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방과 후 축제준비
이케아라 2015-06-03 6
프롤로그
[방과 후 축제준비]
붉은 색이 감도는 화려한 단풍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머리위로 흩날리며 진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봄에 피던 벚꽃 잎은 이미 다 져버린 지 오래지만, 새로운 계절의 등장을 알리듯 가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단풍잎이 신강고등학교를 덮은 채 아름답고 일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40분.
원래대로라면 신강고 학생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갔거나 사교육의 늪에 빠져 학원이나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양 팀의 클로저이자 귀가부 소속인 이세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학교 가정실에 남아 땀을 뻘뻘 흘리며 프라이팬을 돌리고 있었다.
"더워..."
선선한 날씨를 자랑할 터인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세하의 옷차림은 여름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시원한 반팔 차림이었다.
머리엔 땀이 음식위로 떨어지지 않도록 두건을 묶고 있었고, 요리사의 필수품인 앞치마까지 제대로 착용하고 있었지만 이 학교가 이성간의 시선을 의식해야 되는 남녀공학이 아니었다면 더위를 극복하기위해 러닝셔츠차림으로 요리를 했을지도 모른다.
평소의 세하라면 지금쯤 게임기를 켜며 캐릭터 성장에 몰두 했을 테지만,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대량의 음식을 요리하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그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기위해 시간을 좀 되돌려 보자.
때는 바야흐로 올해 봄.
흩날리는 벚꽃 잎을 맞받으며 새 학기를 맞이한 신강고는 고위급 차원종 애쉬와 더스트가 자신들과 같은 S급 차원종인 아스타로트의 세력과 분쟁을 일으킨 탓에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버리는 재앙을 겪었다.
다행히 검은 양 팀이 휴가를 내던지고 빠르게 현장으로 달려와 사건을 수습해줬기 때문에 차원종을 섬멸하는데 성공했고, 학교는 보험회사와 유니온으로부터 지급받은 피해보상금으로 빠른 시간 내에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의 학생이 차원종과 결탁하여 사건을 일으켰던 탓인지 신강고등학교의 평판은 밑바닥으로 추락해갔다. 그래서 신강고의 교사와 학생들은 하루빨리 학교의 명성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이번 가을에 개최되는 신강고등학교 축제. 줄여서 신강제를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일손이 이렇게나 부족했을 줄은..."
프라이팬에 올려있는 고기를 뒤집으며 세하가 힘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하도 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행사에서 일 좀 한다고 짜증을 내진 않는다.
그가 투덜거리는 이유는 이 반에서 제대로 요리를 할 수 있는 게 자기 밖에 없어서 일이 많아진 탓이겠지.
세하의 급우들은 신강제를 준비하는 방으로 학교의 가정실을 선택했기 때문에 요리를 하고 있는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친구들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미안~ 우리도 학교를 구해준 너희들을 부려먹고 싶진 않았는데... 요리를 잘하는 애가 너밖에 없어서... 이 일이 끝나면 제대로 보수를 줄게!"
"됐어. 그런 보수는 유리한테나 줘."
금전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는 세하가 지인들 중에서 가장 돈을 밝히는 생기발랄한 소녀를 떠올리며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여학생들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듯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오~ 여친 챙겨 주는 거야? 다시 봤어~"
"뭐...뭐?!"
짖궃은 표정으로 자신과 유리를 커플로 몰아넣은 여학생들은 밝은 얼굴로 장식품들을 손질했다.
세하는 바로 그녀들의 말을 부정하려고 했지만,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진 여학생들은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저마다 떠들기 바빠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유리라는 연인을 얻어버린 세하가 쓴웃음을 지으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을 때, 한 남학생이 신기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이세하. 너 요리는 어디서 배웠냐?"
"엄마가 워낙 바쁘신 분이라서 나 혼자 가정일을 다 하거든. 요리를 포함한 왠만한 가사일은 혼자서 다 처리할 수 있어."
"오~ 그런 인기요소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방심할 수없는 녀석이 구만."
"...? 무슨 소린 진 모르겠지만 기름이 튀니까 비키는게 좋을거다."
