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정미슬비] All for you -에필로그-
월하령 2015-07-26 10
“…….”
요즘 들어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을, 정미는 어렴풋이 자각해가고 있었다.
“…….”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따사로운 햇살,
날아다니는 작은 새의 무리,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까지도 음악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도 쓸데없이 감상적이 된 거 같네.”
그럴 수밖에.
그야 그렇지 않은가.
ㅡ감금당한 사람 입장에선 그런 평범함조차 감미롭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선배~. 저 왔어요.”
“……너도 참 넉살 좋네. 이젠 눈치도 안 보는 거니?”
“이래봬도 꽤 조마조마 하다고요. 올 때마다 떡대들이 문 앞을 지키고 있어서.”
감금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오는 건데 당연하지, 라고 쏘아붙이려던 정미는 가만히 한숨 쉬는 걸로 나오려던 말을 밀어 넣었다. 오히려 이런 태도가 고맙기까지 했다. 뭐라고 해도 지금 정미에게 있어서 유일한 말 친구는 이 후배였으니까.
“그나저나 선배도 참 대단하네요. 감금당하면서 이렇게 좋은 곳에 계시다니. 역시 천재에겐 대우가 다른 걸까요. 제 방보다 좋아 보여요.”
“……그러게. 나도 의외였어.”
슬비가 플레인 게이트를 향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미는 유니온 감사팀에 의해 체포되었다.
혐의는 금지된 항목에 대한 연구. 666시리즈를 토대로 만들었던 코어가 화근이 된 것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반응이 너무 빨랐지만.’
아마 중간에 정보가 세어나갔겠지. 낙하산으로 보일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에 들어온 그녀를 고깝게 여기는 연구생들은 셀 수 없이 많았으니까. 게다가 불가피하게 보나가 속한 물리연구과 쪽에도 신세를 지고 말았다. 어디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 것 치고는 대우가 이상하리만큼 좋다는 점은 의문이려나.
‘그래봐야 기밀을 알고 있는 연구원을 함부로 대하기 껄끄럽다는 이유 정도겠지만. 함부로 죽였다간 문제가 될 테니, 감금해 놓기로 한 거겠지.’
“선배?”
물론 각오하지 않았던 사태는 아니다.
하지만, 잡히는 바람에 결국 슬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목숨 정도는 내놓을 각오로 저지른 일이었건만, 그런 각오를 한 결의가 무색해져 버리기까지 하고.
“인생이라는 거…진짜 맘대로 안 되네.”
“네?”
“아냐. 그냥 혼잣말.”
“네에….”
“연구소 쪽은 어때? 나 없어도 잘 돌아가지?”
“놀리시는 거죠? 지금 선배님 없어졌다고 중단된 프로젝트가 한두갠줄 아세요?”
“…나 하나 없어졌다고 그렇게까지? 너희들 진짜 무능하네.”
“우와아! 막말했어! 기껏 찾아와 준 사람에게 막말했어!!”
“아무리 그래도 한 사람 빠졌다고 프로젝트가 몇 개나 마비되는 건 좀 아니지 않니?”
“선배가 많이 벌려놨으니 그렇죠! 덕분에 후임이 된 저만 이리저리 구른다고요.”
“그건 좀 미안하네. …응, 힘 내.”
“그렇다면 적어도 좀 더 성의 있게 사과 해 주세요…흑.”
장난스런 후배의 대응에 무심코 웃음 짓는 정미. 답답한 감금생활에서 후배와의 이런 쓸데없는 잡담은 상상 이상으로 큰 위안이 되고 있었다.
“…슬슬 시간이네요. 떡대들이 나가라고 위협하기 전에 가 봐야겠어요.”
“그러네. 저 인간들, 보이는 대로 융통성 하난 더럽게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그럴 거네요~. 친구분들에 대한 정보는 들어오는 대로 알려드릴게요.”
“…응. 고마워.”
“그럼! 이 후배는 물러갑니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고 정미를 등지는 후배. 잠시 멈춰선 그녀는 뒤에 있을 정미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저, 믿고 있으니까요.”
“…….”
“선배가 그런 위험한 실험에 손을 데셨을 리 없잖아요. 뭔가 잘못된 거죠.”
“…….”
“조금만 참아주세요. 그 왜, 진실은 승리한다고도 하잖아요. 곧 풀려나실 수 있을 거에요.”
“…응. 그래.”
“그럼 이제 진짜로 가 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 선배!!”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고선 방을 나서는 후배. 무거운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정미는 자조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하…진짜 너무하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제 딴에는 자길 생각해 준다고 일부러 밝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 거다. 정말이지 쓸데없이 오지랖 넓은 후배가 아닌가.
