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일상속으로.

카트르 2015-07-17 2








 "자... 그럼 청소 당번은 남아서 청소하고. 야자 인원들은 알아서 중식 챙겨먹고, 나머지는 알아서 적당히 놀다가 늦지 않게 집에 들어가라."


 신강고등학교 2학년 어느 교실의 담임은 생각보다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옛날 드라마나 영화처럼 그렇게 꽉 막힌 종례를 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은 모두 고맙습니다 라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저마다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가방을 놓고 나가는 학생들은 야간 자율 학습을 위해 학교에 남는 학생들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모두 삼삼오오 모여 교실 밖으로 나갔다.

 여름이 시작된지 조금 지난 7월의 어느날. 고등학생들은 모두 방학 보충 수업을 위해 학교에 나왔다. 성적이 나쁘기 때문에 보충학습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형식적인 언어로 보충 수업이지, 아침 8시까지 등교후 중식 이전에 끝나는 그냥 학교 수업의 절반을 뚝 잘라 놓은 듯한 일정이었다. 방학이 시작 되고 1주일 후부터 시작된 이 보충 수업은 학생은 물론이요, 선생의 의욕까지 죽이고  있었다. 아무리 에어컨을 튼다 해도 학교 운영 방침에 따라 일정 온도 이하로 내리지 못하는 에어컨 때문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교실은 언제나 후덥지근 했고 그 때문인지 선생들도 더위 때문에 거의 파김치가 되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모두 나간 교실에는 청소 당번들이 남아서 설렁설렁 청소를 하고 있다. 교실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느냐만은 그 와중에 유달리 열심히 하는 소녀가 있다. 검은색 긴 머리가 허리를 조금 넘어 찰랑이고, 동년배보다 남다른 몸매가 굉장히 눈에 띈다. 소녀는 청소중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귀찮은지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어 깔끔하게 올려 묶었다. 덕분에 그녀의 갸냘프면서 흰 뒷목이 언뜻 보이는게 같은 청소 당번 학생들의 시선을 잡았다. 소녀는 그들을 보고 씨익 웃으며 빨리 하고 검사 맡고 가자며 재촉한다. 그녀의 재촉은 기분 나쁘지 않다.


 "그냥 대충 하자 유리야... 담탱도 그냥 대충 넘어갈텐데 뭐."


 "에헤이~ 그러면 안되지. 내일 왔을 때 먼지 날리는 교실에서 수업 받으면 *** 하잖아?"


 소녀의 말은 참 묘하게 설득력 있다. 그 말에 청소 당번인 학생들도 마지 못해 소녀를 도와 청소를 한다. 뒤로 밀었던 책상을 앞으로 다시 끌어와 교실 뒤 쪽을 청소하고 마지막으로 밀어놨던 책상들을 줄에 맞게 가지런히 정돈한다. 소녀는 교무실에서 담임을 불러와 청소 상태를 보고 했다. 결국 담임의 오케이 사인을 받고나서야 소녀는 가방을 둘러맸다. 같이 청소한 학우들에게 인사를 하고 소녀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내렸다. 총 5층의 학교 건물, 그 중 2학년 교실은 3층. 일반 사람들이 봤다면 기겁을 할 장면이다. 누군가는 소리를 지를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녀의 학우들은 그런 그녀를 보고 또 저러네. 걸리면 어쩌려고 라며 즐겁게 이야기했다.

 소녀는 마치 여성의 큰절을 연상시키는 자세로 바닥에 착지했다. 당연히 콩알만큼도 다친 곳은 없다. 소녀는 옷에서 먼지를 탁탁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소녀 옆으로 누군가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팔짱을 꼈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소녀였다. 그녀는 먼지를 털며 일어난 소녀의 이마에 꿀밤을 넣었다.


 "서유리! 너란 아이는 정말... 밑에 누가 있기라도 했으면 어쩔뻔 했어. 게다가 치마를 입고 뛰어 내리면... 보, 보이잖아!"


 "정미정미 우정미~ 나 기다려준거야? 히힛 좋아라"


 우정미 라는 소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서유리와 친하게 지낸, 소꿉친구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우정미는 아직도 미간에 주름을 풀지 않고 소녀의 팔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바로 후문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는 치마를 입었으면 그래도 좀 조신하게 행동해야지, 물방울 무늬 팬티는 또 뭐냐 등등 구시렁대며 소녀에게 잔소리를 한다. 소녀는 그저 우정미가 가는대로 끌려가다가 에잇 기합을 넣으며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바로 자세를 고쳐잡아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올렸다. 숙련된 무도인이 하는 절도 있는 동작 같은, 굉장히 순식간에 지나간 상황이었다. 소녀의 품에 안긴 우정미는 잠시 상황 파악이 안됐는지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 소녀의 품에서 바둥거렸다.


