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현실도피 2015-07-31 1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있나요?'
그 말을 한 사람만큼이나 엉뚱한 질문이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내 발목을 잡았다.
생뚱맞은 질문에 황당해하며 돌아보자 그 이름모를 아줌마가 생글생글 미소를 지은채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처음보는 사람일터인데 이상한 질문 공세를 시작하더니 급기야 팔까지 잡고선 놔주지 않은채였다. 엉뚱한 말을 계속 늘어두고 있는거와 달리 악력은 어찌나 쎈지 유니온에서 오래도록 근력 훈련을 해왔던 나조차 뿌리치지 못할 정도였다.
오늘은 유니온의 예비 클로저가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는날이었다. 드디어 오랜기간 바라던 클로저요원에서 '예비'라는 거추장한 접두사를 떼버리는 기념비적인날의 퇴소식에서 최우수 훈련생 대표로 선발되어 모든 훈련생 앞에 서있었던건 다름아닌 나 이슬비였다.
퇴소식이 끝나고 예비 클로저들을 축하하기 위해 동경해 마지않던 알파퀸 서지수가 찾아온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우리 예비 클로저들은 모두 알파퀸 서지수를 기대하고있었다. 말로 할수없는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말조차 부족한 화려한 전적. 하지만 그렇게나 유명한 존재임에도 누구도 실제 모습을 알지 못하는 베일에 쌓인 비밀의 클로저. 그것이 서지수였다. 그 서지수를 실제로 만날수 있다는것에 우리 예비 클로저들은 한껏 기대를 품고있었다. 그건 나 이슬비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것이 내가 퇴소식이 끝나자마자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숙소 정리를 빨리 끝내기 위해 달려가고 있던 이유였다.
하지만 그 모든 계획이 이 이름모를 아줌마의 등장과 함께 뒤틀리고있었다.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내 앞을 가로막더니 '어머, 네가 이슬비니?'라는 아줌마 대사로 시작된 평소 취미를 묻는다던지, 요리 실력이나 교우 관계같은 쓸데없는 질문공세가 속사포로 쏟아질수록 내 마음또한 내 계획과 함께 뒤틀려가고있었다.
아무리 대답해줘도 끝날기세가 안보이는 질문에 나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받기 시작했고 마침내 급한 용무가 있어 가**다 말하고 뿌리치고 가려는 순간 내 팔을 잡으며 마지막으로 한 질문이 이것이였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있니?"
나는 순간 말문을 잃었지만 그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내지 못해서가 아닌 이런 상황에서 할만한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황당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죄송하지만 지금 시간이 없어서 그런 질문은 나중에..."
그렇게 대답하고 가려는 찰나 오지랖 넓은 아줌마의 입에서라곤 생각도 할수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슬비. 예비 클로저로써 종합 최우수 성적으로 훈련소를 졸업. 10년전 차원전쟁 발발 중 부모를 잃고 위상능력을 각성. 이후 유니온에 편입. 당시 민간인 중 유일한 생존자"
...? 잠깐! 어떻게 이걸 알고있는거지?
그 말은 사실대로였다. 하지만 유니온 클로저의 인적사항은 누구나 쉽게 열람가능한것이 아니다. 특히 그중 이슬비, 내 기록의 열람 요구 등급은 4레벨로 최중요 기밀에서 바로 한단계 아래에있는 일반인이 열람가능한 물건이 아니였다. 관계자가 열람 요청을 하거나 초고위급 유니온 관계자가 아니라면 알수없는 사실이였다. 아직 정식 클로저도 아님에도 내 인적 사항이 이렇게 높은 열람제한을 받은건...
"그리고 당시 위상능력 발현 직후 위상력 폭주로 주변에 생존해있던 민간인을 모두 살해한 복수귀"
... 이 때문이였다.
