되지 않은 밝은 하늘색 머리카락, 알비노증을 연상케 하는 붉은 눈동자만 보아도- 그가 위상력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뛰는 것은 역시 어두운 푸른빛으로 물든 그의 오른팔. …펜리르와 맞섰다고 하는 검은양의 증언에 따르면, 저 검게 물든 팔은 펜리르와 깊은 연관이 있을게 분명했다.
차원종의 영향을 받은 저 오른팔의 위험성은 너무나 컸다. 제이가 이곳 취조실에 같이 있는 이유 또한 만일을 대비하여 김유정을 보호할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은하수는 의외로 고분고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취조실의 의자에 앉아 김유정과 대면했다. 그는 '재미없고 심심하다'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김유정에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한 대화의 의사를 보이고 있었다.
"네, 잘오셨어요. 전 유니온의 관리요원인 김유정이라고 해요. …일단 먼저 묻겠어요, 당신은 인간하고 차원종. …어느쪽인가요?"
그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이내 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무언가 자신없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인간. …나는 가능한 인간이고 싶지만, 판단은 너희들한테 맡기겠어."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침착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내심 놀라면서도,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당신이 누군지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 있어요? 이름하고 나이, 그리고 어느 소속이었는지 말이에요."
곧 그는 다시 시선을 유정쪽으로 돌리며, 또박또박 대답한다.
"이름은 은하수. 나이는 18세. 능력자 팀인 '아이기스'의 리더였어."
그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의 대답이 유정, 그리고 같이 듣고 있던 제이까지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은하수의 나이는 18세가 아니다. 출생년도를 따지면 36세일 태지만, 이미 사망자로 처리되었으며, 단지 차원전쟁때의 영웅중 한명으로서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을 뿐. …이미 '아이기스'라는 팀명 또한 전설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하수는 거기다가 설명을 덪붙혔다.
"…깨어나있는 사이 이거저거 가능한 떠올려 봤는데, …내가 누군진 알겠지만, 최근에 무슨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기억 누락이 많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할지도 몰라."
한탄하듯 말하는 하수의 그 말에, 유정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지금의 당신 모습만 봐도, 모르는것 투성이라는건 알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하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도 궁금한게 있어. 아무래도 난 꽤나 긴 시간 잠들어 있었던거 같아. 기억이 이거저거 섞여서, 많이 혼란스러운 사태고, 오늘이 몇일인지도 모르겠어. …얼마나 시간이 흐른거야? 그래, 전쟁! ……전쟁은 어떻게 됐어?"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질문에 놀라면서도,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 당연한 것이며, 중요한 질문이라는것을 알아채고는, 절로 웃음이 튀어나오는 그의 질문에 선뜻 대답해주었다.
"놀라시겠지만, …당신이 행방불명된 이후, 벌써 18년이나 지났어요. 그리고, 차원전쟁도 18년전에 끝났죠. 차원문은 닫혔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어요. …차원종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지만요."
머리에 돌이라도 맞은것일까? 하수는 유정이 말하는 동안 책상을 박차며, 갑자기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눈을 부릅뜨고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대로 얼어붙어 유정이 하는 이야길 끝까지 듣고는, 책상에 엎드려 몸을 움츠린다.
"……하수…씨?"
유정은 그의 행동이 심상치 않아 조심스럽게 부르지만, 이내 하수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한다.
"…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전쟁이 끝났구나…."
흐느끼는 하수에게 동조할 수 있었던 제이는 '하아-'하고 신음을 내뱉으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쌓인다. …종전의 순간에 느꼈던, 잊혀지기 직전인 오랜 감정이 18년동안 시간이 멈추어있었던 그를 통해 다시한번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죄없는 사람들과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나가고, 이전까지 사람들이 살아온 이 땅이 마치 지옥같은 곳으로 변해버렸다. 오로지 두려움과 슬픔과 좌절만이 반복되던 시대. …물론 지금도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제이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다시끔 찾아온 평화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차원종과의 싸움이 완전히 끝난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이곳은 전쟁의 지옥이 아닌, 어렵게 되찾아 앞으로도 지켜가야 할 평화의 땅인 것이다.
그는 인간이었다. 지금 그가 보여주고 있는 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감정이,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대변해 주고 있었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김유정은 좀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당신의 기분을 모르는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존재때문에 유니온이 완전히 뒤집혀 버린것 또한 현실이죠."
"…유니온, 그건 뭐야?"
18년전- 차원전쟁 당시엔 유니온이 존재하지 않았다. 차원전쟁이 끝난 이후 UN의 산하조직인 '유니온'이 만들어졌으며, 마찬가지로 '클로저'라는 단어 또한 종전후 차원문을 닫은 이들이라는 뜻에서 붙혀진 이름이다.
"아직까지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차원종을 상대하기 위해, 당신같은 위상능력자들을 관리하는 조직이죠. 그리고 이 시대에는 당신같은 능력자를 '클로저'라고 부르고 있어요. 다시한번더 말하지만, 저는 유니온의 관리요원. 그리고 옆에 앉아있는 이분은 클로저중 한명인 '제이'라는 분이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유정을 보호하는 역할로서 말없이 잠잠하게 대화를 지켜만 보던 제이가, 이제서야 입을 열었다.
"난 유니온의 클로저 팀 '검은양'소속의 제이라고 한다. …너하고 함께 싸웠던 적도 있었지."
제이의 이야기를 듣고서, 하수는 다시한번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듯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미안, …기억나지 않아."
"그럴만도 하지. 그땐 머리색이 변한것도 아니었고, 제이도 본명은 아니니까 말이야. 오히려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 고맙지. …하지만, 난 널 기억하고 있어."
