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증명(중)
부르짖다지쳐죽을 2015-06-03 0
죄송합니다. 상하로 올리려 했는데 공홈이 허락치를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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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지? 분명 괴물이 내려치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는데? 눈을 뜨자 제이 아저씨가 번쩍이는 위상력을 두른 채 괴물의 묵직한 발을 잡고 서 있었다.
“제이 아저씨...?”
아저씨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괴물의 발을 걷어내고는 곧바로 괴물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그렇게 괴물의 뒤를 잡은 아저씨는 눈부신 빛을 발하며 그 괴물의 척추를 향해 주먹을 내리 꽂았다. 괴물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발끝에서부터 불에 탄 것처럼 재로 변해 흩날렸다. 그 광경에 넋을 놓고 있는데 아저씨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옆구리가 살짝 아팠지만 아저씨의 도움으로 제대로 설 수 있었다.
“유정씨. 그 키텐이란 녀석 해치웠어. 동생도 무사하고. 근데 동생이 좀 다친 거 같으니까 구호반 좀 부탁해.”
무전을 마친 아저씨가 날 다시 돌아봤다. 역시, 감사인사는 해야겠지. 일단 도움받은거니까.
“아저씨-.”
“이 바보 녀석!”
그 소리와 함께 시선이 돌려졌다. 뭐야, 지금. 나 얻어맞은 거야? 아저씨한테?
“네가 죽는다고 먼저 간 특경대원들이 좋다고 반겨준다던? 같잖은 죄책감 때문에 차원종한테 죽겠다고? 클로저의 역할? 힘이 있는 자? 어쭙잖은 게임감성 버려. 넌 영웅도 아니고 모두에게 버림받은 비련의 주인공도....!으욱..쿨럭..!”
놀라서 벙쪄 있는 사이 아저씨가 느닷없이 주저앉았다.
“..아저씨? 왜 그래요? 다친 거예요?”
“아냐. 쿨럭, 괜찮다니...욱...!”
“이거 피잖아요?!”
아저씨한테서 무전기를 빼앗아 다급히 외쳤다.
“유정누나! 구급차요!”
의사의 말로는 몸에 부담이 간 거란다. 거기다 아저씨의 몸은 상태가 매우 이례적이라 자기들도 손대기 힘들다고 하며 그 이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곧 회복 될거라 하니 그저 얼른 일어나길 바라며 아저씨의 병상을 지켰다. 얼마나 지났을까, 게임 세이브 포인트라 저장을 하는 것과 동시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으....동생?”
“아저씨? 괜찮으세요? 간호사 부를게요.”
“아냐. 괜찮아. 그나저나 몇시지?”
“11시 15분이요.”
“하핫, 이거 동생한테 미안해지네. 나 때문에 여기서 시간을 뺏긴 거야?”
“별로요. 어차피 갈 데도 없었고요. 그리고 아저씨 그렇게 된 거, 제 책임이니까.”
“기왕이면 눈 떴을 때 예쁜 여자가 반겨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거 죄송하네요. 제가 있어서.”
“세하야.”
아저씨가 내 이름을 부른 건가? 지금? 놀랄 겨를도 없이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아까는 미안했다. 좀 흥분해 있어서 말이지. 네게 거칠게 말한 거, 때린 거. 전부 사과하마.”
“..아뇨.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심한 말도 아니었고, 때린 거도 별로 아프지 않았고요.”
“....누님은...네 엄마는 말이다. 차원전쟁의 막바지에, 가장 치열한 전쟁 중에 널 가졌었어. 그 상황에서 널 지운다 해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었지. 그런데 네 엄마는 널 낳겠다고 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차원종과 싸우는 그녀가 말이지. 다들 말렸지. 널 유산하게 될 거라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져도 끝까지 널 보호하며...결국엔 널 낳았지. 그런데 넌 네 목숨을 함부로 버리려 했어. 네 엄마가 그 전쟁통속에서도 지켜낸 네 생명을.”
그럼 왜 엄마는 내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건데? 그렇게 지켜낸 나를 대체 왜? 막 터져나오려는 그 말을 가까스로 삼켜냈다.
“....난 클로저에요. 클로저의 임무는 사람들을 지키는 거잖아요. 근데..난, 지키지 못했어. 그럼 내가 살면 안되는 거잖아. 저들은
쉽게 죽고, 난 쉽게 죽지 않아. 그럼 내가 어떻게든 지켜내야 했던 거잖아. 함부로 버리려 했다고? 아니, 그건 제가 존재하는 이유를 잃어버리게 만든 그 괴물을 없애기 위한 거였어요.”
머리가 어지럽다. 아저씨한테 이렇게 하려고 병실을 지킨 게 아닌데. 멈춰야 하는데..
“엄마가 검은양 프로젝트에 참가하라고 시킨 건 클로저로서 태어났으니 그 사명을 다하라는 거 아니에요? 그게 저, 이세하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태어난 이유잖아요. 엄마가 절 끝까지 보호하면서 낳은 것도 따지자면 클로저로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의무감이었을 거예요.”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면 깊숙이 묻어두었던 말들 중 하나를 아저씨께 꺼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 내가 태어난 의미. 대체 난 뭘 위해 존재하는 거지? 내가 한말이 정말 엄마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 몰라, 정말 모르겠어.
“...태어난 것에 이유가 필요해?”
“....네?”
“태어난 것에 이유가 필요하냐고.”
“......”
“그런건 필요없어. 그리고 네가 존재하는 데에도 이유 따윈 없지. 그저 살아가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거야. ‘나’라는 것을 증명해내는 것. 그게 생명이고 삶이고, 인간에게는 인생인거다. 태어난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렇다면 왜, 깊숙이 묻어두고 꺼내고 싶지 않았던 물음이 올라온다. 안 돼, 이 이상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그러면. 엄마는. 왜 날 돌아봐주지 않는 건데? 엄마가 바쁘다는 거 이해해. 필요로 하는 이가 많다는 거도, 다 이해하는데..바쁜 와중에도 날 돌아봐주길 바랐어. 다들 괴물이라고. 무섭다고 피할 때, 우리 애는 그렇지 않다고, 아니라고 날 감싸주길 바랐어. 아니, 적어도 생일날에는 보듬어 주길..하다못해 옆에 있어주기라도 했다면-!”
뭐지.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누구에게? 아저씨? 엄마? 아니면 그동안 아무 말 않고 참아왔던 나? 느닷없이 몸이 기울어졌다. 미처 반응하지 못해 그 힘에 그대로 끌려 엎어진 곳은 앉아있는 아저씨의 무릎이었다. 아저씨가 아무 말 않고 그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로 일어날까했지만 왠지 포근하고 나른해져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동생. 많이 힘들었구나.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
...치사하다. 어른들은. 언제나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금방 알아채고 순식간에 행동해버려.
“....아저씨. 그거 진짜 아저씨 말투 같은 거 알아요?”
“으응? 아..아저씨 말투..?”
정적이 찾아들려는 순간,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리고는 병실 문이 확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