유니온은 위상능력자의 위상력은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기 어렵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지금도 위상능력자라는 이유만으로 소리없는 차별을 받는 클로저에게 위상력 폭주로 민간인들이 휘말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위상력을 사용하는것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보일지도 모른다. 위상능력자를 통제 관리함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유니온으로썬 절대로 피하고싶은 상황인것이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전에 먼저 질문에 대답해줄래? 음... 질문을 바꿔볼까?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고있는거지?"
목소리의 주인에게서 어느 순간 미소는 사라져있었다.
그녀는 진지한 목소리로 눈을 부릅 뜬채 내 모든것을 꿰뚫어보려는듯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이미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잃었어. 차원종에 대한 복수 때문이라면 네 복수는 어떻게 해야 달성되는거지? 부모를 죽인 차원종을 죽인거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네 복수심은 어떻게 해야 달성되는거지? 모든 차원종을 죽여야 하는건가? 아니면..."
거기까지 말을 하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나의 모든것을 꿰뚫는듯 하면서도 그 안에 어딘가 슬픈 연민이 담겨있었다. 마치 자신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지켜봐왔다는 듯한 시선이였다.
"이 세계의 멸망?"
"..."
나는 할말을 잃었다.
사실대로다. 나는 어느순간부터 차원종에 대한 복수를 바라지 않게되었다. 이런 세상이 아니였다면 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앞서기 시작했다. 위상능력을 얻게된것에 대해서, 차원종들에 대해서, 내가 가지지 못한 평범한 일상을 아무런 대가없이 누리고있는 사람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중에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을 내린 세계가 미웠다. 차원종에대한 복수의 감정은 이 세계에 대한 증오로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더이상 세계에 증오를 품고있지 않는다. 차원종에 대한 복수심은 남아있지만 싸우는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다. 내가 계속 싸우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나는 천천히 생각을 거슬러올라가기로 했다. 모든 일이 시작되었던 시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그러면 떠올릴수있지않을까? 나는 오래된 낡은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 *
처음은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얼마전까지 원치않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것만 떠올릴수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 앞에 쓰러져있는 형채없는 무언가가, 내 부모가 입고있던 옷이 찢겨져있는 모양이라는걸 깨닫고 나서야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기억났다. 더이상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방금전까지 증오를 불태우던 자신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아니 사실은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기보단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이 모든것이 마치 낡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B급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타인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어딘가 이런 비극적이 일어난건 극중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멀게만 느껴져서 지금 서있는 내게 현실감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니온에서 클로저가 파견되어 상황을 파악하고 내 신변을 인도해갔다. 나는 바로 유니온의 격리시설에 격리되었고, 그제서야 상황이 파악된듯이 내 눈에선 조금씩, 이내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픈 감정이 휘몰아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정도였다.
몇일 후, 나는 위상능력자로 판단받고 유니온의 클로저에 제의받았다. 어린 위상능력자가 위상력에 각성한 직후엔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자주 위상력 폭주를 일으키곤 한다곤 했다. 그들의 말은 이런 경우가 한두번이 있었다는것이 아니라는듯 덤덤했다. 나는 그들의 제의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네가 슬비니?"
제의를 받아들여 유니온의 기관에서 생활하며 예비 클로저로 훈련을 시작했을무렵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사람은 유니온에서 예비 클로저를 관리하는 관리요원이라고 했다. 위상력이 없는 일반인이지만 우리같은 위상능력이 불안정한 사람들을 보조해주는 역활이라고 한다. 원래는 관리요원 한명당 많게는 50명까지 예비 클로저들을 관리하지만 나와 같은 경우는 특이 케이스로 1:1의 집중 관리를 받는다고 했다.
