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 알 속의 세계
아워글라스 2015-07-23 1
※ 주의 : 나타 과거 날조입니다
부모의 얼굴 따위, 기억날 리가 없었다. 부모가 붙여준 이름 같은 것도 그는 당연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알 속에서 깨어났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이름 없는 아이였으니까. 그러다 연구소의 인간들이 붙인 [피험체 13번]이라는 이름으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 호칭이 증오스러워도, 그는 자신을 표현할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피험체 13번은 심장이 터지도록 갑갑한 실험 소굴 속에서 살아갔다. 매일이 싸움의 연속이었다. 빌어먹을 연구소 녀석들은 그렇게 말했다. 살아남고 싶다면 강해져라. 강해진 자만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가치가 있다.
피험체 13번은 자신을 해치기 위해 접근하는 녀석들과 싸워나갔다. 처음 피를 보았을 때는 순간 두려움이 떠올랐지만, 그는 곧 이 선홍빛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자신의 생존을 말하는 증거임을 깨달았다. 그의 손끝이 피를 갈망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자신을 가로막는 녀석들의 피를 자신의 길 위에 흩뿌리며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이 구렁텅이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그는 믿기 시작했다. 더 강한 녀석들의 피일수록 가치가 있었다.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짐승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그 피의 빛깔, 혈향, 감촉을 기억했다. 이제 감히 그를 향해 먼저 달려드는 어리석은 녀석은 별로 없었다. 결국 소년은 스스로 사냥감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소년이 처음으로 찾아 나선 사냥감은 모든 피험체들 가운데서 손꼽히는 강한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면서도 통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건방진 놈이었다.
그는 으르렁거리며 잔뜩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소년을 보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오, 네가 소문 자자한 놈이구나.”
“소문?”
“이 피험체 그룹에서는 이제 당해낼 녀석이 없다는 13번의 미2친개.”
소년도 지지 않고 신랄하게 지껄였다.
“그러는 너야말로, 죽이려고 달려드는 놈조차도 살려 보낸다는 물러빠진 샌님이지.”
“왜냐하면 난 싸우기 싫거든. 평화주의자야.”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소년은 그런 그가 짜증난다고 생각했다.
“평화주의자 좋아하시네.”
소년은 그에게로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에게 손끝하나 대기 전에 자신을 밀어내는 강한 힘에 부딪혔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들자 소년은 보이지 않는 힘에 자신의 목이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소년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발버둥 쳤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넌 날 못 이겨. 다시는 오지 마. 난 혼자 있고 싶으니까.”
“닥2쳐! 망할 놈이!”
자신을 얕보는 말에 소년은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저런 맥 빠지는 녀석보다 자신이 한참 약하다니 말도 안 되게 짜증나는 일이었다. 화난 소년은 순간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힘을 내며 자신을 속박하던 그의 힘을 때려 부수었다. 그가 놀라는 사이에 소년은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러나 목덜미를 잡아 뜯으려는 순간 그의 위상력이 다시 소년을 붙잡았다. 아까보다 훨씬 강한 힘인지, 소년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어이, 미2친개. 그렇게나 나를 죽여 버리고 싶은 거야?”
“강한 놈을 썰수록 좋은 거야.”
“으음, 나에겐 온갖 강한 놈들이 찾아오거든. 내 옆이라면 굳이 상대를 찾아나서도 되지 않아서 편리할 거야.”
“그러니까 네 개 노릇을 하라고?”
“미안, 나도 너 같은 **개는 싫어. 내 근처엔 사냥감이 많아. 그냥 그렇다고.”
“닥2쳐, 건방진 놈. 네가 걱정해줄 거 없어.”
“아이고,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없군.”
그는 가끔 자신의 주위를 배회하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소년이 대화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하루에 몇 번이나 그를 죽이겠답시고 아득바득 달려들었고, 그는 그런 소년을 태연스레 막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게 되다니, 피험체들과 연구원들이 입을 모아 ‘미2친개’라 부르던 소년으로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언젠가 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원하는 상태를 말이야, [자유]라고 불러.”
“자유?”
소년이 잔뜩 표정을 구기며 되묻자 그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 실험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이런 맛없는 배급을 받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에게 복종할 필요도 없는 상태.”
“그런 게 정말로 존재해?”
“존재하니까 누가 책에 썼겠지. 근데 자유라는 건 싸우고 투쟁하는 사람만이 쟁취할 수 있는 거라고 하는군. 그렇게 생각하면, 나보다는 네놈이 더 가능성 있겠다.”
그는 도대체 어디서 구해오는 건지 항상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이라고 하는 그 종이쪼가리에는 무엇이 그렇게 많이 적혀 있는지, 그는 항상 생소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운명]이라든가, [의지]라든가, [해방]이라든가, [저항]이라든가, [자유]라든가. 알아듣지 못할 말도 많았지만, 재미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소년은 자신의 생각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흥미로웠다. 자신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한 이름이라는 것을, 자신의 생각은 거창한 [자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소년은 여전히 거칠게 싸워나갔다. 소년은 상처로부터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보며 자유를 떠올렸다. 자유라는 말에 소년은 싸울 힘이 솟아났다. 자유, 자유, 자유. 살아남아서, 자유롭게. 그는 언젠가 반드시 자유로워지리라 다짐했다.