 "야, 야! 서유리! 너 미쳤어?! 빠, 빨리 안내려놓을래!"


 소녀는 품속에서 바둥거리는 소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다리에 위상력을 살짝 집중 시키고 인근 빌라의 옥상을 향해 뛰어 올랐다. 클로저 교본에 서술 되어 있는 사이킥 무브란 기교였다. 위상력을 이용하여 고속 이동을 하는, 위상능력자들의 이동 기술이다. 하지만 소녀는 다른 곳을 이동하지 않았다. 그저 옥상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며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을뿐.


 "꺄아아! 서, 서유리! 지금 당장 내려놔!"


 "으흥흥~ 안되지 안돼. 내 이마에 꿀밤을 먹였으니까 이 정도는 참아달라구요 마눌님."


 "돼, 됐으니까 빨리 내려놔! 아니 그리고 누가 네 마누라야!"


 "쳇... 보통 이럴 때면 마누라든 뭐든 좋으니 내려놓으라고 말 할텐데..."


 소녀는 사뿐히 착지하고 우정미를 내려 놓았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다리에 힘이 풀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제대로 땅에 서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그녀가 강심장이거나, 아니면 이런 일이 늘 있다거나. 종종 당하는 것이지만 그럴 때마다 놀라움은 어떻게 감출 수 없나보다. 소녀는 이번에 우정미를 등에 엎고 지상으로 사뿐히 뛰어 내렸다. 학교 옆 주택가 통행량이 상당히 적어서 이런 광경을 목격할 만한 사람들이 없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지상으로 내려오자 그녀는 소녀를 한번 째릿 쏘아보았다가 이내 땅이 **라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이 소녀에게 뭐라 말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 아무튼 서유리 너. 아무리 네가 정식 클로저 요원이라도 한 사람의 여자라는 걸 너무 잊고 있는거 아냐?"


 "에헤헤. 미안해 정미정미야. 내가 사과의 의미에서 오늘 햄버거 쏠게!"


 "...... 감자튀김이랑 음료수는?"


 "당연히 사야지! 가자가자!"


 "그래도, 요즘 정식 요원이 되더니 이제 제법 용돈도 받나보네?"


 "아하하~ 정식요원이 되니까 수습요원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월급이 들어오네! 공무원 최고! 철밥통 짱짱!"


  우정미는 이렇게 밝은 소녀를 보고 결국 피식 웃었다. 소녀들은 그 길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수제 버거점으로 향했다. 사실 소녀들이 다니는 학교 정문으로 나간다면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새로이 생긴 패스트 푸드점이 있지만, 우정미가 차라리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기에 다른 곳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소녀가 그 이유를 묻자 우리 학교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시끄러워 라며 고개를 흔들며 답한다. 소녀는 원래 그런 곳은 대부분 시끄럽지 않나 라는 생각을 삼키며 우정미와 함께 지하철 한 정거장쯤 되는 거리를 걸었다. 걷는다고는 하지만 소녀들의 걸음은 그렇게 빠르지 않다. 우정미는 은근히 걷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소녀는 그런 우정미를 위해 언제가 걸음 걸이를 맞춘다. 그렇게 15분 걸어갈 거리를 25분정도 걸어가 수제 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2층까지 준비되어 있는 중간 정도 규모의 가게다. 우정미는 소녀의 가방을 들고 2층으로 먼저 올라갔고 소녀는 카운터에 서서 세트 메뉴 두 개를 주문했다. 소녀는 햄버거 세트가 나올 때까지 대충 빈자리에 앉아 손부채질을 했다.


 "하아~ 얼마만에 즐기는 일상이냐~"


 손부채질로는 시원하지 않은지 손으로 옷의 가슴 부분을 잡고 앞뒤로 펄럭였다. 가게 안은 에어컨이 강하게 틀어져 있었지만 아무래도 밖에서 막 들어온터라 그 냉기가 확 와 닿지 않은가보다. 날씨는 맑지만 온도는 현재 35도를 넘나드는 더위로 인해 굉장히 더웠으니까.