"나는 오늘부터 네 관리를 담당하게 된 관리요원 이서연이라고해. 잘 부탁할게"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녀는 다른 관리요원들과는 어딘가 다른부분이 있었다. 먼저 그녀는 항상 관리요원 등급 심사에서 꾸준히 최하위권의 성적을 받아왔다. 내가 처음 관리받는 대상이 되어서 이전까지 관리 경험없는 신입이란 점을 고려해도 그녀의 평가는 심각했다. 항상 최하위권에 멤돌면서도 관리요원직을 잘리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또 그녀는 내가 규정시간 이외에 훈련에 집중하는걸 이상하게 탐탁치 않아했다. 나는 항상 규정된 훈련이 끝나고도 남는 시간을 훈련에 할애해왔다. 빨리 정식 클로저요원이 되어서 차원종들에게 복수하고싶었다. 그렇게 되기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시간동안 쉬지않고 연습을 해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싫어했다. 훈련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훈련을 방해하려는듯 뭔가 먹고싶은건 없는지, 보고싶은건 없는지 물어왔다. 한때는 뭐든지 들어줄테니 필요한게 있냐고 물어본적도 있는데 내가 훈련에 집중해야하니 혼자있는 시간을 마련해 달라고 말한뒤에 뭐든지 들어준다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니온의 관리 요원은 관리하는 대상 클로저에게 최대한의 성과를 내게 하는게 최우선의 목표다. 다른 관리요원처럼 억지로 훈련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훈련을 하는 나라면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도 그녀의 등급 심사는 최고점을 받아올게 틀림없음에도 왜 이런일을 하는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수없었고 나와 그녀의 관계는 항상 서먹서먹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화제를 이끌어내 내 흥미를 끌어보려는듯 했지만 내게 그런것 따윈 전부 관심없는 일들이였다. 그때 내가 흥미를 가지던것은 오로지 얼만큼 위상능력을 끌어올릴수 있는가 뿐이였다.
그런 절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와 그녀가 가까워진건 우연이라는 말로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나는 위상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에 집중하고있었다. 얼마전 기관에 있는 예비 클로저들중 상위 성적자들에게 훈련 이수 기회가 주어진다는 공문이 내려온후 내 의욕은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반드시 상위 성적자가 되어 훈련 이수받고 정식 클로저요원이 되자는 생각뿐이였다.
그날도 열심히 훈련에 집중하고 있을때 갑자기 그녀가 물어왔다.
"훈련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니?"
당연한 질문을 물어왔다. 나는 정식 클로저요원이 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녀는 알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게 자기가 원했던 답변은 아니라는듯한 눈치였다.
어쨌든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나는 얼마뒤 중간 성적 검사를 치루게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을 해왔으니 나는 어느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해있었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들어간 나를 그녀는 근심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중간 검사의 결과는 최악이였다.
그렇게 훈련을 했음에도 나의 위상능력은 전혀 나아지지않았다. 좌절감이 나를 감쌌다. 그녀는 아직 중간 검사라며 최종 검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된다고 격려했지만 내게 전혀 격려가 되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부터 수면시간까지 줄여가며 훈련에 매진하기로 했다. 반드시 상위 성적자가 되자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훈련에 집중할수록 그녀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최종검사일, 그녀는 말없이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마치 어딘가로 떠날것같은 아이의 손을 붙잡은듯한 부모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것보단 이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것이 먼저였다.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결과는 최악이였다.
나는 중간까지 점수를 벌지못한 나는 점점 초조해져만 갔고 마지막 시험에서 무리하게 한도를 넘겨 위상력을 쓰기 시작한 순간 위상력 폭주를 일으킬뻔하고 말았다.
유니온 요원들이 파견되어 시험을 긴급히 중단했고 나는 다시 격리조치에 들어가게 되었다. 위상력이 심각하게 불안정하다는 판정을 받게 되고 클로저로썬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위상력 봉인을 받게 될뻔한 순간 그녀가 내가 폭주하게된 원인은 자신이 무리해서 내게 위상력을 쓰라는 명령을 했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뒤집어 썼다.
