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외전 : 사람과 짐승 #1 (上)

읭뀨읭 2015-08-25 2

 최초의 탈출계획은 유니온측 수송기에 타는 것이었다. 그것도 3개월에 한번씩 들어오는 유니온측 1선의 제 1군수지원팀이 운용하는 수송기였다. 거기에 타면 곧바로 인천공항에서 또 다시 밀항하여 국외로 벗어날 생각이었다. 잘되면 벌쳐스에서 탈출을 인지했을 때 우린 이미 해외로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틀려먹었다.

 철로가 들어오는 지역 창으로는 벌쳐스 처리부대가 진을치고 있기에 어렵다. 잠입을 위해서는 산세를 타고 우회해야하는데, 우회는 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버린 것이다. 예정된 수송선 이륙시간은 19시. 그 시간은 우리가 그 수송기을 뒷산 정상에서 바라본 시간이기도 했다.

 

 결국 나와 내 손을 꼭 잡은 소녀는 산 한가운데서 발걸음을 멈추고 그렇게 떠나가는 수송기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그 작은 손을 잡고 조급히 산 둔턱을 오르던 나는 어떤 표정으로 떠오르는 수송기를 보고 있을까.

 수송기가 사라진 저녁노을. 그 붉고도 노오란 빛깔이 융단처럼 깔려나간다. 아주 잠깐의 시간동안 넓게 퍼진 구름 사이사이로 금새 물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소녀는 그런 하늘을 머리에 인 채로 저 서산너머를 향해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구나 싶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이내 주저앉고 만다. 간신히, 간신히 바닥을 짚어 아직도 멍하니 저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를 양팔로 감싸 안았다. 소녀는 나를 **도 않았고, 말도 꺼내지 않았다.

 

 “…미안해.”

 

 필사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여 겨우 말했다. 이내 곧 칠칠맞게도 자신보다 한참어린 소녀의 품에서 그만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소녀는 그런 나를 말없이 쓰다듬어주었다.

 어둠이 짙게 깔려온다.

 그에게도, 소녀에게도 더 이상 저 멀리 있는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

 

 역사는 반복된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을 남긴 사람이 간과한 것 중 하나는 그 반복의 와중에 일어나는 확장성이다. 진화의 끝은 파멸이라고 말하듯이 역사의 확장 역시 끝은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는 무한 나선이 될 것이다. 이것을 말했던 게 아놀드 토인비였나? 아무튼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 시간의 흐름. 그러니까 역사. 작게는 혹은 우리의 삶이 뫼비우스의 띠와 다름이 없는 걸 자각했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는 흐름 속에서 무한한 우주를 만들어낸다. 그 중 가능성은 배제되고 선택은 종속되며 끝에는 경쟁, 투쟁으로 인한 진화와 도태. 그리고 그 결과만이 나선의 띠를 이룬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19세기 말. 한창 제국주의가 만연하면서 너도나도 식민지를 가지겠다고 침략 전쟁을 벌이던 때가 있었잖아요?”

 “…흐음. 그러니까 이선씨는 우리가 무차별적으로 침략 전쟁을 일삼던 영국이나 유태인들을 학살하던 나치 시절 독일쯤 된다는?”

 “예? 아뇨. 아뇨. 아뇨. 굳이 벌쳐스를 그렇게 표현하려는 게 아니라, 제 말은 패러다임? 혹은 이데올로기? 뭐 그런 것들에 휩쓸린 역사에선 인도주의 또는 박애주의가 실종된다는 겁니다.”

 “푸하핫. 이선씨. 이력서에서 보여지던 이미지와는 좀 많이 다르네요.”

 

 눈앞에 마주앉은 젊은 여성이 자신의 허벅지를 탁탁 치면서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외모와는 다르게 상당히 털털한 성격인 듯하다. 이에 이선은 말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적이면서도 좀 날카로운 첫인상의 이미지와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직접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호탕한 웃음덕에 흔들리는 가슴. 덩달아 대롱대롱 흔들리는 가슴 왼쪽에 달린 ID카드에는 ‘이지혜’라고 쓰여 있었다. 자세한 직함은 어떠려나….