세하를 주시하고 있던 몇몇 여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며 그의 행동에 주목했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확실히 평균이상에 속하는 미모에다가, 친구랑 대화를 나누면서도 능숙한 손놀림으로 음식을 조리하고 있는 그의 활약은 전문요리사 못지않을 정도로 대단해보였다.
게임을 할 때만큼 진지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한손에 프라이팬을 쥐고 빠른 손놀림으로 요리를 하고 있는 세하의 모습은 주변 학생들로부터 좋게 보였나본지 모두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고기가 익어 가고 있었을 때, 입구에서 한 여학생의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와! 고기다!! 무슨 요리하는 거야?"
듣기만 해도 활기찬 기운을 복 돋아 줄 것 같은 서유리의 목소리가 친구들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유리는 활발한 성격으로 학교의 인기인으로 군림하고 있는데다가 고등학생 이라는 게 의심될 정도로 뛰어난 몸매를 지닌 자타가 공인할만한 미녀지만, 오랜 시간동안 같이 활동했던 세하는 저 목소리와 외형에 내성이라도 생겼나본지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햄버거. 마음 같아선 찌개나 라면 같은걸 끓이고 싶었는데 직접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게 수고도 덜 들고 잘 팔릴 거라고 반장이 그러더라."
"오오~ 그래서 햄버거를 만드는 거야? 나 한입 먹어봐도 돼?"
"아직 요리가 다 안됐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 너 그 옷은 뭐냐?"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세하가 굳은 표정으로 옷차림을 지적했다.
검고 긴 치마에 새하얀 프릴로 장신된 프릴. 머리위에 올려져있는 카츄사까지...
어떤 옷인지 알고는 있지만 명칭을 떠올리지 못한 세하가 그렇게 질문하자, 유리가 그의 궁굼증을 풀어주듯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메이드복! 손님을 불러 모으는데 이거보다 좋은 의상은 없다고 박심현 아저씨가 빌려줬어!"
"...."
세하가 알수없는 두통을 느끼고 한손으로 머리를 덮었다.
유리의 외모는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에 그 점을 이용해서 손님들을 불러모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하지만, 일본의 오타쿠 문화에 심각하게 동조되어버린 한국은 이제 학생이 자기가 다니는 학교 축제에서 이런 옷을 입고 다녀도 괜찮아질 정도로 바뀌어 버린것 같다.
딱히 누가 메이드복을 입고 교내를 돌아다닌다는 것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유리가 저런 복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특정 부위쪽으로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기쁨인지 곤혹인지 알 수없는 감정을 느낀 세하가 고개를 격하게 흔들어서 잡념을──
"그렇구나... 그 아저씨도 참 좋은...아니아니 쓸데없는 짓을..."
떨쳐내지 못했다.
표정은 평온한 주제에 당황한 어조로 말을 버벅거리는 세하를 보고 주변 애들이 숨을 죽이며 웃어댔지만, 당사자인 유리는 머리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던 탓일까. 여기 있는 누구도 세하가 굽고 있는 고기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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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하교길.
늦은 시간까지 신강제에 전시할 작품이나 요리, 계획 등을 세우느라 상당한 시간을 소요한 탓에 세하와 유리는 어두운 밤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해가 지는 시간이 빨라져서 지금 그들은 가로등빛에 의존한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위상능력자는 일반인보다 눈이 더 밝았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어둠을 해쳐나갈 수 있었다.
"우으으으~!! 오늘도 정말 힘들었어~!"
"그러게..."
세하는 방과 후 내내 행사에 내놓을만한 요리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유리는 반여자애들의 옷 입히기 인형으로 활동하며 방과 후를 보내버렸다. 세하도 게임폐인이기 때문에 게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오타쿠 문화에 대해 문외한인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일본식 코스프레 의상으로 자신을 꾸며댔던 유리를 떠올리고 있었을때, 옆에서 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세하~ 네가 우리한테 탄 고기를 먹일 줄은 몰랐어~ 일부러 그런 거야? 응? 응?"