 소녀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꺾었다. 척추에서 우드드득 소리와 함께 허리가 주욱 펴지는 느낌이 아주 상쾌하다. 사실 소녀가 이렇게 나름 여유로운 일상을 가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방학식 전까지만 해도 학교를 마치면 바로 외부 차원 탐사 문제로 굉장히 바빴기 때문이다. 파괴된 강남 지역을 복구한 후에 거의 쉬지도 못하고 외부 차원 탐사를 했으니 직장인으로 치면 큰 프로젝트를 야근까지 하면서 마치니 또 거대 프로젝트가 굴러들어 온 셈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외부 차원 탐사는 무조건 소녀가 속한 검은양 팀만의 단독 임무가 아니라 다른 클로저들도 참가하는 임무였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소녀의 팀도 여유로워질 수 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뭘 하고 있으려나"


 소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메신져를 열었다. 소녀의 팀이 이용하는 전체 채팅방에는 별 다른 글이 올라와 있지 않다. 피식 웃으며 새로운 글을 써 올렸다. 거기에 가장 먼저 답장을 한 사람은 미스틸테인이었다. 언제나처럼 귀여운 반응을 보여 소녀도 뿌듯했다. 뒤이어 올라온 답문은 이슬비였다. 언제부터인가 이모티콘을 붙여 쓰게 된 이슬비가 참으로 귀여워서 소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하지만, 남자들은 말이 없다. 보나마나 이세하는 게임중일테고, 제이는 뭘 하는지 알 수 없다. 관리 요원 김유정은 다른 일이 있는지 메신져 상태 메시지에 이 놈의 워킹홀릭 이라 적어 놓았다. 아무튼 참으로 재밌는 팀이 아닐 수 없다.


 "주문하신 버거 세트 두 개 나왔습니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쟁반을 들고 우정미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우정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기로 오라며 손짓 했다. 자리에 앉아 햄버거 포장지를 벗겨내고 크게 한 입 먹었다. 따뜻한 패티와 신선한 채소들이 참으로 맛있다. 가격은 조금 비싼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일반 패스트 푸드점에 비해서 양과 질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우와... 나, 수제 버거라고 해서 엄청나게 비싸거나 별 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보니 완전 다르다. 그리고 만날 오고 싶다!"


 사실 소녀는 이런 수제 버거를 처음 먹어본다. 옛날에는 가난해서 용돈도 없다싶이 했다는 것이 문제였고 정식요원으로 승격하고 대기업에서 받는 월급 수준으로 받는 요즘은 시간이 없다싶이 했다는게 문제였다. 평소 플레인 게이트 지역으로 가서 외부 차원 탐사를 할 때면 늘 보급 나온 전투식량으로 때웠으니 아무래도 이런 시간은 참으로 귀하게 느껴지나보다.


 "그래.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여기 생긴지 얼마 안됐는데 뭐, 너도 한번 와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정미정미... 설마 나를 위해서......"


 "그, 그런거 아니야! 말이 좀 헛나왔네. 그, 그냥... 오늘은 여기 오고 싶은 기분이었을 뿐이야."


 소녀는 괜히 허둥대는 우정미가 그저 귀엽기만 했다. 자신을 보고 음흉하게 웃는 소녀에게 또 한소리 해주고 그녀는 다시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사실 수제버거가 아무리 커도 10대 소녀들의 왕성한 식욕 앞에서는 금새 사라지기 마련이리라. 하지만 10대 소녀들, 아니 여성들은 그래도 이렇게 먹으며 살 찔 걱정을 하지만 소녀는 딱히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듯 정말 복스럽게도 먹는다. 어느새 소녀는 그 큰 버거와 감자튀김을 싹 비워놓고 콜라를 마시고 있다. 맞은 편에 앉은 우정미는 소녀의 식사 속도가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언젠가 한번 소녀에게 그렇게 먹다가 살찐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지만 그 때 소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온 세계의 여자를 적으로 돌릴만한 무시무시한 답변이었었다.


 "에구구... 그래도 온 몸이 조금 쑤신다. 솔직히 데미...뭐시기 그것만 처리하고 강남도 복구 했으니 이제 좀 느긋하게 생활해보나 했더니 바로 외부 차원이라니. 정미정미야 나 힐링 좀 해줘."


 "얘가 또 이러네. 됐고. 나도 다 먹었어. 괜히 죽치고 앉아 있지 말고 밖에 나가자."


 "히잉... 너무해."


 소녀들은 가방을 챙겨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 및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다가 가게를 나왔다. 나오자마자 그녀들은 엄청난 열기가 얼굴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우정미는 공기가 사람을 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말을 하며 꾸물 대던 소녀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 냈다. 확실히 더운 날씨다. 냉골에 있다가 나왔지만 걷기 시작한지 5분만에 조금씩 땀이 흐르고 있었다. 소녀들은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를 구입했다. 차디찬 냉장고에 들어있던 음료수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표면에 물방울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녀들은 그것조차 시원한지 음료수를 벌컥벌컥 호쾌하게 들이마신다.