"기억하고 있다라, …그거 기쁜걸."
하수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자신을 기억한다고 말해주는 제이의 말에 기뻣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긴 시간이 흘렀고,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곳 건물 밖의 세계는 과연 어디까지 변했을까?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이 동반하고 있었다. 자신은 완전히 잊혀진 세계.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 돌아갈 곳이 없을지도 모르는 세계를 눈앞에 두고서, 그는 불안함과 고립감을 숨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오른팔의 이변을 본인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앞으로 자신이 다양한 어려움을 격게 될 것이라는것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뭐가 어찌됐든…, 전쟁에 비한다면야 별일도 아니지."
그는 몸을 뒤로 젖혀 축 느러진체 그렇게 말하였다. 그의 지나치게 여유로운 모습에 조금 발끈한 것인지, 유정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 느긋한 이야기 할때는 아니에요. …지금 유니온에선 난리가 아니라고요. 과거 전쟁의 영웅이 다시 나타나질 않나, 고위험 차원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상황인데, 그 둘이 합쳐진 지금은 대체 무슨 상황이죠…? 당신의 오른팔은 어떻게 된건가요? 당신이 인간이라는건 알겠어요. 하지만, 당신의 오른팔은 완벽히 차원종의 것…. 그것도 '펜리르'라는 녀석이 잠들어 있어 불길하기 짝이 없어요.
…기분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 유니온에서 당신을 어떻게 처분하게 될진, 저도 짐작할 수가 없어요."
"짐작하긴 뭘 짐작해. …처분해야 하는게 당연하잖아."
그렇게 대답한건 제이도 아닌 은하수 본인이었다.
"처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유정이 다시한번 뭇자, 하수는 남 얘기 하듯이 키득거리며 말한다.
"하하, 전쟁 당시엔 고귀한 인간의 목숨이라는건 눈씻고 찾아봐도 안보이더라. 인간이라는건 매우 간단하게 죽는 법이라고. 내 동료들도 많이 죽어나갔고 말이야. 난 지금 살아있는게 이상한거야. 마지막까지 펜리르란 지독한 녀석 한놈 더 잡고 죽는거라면, 그것도 꽤 나쁘지 안잖아?"
그렇게 가볍게 말하는 하수의 말이 김유정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그가 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골라내 꼬리를 잡으며, 그의 말에 반박했다.
"그,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하는 소리에요? 전쟁은 이미 끝났어요! 인간의 목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법이에요. 당신은 아직 살아있고, 그렇기에 앞으로도 살아갈 의무가 있어요. …그 오른팔의 펜리르만 제거할 수 있다면…"
"쉽지 않을걸? 그건 유정씨가 말하는 것 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야."
대화에 다시한번 끼어든 제이. 김유정은 가까이 하지도 못할 하수의 섬뜩한 오른팔을 집어들면서, 말을 이었다.
"유정씨. 은하수가 가지고 있던 위상능력이 뭐였는지, 알아봤어?"
"……강력한 위상 저항력 말인가요…?"
김유정은 자신이 프린트로 뽑아온 은하수와 관련되어 있는 차원전쟁에 관한 자료를 넘기며, 귀기울였다.
"단순한 위상 보호막 같은게 아니야. …5미터 이내의 특정 차원종이 위상력을 방출하기도 전에 그것을 차단하고 무력화 시킬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이었지. 차원전쟁때 이녀석은 신의 방패라고 불렸다. 적의 공격으로 부터 능력자들을 지키고, 적의 위상보호막까지 무력화 시키면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구로에 나타난 거대 차원종과의 전투도 이 녀석의 활약이 매우 컸지."
'구로에 나타난 거대 차원종'이라는 말에 반응한 하수는 의자를 덜컹이며 번뜩 일어섰다. 그리고 그 이유를 제이가 바로 설명한다.
"그래, 구로의 전투가 끝났을 무렵에 넌 행방불명됐다. 거대 차원종이 마지막에 일으킨 폭발에 휘말려서, 마지막까지 동료들의 방패가 되어 폭발로 부터 '우리들'을 지켜준다음에- 넌 사라졌어."
제이는 그때 그곳에 있었다. 구로에서 함께 적과 맞선 동료들과 함께, 거대 차원종의 최후를 지켜보면서,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폭발에서 '은하수'의 희생으로 그와 동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새고 말았군. 뭐, 행방불명의 원인도 중요한 얘기 아니겠어?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얘긴 펜리르에 관한 얘기야."
제이는 하수의 오른팔을 좀더 강하게 쥐고, 그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네 힘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어?"
그 질문의 뜻을 이해한 하수는 제이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면서 대답했다.
"한동안은 문제 없어. 펜리르 이녀석. 위상력이 많이 약해져 있거든."
하수의 대답에 제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만 빼고 무슨 대화를 나누시는거에요?"
유정의 물음에 제이가 대답했다.
"유정씨~. 아직도 눈치 못챘어? …하수는 지금 자신의 위상능력을 모조리 펜리르를 무력화 시키는데 사용하고 있는거야."
"…잠깐, 뭐라고요?!"
사실 김유정은 어째서 그의 오른팔이-…, 펜리르가 어째서 아무런 반응없이 잠잠한 상태를 유지하는지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한동안은 얌전할 태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라는 제이의 말을 믿었을 뿐이었다. 거기다가 제이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덪붙힌다.
"펜리르가 두르고 있던 그 강력한 보호막은 하수의 위상력이었어. 펜리르를 보호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억누르려고 펼친 것이었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