그래서인지ㅡ그게 더 마음을 옥죄어온다.
“……괜히 더 미안해지잖아.”
마음이 뒤숭숭해졌는지 커튼을 다시 치는 정미. 이런 기분으로 바깥 풍경을 보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유리야…. 슬비야…….”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젠 몇 번을 불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름이 반사적으로 나온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유리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걸까, 아니면 슬비의 손에 죽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ㅡ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인걸까.
이런 처지가 된 지금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예상하는 것 밖에, 그녀에게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보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자기에게 할 말은 없는지, 결국 어떤 식으로 끝난 건지.
적어도 자신에겐 그럴 수 있는 자그마한 권리는 있지 않을까.
“……이젠 그것도 무리겠지.”
하다못해 꿈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바람에 눈을 감는 정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정미정미. 졸려?”
“……어, 졸려.”
“…?! 아, 안 놀라네? 어라…?”
“어차피 내 망상이잖아. …아님 내 꿈이겠지. 나도 피곤했나보네. 빨리도 잠들었어.”
“아니, 그런 거 아닌데….”
“됐어. 꿈인 거 다 알아. 쓸데없이 리얼한 꿈이라는 것도. 그래도…나쁘지 않은 꿈이네. 간만에 그리운 목소리도 들을 수 있고.”
“……정미야.”
“깨고 싶지 않다, 진짜로.”
감긴 눈꺼풀 사이로 흘러나오는 눈물. 오랜만에 듣는 그리운 목소리는 정미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기엔 더없이 충분했다. 지금껏 ‘꿈이라면 깨지 마라’ 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보고 싶어…유리야….”
“…그럼 눈 뜨고 보면 되잖아.”
“안 돼. 꿈에서 깨 버리니까.”
“…….”
“…….”
“…많이 약해졌네, 정미야.”
직후ㅡ조금 따스하고 말랑한 것이, 정미의 입술에 와 닿고, 떨어졌다.
“…?!”
꿈같지 않은 사실적인 감각에 놀라 눈을 뜨는 정미. 눈앞에는 그렇게 그리워했던 사람이, 처음 보는 옷차림을 한 채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봐. 꿈 아니지?”
“서…유리…?”
“응. 보고 싶어서 왔어. 너무…기다리게 해 버렸네.”
“…….”
말문이 막혀온다.
여길 어떻게 온 거야.
어디서 뭘 하다 이제 온 거야.
없어진 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해?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그 말이 전부 뒤엉켜서 목구멍을 틀어막는 기분이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는 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아픈 건 아니다. 온 몸의 신경이, 감각이,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너, 너…….”
한참 동안의 동요 끝에 겨우 열리는 말문.
하지만, 정미는 이내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다시 만나게 된다면ㅡ반드시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일이 있었지.
-쫘악
좁은 방 안에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소리.
정미의 손은, 어느새 그토록 그리워했던 유리의 뺨을 강하게 후려치고 있었다.
“…….”
“이제 와서…무슨 낯짝으로…….”
“…….”
“사람을 그렇게 마음고생 시켜놓고…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
“나쁜 년……너 진짜 나쁜 년이야…….”
“정미야….”
“다가오지 마!”
자신을 향해 뻗어진 유리의 손을 쳐내는 정미. 그 눈에는 아까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올 수 있어! 어떻게 인간이길 포기하고도 이렇게 거리낌이 없는 건데!! 네 선택이 나에겐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
“…….”
“진짜 살기 싫다…. 내 소중한 사람은 하나같이 차원종에게 빼앗기고……이젠 널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이 바보야!!”
“………미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안하다는 말밖엔 못 하겠어.”
“…….”
이형의 갑옷을 걸친 모습에 정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의 유리는 차원종이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바로 그 차원종.
그것을 확인한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의 한구석에서 묘한 안도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가지 않았구나.’
결국 슬비는 그 위험한 코어를 쓰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잘 된 일 아닌가. 슬비는 충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했고, 그건 자신도 내심 바라던 결과였으니까.
하지만ㅡ.
“……슬비가 생각했던 것 보다 난 말재주가 없는 모양이야. 얼마나 더 사과해야 할 지…짐작도 안 가.”
“!! 너 지금 슬비라고 했어?”
“…….”
“대답해! 슬비가 널 찾아간 거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유리. 정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으로 물들어간다. 유리는 이미 차원종인 채로 이 자리에 있다. 그렇다면ㅡ슬비는?
“설마…죽였어?”