 소녀들은 식사를 마치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땡볕을 걷는 이유는, 예상외로 우정미의 제안이었다. 어차피 오늘은 시간도 많지 않느냐며 서유리의 손목을 잡고 이리저리 걷고 있는 것이다. 소화를 시킨다는 핑계는 덤이었다. 음료수를 마시며 천천히 걷다가 우정미의 눈에 띈 무언가가 있다. 우정미는 그것을 못보고 지나치는 서유리를 불러 세웠다. 스티커 사진 샵이었다. 여러개의 스티커 사진기가 놓여 있었고, 각종 팬시와 쿠션, 인형도 판매하는 매장이다. 늘 무뚝뚝한 표정의 우정미가 이번만큼은 참으로 흥미롭다는 듯 우와 하며 조금 웃고 있다. 그녀는 진열 되어 있는 인형에게 바짝 다가갔다. 상당히 거대한 갈색 곰돌이 인형이다. 아마 이 날씨에 저것을 들고 갔다가는 곰인형이 땀에 절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는지 그녀는 하아 한숨을 쉬며 인형에서 떨어졌다. 소녀의 눈에도 가격표가 보였다. 예상외로 높은 가격이라 소녀는 움찔 놀랐다.


 "야, 유리야."


 먼저 입을 뗀 사람은 우정미였다.


 "됐고. 스티커 사진... 찍어볼래?"


 우정미는 서유리의 손목을 잡고 스티커 사진기 안으로 들어갔다. 스티커 사진기 안에는 간단한 가발이라던지 꼬깔모자, 웃긴 안경들이 놓여있었다.


 "우, 우와... 나 이런거 또 처음이야... 이거 어떻게 찍는거야? 셔터는? 누가 찍어주는건가?"


 "그런거 아니야. 그냥 여기 기계에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돼."


 사실 나도 처음이야 라고 웅얼거리는 우정미의 말을 소녀는 듣지 못했다. 그리고 기계에 지폐를 넣었다. 우정미의 말대로 정말 기계에서 하라는대로만 따라하면 사진을 찍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사진을 찍었을 때는 서로 이것 저것 눌러보느라 제대로 된 사진이 단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우정미가 다시 지폐를 투입했을 때는 소녀가 놓여져 있는 소품들로 분장을 해 굉장히 웃긴 사진들이 나왔다. 다음에는 우정미 대신 소녀가 지폐를 넣었을 때, 소녀는 소품들을 이용해 우정미를 반 강제로 분장 시키고 사진을 찍었다. 전자나 후자나 웃기긴 매한가지다. 강제로 분장 당할 때 강하게 거부하던 우정미는 막상 사진이 나오니 굉장히 재밌었는지 스티커 사진기 안에서 두 소녀가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아주 유쾌하다. 마지막으로 우정미가 지폐를 넣었다. 이번엔 서로 아무런 분장도 장난도 없이 꽤 평범하게 손으로 브이자를 만들어보기도 한 평범한 사진이 나왔다. 사진 배출구에서 사진을 받아본 우정미는 한 번 씨익 웃었다. 소녀들은 이렇게 나온 사진들은 정확하게 반반씩 나눠 가졌다.


 "유리야. 너 지금 총 가지고 있지?"


 "엥? 내 페이즈 건? 그야, 가방에 있기야 하지만... 으엑?! 자, 잠깐 왜 그걸 갑자기 꺼내는거야?!"


 소녀의 가방을 활짝 개봉하고 그 속에서 페이즈 건을 꺼내었다. 책이나 다른 물건들이 들어있었다면 아마 총을 꺼내는데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지만


 "너 정말... 가방이 왜 이렇게 가벼운거야. 가방은 홀스터가 아니라구. 아니, 홀스터는 따로 가방에 있네?"


 유니온에서 나눠준듯한 책자 몇개랑 페이즈 건, 그리고 홀스터가 전부였나보다. 소녀는 그저 에헤헤 웃고 있다. 우정미는 페이즈 건을 손에 쥐어보았다. 손목에 묵직한 감각이 전해졌고 금속의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필시 소녀는 이 총으로 인류의 적들을 물리쳤을 것이다. 우정미는 소녀에게 총알은 없냐고 물어봤지만 당연히 있을리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소녀의 총은 위상력을 쑤셔넣은 위상관통탄을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소녀의 위상력을 먹고 탄의 형태로 바꿔서 발사하는 위상능력자 전용 총기이기 때문이리라. 즉, 우정미와 같은 평범한 소녀가 아무리 방아쇠를 당긴다 해도 절대 총알이 발사 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유니온의 최신 기술에 감탄이 나온다. 우정미가 총기를 관찰하고 있는 와중에 소녀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10대 여자아이 치고는 벨소리가 기본적인 소리다.