 그간 들은 말을 상기해보면 이 여자. 벌쳐스의 제 6 연구소의 연구원. 그것도 20대 후반쯤 되는 나이에 제 6 연구소에 치프 한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한다면 좀 오만하거나 도도한 인상일 줄 알았는데 마주 앉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의외로 사람이 거리낌이 없다. 화장기도 없는 맨얼굴에 폼으로 낀 것 같지는 않은 뿔테안경에 딱 정갈하게 묶은 포니테일. 내 취향이라곤 호탕하게 웃을 때 흔들렸던 탈아시아급 가슴이었다만, 내가 여자의 미모를 품평할만한 처지의 면상은 아니다. 저렇게 딱 일만 알 것 같은 꾸밈과 인상은 어쩌면 이곳에서 처세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막 말단직원인 나에게도 ‘아랫것’을 대하는 어떤 무형의 뭔가가 느껴지는 걸 보면 치프가 괜히 된 건 아닌 듯하다.

 

 “뭐 어쨌든 이선님은 오늘부터 저희 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뭐라구요?”

 “뭘 그렇게 놀라세요? 일하려고 이력서를 넣은 건 이선씬데.”

 

 놀랐다기보다 이해가 안된다. 내가 응시한 분야는 연구분야가 아니고, 흔히 말하는 잡일담당으로 시설관리나 보수 쪽으로 응시했다. 자격증도 그쪽 관련해서 3개 정도 딴 것이 전부다.

 

 “아니. 저기요. 잠깐만요. 저…. 전 시설 유지 및 보수쪽에 응시한 걸로 아는데요."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되물었다. 행정착오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면서 이 곳을 지키는 군부대가 딸린 연구시설에 부임. 이후 마치 죄인처럼 아무도 마주치지 못하게 이 방에 끌고 와선 저런 여자와 일대일 면담. 거기다 직속상관인 것 같은 눈앞에 여자는 초 엘리트 걸. 아쉽게도 나는 이렇게 시큐리티하게 다룰 고급인력따윈 아니었다. 분명 행정착오로 누군가와 부임시설이 바뀐 게 분명하다.

 

 “뭐 그런 점 때문이에요. 과거 이야기를 빌려 지금 상황을 꽤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더군요. 집단에 융화된 인간은 그런 평론가적 시각을 가지기가 어렵죠.”

 “…?”

 

 이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직도 진짠지 아닌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이지혜는 접대 소파에 마주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몸을 크게 젖혀서 뒤쪽 테이블에 놓인 파일철을 잡아들었다. 본의 아니게 부각된 그녀의 가슴을 봐버린다. 흰색 가운을 입었음에도 저정도로 들어나는 가슴이라니…. 나도 모르게 턱을 쓰다듬으며 감상해버리고 만다.

 

 “이선씨. 어디보자. 29세. 학력은 지잡대. 교직원 생활 3년. 신문사에서 2년. 민간 기업에서 2년. 자영업도 잠깐?”

 “….”

 

 말이 흉기가 되는 순간이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이력이 몇마디 단어로 압축요약이 되는 슬픈 상황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결국 그 뒤 소견은 뭐…. 그렇다. 슬프다. 많은 말을 들었지만, 결국 대충 감상은 ‘뭐 이래?’였다. 딱히 내세울 이력이 아니니까. 그래도 당사자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한 페이지는 되는 이력을 몇 단어로 잔인하게 추리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민간기업에선 뭔가 트러블이 일어났나보죠?”

 “….”

 “신문사에선 왜 2년만에 관두셨어요?

 “….”

 “그러고 보니 민간기업에서 2년. 신문사에서 2년. 그나마 오래간 게 교사로 3년. 여기선 몇 년을 일하실 거죠?”

 

 이런 질문은 확인사살이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요. 이선씨가 이쪽으로 온 이유는 제가 요청했어요. 뭐 사회경험이 적당히 있으면서도, 집단생황을 오래하지 않았고, 교사경험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필요하다 요청했더니 근 3년만인가? 당신 이력서가 날아왔죠.”

 

 3......3년 만이라고?

 

 “푸하하핫! 진짜 제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요청이었는데, 그걸 또 찾아서 어떻게 보내다니. 이것 참….”

 

 그런 터무니없이 요상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 여기 앉아있다는 게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오려 했다.

 

 “근데 그런 사람을 대체 어디다 써먹으시려구요?”

