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Heffy End
카페인의노예 2016-03-07 2
*조금 시궁창스러운 내용입니다 (.....) 이런 내용이 취향이 아니신 분은 살포시 백스페이스 or 왼쪽 상단의 뒤로가기를 누르시는걸 권합니다
7월 29일.
서서히 약 기운이 몸으로 퍼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쓰는 마지막 일기가 될 거야. 아이들이 과연 이걸 읽게 됐을때 어떤 표정을 할까.
날 증오할지, 혹은 슬퍼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을지.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이젠 상관없어.
유정씨는 이미 먼저 깊게 잠들어 있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이제 더 이상 차원종과의 힘겨운 싸움도, 유니온의 추악한 뒷모습도 없는 밀랍의 성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아갈 거야.
고마워 유정 씨, 내 곁에 있어줘서. 당신을 만난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야.
그리고 난 지금 인생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어.
잠에 빠지는 그 순간 까지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거야.
***
7월 28일.
아침부터 불안이 가라앉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어디로 도망치지?
해외로 나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분명 유니온에서 일부 요원들을 잠복시켜 공항 등지에 배치시킬지 모르니까.
그것도 내가 모르는 요원들로 구성해서.
교활한 **들.
그런 날 유정씨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냐, 괜찮을거야, 유정 씨. 그 누구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하게 할거야.
이 곳이 안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찾아낼거야. 우리만의 유토피아를.
자, 머리를 굴려보자.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시골로 내려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이동 수단이 필요하다. 대중 교통은 위험하다. 유정 씨가 노출되면 사람들이 다들 알아보겠지.
이미 TV 뉴스와 신문과 인터넷 등등에서 날 주목하고 있다.
나를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그 탐욕스런 눈동자를 굴리고 있겠지.
일단 의자에 앉아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려 해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지 못했기에 찬장에 넣어둔 약은 이미 다 떨어진 상태였다.
자꾸만 다리가 떨리고 손톱을 너무 물어뜯어 이미 피가 나기 시작했지만 멈출수가 없었다.
이마에선 계속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의 관자놀이를 쿡 쿡 쑤시는 통증이 느껴진다.
어디로 가야하지? 뭘 해야 하는거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유니온 이라는 조직 앞에서 나는 그저 힘 없는 일개 전직 클로저 요원일 뿐인데.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나를 찾는건 금방일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계속 있는 것도 위험해. 내가 언제까지 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지? 대체 뭘 어떻게 하지? 확실한건 도망가야 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응? 유정 씨, 방금 뭐라고......?
하, 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유정 씨, 당신은 정말 최고야! 괜히 유니온의 엘리트가 아니었어!
그렇게나 간단한 방법이 있었는데, 그걸 생각못한 나도 정말 멍청해.
한 순간에 눈 앞에 길이 보인다. 검은 안개가 걷히고, 곧게 뻗은 순백의 길만이 존재했다.
그 길 끝에는 분명 커다란 나무가 존재할 거야. 그 나무 아래의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새들의 노래 소리와 그에 맞춰 춤을 추는 바람과, 따스한 손길로 뺨을 어루만지는 햇살이 존재하겠지.
우리는 저 길을 함께 걸어 그 곳에서 영원히 살아간다. 반드시 그리 할 것이다.
***
7월 27일.
TV에선 나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슬비는 침착하지만 혼란스러움이 가득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어.
나머지 애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캐롤의 인터뷰는 나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이 묻어나오는 말을 하고 있었어.
왜지? 당신도 알고 있잖아. 내가 유정 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당신에게서 그녀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러지 말아줘. 어째서 유정 씨에 대한 나의 사랑을 당신들 멋대로 판단하지? 이해할 수 없으니 증오를 선택하는 거야?
아, 유정 씨.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괜찮아, 라고 말하고 TV를 껐다.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세상이 당신을 빼앗으려 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이 세상을 등 질 준비가 되어있어.
난 예전과는 달라. 애초에 후회할 일이었다면 난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야.
조금만 기다려. 그다지 멀지 않았어. 난 당신과 있을때 비로소 완전한 자신으로서의 나를 느낄 수 있어.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당신과 있을때만.
그러니 걱정하지 마. 우리는 곧 떠날거야. 나와 당신만이 존재하는, 그 어떤 놀라움과 걱정도 없는 세상으로.