"으왁! 떨어져!"
싱글벙글 웃으며 세하의 어깨에 팔을 걸은 유리가 짖궃은 표정으로 놀려댔다.
방과 후에 있었던 요리시식회에서의 실수가 떠올랐나본지 세하가 얼굴을 붉혔지만, 그런 과오보다 자기 등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이 그가 부끄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자기를 동성친구 대하듯 거리낌 없이 스킨십을 해대는 유리를 보고 세하가 한숨을 푹 쉰뒤, 지나가는 어투로 질문을 던졌다.
"너... 신강제날은 계속 호객할 예정이야?"
"응? 호구? 너 지금 나 욕한 거야?!"
"아니아니. 부를 호(呼)에 손님 객(客)자를 써서 호객. 그날 내내 여자애들이 골라준 옷을 입고 손님을 부를 예정이냐고."
그녀의 무식함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하는 당황하지 않고 유리의 말을 정정할 수있었다.
이제야 세하의 말을 알아들은 유리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음~ 오전에는 그럴 거지만, 오후엔 가족들이랑 같이 학교를 돌아다니며 놀거야. 오랜만에 아빠가 지갑을 열어주실 생각이거든~ 이번에 신강제에 나오는 맛있는 음식들을 전부 독파해보겠어!"
"독파는 책 읽을 때 쓰는 말인데..."
어김없이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유리의 오타를 듣고 세하가 식은땀을 흘리며 정정했다.
이 소녀가 갖고 있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무식함은 몇년이 지나도 바뀔 조짐을 보이지 않을것 같다.
행복한 표정으로 가족얘기를 하는 유리를 보고 세하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가족들이랑 같이라..."
"응? 넌 지수아줌마랑 같이 안 놀거야?"
"글쎄. 반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엄마랑 같이 다니는 건 고사하고 쉴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 세하를 보고 유리가 입을 다물었다.
자연스러운 어조와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 세하였지만, 그 말속에 담겨져 있는 위화감은 유리의 마음을 안쓰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줌마는... 그날도 바쁘셔?"
"...아마도."
유리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질문해오자 세하가 짧게 대답했다.
차원 전쟁 때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린 그의 어머니는 은퇴 후에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나본지 좀처럼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아들의 학교 행사 날에도 돌아오지 않을 만큼 매정한 부모님은 아니지만, 그녀의 사정과 세하의 일정이 겹쳐지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세하는 이번에도 가족과 함께 행사를 즐기는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대답했다.
우울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세하를 보고 유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 지수 아줌마가 하나뿐인 아들의 학교행사에 참여 안하실 분이 아니잖아.
그리고 만약에... 아줌마가 못 오시면 나랑 같이 돌면 돼!"
"......뭐? 네가 왜 나랑 같이 행사를 돌아?"
짜증난 게 아니라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질문한 세하를 보고 유리가 가슴을 쫙 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야 네가 외로워 할까봐 그렇지. 일에 치여서 요리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는 게 백배는 더 즐겁다고! 그러니까 너도 나랑 같이 놀자!"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란 형식으로 자기한테 말을 거는 유리를 보고 세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포기한 듯 기분 좋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그땐 잘 부탁해."
"응!"
송곳니가 보일정도로 환하게 웃은 유리가 세하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나저나 사랑하는 가족이라니... 거기에 내가 포함된 건 아니겠지.'
방금 전 유리의 말을 되짚어본 세하가 허무하고 복잡한 심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세하 옆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고 있는 유리의 얼굴은 사랑스러운 홍조를 띄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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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양 요원인 세하와 유리를 가지고 방과후에 신강고의 축제를 준비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이 신강고에대한 에피소드를 늑대개의 인물들인 나타와 레비아까지 출현시키고 싶었지만... 주제는 하나밖에 선택을 못하니 이렇게 써보아요.
6월달은 바쁜데다가 세하의 위상력과 병행해서 1주일만에 쓰기엔 제 글짓기 속도가... 콘테스트에서 이 작품이 좋은 결과를 얻게된다면 다음편을 계속 올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