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바람의 노래

엄마도사람이야 2015-08-10 2

이제 그만 들어가야지

 

 

 

오늘도 아무 말이 없다.

 

 

 

 

서유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다잡으며 혹시나 목소리가 갈라져 나온 건 아닐까 하고 잠시 걱정을 하다가, 그 걱정을 그대로 담아 고개를 들었다. 검은양의 리더라고 불리는 젊은 아가씨는 여전히 바다를 바라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쓸쓸히 가라앉은 종이 조각 같은 바스락거림을 담은 채 바다를 닮아 짙은 소라색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춥지 않아?

 

 

 

그저 하염없이 바다로 몸을 돌린 그녀의 등뒤에서 서유리 , 매력적인 흑발의 머리칼과 정직한 검은 눈동자를 가진의 유니온 제일의 만능요원 서유리는 그 뛰어남에 걸맞지 않을 것같은 무디고 씁쓸한 눈빛으로  신서울의 한줄기 빛이자 연분홍 결의 좋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가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을정도의 , 고귀한 아름다운 그녀의 뒷모습을 담았다.

 

 

 

 

 

 

리더. 

 

 

 

나지막히 불려보려다 다시 입안을 맴도는 그녀의 이름.

 

 

 

 

 

 

서유리는 결코 슬비를 방해할 수 없었다.

 

 

벌써 3년

 

 

20세의 어린나이에 쫓기듯 살아온 이 잔인한 살육의 세계에서 팀의 리더를 지탱하는 건 다름아닌 이 바다를 향한 기대와 한숨과 미련이라는것 , 서유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무심하게도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 쇠냄새와 자욱한 피비린내는 저 멀리 해협을 건너 바람에 실려오는듯 해서 슬비는 괜스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머언 곳에서 간간히 울리는 폭발음에 잠긴 그들의 나라

 

 

 

 

 

그곳엔 그가 있었다.

 

 

 

 

 

 

' 유리야 , 그는 돌아올까? '

 

 

 

 

 

' 그럼  , 세하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남자이니까 , 그러니까 ...내일이라면 반드시 돌아올거야. '

 

 

 

 

 

 

 

바람결에 조용히 리더의 습한 미소가 아려온다. 조용히 눈을 내리깐채로 그녀는 3년전 자신의 등을 떠밀며 곧 돌아오겠다고 나지막하게 자신을 다독이던 자신과 다른 머리색과 검지만 푸르른 눈동자를 가진 자신의 이 끝없는 기다림의 주인을 가만히 불러본다.

 

 

 

 

 

 

이세하.. 

 

 

 

그녀의 목소리는 파도가 삼킨 바람에 묻혀 이내 그녀의 눈동자로 가라앉는다.

 

사파이어를 꼭 닮은 눈동자를 잠시 눈꺼풀안에 감추었다가 다시 내비치며 그녀는 몸을 돌려 서유리에게 손을 내민다. 그녀의 검은 요원복뒤로 안타까운 빛깔의 석양이 내리쬐어 슬비는 주홍의 빛깔로 물들여져갔다.

 

 

 

 

 

서유리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짧은 발걸음 동안, 그 순간 서유리는 그녀의 모든 것을 담는다 그녀의 방울 귀걸이에 달린 석양의 빛과 꼭 닮은 루비에서부터 구두에 박힌 큐빅의 장식이 반사하는 조그마한 빛의 눈부심까지 보석같은 그녀의 눈동자에서부터 그녀를 맞잡은 오른손의 나지막한 떨림까지

 

 

 

 

 

서유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천천히 본부로 돌아가려던 슬비는 손등에 닿는 이른 봄바람과 같은 따스함에 살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심장까지 녹이는 듯한 고요하고 아늑한 입김이 그녀의 손등에 내려앉은 것이다.

 

 

 

 

 

서유리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슬비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조금 크게 떠진 그녀의 눈을보며 유리는 힘있게 말했다.

 

 

 

 

 

' 세하는 반드시 돌아올거야 '

 

 

 

 

 

슬비의 눈동자가 촉촉히 웃는다.

 

 

 

 

 

' 난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걸.. '

 

 

 

 

 

' 세하는 돌아오는 것 밖에 할 수 없는걸 ? '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대꾸에 슬비의 입가는 웃음으로 번져나간다.그런 슬비를 유리는 하염없이  ,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유리는 등뒤로 감춘 손에 힘을 주었다.

 

꾸깃꾸깃 접히는 종이에는 휘갈겨 쓴 듯한 언어가 비쳤다.

 

 

< 2015 8/8 18:35 사망 확인서 - 정식요원 이세하 >

 

오늘도 이슬비는 꿈을 꾸고 서유리는 그녀의 꿈을 나눠 담고있다.

바람에 흐르는 노래는 여전히 짜디짠 소금기를 싣고와서 , 눈물이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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