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로저스]하이브리드 -혼성체- ] 2
칼질중독 2015-01-26 2
- 펜리르 -
현제 차원종의 출현으로 폐쇄되어있는 강남 한가운데 위치한 '유니온 강남 사무소'. 평화의 도시라고 불렸던 강남에서 몇차례에 걸쳐 차원종이 나타나는 바람에, 어린 클로저 요원들인 '검은양' 일원들은 퇴근도 제때 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검은양 일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휴식실 내부는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소파와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등 적당히 필요한 것들이 안방 만한 크기의 방 안에 난잡하게 몰려있어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당장 방 구조만 해도 정신사나운데, 더욱더 그 공간을 혼돈에 치닿을 정도로 정신없는 곳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다름아닌 그곳에서 머무는 검은양 일원들이었다.
검은 머리를 한 고등학생 정도의 소년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 휴대용 게임기에 집중하고 있는가 하면, 또래의 검은 긴 머리의 소녀는 냉장고 안에 있던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선 기대에 찬 눈빛을 짓고 있었다.
같은 방 안에 여자아이가 둘이나 있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시티 차림을 하고서 몸 여기저기에 파스를 붙히는 백발 썬글라스에 자칭 형·오빠 라는 아저씨도 한명 있고, 이전의 두 아이와 마찬가지로 또래로 보이는 밝은 분홍색의 단발머리 소녀는 그 와중에 테이블 위에 노트북 화면으로 어떤 통계자료 같은것을 펼처두곤 혼잣말을 하고 있다.
"누가 혼잣말을 한다는거야? …그보다 중요한 얘기라는데 왜 아무도 안듣는거야! …지금 리더의 말을 무시하는거야?"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아 혼잣말 하는 캐릭터 취급을 받은 '이슬비'가 큰 소리로 외치지만, 이어폰을 끼고 보스와 1:1 집중하고 있던 검은 머리의 소년 '이세하'에게 슬비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때마침 전자레인지가 '땡'하고 신호를 울린 덕분에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은 장발의 소녀 '서유리'도 슬비의 말을 들을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파스를 다 붙히곤 신음하며 소파에 엎드려 누운 참인 '제저씨'의 경우 최근 귀가 어두워지고 있다고 한다.
"잠깐, 누구보고 제저씨라는거야? 'J'다. '제이'!"
다만, 감 만큼은 좋아보이는거 같다.
결국 나머지 세명에게 완벽히 무시당한 슬비는 세삼스럽게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가벼운 현기증을 느낀다. 기력이 다 빠졌는지 접이식 의자에 그대로 주저앉고서, 정말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하아, …내가 이런 팀의 리더라니. 이건 뭔가 잘못됐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 소파에 누워있던 제이가 솔비쪽으로 돌아보며 말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말라고. 내가 괜히 복귀해서 검은양에 들어온게 아니니까 말이야. 너무 리더란 것에 무갤 느낄 필욘 없어."
"딱히 무개같은거 느끼는거 아니거든요. …애초에 저 말고 이런 중구난방의 팀을 이끌만한 사람사람이 얼마나 더 있겠어요?"
"적어도 지금은 너 밖에 없지."
슬비는 제이가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슬비 이외의 적합자가 없다고 대답하고 있다. 딱히 제이가 말하지 않았다고 한들, 검은양의 리더가 제이가 아닌 슬비로 지목된 것은 상부의 결정이었다.
이런 팀의 리더가 된 것이 아니라, 이런팀이기에 자신이 필요했다는 식으로, 슬비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제 막 결성되었을 뿐이고, 아직 팀워크도 엉망이지만, 자신을 뺀다고 한들, 아직 미숙하지만 높은 잠제력과 재능을 가진 이세하와 서유리, 그리고 과거 차원전쟁에서 활약했다고 하는 제이까지 합해 절대로 약한 팀이라고 할 순 없었다.
슬비는 자신이 이들에 비해 잠재력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사실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이들과 똑같이 실전경험을 쌓고 성장하게 된다면, 세하나 유리에게 따라잡히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나보다 먼저 정식요원이 되는 악몽까지 꿨으니….'
전날 밤 꾸었던 악몽을 떠올리며 가벼운 두통을 느낀 슬비는 그대로 테이블에 기대어 엎드린다.