***
7월 26일.
정말 오랫만에 핸드폰을 켰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부재중 통화와 문자 메세지가 오래된 먼지처럼 잔뜩 쌓여있어.
과연 내가 그걸 읽을만한 가치가 존재하긴 할까?
유니온에서 나를 쫓고 있다는 유리의 문자에 나는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할 유니온! 도대체 왜 나를 자꾸 방해하는거야?
나를 전장에 밀어넣고, 그러고 나서 헌신짝처럼 버리고, 다시 나를 애들의 보모 역으로 데리고 올 때도 나는 그저 묵묵히 내 자리를 지켰어.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대체 어디까지 나를 희생해야 만족할거지?
작작 좀 해, 이 빌어먹을 **들아!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유정 씨와 단 둘이 보낼 평온한 시간이라고! 내가 오랫동안 꿈 꿔온 행복을 너희 멋대로 짓밟지 말란 말야!
정적을 찢는 나의 분노에 유정 씨가 놀란 듯 하다
미안해, 유정 씨. 많이 놀랐지? 응? 아냐, 괜찮아. 누구도 당신과 나를 갈라놓을 순 없어.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저 좀 화가 났을 뿐이야. 정말 다들 너무 할 정도로 제멋대로야.
그치?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난 두 번 다시 나의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을거야.
나는 당신과 영원히 함께야. 당신과 영원히 함께야. 영원히 함께야.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
7월 25일.
오늘은 유정 씨에게 뭔가 색다른 걸 해주고 싶었다.
그러니 일단 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겠지? 모자와 마스크는 필수야.
스파게티 면과 토마토 소스, 파마산 치즈와 올리브 오일, 파슬리, 그리고 그녀와 함께 마실 와인도 빼놓을 수 없겠지.
요리는 정말 멋진 일이야.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 사람이 맛있게 먹어줄 생각을 하며 손을 바쁘게 놀리는 그 일련의 행위에는 오로지 나와 그녀만이 존재하잖아.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과, 시선과, 편협하고 일방적인 그 어떤 무엇도 끼어들 수 없어.
그것만이 온전히 나의 세상이 될 수 있는 일들이야.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갔어. 중간에 동네 아주머니들 끼리 뭔가를 쑥덕거리더군.
옆옆 집 사람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 뭔가가 썩는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거기 사는 백발의 남자가 생긴건 멀쩡한데 조금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 등등.......
뭐 저런 아주머니들이 남의 가십거리를 가지고 입방아를 찧는건 언제나 늘상 있었던 일이지.
나는 별로 신경쓰진 않지만. 아, 대신에 창문의 커튼은 좀 두꺼운 걸로 바꿔야할 듯 싶다.
여름이라 그런가, 어디선가 자꾸 파리가 들어온다. 귀찮은 자식들, 자꾸 유정 씨의 몸에 달라붙어 괴롭히지 말란 말이야.
그래도 다행이야, 혹시 몰라서 살충 스프레이는 넉넉하게 사 놨으니까. 한 병을 통째로 다 뿌렸으니 이제 한동안 잠잠하겠지. 나의 유정 씨를 괴롭히는건 내가 뭐든지 다 죽여버릴거야.
***
7월 24일.
유정 씨, 물은 어때? 너무 뜨겁지 않아?
일부러 당신을 위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욕제도 사 왔어. 남자인 내가 이런걸 사는 건 조금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쓸 거니까.
그 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어휴, 이 고운 살결 좀 봐. 누가 뭐래도 당신은 나에게 천사나 여신같은 존재야?
응? 낯간지럽다니, 사실인걸.
즐거운 목욕을 끝낸 뒤 유정 씨가 즐겨 입던 셔츠와 코트, 핫팬츠를 입힌 뒤 조심스럽게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자, 유정 씨 웃어 봐.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남겨야 하지 않겠어?
시간이 우리를 인생의 마지막에 데려놓고, 그렇게 당신의 육신이 썩어 한 줌의 흙이 된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아름다울 거야. 당신의 미소와, 목소리와, 눈빛과, 우리가 같이 있던 그 날의 풍경은 여전히 따뜻하고 사랑스럽겠지.
자, 웃어 봐, 유정 씨.
왜 웃지 않는거야? 울지 말고 이야기를 해 봐. 도대체 왜 웃지 않아?