 “음-.”

 

 그녀의 표정에 장난기가 사라졌다. 뭐 나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한참을 벗어난 임지에 세워진 연구소. 그리고 이곳을 지키는 군부대. 특이한 건 군부대로 보기엔 문제가 좀 많아보였으나, 그들에게 위험한 냄새가 났다. 아무튼 그런 부대가 지는 곳에 끌려왔으니….

 아, 내 인생이여.

 

 “따라오시죠.”

 

 그녀는 흰색 가운을 고쳐입고 방을 나서며 말했다. 어떤 것을 직감한 나는 나도 모르게 입안에 고였던 침을 삼키고 그녀를 뒤따라 나섰다.

 

 “차원전쟁때 굉장히 강력한 차원종에게 피해를 입은 프랑스. 그 프랑스의 한 해변가의 동굴에서 발견된 게 있어요..”

 “……?”

 “차원종의 알이었죠.”

 

 초구부터 탐색전을 위한 유인구가 아니라 정직한 스트라이크 존에 직구다.

 

 “잠깐만요.”

 “네. 말씀하세요.”

 

 그녀의 걸음걸이가 빠르다. 어느새 벌어진 거리를 다급히 좁히며 내가 잘못들었나 싶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 그 전에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거.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듣기에도 상당히 하이레벨의 기밀같아보이는 내용인데, 일개 말단직원인 저한테 이렇게 함부로 누설해도 되는 건가요?”

 “어머, 깜빡했네요. 저희 제 6 연구소에 부임된 사람들은 모두 시큐리티 레벨이 간부급과 같은 A등급이에요. 그렇다는 말은 그에 관련된 기밀사항들을 알아야할 필요가 있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간부들처럼 똑같은 대우를 해주는 건 아니지만요.”

 “하지만….”

 “그러다 밖으로 세면 어쩌냐구요?”

 “네.”

 

 그녀는 대답대신 자신의 목걸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목 밴드? 같아 보이는 것을 톡톡 건드렸다. 무심결에 오른손이 목 부근을 만지게 된다. 나도 그녀처럼 뭔가가 목에 걸려있었다. 언제였지? 차 안이었나. 그러고보니 내가 여길 어떻게 왔었더라. 아, 이곳 검문소에서 주길래 의심도 없이 찼었다.

 

 “쵸커라고 해요. 개발된 지 얼마 안됐지만,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죠.”

 

 그녀는 그 후 말대신 엄지로 목을 그었다.굳이 물어** 않아도 알 것 같다.

 

 “아무튼. 그 차원종의 여러 알들 중 단 하나만 부화했어요.”

 

 거대한 문 앞에서 그녀가 멈췄다. 내부가 거대한 쉘터임을 알 수 있는 문이었다. 걸어온 길과 넓이를 생각해보면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군용차량도 드나들 수 있는 넓이였다. 위치를 생각해보면 산 내부에 위치했음을 짐작케 했다. 얼마 후 앞에 선 거대한 문. 그 거대한 문 위에 달린 스캐너가 우리를 한번 훑고 지나간다. 그린라이트가 비치고 이내 육중한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데, 보통 두꺼운 문이 아니었다. 겹겹이 쳐진 수많은 강철강판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지나가고, 갈라지고 난리도 아니다. 보통은 호기심이 공포를 억누른다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내 인생이 심각하게 꼬여감을 단박에 알 수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뒤돌아 예전 백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이번엔 지하로 내려가네요.”

 “네. 차원전쟁 이후 모든 벌쳐스의 자금이 제 6 연구소에 모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그만큼 조심스럽고 위험한 곳이기도 해서요. 여차할 경우 연구소 전체가 차원압으로 짓뭉게지도록 만들어졌어요.”

 “제 3 신서울시. 뭐 이런 명칭이 붙고, 그 지하 깊숙한 곳에 센트럴 시그마니 뭐니 하면서 인류의 비밀이 잠들어 있다거나, 뭐 그런 설정 아니죠?”

 “아하핫!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그 정도'까진 아니란다.

 

 "하지만 차원종을 가지고 하는 실험이 주된 만큼 방비가 필요한 것 뿐 이죠. 특히 '알'에서 유일하게 부화한 ‘그것’은 이정도 방비로도 솔직히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요.”