그덕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위상력이 안정되었음을 확인받은뒤 다시 예비 클로저로 복귀했고 그녀는 나를 대신해 징계를 받은뒤 2주가 지나서야 어딘가 헬쑥해진 모습으로 웃으면서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수없었다. 훈련을 하지 말라고 하는건 나를 방해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위상력을 봉인 당한채 더이상 클로저가 되지 못하게 될 나를 대신해 스스로 징계를 받았다. 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하는거지? 이유를 그녀에게 물어보자 그녀는 멋쩍게 웃으면서, 훈련을 하고있는 내 모습이 왠지 슬퍼보여서 기운을 차리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훈련을 해서 클로저가 된다고 해도 항상 싸우는 훈련밖에 할줄 모르는 어른이 된다면 슬플거라면서
나는 여전히 그녀를 이해할수 없었지만 왠지 멋쩍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리운 따뜻함이 느껴진다는 것을 알수있었다.
* * *
시간은 흘러 나는 3년뒤 치뤄진 검사에서 상위 성적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훈련 이수가 확정되었다. 기관에서 장소를 옮겨 훈련을 받게 됨에 따라 나의 관리 요원이던 그녀 또한 나를 따라 장소를 이동하게 되어 같은 숙소, 같은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그녀와 함께하면서 그녀에 대한 몇가지를 더 깨달을수있었는데, 먼저 그녀가 심각할정도로 드라마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것을 깨달을수있었다. 특히 사랑과 차원전쟁이라는 드라마가 그녀에겐 빛이요 진리처럼 받들여지고 있었다.
매번 사랑과 차원전쟁이 방영된 다음날 저번화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그녀에게 못 견디고 다음주에 같이 보자고 선뜻 제안을 내민것을 나는 곧 후회하게 되었다. **에 **을 거듭하는 끝없는 반전에 결국엔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아오며 살아온 착한 며느리가 인생 역전을 하게 된다는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스토리를 보고 나는 무심코 아줌마들을 노린 막장 드라마네요. 라고 평했고 밤 늦게까지 사랑과 차원 전쟁 드라마의 역사와 위대함에 대해서 설교하는 그녀의 말에 시달려야했다.
반쯤 포기한채 '네네'하며 사랑과 차원전쟁은 위대하다는 그녀의 말을 인정한 결과 매주 나는 그녀와 함께 사랑과 차원 전쟁을 생방송으로 항상 지켜보게 되었다. 그 행동에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또 그녀는 잠이 정말 많았다. '그렇게 잠이 많으니 항상 평가 등급이 낮은거라구요!'하고 구박하자 '사춘기때 그렇게 잠 적게 자고 살면 가슴 안 자란다'란 저주를 퍼부었다. 나는 그게 저주가 될거라곤 생각도 못했었고 그녀의 말을 흘려듣는게 아니였다고 후회해봤을땐 이미 늦은뒤였다.
항상 규정따윈 읽기 귀찮다며 대충 읽고는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게으른 그녀의 가사 능력은 전멸적이였다. 그탓에 주말에 요리와 청소등 가사 전반은 자연적으로 내가 전부 내가 도맡아 하게 되었다. 평가대로의 최악의 관리요원이였다. 그래도 의외로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써주고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고 있는것이 그녀의 장점이였다.
나 또한 겉으로 하는 말과는 달리 그녀에게 점차 마음을 열어가고 있음을 느낄수있었다.
* * *
사건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다가왔다.
시끄러운 경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그것이 차원종 출현 경보라는걸 이내 깨달았다.
이곳에 절대 나타날리 없는 차원종이 어떻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현실이였다. 문을 박차고 나가자 이미 기숙사는 군데 군데 깊은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다른 훈련생들이 지원온 클로저 요원들의 도움 아래 하나둘 도망치고있는것이 보였다. 이것이 가벼운 사건이 아니라는것을 금방 깨달을수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나는 내 방에서 아직도 몸을 뒤척이며 한껏 졸린 목소리로 눈을 비비며 내게 무슨일이냐고 묻고있어야할 그녀가 어제 근무를 떠난채 아직 방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달려가고 있었다.