그럴때쯤일까? 천하의 이세하가 휴대용 게임이게 질린 것일까? 딱히 아무일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세하는 들고 있던 게임기를 종료하고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런 세하의 모습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 슬비는 그의 움직임을 응시했다.
세하는 접이식 의자에서 일어나선 방 안쪽에 설치되어 있는 사무용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았다.
"잠깐, …이세하. 너 설마 공공기관의 컴퓨터로 게임이라도 할 생각인거야?"
"큭, 뭐 어때서 그래. 어차피 여긴 우리같은 클로저들이 휴식하는 공간이잖아. 게임은 휴식의 기본이라고."
"네 말이 그렇다면 이미 휴식은 충분해 보이는데? 현장에 나가서도 틈만나면 게임하던 녀석이 말이야."
"뭘 모르네. PZP하고 컴퓨터 게임은 다르다고. 하루마다 피로도는 녹이고 입장제한 던전은 다 돌아주지 않으면 안된단 말이야. 게다가 출석체크 이벤트까지 하고 있고…."
"난 니가 뭔 얘길 하고있는건지, 알 수가 없다. …아아?! 벌써 다운로드를 시작했어? 확 꺼버린다?"
"그러니까 좀 봐달라고. …게다가 시간을 봐. 벌써 7시가 넘었다고. 그다지 집에 갈 수 있을거 같지도 않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세하는 컴퓨터 화면 오른쪽 하단에 표시된 시계를 보여준다. 오후 7시 12분. 본래 검은양의 퇴근시간은 지나가버린지 오래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강남을 벗어나지 못한다. …언제 차원종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니온 본부에선 전혀 지원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파벌싸움이라느니 검은양을 몰아넣겠다느니 하는 하찮은 이유 때문이었다.
이미 분위기상으로 검은양 맴버 전원은 짐작하고 있었다. 강남의 사건이 마무리될때까진, 집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사실이 한가지 있다.
"오후… 7시라고?"
슬비는 이제서야 시간의 흐름을 인지했다. 강남에 오고나서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 오후 7시야. 오전도 아니고 오후 7시. 왜? 꼭 봐야하는 TV프로라도 있는거야?"
세하는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슬비에게 있어선 매우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곧장 몸을 일으키고선 자신의 위상력인 염동력을 발휘했다.
그 위상력은 멀쩡히 누워있던 제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올렸고
"크헉? 허리! 내허리! 허리가아!"
제이는 비명을 질렀다.
"에엣?! 들어올렸을 뿐이라고요. 고작 이정도로 엄살 부리지 마세요…!"
그의 비명에 슬비는 조금 놀라고 말았지만 일일이 신경썼다간 늦어버리고 말 것이다. 슬비는 제이가 누워있던 소파 안쪽에 숨어있던 리모컨을 염동력으로 캐치해내곤, 제이를 다소 거칠게 소파 위에 내려둔다.
'푹-'
"척추… 큽…, 내 주, 중추신경…."
제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허나 슬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리모컨을 조작한다. 방에 배치되어있던 낡은 텔레비전의 전원을 키고 체널을 돌린다.
"아아, 초반부를 놓치고 말았잖아…."
슬비가 애청하고 있던 사랑과 차원전쟁은 이미 시작한지 10분은 지나고 있었다. 그 10분을 놓친것에 아쉬워하면서도, 그대로 드라마 시청 모드의 자신으로 트랜스 한다.
게임이 다운로드 되는동안 할짓이 없어 방 안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세하는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로 TV프로 보는거였냐…?"
"그나저나 유리양. 지금 먹고있는 그거 말이야."
"우에…. ……꿀꺽, 왜그러세요? 아저씨?"
"아저씨 아니라니까. …그보다 그거 어디서 난거야? 냉장고는 분명 비워져있었는데 말이야."
전자레인지로 가열한 스파게티를 먹고 있던 유리를 보며 제이가 묻는다. 제이는 유리가 뜯은 냉동 스파게티의 포장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런 제품을 요즘에도 팔던가…?"
제이가 의아해 하면서 중얼거리자, 유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배고프다고 하니까 은이 언니가 줬어요. 백화점에서 발견했는데, 냉동식품이니까 괜찮을거라면서 말이에요."
"이거. …유통기한이 1년 지났어."
"넷? …에이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은이언니도 맛있게 먹었다고 했는걸요?"