 "아, 유정 언니! 저 지금 우리 마누라랑 데이트 중...... 네?! 지금이요?!"


 전화를 받던 소녀의 표정이 순간 진지해졌다. 평소에는 왈가닥 천방지축 붙임성 좋은 여자아이지만 클로저로서의 임무를 받으면 꽤나 어른스러운 표정을 보여준다. 소녀는 전화를 받으며 우정미의 눈치와 전화 눈치를 보고 있다. 아마 잘 놀고 있는데 이대로 친구를 놓고 가는게 마음에 걸리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떨어진 임무를 외면하자니 상관의 명령에 거역하는 셈이니까. 일단 그녀는 최대한 빨리 출동하겠다는 변명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른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에... 그, 그치만..."


 "정말 유니온이라는 조직은...... 어떻게 이렇게 꿀 같은 방과후에 사람을 이렇게 들볶는거니?"


 "그러게 말이야... 나도 모처럼 우리 정미정미랑 방과후에 좀 놀아보나 했더니만 무슨 차원 압력의 급격한 변화가 어쩌구 하면서 ......"


 "하지만, 지금 가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일이 일어나잖아? 거기 사람들도 너를... 너희 팀을 그만큼 믿고 있으니까 시키는 것일테고. 공무원이라는건 원래 이렇게 힘든거야. 뭐, 그리고... 그녀석 있잖아... 이, 이세하 한테도... 안부...전해줘..."


 마지막 말은 우물쭈물 뭐라 말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소녀들은 가방을 손에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소녀는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하며 뛰어갈 방향을 잡고 있다. 이렇게 긴급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일시적으로 도시내에서 사이킥 무브를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까 학교 후문에서 소녀가 했던 점프는 그냥 모른체하기로 한다. 소녀는 그 자리에서 가볍게 탁탁 뛰며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소녀의 가방은 든 우정미는 방과후 평화속에 찾아온 출동 명령으로 한껏 굳어있는 그녀가 참 씁쓸하기도 하다. 소녀의 짧은 스트레칭이 끝나자 소녀에게 다가가 등짝을 강하게 내리쳤다. 짜악 이라는 찰진 타격음과 함께 소녀가 신음을하며 바닥에 앉았다.


 "벌써 몇번째 임무인데 긴장하는거야? 게다가 한 두번도 아니고. 너는 좀 더 까불거리면서 에너지가 좀 넘쳐야지."


 "으햐아... 그래도 이거 너무 아파... 아, 맞다. 정미정미야. 내 총 다시 돌려줘."


  우정미는 아직 손에 들고 있는 총과 소녀를 번갈아 보다가 총기에 아까 찍은 스티커 사진을 종류별로 한 장씩 붙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옆에서 소녀가 깜짝 놀라건 말건 상관도 하지 않고 묵묵히 스티커를 붙인다. 그리고 단정하게 스티커를 붙인 총을 소녀에게 휙 던졌다. 노리쇠 부분에 아까 찍었던 사진들이 순서대로 질서 정연하게 붙어 있는걸 본 소녀는 그제서야 씨익 웃었다. 소녀는 자기 가방을 돌려 받고 홀스터를 착용하고 페이즈 건을 꽂아 넣었다.


 "그럼, 내일 또 보자 정미정미야. 내일은 꼭 하루종일 놀자?"


 소녀는 위상력을 집중시켜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르듯 점프를 했다. 주변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날아가듯 점프하는 소녀가 있던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며 걸어간다. 우정미는 하늘에서 무언가 나풀나풀 떨어지는 떨어지는 무언가를 잡았다. 머리카락이 조금 엉켜있는 머리끈이었다. 필시 아까까지만 해도 소녀가 머리를 묶을 때 쓰던 그 머리끈이다. 우정미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 덤벙거리는 소녀 때문에 그녀는 하루도 두통을 잊은 날이 없다.


 "이 칠칠이가 정말... 내일 또 잔소리를 해 줘야지..."


 그녀는 머리끈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떴다.

 오늘따라 7월의 땡볕이 참으로 자극적인 날이다. 점심 시간대가 이제 막 지난 현재 시간은 13시 45분. 소녀들의 방과후 오늘은 언제나처럼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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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콘테스트 참여입니다.


이번엔 제 본캐인 서유리와 콘테스트 주제인 방과후 활동을 썼습니다만, 뭔가 2% 부족한 토마토탕 같네요.


2024-10-24 22:36:4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