심장 고동이 빨라져감을 느낄수있었다. 사무실에 아직 그녀가 있었다면 아직 돌아오지 않는게 당연해. 아마 아무일도 없을것이다. 그렇게 자기 위안삼으며 빨리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차원종과 전투중인듯한 폭음이 들려왔지만 그런걸 신경쓸 겨를이 아니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생사가 중요했다. 계단을 한 걸음에 달려올라가 사무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사무실의 안은 처참했다. 벽은 군데 군데 금이 가있고 서류들은 휘날리고있었다. 이곳 저곳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암시하는 흔적이 새겨져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그녀가 없다면 그녀는 이미 피신했을것이고 경보를 받고 달려온 클로저들이 전투한 흔적이 남는건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그녀를 찾으러 가려는 찰나
"...슬비니?"
발 맡에서 그리운 조그만한 소리가 들렸다.
내려다보자 배에서 피를 흘리고있는채 그녀가 쓰러져있었다. 한손엔 비상 알림장치의 버튼을 꾹 쥔채로, 다른 한손으로 나의 발을 잡은채로 쓰러져있었다.
순간 생각이 멈췄다. 어떻게 이렇게 된거지? 차원종이 습격해서? 습격당했으니 치료를 해야해.. 하지만 상처가 너무 깊다. 그러니 빨리 치료를 해야만한다. 어떻게 해야하지? 밖에 차원종인가? 차원종의 눈을 피해서 염동력으로 창문을 통해 보내면.. 하지만 위험도가 높다. 치료해도 살기 힘들 정도의 상처야.. 이걸 입힌건 차원종이다..
그때 뒤에서 차원종들이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온 몸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그래 이것들 때문이다! 이것들만 없으면 처음부터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것들만 없었으면...!
"슬비야.."
차원종들을 전부 죽이면 이런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서야 다시 지키고 싶은 사람을 찾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처음부터 자못된건 이 세계가 아닌가? 차원종을 전부 죽인다고 해서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건가? 여태까지 위상능력을 다루기 위해 노력해왔던건 무엇때문이지? 어차피 이렇게 될거라면 아무런 의미도... 잘못되고 불합리한건 차원종이 아니라 이 세계인건 아닐까? 차라리 처음부터 이딴 세계따윈 없었으면...
"슬비야!"
그때 내 몸에 따뜻한 얼굴이 파뭍혔다.
힘을 잃고 넘어지자 그녀가 얼굴이 내 몸에 파뭍혀 있는것을 보았다.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괜찮아. 너는 평생 복수만을 위해 살지 않아도 살수있으니까 괜찮아"
그녀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내가 있던 사무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져있고 주위엔 차원종이였었을것으로 보이는 형체들이 갈가리 찢겨있었다. 있을곳에 있어야했을 창문과 벽들조차 이미 흔적조차 없이 가루가 되어있었고 오직 나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것이 처참하게 형태가 짓이겨져있었다. 멀리 하급 차원종들이 몇마리 보였지만 나의 모습을 두려워 하는지 잠시 쳐다보다가 도망가버렸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은 내 위상력 폭주에 휘말린 탓에 이미 하반신이 보이지 않았다. 처참한 상태였다. 치료를 하면 살수있다는 희망따윈 더이상 품기 어려운 상처라는것을 금세 이해할수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그녀의 모습이 흐려져보이기 시작했다.
어째서? 처음 위상능력을 각성했을때도 느껴지지 않던 현실감이 나의 몸을 짓눌렀다. 힘이 없어서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힘을 얻었다. 이제는 힘이 생겼지만 여전히 나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노력해왔던걸까? 복수를 위해서? 하지만 복수를 위해서 쓴 힘이 오히려 그녀를 상처입히고 말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노력해왔던거지?
"괜찮아. 으응. 분명히 괜찮을거야."
그런 내 생각을 읽은듯 그녀는 계속해서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몸에서 천천히 그녀의 몸이 식고있음을 느꼈다.
