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아] 인간미

SehaL 2015-09-06 0

클로저스 레비아 - 인간미


"..명령이라면....따를게요.."

"네- 그래야 착한 개죠. 앞으로는 신상 노출에 각별히 주의해주세요. 또 이런 일이 생기는 게 그렇게 싫진 않지만 개인적 감정은 넣어둬야겠죠?"

간신히 기계적인 목소리를 내고 비척비척 홍시영 님에게서 멀어졌다.
거기 있을수록 홍시영 님이 너무 무서워져서 도망치듯 물러섰다. 나타 님이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멍하니 '저러다 벌받으실 텐데..'라고 생각했을 뿐, 나는 내 속을 가라앉히는 것이 더욱 급했다.
황급히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골목에 주저앉았다.

"하아..하아...아악....크..캬..악.."

...죽일까?

아.
그...그래. 느껴본 적 있어. 순간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죽일까?'라는 생각이 너무 무서워서. 그때와 같은 일을 또 내가 저지를 것만 같아서.
이 분노로 가득 물든 껍데기 안쪽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겁고 무서워서..!

..아아...이대로라면 또..또 저지를 거야. 어쩌지? 어떡하면 좋아..?

"캬악..악....카하.ㄱ..."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는 이 인간의 목소리가 그렇게 모순적으로 느껴진다는 게 소름끼쳤다.

솔직히 그 여자는 한 번의 휘두름으로 죽일 수 있는데, 왜 망설이는 거지? 쵸커를 발동시킨다 해도 나는 죽일 수 있잖아. 누구보다도 빨리, 순식간에 해치우는 훈련을 몇 년이나 해왔잖아. 죽일 수 있어. 처음으로 생긴 소중한 사람을 지워버린 그 여자를 죽일 수 있어. 순식간에, 또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어. 할 수 있어.

왜 하지 않는 거야?
그 껍데기가 아쉬워?
..웃기네.
어차피 언젠가 네 스스로 부숴버릴 얄팍한 막이 그렇게나 아쉽다니.
넌 차원종이잖아? 어차피 인류의 적인데,

좀 죽이면 어때?

"아....아.....! 아아....! 아냐..! 안 돼요...쵸커....누군가 제발..!!"

[..심각하군. 쵸커를 발동시키지.]

"ㅌ....트레..이너 님..아니에요...절 죽여요..이대로 가다간...정말로...."

무언가가 속살거리는 소리가 점점 나를 부수고 있다고 생각될 때 트레이너 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순간 너무 다행스럽게 느껴져서 매달렸다.
트레이너 님이라면 날 죽일 수 있을 거야. 추악한 차원종인 나를 없애주실 수 있을 거야. 방금 홍시영 님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정신 나간 나를..!!

[..아니, 넌 죽을 수 없다. 넌 아직 너덜너덜하지 않아. 더 일해야 한다. 네가 죽인 인간들의 값 정도는 하고 죽여달란 소리를 하도록. 넌 아직 그럴 자격조차 없다.]

그러나 트레이너 님은 나를 즉결처분하지 않았고 나의 죄책감을 상기시켰고, 나는 웃기게도 순식간에 돌아온 이성에 오싹한 추위를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금이 간 껍데기가 더 버텨줄지는,..
..아냐. 생각하고 싶지 않아. 지금 나는 단지 추악한 차원종일 뿐, 단지 속죄만을 생각하면 되는 거야.
나는 아직 죽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없어.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정말로 무거운 것이구나.
..분노를 참는다는 건 정말 무서운 거구나.
ㄱ..괜찮아. 이상해지면 트레이너 님이 분명 날 처리해주실 거야. 난 괜찮아.
난 괜찮아.

괜찮았으면 좋겠어..

"누군가가 저를 잊는다는 건..정말로....아픈 일이에요...아프고 싶지 않아요....! 흐윽..."

[..그러니 너는 임무에만 집중하도록. 민간인과의 접촉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테지.]

"네...네..오늘..정말 확실하게 학습했어요..이제 안 그럴게요.."

[..그래. 잘했다, 레비아. 이만 복귀하도록.]

"네..주제넘은 짓을 해서 죄송해요.."

내가 느꼈던 일말의 '인간미'를 배척했다.
추악한 나에게 그런 것은 역시나 사치였다.
...그 사실은 이때까지 받아왔던 그 어떠한 실험과 고문보다도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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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아는 원래 암울한데 제가 더 암울하게 썼네요 하하; 에피소드 회상 기능을 간절히 바라는 복귀유저인 글쟁이입니다 :)!

2024-10-24 22:38:5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