"냉동식품이 유통기한 오래가긴 하지. 그래봐야 2년이 고작이야. 계산해 보면 3년 전 물건인가? 백화점 폐쇠되던 시기하고 딱 맞군. 게다가 냉동 상태에서 보관된것도 아닐태니…, 약줄까?"
제이가 그렇게 이야기 하는동안 서유리는 이미 그 휴식실엔 존재하지 않았다. 먹은 것을 토해내러 가기라도 한 것일까?
한편, 하루 꼬박 경비가 계속 되고 있는 이곳- 차원종 경**역의 최전방에서는 새로운 사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송은이 경정님. …송은이 경정님!"
"…브앗?! 아, 안잤어. 안잤다고…."
"이미 늦었지 말입니다. 이젠 선체로 주무시는 겁니까?"
"그야~ 퇴근은 커녕 하루종일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한자리에 계속 서있으려니, 그렇다고 맨 땅에 앉을수도 없잖아."
제시간에 퇴근을 할 수 없었던 것은 특경대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검은양들은 전투가 필요한 순간에만 현장에 나가 차원종을 휩쓸고 온 뒤 휴식을 취하는 반면, 이쪽은 부족한 지원과 인원에 붙잡혀 한숨도 쉬지 못하고 고군본투 하는 쪽은 오히려 특경대 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휴식이 가능한 인물이라곤 고작해봐야 '송은이'경정 밖에 없을 것이다.
대신 '송은이'의 몫을 더해 남들의 두세배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그녀의 부하인 '채민우'는 그저 지친 몸으로 송은이에게 푸념하는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하아, 그나저나 상황이 말이 아니지 말입니다. 위상억제기는 멀쩡히 작동하고는 있는데, 간혈적으로 차원종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으니…."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이렇게 서서잘게 아니라, 집에서 편안~한 침대에 누워 달콤하게 자고 싶어~. 하지만 언제 차원종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이래서야 퇴근하라고 해도 잠이 안온다고."
"이곳에서 일 안하는 사람은 송은이 경정님 밖에 없습니다…!"
"뭔 소리야! 나도 여기저기 많이 뛰어다녔다고. 클로저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수시로 현장지원 나갔단 말이야. …언제 클로저들이 출동하게 될지 모르니까. 나도 불시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는 말씀!"
"네, 네, 그러시겠죠…."
"송은이 경정님! 채민우 경관님! 큰일났습니다!"
경비를 맡고있던 어느 한 특공대원이 두 사람 쪽을 향해 달려오며 말한다. 먼저 반응을 보인것은 송은이였다.
"그래 보고해. 무슨일이야? 식중독으로 쓰러진 애들이 더 늘어나기라도 한거야?"
당일 오후- 다수의 특공대원들이 식중독에 걸려 앓아눕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었다. 안그래도 지원이 적어 일손이 부족한 와중에 위기라면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사태였다.
"아닙니다. …위상레이더에 매우 위험한 신호가 감지됩니다. 신논현역에서 감지되는 그것은 적어도 B급이상의 차원종인것으로 감지됩니다. 그때문에, 신논현역의 위상변곡률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절박한 상황이었다. 지금 강남에 머물고 있는 클로저는 이제 막 결성한데다가 대부분이 미성년자로 이루어져 있는 '검은양'팀 하나 뿐. 그 마저도 여러차례의 출전이 있었기에 스테미너가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검은양의 출동에 대한 판단은 송은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으로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렇단 말이지…. 채민우 경감. 지금 당장 요원들을 이끌고 바리케이트를 설치해. 그냥 바리케이트론 안돼. 트럭이랑 승합차 장갑차로 녀석들이 통과할거 같은 좁은 골목에 벽을 만들고 그 뒤에서 사격을 준비해. 그동안 난 유니온을 부를태니까. 먼저 현장에 가서 기다려."
"에, 알겠습니다."
송은이가 그렇게 지시를 내리자. 채민우는 지친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경례하지 않고 명령에 따랐다. 평상시 일상생활에서 보여주는 송은이의 모습은 순 말년병장에 고문관 같은 상사일 뿐이지만, 차원종과의 싸움에 있어선 어떠한 긴급상황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고 최선의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채민우를 포함한 부하 특경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은이는 휴대폰을 거내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검은양의 관리요원인 '김유정'이었다.
"후우, 우리도 우리지만. 검은양… 너희들이야 말로 고생 참 많다."
송은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통화가 연결된 휴대폰 넘어로 김유정에게 말한다.
"유정씨. …차원종이 나타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