 

 나도 모르게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겉의 연구소가 아닌, 진짜 제 6 연구소로 들어서자 나름 많은 사람들이 흰색 가운을 입고 파일철을 들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앞에 걷고 있는 그녀와 다들 짧게 고개를 숙이는 정도로 인사만 할뿐 누구하나 잡담을 나누려하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서 나오는 어떤 위기감. 긴장감등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말이다. 그 와중에 나를 보는 연구원들의 눈빛이 썩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곳에는 제가 언급한 ‘그것’외 실험체들이 많아요. 죽어있는 차원종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살아있고 그 중엔 A급 차원종도 있어요. 그래서 신참의 경우에 종종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켜서, 보통은 처음 이곳에 부임되면 시선이 그리 좋지 못해요. 이해해 주세요. 물론 저희가 지금 보러가는 건 '규격 외'의 것이지만요.”

 

 그 뒤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어떻게 내가 '그것'앞에 섰는지 잘 기억나진 않았다. 다만 '그것'을 눈앞에 둔 순간 그때까지 있었던, 긴장감이나 위기감은 사라지고 오직 세상에서 '그것'만이 눈에 들어왔다.

 

 “PEX-66로 벌쳐스에서 새로 개발한 위상력 추출기의 최신 모델이죠. 원래는 이런 말하긴 좀 뭐하지만, 차원전쟁 중 의식불명 클로저를 대상으로. 또는 전투 중 부상으로 인해 전투가 힘들어진 클로저를 대상으로 위상력을 추출해내던 구식 모델 PEX-01을 좀 더 개량해서 만들었어요. 오직 '저것'만을 위해 만들어낸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람의 위상력과 차원종의 위상력은 성질이 조금 달라서 사람의 위상력을 추출해내던 방식으론 도무지 추출할 수가 없어서 좀 과격하더라도 강도를 높혀야했죠. 사람의 위상력이 몸 전체에 퍼져있어서 어디로든 쉽게 추출할 수 있었지만, 차원종들은 핵을 기반으로 똘똘 뭉쳐있어서 청소기로 따지면 넓은 ***보단 좁은 ***에, 강한 흡입력이 필요했거든요.”

 

 그녀가 기계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정신은 오직 저 실험관에 들어가있는 존재에 가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세계수 나무 중앙에 위치한 요정같았다.

 수많은 파이프들이 그녀가 누워있는 실험관에 연결되어있었다. 밑에 파이프들은 뿌리같았고, 천장부터 내려와 연결된 파이프들은 마치 나무줄기와 가지들 같았다.

 나는 홀리듯 실험관으로 다가갔다.

 바닥을 어지럽힌 파이프에 걸려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일어나 좀 더 ‘그것’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이건.”

 

 실험관에는 작은 소녀가 괴상한 기구를 머리에 쓰고서 온몸이 구속된 채 숨만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꽉진 주먹 살틈으로 손톱에 파여 흐르는 피. 이따금씩 크게 들썩거리는 흉부로 보아선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 같다.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

 

 이선은 이지혜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으려할때 갑자기 목에서 강한 압력을 느끼고 이내 바탁을 뒹굴렀다. 필사적으로 숨을 쉬기 위해 머릿속의 지식들을 필사적으로 찾아내는 것도 힘들어질 무렵에서야 간신히 목을 움켜쥐던 무언가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좀 난폭한 방법을 써서 죄송해요. 이곳의 모두는. 심지어 저 역시도 같은 고통을 다 한번씩은 겪어봤고, 일종의 신고식 같은 거라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저도 알아요. 알고 있어요. 그냥 어린 여자아이같죠? 하지만 아니에요. 인류를 공포에 빠트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차원종. 그래요. 차원종이에요.”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며 콜록거리길 수분. 간신히 머리가 차갑게 식고, 가슴을 지배했던 불덩이는 꺼졌다.

 그럼 그렇지. 이 빌어먹을 인생.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이 목걸이 같은 이거. 완전 개목걸이다. 목숨을 담보로 기밀을 지키며 일하라는 것이다.

 

 “**. 입이 가벼운데 큰일났네요.”

 

 정말 큰일이다. 수다가 특기라면 특긴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죠.”