* * *
차원압력을 무시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있은 이후로 유니온 시설 전곳에 걸쳐 경비가 강화되었다. 인명피해는 그녀가 도망치지 않고 사무실에 끝까지 남아 경보를 울리고 예비 클로저들이 생활하는 숙소가 아닌 자신에게 차원종들이 오도록 유도했기에 큰 피해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녀와 피해자들의 장례식이 치뤄졌고 나는 새로운 관리요원이 배치될거라 통보받았다.
나는 스스로를 용서할수없었다.
어찌할바를 모른채 울고있었다. 나의 또다른 부모와도 같던 그녀의 존재는 내 생각 이상으로 큰것이였다. 그녀가 없어진 이후 나는 계속 속이 텅빈듯이 공허한채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떠오르면 우는것만이 내가할수있는 전부였다.
혼자서 울고있던 그날 갑자기 어느 여성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내가 울고있는 이유를 물어보더니 사정을 듣고선 자기가 밉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싶니?"
그녀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모르겠어요. 단지 그녀와 부모님의 복수를 하고싶어요. 그녀를 죽인건 차원종이면서 저 자신이기도 해요. 차원종을 전부 없애고 모두 없어진다음엔 제가 죽겠어요. 그것이 제가 할수있는 속죄에요"
나는 울면서 대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딱하다는듯이. 한숨을 내쉬곤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너는 정말로 그것으로 만족하니? 복수만을 위한 삶이 네 삶의 전부니? 네가 그런 삶을 사는걸 그녀는 바라고 있었을까?"
"그래도..!"
반박을 하려는 순간 그녀가 나를 껴앉아 말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괜찮아. 너는 잘못이 없어요. 그녀는 마지막에 그녀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거야. 차원종에게 당하고, 혹시 네게 상처입은게 우연이라고 해도 그게 그녀가 마지막에 선택한 삶. 만약 그녀가 도망갔다면 살아남을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모두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삶을 택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 덕분에 살아남은 네가 그녀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산다면 그건 슬픈일이에요. 네 스스로의 삶을 찾아서 살수있도록 하세요."
"저는..."
"괜찮다니까! 자. 머리 더 쓰다듬어 줄까? 이젠 괜찮지요?"
그녀는 계속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자장가를 불렀다.
나는 슬픈 기분이 들었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어딘가 그리운 느낌이 들어 어느새 잠이 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죠?"
"나? 나는 음.. 서지수.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눈물로 젖어 흐릿한 시야속에 환하게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며 나는 잠이 들었다.
* * *
"네.. 세계의 멸망같은걸 생각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저는 제 삶을 살아가기로 했어요. 차원종에 대해 복수하고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복수심 때문에 싸우고 지금까지 살아있는게 아니에요. 저는 제가 겪은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게 하고싶어요. 그래서 싸우고 그래서 살아있어요."
나는 답했다.
그러자 그 이름없는 아줌마는 잠시 말이 없어지더니 이내 만족했다는듯이 활짝 웃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런가. 아. 얘들은 어느새 이렇게 훌쩍 훌쩍 커버리는지.. 시간이 참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다니"
그렇게 영문모를 말을 하더니
"아 혹시 학생,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있어?"
"아.. 아뇨? 없는데요? 그건 갑자기 왜.."
갑자기 이상한 주제로 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아줌마는 이후에도 이상형의 키는 어느정도냐, 나이는 동갑이냐 연상이냐 연하냐등 이상한 것들을 한참 물어보더니 '우리 아들은 많이 힘내야겠구나...'하는 알수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다음에 보자며 웃으며 뒤를 돌아갔다.
겨우 이름모를 아줌마에게서 해방되어 한숨을 쉬고 돌아가려는 찰나, 손을 흔들며 활짝 웃은 그 아줌마의 모습이 어디선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분탓이겠지.
오늘은 할일이 많다. 빨리 다음에 들어올 예비 클로저들을 위해 숙소를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를 해**다. 그리고나서 어릴땐 알지도 못했던 동경의 대상, 알파퀸 서지수를 만나러 가자.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
2015.07.31 Cx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