“…….”
“솔직히 말 해, 서유리. 슬비…어떻게 했어.”
“…….”
“어떻게 했냐고!!”
“죽이지 않았어. 미쳤다고 내가 슬비를 죽이겠어?”
“……. ……그럼 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
“나, 아직 그쪽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문제가 없으면 내가 윽박지를 때 까지 대답 안하진 않았겠지! 역시 무슨 문제가 생긴 거 맞구나! 지금 어디 있어!”
다그치는 정미의 외침에 가만히 허공에 손을 휘두르는 유리. 그 너머로 보이는 호화스러운 방에는 침대 위에 미동도 않고 누워있는 슬비가 있었다.
“자고 있는 거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뚫어져라 슬비를 바라보던 정미의 눈빛에 안도감이 섞인다. 미약하긴 하지만, 슬비의 가슴께는 규칙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었으니까.
분명히 숨을 쉬고 있다.
심장이 뛰고 있는 거다.
그걸 확신한 순간, 정미의 입에선 절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다행이다….”
그리고ㅡ그 안도감과 함께 드는 의문.
-어째서 유리는 문제가 생겼냐고 다그치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지?
“너, 뭔가 숨기고 있지.”
“…….”
모로 슬쩍 돌아가는 유리의 시선. 이건 분명히 무슨 잘못을 했을 때나 보여주는 반응이다. 제 딴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함께 했던 세월이 몇 년인가. 그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미가 아니었다.
“말 해, 서유리. 뭐가 문제야.”
“……말하면 화낼 거야. 분명히.”
“어리광 부리지 마. 지금 그럴 상황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거 아냐.”
“그런 거 아냐….”
“그런 거 아니라도 말 해. 나 진짜로 화낸다?”
“…….”
이어지는 침묵. 결국 정미의 매서운 눈빛에 주눅 든 목소리로, 유리는 입을 열었다.
“기억이…날아갔어.”
“뭐?”
“기억이 날아갔다고. 자기가 누군지도 기억을 못 해.”
“…….”
유리의 말을 듣자마자 밀려오는 두통에, 정미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표정을 찌푸렸다.
“…아예 전부, 기억이 완전히 날아간거야?”
“일상생활은 가능할 거 같아. 하지만 인간관계 쪽은 하나도 기억을 못 해.”
“……그래.”
그래도, 그 정도라면 다행이겠지.
목숨을 구하는 대가가 기억상실이라면 어느 정도 수지는 맞지 않겠는가. 그리고 기억상실이라면 언젠가 회복하리란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본다면 상황에 비해 희망이 넘치는 결말이겠지.
하지만,
“그리고ㅡ.”
ㅡ다음에 들려온 말은, 그런 정미의 생각을 보기 좋게 배신하고 말았다.
“슬비도…차원종이 됐어.”
★
“지금, 뭐라고…했어?”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기억상실까진 상정 내. 아니, 저지른 일의 리스크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편에 속하는 문제였다. 하지만ㅡ차원종이라니.
“차원종? 슬비가? …어째서?”
“…어쩔 수 없었어.”
“……차원종으로 만들어 버린 거야? 네 손으로 직접?!”
“살리기 위해선…어쩔 수 없었어.”
“하…하하…….”
힘이 빠졌는지 맥없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늘어트린 정미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동안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다시 입을 다물고, 그리고 허탈하게 웃는 것을 반복하기를 몇 분. 마침내 정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너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어?”
“…….”
“그, 그래…기억상실까진 괜찮다 칠게. 목숨을 잃는 거에 비하면 양호하니까. 그런데…뭐? 슬비를 차원종으로 만들어?”
“…….”
“너…걔가 네가 차원종이 된 걸 안 뒤로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알아? 자기 친구가 차원종이 된 걸로도 그렇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애야! 그런데, 그런 애를 차원종으로 만들어?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해!”
“그럼 어쩌라고! 그 위험해 보이는 코어 때문에 위상력이고 생명력이고 다 날려서 죽기 일보 직전인 애를, 그럼 죽게 내버려 둬야 했다는 거야!? 너 정말 그걸로 만족할 수 있어!?”
“…….”
“나라고 고민 안 한 줄 알아…?”
어느새 유리의 목소리엔 짙은 슬픔과 후회가 스며들어 있었다.
“근데 당장 그렇게 안 하면 슬비가 죽는다잖아. 눈앞에서 친구가 죽어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그거뿐이라서…난……….”
“…….”
숨죽여 우는 유리.
마찬가지로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있던 정미는, 이내 유리의 곁으로 다가가선 그녀를 끌어안았다.