 

 아직도 고통이 깔끔히 가신건 아니라서 목을 쓸어내릴 때 이지혜씨가 시계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음. 딱히 맞춰 온건 아닌데 나름 맞네요.”

 

 설험관이 열리고 소녀를 구속하고 있던 천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소녀는 딱 봐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실험한 한쪽을 부여잡으며 간신히 일어섰다. 당장 부축하러 가고 싶은 마음에 달려가려했으나, 이지혜씨가 그냥 한쪽 팔을 뻗는 것만으로 저지당했다.

 그렇게 애처롭게 간신히 실험관에 나와 다리에 힘이 풀려 몇걸음 걷다 쓰러지길 여러번.

 은발의 ‘그것’은 최대한 거친 숨을 억누르고 조용히 내 앞에 서서 고꾸라질 것 같이 인사를 하고선 힘겹게 상체를 들어올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를 바라보는 이지혜씨의 표정이 살짝 미묘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 사람을 뽑아달라고 요청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으니, 이 정도쯤이야 그녀의 계산 범위겠지.

 

 “현재 제 6 연구소는 ‘이것’의 위상력을 추줄해 어떤 실험을 하고 있어요.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드릴게요. 어쨌든 윗선 말을 따라 ‘전술병기’ 샘플을 만들려고 하는데,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릇의 문제? 그렇다보니 하루 일과가 위상력 추출 후 거의 방치되기 일수라 상부에 건의를 했죠. 이를테면….”

 

 이지혜씨는 그렇게 말꼬리를 흐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자신의 명찰을 때서 바닥에 떨어트렸다.

 

 “… .”

 “… .”

 “… .”

 

 뭐하자는 거지. 명찰을 왜 갑자기 바닥에.

 나도 모르게 명찰을 줏어서 그녀에게 건냈다.

 

 “뭐 보통은 이런 반응이지만요. 제가 '이것'에게 원하는 반응은 이선씨 같은 반응이에요. 우리 인간의 말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어기지않는 한도 내에서 자발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개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선씨. 우리는 ‘이것’을 우리 밑에 두려고 해요.”

 “주종관계군요.”

 “이해가 빨라서 좋네요.”

 "'이것'도 전술병기로 활용하려는 건가요?"

 "네. 당연하죠. 가능할 경우 우리 인류는 최강의 적을 아군으로 두는 샘이니까요."

 

 딱히 뭔가 내키지 않는다. 직접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혹은 차원종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너무도 멀게만 느껴지는 남의 일이라서 그런가. 인류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것보다 그냥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인간형 차원종이라니. 이 정도면 아무리 벌쳐스라해도 기업레벨에서 다룰 개체가 아닌 거 같은데.

 

 "근데 보통 이런 건 유니온이라는 국제기관에…."

 "이미 유니온측에선 처분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물건이에요. 아시겠죠?"

 

 미쳤군. 미쳤다. 이곳은 미쳐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유니온이 어떤 기관이며 어떤 일을 하는 지정도는 안다. 근데 내가 알기로 유니온과 벌쳐스는 분명 상호협력관계에 있는 걸로 아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가. 모르겠다.

 **같은 커리어를 가지고, 일개 말단직원으로 세상사에 크게 밝지 않은 나로선 이런 큰 스케일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그릇이 못된다. 그렇다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안경을 만지며 웃는 이지혜. 저 여자도 이쯤되면 반쯤 미쳐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릇이 크다고 해야하나. 솔직히 모르겠다. 스케일이 너무 크게 다가와서 그런지, 감도 안잡힌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이 뭡니까?"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릇이 작은 내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다. 코딱지만한 사회 톱니바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아무리 주종관계가 성립한다 한들, 전술병기로서 가져야할 것들이 있죠. 예를 들면 지금도 '이것'과 저희들 사이에는 이미 주종관계가 성립되있어요. 제가 여기서 '이것'에게 폭력을 가한들 '이것'은 반항하지 않죠. 지금까지도 그래왔고요."


 나는 그녀의 말에 조금 언짢았지만, 대꾸는 하지 않고 미간을 살짝 좁혀 불쾌함을 표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생각이라는 걸 했으면 좋겠다는 거네요."

