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6편

에피메테이아 2016-05-24 0







밤에 몰래 와서 연재하고 가는 연쇄연재마, 왔다 갑니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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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같이 만난 김에, 여행이나 같이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여행이요? 죄송하지만 세하가 아직 어디 먼 곳을 가기가 힘들어서…….’
‘아이야 나도 같이 있으니 챙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지. 전쟁이 끝나자마자 아이 키우고 하느라 많이 피곤하지 않느냐? 휴식은 중요하느니라. 특히 너처럼 고생을 한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처음 만난 그때. 소피아는 어머니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자신을 낳고 키우면서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어머니는, 소피아의 제안에 무척 당황해했다. 자신과 소피아를 번갈아 보는 눈빛에 약간의 불안함이 어려 있었다.

‘저라고 여행을 가기 싫을 리가요.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안다. 네가 무엇을 이야기할지.’

소피아는 빙긋 웃으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위로했다. 오랜 옛날에 같이 싸운 전우라더니, 정말인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상냥하고 친근한 태도라니.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네가 일상생활서 누릴 것을 못 누릴 이유는 되지 않지. 게다가 아이한테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내에서 돌아다녀봤자 넓은 세상은… 아, 설마 해외여행으로 말씀하신 건가요?’
‘기왕 여행하는 거 장기여행도 괜찮겠지. 아이도 학교가 방학 중이지 않더냐. 그래, 백십자 기사단의 본부로 초대를 할까 하느니라. 자랑은 아니다만, 우리 기사단 본부가 관광하기엔 좀 좋은 곳이지.’

백십자 기사단은 무엇이고 그 본부는 또 어딘지 모르던 그때의 세하는, 그냥 모르는 곳으로 간다는 사실에 신기하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딘가 표정이 어두워보였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그때, 흥겨운 금속성 벨소리가 울렸다. 진원지는 소피아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 그녀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미안하구나. 지금 전우랑 이야기 중이어서 나중에 말…….’
[그 전우분이랑 관계된 일입니다, 마스터.]
‘지수하고? 말해보아라.’
[서지수님에 대한 여권발급이 거부되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알아봤는데, 유니온 측에서 막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여권이란 게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유니온에서 어머니에게 얼마나 더럽게 나왔는지, 세하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도 그걸 전해들은 소피아의 얼굴이 야차처럼 험악해졌다는 사실을 통해, 별로 좋지 않은 것임은 알 수 있었다. 뒤이은 말도 어째 곱지를 않았다.

‘그게 무슨 귀신 볍씨 까먹는 소리냐.’
[죄송합니다, 소피아 상임이사님. 하지만 서지수 전 요원에 대한 출국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상대편에서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딱딱하고 무감정한 말투였다. 그에 따라서 소피아의 말투 또한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이유는?’
[…….]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당시에도 상대가 작게 말했기에 몰랐고, 지금도 짐작만 가지 정확히는 몰랐다. 물론 직접 전해들은 소피아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만 뀌었다. 어머니와 자신을 대할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가당찮은 이유로? 웃기지도 않는구나.’
[총본부의 결정입니다. 아무리 상임이사님이시라도…….]
‘그래? 그럼 과인이 지금 당장 뉴욕 총본부로 가서 깽판을 쳐주지. 이사들이 본부 사무실에서 줄줄이 엎드려뻗치면 참 재미있겠군 그래.’
[이, 이사님. 그건!]
‘다물어라. 먼저 엿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은 네놈이니까 말이다. 어찌하겠느냐. 과인이 진짜로 총본부를 엎고 이사들 엉덩이 팡팡 때리는 꼴을 보겠느냐, 아니면 얌전히 지수의 해외여행을 허용하겠느냐?’

그때 분명, 세하는 게임을 하는 것도 잊고 얼어붙었었다. 어머니는 의외로 침착, 아니, 그걸 넘어서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만 저었었다. 저 고운 입술에서 나온다는 말이 저런 상스러운 말일 줄을 누가 알았으랴. 그냥 높으신 분이라고만 생각해온 세하의 생각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아하하하!!! 진짜 그러셨다고?”
“응. 정말로 뉴욕으로 가시려고까지 해서 엄마가 말리느라 고생하셨어. 그래도 덕분에 생애 최초로 해외여행이란 것도 가봤고.”

그 해 여름은 꽤나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기사단 본부가 있는 로도스 섬은 꽤나 따뜻한 곳이었고, 그곳에서 어머니는 쨍쨍 내리쬐는 태양빛을 만끽하면서 우울한 그림자를 모두 털어냈었다. 세하 자신도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즐거운 만남을(위상력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전혀 없는) 가졌었다. 게임 따윈 필요 없는 나날이었던 것이다. 불행히도 그 이후에는 다시 게임기를 붙잡아야 했지만 말이다.

“뭔가 되게 특이하신 분이네.”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 옛날부터 그래 오셨다나 뭐라나?”

소피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지수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말과 행동, 상식은 어디다 엿으로 바꿔먹은 대범함과 황당함, 그리고 그걸 기어이 관철시키는 막대한 힘까지… 그러면서도 그녀는 정말로 빛나고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해온 일을 잘 아는 세하로서는, 지수가 그렇게 평가할 정도인 소피아가 얼마나 대단할지를 제이 다음으로 잘 이해했다.

‘으, 그러고 보니 아까 그분께 좀 냉랭했나?’

그건 그렇고, 소피아를 만났을 때를 떠올리던 세하는 몸을 떨었다. 그때는 윗사람으로 온 것에 무의식적으로 불만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을 대하듯 무심하게 대했는데… 이렇게 과거를 떠올려보니 그녀를 그렇게 대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세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세하 형, 왜 그러세요?”
“아니. 아까 내가 그분한테 너무 쌀쌀맞았던 거 같아서.”
“그걸 이제 알았어? 알았으면 반성하도록 해.”
“슬비 너……!”
“틀린 말 안 했거든?”