“정미야….”
“네 탓이 아니야.”
“…….”
“애초에 그 코어를 줘서 보낸 건 나야…그러니까…결국 내가 슬비를 저렇게 만든거야…….”
“아니야! 넌 아무것도 잘못하지ㅡ.”
“유리야…. 날 책임을 회피하려는 비겁자로 만들지 말아 줘….”
“…….”
그것이 정미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걸, 유리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자존심 강한 우정미의 입에서 나온 ‘책임’이라는 단어와 눈물은 그만큼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유리는 아무 말 없이 흐느끼는 정미를 꽉 끌어안았다.
조금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지금껏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당당했던 우정미라는 소녀가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에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책임…질 거야.”
“……응.”
“무슨 짓을 하더라도…책임은 반드시 질 거야.”
“……응.”
“자존심이고…고집이고…이젠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그러니까….”
“……정미야.”
품 안에 안겨있던 정미가 자신을 향해 시선을 올린다. 그 눈빛에 담긴 마음은, 지금껏 없었던 강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그 눈빛에, 유리도 마찬가지로 눈빛으로 질문한다.
-괜찮겠어?
대답한다.
-상관없어.
다시 질문한다.
-후회할지도 몰라.
대꾸한다.
-그 땐…같이 울어줘.
그리고, 더 이상의 문답은 없었다.
★
멍하니 눈을 뜬 소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호화로운 침대 천장의 안쪽이었다.
“……?”
“일어났니?”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본다.
눈길이 닿은 곳에는, 어쩐지 기가 조금 강해보이는 여성이 이쪽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소녀는 묻는다.
“누구…세요?”
“얘는…. 좀 섭섭한걸?”
그녀의 손가락이 이마를 톡, 하고 건드린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에게 다가온 여성은 소녀의 손을 마주잡고 이마를 마주했다.
“저, 저어….”
“그래도 깨어나 줘서 정말 기뻐. …얼마나 걱정했다고.”
“그러니까 저기……누구세요?”
“…….”
다시 이어진 질문에 미소가 조금 흐트러진 것은 착각일까. 소녀가 그런 의문을 떠올리려는 순간, 소녀는 여성의 팔에 이끌려 그녀에게 끌어안겼다.
“아, 저, 저어…….”
“괜찮아…이젠…정말 괜찮아…….”
어딘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어요. 소녀가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소녀가 가장 먼저 입에 담았던 의문에 대한 답이 돌아온다.
“괜찮아…우리 딸.”
잠시, 소녀의 눈이 깜박인다.
“딸?”
“그래. 넌, 우리 딸이야.”
“딸…?”
눈을 떠 보니 처음 보는 여성이 자신을 보고 딸이라고 한다.
이런 드라마 같은 전개에 소녀가 다시 의구심을 품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방문이 열리고 긴 흑발의 여성이 방으로 뛰어들어온다.
“괘, 괜찮은 거야?”
“…늦었네요, 여보.”
“아, 아니 그러니까 그런 호칭은ㅡ.”
“정신 차려요, 여보. 딸이 깨어났는데 당신이 횡설수설하면 어쩌자는 거에요?”
“미, 미안….”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다가온 여성을 올려다보는 소녀. 멋쩍게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도 자신의 엄마라 칭하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당신은?”
“아…그게 말이지…….”
“…….”
“……알았어.”
뭔가를 결심했는지 ‘엄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여성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소녀의 손을 붙잡는다.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손을 꼬물거리는 소녀의 볼에, 여성의 입술이 가볍게 붙었다 떨어진다.
움찔, 하고 놀라는 소녀. 그런 그녀의 귓가에 따스한 목소리가 와 닿는다.
“잘 잤니? 우리 딸.”
어째서 이 두 명의 여성은 서로 자신의 부모라고 하는 걸까. 지극히 기본적인 사회적 지식을 어렴풋이 떠올리는 소녀였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따스해.’
전해진다.
이 두 사람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
부모에 대해 남은 것은 기본적인 지식과 개념뿐이지만,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한 애정.
모든 것을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따스함이다.
그런 온기를 전해주는 사람들이ㅡ자신의 부모가 아닐 리 없다.
마치 알에서 깨어난 새가 처음 본 것을 어미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소녀는 두 사람을 부모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네. 잘 잤어요…어머니. 그리고…어머니.”
일어나서 그녀의 기준으로 처음 해 보는 아침 인사.
그 인사에 화답하는 부모님의 미소에 어렴풋이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착각이리라.
★
All for you(모두 당신을 위해)
All of us is for you(우리들의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