 "네. 전술병기로서 그저 사용되면 그만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임무에 따라서는 은밀하게 행동해야할때도 있고, 때로는 과격하게, 때로는 무모하게, 때로는 침착하게 차근차근 해야하는 경우도 있죠. 최악의 경우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임무를 이행해야하는 경우도 발생할 거구요."

 "음? 대상은 꼭 차원종을 상대로만 상정하고 있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데요."

 "거기까지 하는 게 좋아요. 너무 앞서나가거나, 깊게 생각하지 말아요. 어쨌든 우리 벌쳐스는 '이것'과 '이것'의 위상력을 가진 모델을 상품화해서 팔 예정이니까. 그렇게 그냥 알고만 있어요. 그 뒤는 생각하지 말아요.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책임을 가지기엔 당신의 존재는 나와 마찬가지로 티끌만해요. 체념하세요. 이미 강을 건너왔어요."

 

 선을 그었다. 아니, 그어줬다고 해야할까. 책임을 지지않는다해서 버튼을 누르는 인간은 되기 싫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쩔 수가 없다. 더욱이 그녀 또한 그러한 상황이라니. 뭐 조금 위안이 됐다. 이젠 그냥 팔자려니 할랜다. 돈은 많이 주겠지. 나중 일은 그때가서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주종관계를 성립시키면서도 좀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게끔하려고 한다는 거군요. 근데 어떻게요?"

 

 이지혜씨가 빙그레 웃었다.

 

 “그게 당신의 주된 업무 되겠습니다.”

 

  이지혜씨와 함께 연구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안내받았다. 말이 안내지,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작은 소녀에게 정신을 뺏겨서  연구소를 돌아다니는 내내 몇번이고 뒤쪽을 힐끔힐끔 돌아보고 만다. 그 작은 소녀는 마치 죄수처럼 손과 발에 족쇄가 채워진 상태로 양 옆에 두명의 클로저를 끼고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따라붙고 있었다.

 

 "지성이라는 건 딱 한군데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방면. 예를 들면 지각능력, 추론능력, 학습능력, 의사표현 및 전달 능력, 상황판단 능력, 행동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 지성을 가진 생명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 최근 인류사 전반에 걸쳐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는 건 알고 계시죠?"

 "A.I."

 "네. 맞아요. 인공지능이죠. 하지만 실재론 우리가 생각했던 것 만큼 구현되기가 쉽지 않았어요. 저기 보이는 바닥을 청소하는 기계는 프로그래밍된 명령체계에 따라 하는 일이 단순히 바닥을 쓸고 닦는 게 전부일 뿐이지만 저기에는 수백, 수천가지의 매커니즘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있기때문에 그 중 하나라도 오류가 생기면 다른 부분들까지 연쇄적으로 오류가 생기며 오작동을 일으키고 말죠."

 

 청소하는 기계가 고장이났는지 연신 벽에 들이박으며 도통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지 않았다.

 

 "우리가 말하는 오감.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가지고 태어나는 감각들이라서 그렇지. 기계에 이러한 능력. 예를 들어 시각을 매커니즘으로 구현하는 일은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한 작업이죠. 변화가 심한 빛의 음영, 강도에 따라서 특정한 사물을 봤을 때 사람과 같이 인지시키는 일은 비단 프로그래밍의 영역을 넘어서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가 필요해지기 때문이에요. 과학의 모든 것들이 결국 어느 시점에 그러한 문제와 맞닿습니다."

 "'인간은 왜?'라는 질문인가요."

 "네. 과학의 출발도 결국엔 철학과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으니까요. 아무튼 그래요. 인간이 왜 그것을 그렇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지. 그걸 알아야하죠. 근데 그건 타고난 거라 '왜?'라고 물으면 사실 곤란한 문제거든요. 사람마다 또 다 다르니까요. 해서 인간을 대체하는 인간형 안드로이드라던지, 특정한 명령체계의 최상위 권한을 담당하는 인간형 코어유닛이라던지 하는 것도 사실 멀고먼 이야기죠. AMA프로젝트도 현재 듣기로 팀 해체 직전이라는 말도 들려오고요."

 "AMA?"