내일 다시 뵌다면, 짤막하게나마 사과를 드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소, 소피아 이사님. 여긴 무엇 때문에 오신 건가요?”

어제의 그 생각은, 호출을 받고 오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무엇이긴. 과인이 직접 차원종 토벌에 나서지는 못한다만, 적어도 너희들이 강한 적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도록 연습상대가 되어줄 수는 있느니라.”

검은양 팀이 집합한 곳은 신강고 근처의 한 체육관. 이곳을 통째로 빌렸는지 다른 사람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있는 사람이라곤 검은양 팀과 관리요원인 유정, 그리고 예복과 모자를 벗고 트레이닝 복을 입은 소피아 뿐. 팀원들도 실전에서 쓰는 무기가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대련용 무기가 주어져 있었다.
전혀 예정에 없던 훈련. 유정의 당황한 목소리와 제이의 창백한 얼굴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맙소사. 이번에도 또…….”
“옛날 생각나지 않느냐, 제이군? 내가 임시 교관으로 너랑 지수를 비롯한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 말이다.”
“알다마다요. 그때 어르신한테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지금도 생각만 하면 아찔합니다.”

‘두, 두들겨 맞았다고?’

제이의 두려움 섞인 말에 세하가 땀을 삐질 흘렸다. ‘설마?’하는 심정에 소피아를 쳐다봤지만, 그녀에게서는 딱히 화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일에 대한 어쭙잖은 화풀이는 아니라는 것. 게다가 제이가 몸서리를 치는 것을 보면 옛날에도 자주, 그것도 엄청난 스파르타 훈련으로 해본 듯했다. 엄청나게 귀찮은 일을 예감한 세하는 게임기 꺼내는 것도 잊고 소피아와 제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럼 여기서 아주머니랑 붙어보는 거예요?”

반면 유리는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지금 소피아는 한 손에 ‘죽도’를 들고 있었다. 위상능력을 각성한 이후로 검도와 멀어진 유리는, 오랜만에 죽도를 본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제이는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언으로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괜찮겠습니까? 저희는 이사님에 비해서 실력이 많이 미진합니다.”

그나마 가장 냉정하게 반응한 것은 이슬비. 그녀는 자신의 팀원을 둘러보고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까마득하게 높은 실력자하고 이제 막 팀이 된 신참들의 대결…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과인의 실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너희들과 상대하면서 적당히 조절할 정도의 컨트롤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으니까.”

은근히 도발적인 멘트였다. 자세도 한쪽 다리를 건들거리는 등 불량함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난 조절할 자신 있으니 너희나 걱정해라.’라는 뜻이 함축된 말과 자세에서, 어르신다운 모습 대신 검은양 팀 또래처럼 보이는 풋풋함과 혈기방장함이 보였다. 거기에 죽도까지 어깨에 걸치듯 올리는 것으로 준비는 끝! 천변만화하는 소피아의 모습은, 이것으로 또 한 번 바뀌었다. 

“그대로 있을 것이냐? 아니면 과인이 갈까?”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건 누가 봐도 덤비라고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정석적이라면 여기 넘어가서 좋을 것이 없겠지만…….

“좋습니다. 그럼 선수필승!”

검은양 팀에는 이런 단순한 함정에 넘어가줄 만한 사람이 있었다.

“오호라. 기세는 좋구나. 젊은 아이들은 역시 다른 걸?”

매섭게 달려드는 유리를 보고도 소피아는 만면에 웃음만 가득했다. 어깨에 걸친 죽도도 앞에 세우지 않고 그대로. 찬스라고 생각한 유리는 그대로 죽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검도에서 기본자세인 머리치기 자세였다. 읽기 쉬운 정석이었지만 검도를 수년 동안 해오고, 거기에 위상력까지 더해진 유리가 사용자라면 이야기가 살짝 달라진다. 유리의 죽도가 바람을 가르면서 내리 꽂혔다.

따악!

“아야!”

하지만 머리를 움켜쥔 쪽은 유리였다.

“유리야!”
“서유리?”
“어, 왜 누나가 아파하는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직접 맞은 유리는 그렇다 쳐도, 지켜보던 슬비와와 미스틸테인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만 했다. 세하는 직감으로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 이상은 그마저도 알지 못했다.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유리가 달려들다가 갑자기 머리를 손으로 감싼 것 정도였다. 중간과정은 완전히 생략되어있었다.

“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그나마 한 명, 제이만은 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아저씨는 보였어요?”
“대충은. 몸이 말이 아니라서 나도 자세히는 못 봤어. 너도 뭔가 느낀 건 있지 않았냐?”

세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말이 느낀 것이지, 실전에서는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을 못했 다. 자신이 유리의 위치에 있었다면 막거나 피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까지는 아니겠지만 힘들 것임은 확실했다.

“빠른 것은 좋다만, 그렇게 직설적이어서는 읽혀지기가 쉽지. 예전에는 검도에 꽤나 매진했었다고 들었느니라. 그 경험을 살려서 다른 공격방향을 많이 연구해보도록.”

그 모든 일을 유발한 당사자, 소피아는 여전히 껄렁껄렁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입꼬리에 걸린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실력을 확인해보는 것이니 빨리빨리 하도록 하마. 다음은 누가 오겠느냐?”

그녀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떴다. 불량했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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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할머니(?). 말 그대로 화끈한 분이었습니다.(먼산)






2024-10-24 23:01:5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