- - - - -
그러나 소년이 13세가 되었을 때 즈음, 그를 둘러싼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피험체들에게 온갖 짜증나는 명령을 내려 대던 연구원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클로저’라는 놈들이 나타나 피험체들의 통제권을 잡았다.
“실험은 끝났다. 유니온의 방침에 따라 너희들에게 앞으로 ‘자유’를 준다.”
그들의 입에서 자유라는 말을 듣자 소년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은 곧 알 수 없는 위화감으로 비화했다. 그들은 소년이 꿈꾸던 [자유]의 세례를 내리는 자들이라기엔 너무 닳고 닳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그들이 과연 자유로운 자들인가. 소년은 의심했다. 자유롭지 못한 자들이 누군가에게 자유를 하사할 수 있는가. 소년의 위화감에 응답이라도 하듯 그는 말했다.
“어이, 미2친개. 우린 이제 쓸모없어 진거야.”
“무슨 소리지? 그들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고 하는데.”
그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그래, 어떤 의미로는 자유일 수도 있겠지.”
살아남은 피험체들은 클로저들의 명령에 따라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을 들으며 아이들은 낙원을 향한 문을 열었다. 그 문 너머로 들어간 아이들은 누구도 다시 그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클로저들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발걸음을 떼기 전 어떤 구절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목소리는 아마 소년에게만 들렸을 것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새의 이름은 [자유]이다.”
그는 소년을 향해 웃으며 덧붙였다.
“드디어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갈 거야.”
그는 소년을 뒤로 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여서 소년은 기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처럼 자유롭게 날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서글프고 침착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소년은 그런 그를 보며 짜증, 답답함, 분노, 질투 등 온갖 감정이 혼란스럽게 뒤엉킴을 느꼈다. 만약이 자신이 날 수 있게 된다면, 눈을 희번덕거리고 성대에서 기괴한 웃음소리를 뽑으며 온갖 흥분을 표현할 텐데 그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문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이 문 안으로 들어가면 죽는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실험장에 울려퍼졌다.
“도망ㅊ….”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는 클로저들에게 제압당하여 풀썩 고꾸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13살의 소년의 새파란 눈동자가 터질 것처럼 이글거렸다.
“그래, 자유는 싸우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했겠다. 난 싸울 거야. 나약한 네 녀석과는 달리 말이다!”
소년은 잽싸게 눈앞의 한 클로저로부터 무기를 낚아챘다. 두 개의 짧은 검을 손에 쥐고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한 피험체들 속에 섞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간다고? 나는 너처럼 나약하게 죽지 않을 거야. 나는 너같이 죽음 따위로 자유로워지는 버러지는 되지 않을 거야. 병2신 같은 새2끼. 내가 만약 당신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죄다 죽여 버리고 도망쳤을 텐데. 난 너처럼 살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 녀석이 참을 수 없이 짜증나.
소년은 눈앞의 모든 것을 베어나가며 내달음질쳤다. 나약한 자유가 아니라, 정말 자유다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바로 지금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험체들이 도망친다!”
“당장 잡아! 저항하는 놈들은 사살해도 좋다!”
클로저들이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추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피험체들은 클로저들의 손에 하나둘씩 쓰러져 가고 있었다. 소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온몸을 부딪쳐 실험실의 격벽을 되는대로 부수어나간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살아남고 싶다는 일념으로 그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피험체 13번! 저항하지 말고 투항해라!”
짓이겨진 그의 입술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소년은 막다른 길에 처해 있었고, 그를 가로막은 벽은 특수한 물질로 만들어진 것인지 도무지 부셔지지 않았다. 생존을 갈망하는 광기가 가득 들어찬 소년의 눈동자가 찬찬히 자신을 잡으러 온 사냥꾼들을 훑었다. 그는 두 손에 쥐어진 검의 감촉을 느꼈다.
“싫다, 이 새2끼들아!”
그러자 클로저들이 일제히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년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내심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될 것이라 믿으며 검을 되는대로 휘둘렀다.
절대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 좁아터진 알 속에서, 소년은 자신이 뚫고 나갈 벽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아득하게 높고 두꺼운 벽을 두 손으로 느꼈다. 하지만 소년은 벽이 있는 것으로 절망하지 않았다. 언젠가 넘을 수 있는 벽이 존재한는 것에 절망적인 희열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런 소년은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자신의 사지를 붙잡은 클로저들의 살점을 물어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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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없는 과거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것이 소년, [나타]의 철학 중 하나다. 자신이 왜 새 모양의 나무 조각을 깎고 있는지는 어느 순간 자신도 잊어버렸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새 조각 따위가 손에 만들어져 있었다.
"젠2장, 그 여자가 또."
그렇지만 그는 아직 새가 되기는 커녕 아직도 갑갑한 알껍질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