 "Artificial moral agent. 인공적 도덕 행위자의 약자에요. 로봇공학에서 궁극적으로 완성해야하는 것으로 다른 분야를 빌려 말하자면 대통일 이론쯤? 으로 취급되는 물건이죠. 우리가 보통 A.I라고 부르는 인공지능도 AMA의 하위 단계에 불과해요." 

 

 인공체 자체가 도덕적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는 뭐 그런 개념인 것 같다. 확실히 그 부분이 개발된다면 따로 일련의 행동에 대한 반응을 하나하나 프로그래밍해버릴 필요가 없어진다.

 

 "그전에 지성을 가진 인간이 지성을 가진 피조물을 창조하려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걸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가령 이선씨가 너무 바뻐서 무단횡단을 시도하려해요.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닮은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그것을 제지한다 상상해보세요."

 "음.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드네요."

 "그런 부분들이 세계 모든 곳에서 전반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미쳐버릴 지도 몰라요."

 

 여러가지 상황들을 상상해본다. 위험한 기분이 든다.

 

 "인간이 가진 지성을 인간이 아닌 존재가 갖는다는 건, 결국 그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과 같은 존엄성을 가진다는 거에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스스로를 지고지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죠. 그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면 할수록 그것을 지켜보는 인간들은 밑바탕부터 부정당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될겁니다. 질투하게되는 거죠. 사람보다 사람다운 그들을 보면서요. 그런 존재들은 인간의 추악한 부분까지도 비추는 거울이 되는거고 그런 거울과 계속 마주해야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미쳐갈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런 세계가 도래하면 아마 얼마못가서 세계 각지에서 그 존재에 대한 악의적인 테러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날거고 종국에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SF영화 '인간vs기계'. 이런식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정설이에요." 

 "그럼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거 같네요."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그녀가 턱짓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벌쳐스가 여기서 살아있는 차원종을 가지고 실험하는 것처럼요."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것'으로 향했다. 흰색 계통의 츄리닝에 허벅지 한쪽에는 바코드가 큼직하게 찍혀있다.

 이제 막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정말로 차원종이라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옆에서 걷던 지혜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뒤쪽에 걸어오던 '그것'의 상의를 위로 살짝 올렸다.

 나는 상의를 아주 벗겨버리려는 건 줄 알고 기겁해서 나도 모르게 그 나쁜 손을 저지하려다 놀라운 걸 발견했다.

 

 "눈치가 빠르네요."

 "어? 난생(卵生)이라 들었는데요."

 "네."

 "배꼽이 있네요."

 "여성의 생식기도 가지고 있죠."

 "뭐...뭐라고요?"

 "해서 윗선에선 이종교배 실험을 요구한 적도 있지만, 아쉽게도 그냥 형태만 빌려왔을 뿐 배란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과가 났어요."

 

 세상에. 나라면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태연스럽게 한다.

 

 "하지만 뭣하면 한번 시도해보셔도 나쁘진 않겠네요. 혹시 알아요? 만약 성공하면 그건 그것대로 인류진화의 발판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어쨌거나 위상력 추출 작업 후엔 저건 당신의 소유물이니까요. 어떤 짓을 하든 죽이지만 않으면 자유거든요."

 "농담으로 건내는 말 치곤 꽤나 진심같아 보여서 무서운데요. 마치 해줬으면 하는 뉘앙스라서."

 "이곳 사람들은 적어도 저걸 사람취급 하지는 않으니까요. 당신이라면 가능성이 있어보여서 하는 말이에요."

 "끄응. 칭찬으로 생각하죠."

 

 지혜씨에겐 죄송한 일이지만 적어도 이제 막 중학생정도 되보이는 소녀를 여자로 보는 쓰레기는 아니다.

 

 "근데 좀 놀랍네요. 형태만 빌려왔다고 해도 생식기까지 형태를 빌려올 정도로 사람을 닮아있다니."

 "비단 생기기뿐만은 아니고, 생물학적으로 거의 인간과 일치한다고 보면 되요."

 "그래야했을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다시 그녀와 발걸음을 옴기면서 입을 열었다.

 

 "그들 나름대로 생각한 진화의 형태 중 일부겠죠."

 "진화요?"

 "네. 진화요. 말했다시피 차원전쟁때 발견된 알들 중 유일하게 부화한 개체죠. 무엇을 위해 인간을 닮았다고 생각하세요?"

 "음…."