웃어 줘. 날 위해 웃어 줘. 오늘은 즐거운 날이라고. 우리가 함께였다는 그 증거를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하루야.
그래, 그렇게 웃어 줘. 사랑해. 언제나 당신을 지켜줄게. 그 누구도 우릴 갈라놓을 수 없어.
***
7월 21일.
그 날의 하늘은 마치 무너질 것 처럼 비를 계속 쏟아냈지.
등에 업힌 유정 씨는 너무 깊게 잠든 탓일까, 미동도 없었어.
세상이 뭐라해도 난 두렵지 않아. 내가 정말 두려운건 바로 당신을 잃어버리는 거야.
비는 여전히 세차게 땅을 두드리고 있어. 아, 차라리 이대로 모든 것이 잠겨버릴 수 있다면, 아예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나와 당신만이 서로를 안고 잠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찬장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청심환을 꺼내 입 안에 털어넣는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지만, 그저 나와 당신이 존재하는 것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 있다면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좋을 텐데.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두드리는 것과, 앞으로 어떻게 숨어 지내야 할지가 의문이었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걸까, 하는 약간의 후회도.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말야,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니까.
당신조차 나를 원망한다고 하더라도, 괜찮아.
얼마든지 원망해도 좋아.
그렇게라도 날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원망해도 좋아.
***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내 심장은 여전히 더 달릴 것을 재촉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들은게 정말 정확한걸까? 하지만 전혀 믿을수가 없는데?
정말 이대로, 난 또 다시 나의 소중한 사람을 내 곁에서 떠나보내야만 하는건가?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 눈으로 제대로 확인하고 싶어.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당신은 내 눈 앞에서 웃고 있었잖아. 그렇지?
그냥 장난이라고 말해줘. 나를 깜짝 놀래키고 싶었다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놀려줘. 차라리 그 편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잖아?
차가운 복도를 걷는 것은 묘한 두려움을 자아냈다. 빌어먹을, 차라리 차원종의 본진으로 나 혼자 들어가는게 훨씬 덜 무서울 것 같아.
쓸데없는 상상력이 불안감을 자아내고, 그 불안은 나를 자꾸만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땅은 계속해서 발목을 붙잡았지만, 나는 얼어붙은 시간을 계속해서 깨트려가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 지독한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을 수 있겠어.
정적만이 가득찬 복도 한 켠에 캐롤리엘이 서 있었다.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대체 내가 방금 전에 뭘 들은거야? 거짓말이지? 장난일거야, 그렇지?
내 말에 미동도 않는 캐롤리엘에게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를 것 같았다. 그래도 참아야 해.
그녀는 죄가 없잖아? 캐롤은 말 없이 오른손으로 눈가를 훔쳐냈다. 축축히 젖은 그녀의 손등이 형광등 빛을 반사시키는게 보였다. 붉게 부어오른 그녀의 눈이 지금 상황을 말 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캐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발 아니길 바랬던 그 잔혹한 진실의 단어가, 문장이 되어 나의 발 밑으로 떨어졌다.
나는 무릎에 힘이 빠져 그대로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 앉았다. 바닥에 떨어져 부르르 떨리고 있는 글자를 손으로 쥐어보려고 해도 왜일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확실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그녀는 진실을 말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몸서리를 쳐도 운명은 여전히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소름돋을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온 몸을 타고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캐롤이 한 말을 한 번 더 읊조렸다.
유정 씨가, 죽었다.
-fin.
*이 글은 마지막부터 다시 읽어보면 더 재밌습니다. 아마도 (.....)
사실 굉장히 예~전부터 내용을 구상해뒀던 건데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이 겹쳐서 이제서야 올리게 되네요.안 그러면 영영 올리지 못했을지도 모를 내용이지만.
처음엔 단순히 '집착' 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맨날 달달한 내용만 쓰면 재미없으니까 왠지 좀 '얀데레' 스러운 내용을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ㅡ';;
별로 좋아하는 소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구상을 해보니 재밌을 것 같더군요.
거기에 추가적으로 일부러 내용의 시간적 흐름을 거꾸로 써서 마지막부터 처음으로 다시 올라가도 내용이 이어지는 그런걸 써보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쓰는게 꽤 재밌었네요 =ㅅ=a;;
귀한 시간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