 "진화의 형태나 방식에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적을 닮는 것도 있죠. 적을 이기기 위해 적을 모방하는 방식의 진화는 현재 우리 지구 생태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진화방식 중 하나에요."

 "근데 굳이 차원종들이 인간을 모방할 필요가…."

 

 그 순간 아까 말했던 '전술병기'가 생각났다.

 

 "전쟁에서 적에게 가장 크게 타격을 주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뻔하다.

 

 "지휘체계를 무너트리는 거군요."

 

 말하고나서 소름이 돋았다. 뒤따라오는 소녀. 가장 효과적으로 인간을 처리하기 위해 인간을 모방한 개체였던 것이다. 그들이 사람이 다니는 거리를 같이 활보한다한들 차원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개체들이 소수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인간과 같은 차원종이 사람을 헤친다는 말 정도는 도시전설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개체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 사회 전반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켜 최악의 상황을 일으킨다고 가정해본다. 

 

 사회는 불신에 휩쌓인다. 

 어제 잠자리를 같이 했던 연인이 차원종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이웃이 차원종일지도 모른다는 불신.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차원종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오늘 웃으며 같이 술자리를 나누었던 사람이 차원종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나에게 명령하는 사람이 차원종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사회를 점점 갈아먹어 이내 곧 사회를 마비시킬 것이다. 거기서 점점 쌓이는 광기는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동족살인을 야기하고, 이내 각종 범죄행위가 일어날 것이다.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쿠데타.

 집단적 광기는 오랫동안 지속되면 종교로 포장된다. 차원종을 신이나 메시아로 떠받드는 사이비 종교가 생겨나고 각종 테러행위가 만연한다. 그런 테러 행위를 막기위해 군대 혹은 클로저들이 투입되기 시작하면 또 다른 문제들이 고름처럼 부풀어오를 것이다. 거기서 차원종은 표면적으로 큰 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승리하리라.

 

 

 "이제 아시겠어요?"

 "…네. 그럴만도 하네요."

 

 이제서야 저 어린 소녀의 취급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다.

 저 소녀는 말하자면 차원종의 대인 전술병기나 다름이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것도 단기적인 안목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만들어진 개체. 만약 그들이 순탄하게 부화해 차원종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했다고 생각하면 오싹한다.

 

 "문제는 저 개체를 인간들 사이에서 차원종으로 밝혀냈다한들 그 국가에서 단독으로 제압할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에요."

 "예?"

 "현재는 각종 구속구로 굉장히 억누르고 있고, 매일 위상력을 추출해내기에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쇠약해져있는 편인데, 그럼에도 B등급 차원종이죠. 거기다 특이하게 차원종처럼 '핵'의 형태로 위상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성질인 제 2 위상력을 소유하고 있어서 다른 차원종들과 달리 제약을 받지도 않고요. 처음부터 이쪽에서 날뛰도록 만들어진 특수개체. 본래 만전의 상태라면 저 개체 하나만으로도 작은 국가 하나는 멸망시킬 정도로 강해요."

 

 저렇게 당장이라도 고꾸라질 것처럼 연약해보이는 소녀가 작은 나라의 군사력을 웃도는 전투력이라니. 이거 점점 맡은 임무가 가시방석이다.

 

 "저…다루기에 리스크가 너무 큰게 아닌가요."

 "물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행이라면 부화했을 당시 인간을 부모로 인식한 모양인지라, 저희들을 '부모'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도 아주 완벽한 안전장치는 아니죠. 그래서 현재 개발 중인 모델이 하나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자신의 목과 나의 목을 번갈아가며 가리켰다.

 

 "저희들이 일반적으로 착용하는 쵸커의 출력이 1이라면 10정도로 높게 잡아서 개발하고 있어요. 때에 따라서는 그 자체적으로 위상력병기로서 활용이 가능하도록. 아, 걱정말아요. 저희가 착용하는 건 출력이 약해서 살상능력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거기다 아직 테스트 버젼을 양산해둔 것이라 작동불량인 것도 많구요."

 "작동불량인 건 어떻게 찾아내는데요?"

 "알고 싶으세요?"

 

 빙그레 웃으며 되물어보는 그녀의 표정이 시리도록 무서웠다.

2024-10-24 22:38:3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