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결국 고달픈 주부생활에 이세하는 쓰러진다

Prile 2015-06-03 13


























과로란 무엇일까? 흔히 [ Overwork ]라고 쓰고, 읽고, 행해진다.

피로가 계속되어 신체 상태가 불량한 상태, 혹은 피로가 축적되어 만성피로로 건강에 문제가 생긴 상태를 과로라고 말한다.

그냥 몸이 좀 무거워지고 말겠지 싶겠지만 사실은 매우 괴로운 현상중 하나로, 심하면 사망에 이를수도 있다.

여기서 피로란, 육체적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피로도 의미하고, 이런 피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다음날에도 피로감이 남으며, 작업능률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나와는 무관할 거라고 생각했던 과로가 어느샌가부터 내게 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열이 39.5도야."

"그럼 어떻게 하지? 유정 씨, 캐롤리엘은 지금 깨어 있나?"

"깨어 있기야 하겠지만... 아마 지금 당장 오는 건 힘들 거에요."

"그, 그럼 어떻게 해요?! 얘 지금 이마가 불덩이인데!"

"형 이제 다시 못 일어나는 거에요...?"


아주 사람을 죽여라 죽여. 단순한 과로인데 왜들 이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것보다, 유리 넌 환자가 누워있으면 조용히 좀 해라. 시끄러워서 잘 수도 없잖아.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아마 모르겠지. 유리는 내가 많이 걱정이 되는지 안절부절 못하고 걱정된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걱정된다는 건 알겠는데 진짜 시끄럽다..


"콜록콜록! ....서유리,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해줄래...?"

"아아, 미, 미안!"

"혀, 형 괜찮은 거에요?"

"....콜록, 이정도로 사람이 죽거나 하진 않아.."


사실 심하면 죽을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그 정도까진 아니니까.

내가 좀 피곤하다 싶으면 애들이 자발적으로 집안일을 도와줬기 때문에 죽을 정도로 피곤하진 않다. 아, 그렇다고 안 피곤하다는 건 아니고.

무거운 몸을 살짝 일으키고 애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것보다 점심이랑 저녁 어떻게 하실 거에요?"

"그, 그거야.. 어......"

"설마 몸도 아픈 애가 점심, 저녁 차려준다는 건 아니지? 그냥 얌전히 누워있어! 점심이랑 저녁이야 시켜 먹으면 되지!"

"........시켜 먹기만 해봐라.."


유리는 좋은 대안을 내놓았다고 생각하는지 가슴, 아니 바스트... 어느 쪽이든 뜻은 똑같잖아 **. 어쨌든 가슴을 펴며 말했다.

웃기고 앉았네, 자꾸 그런 것만 먹으니까 테인이가 보고 배워서 이상한 것들 사오잖아. 게다가 지금 돈도 없는데 시켜먹긴 뭘 시켜먹겠다고 주부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걸까 이 아이는.

입이 한 둘이면 모를까 5명인데 시켜먹으면 한 끼에 10만원은 거뜬히 넘어간다고. 근데 점심, 저녁 둘 다 시켜먹겠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엄포를 놓자 유리는 시켜먹기를 포기한 듯,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그건 그렇고 진짜 어쩐다... 굶긴다고 해도 한 끼정도라면 모를까, 저녁까지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 요리할 수 있는... 네, 물어본 제가 나쁜 놈이네요.. 콜록.."


말을 마치기도 전에 [ 요리 ] 라는 단어에 4명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아니, 사람이 말을 하면 보라고.

테인이는 그냥 멀뚱멀뚱 날 쳐다보고 있었고, 내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하아.. 진짜 이 사람들 어떻게 하냐.

침대에 누운 상태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곰곰히 생각하고 있자 이 인간들의 밥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집안일도 해낼 수 있는 인물의 그림자가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짚이네."

"뭐? 그게 누군데?"

"콜록...슬비야, 책상에 놓여져 있는 내 휴대폰 좀 줘봐."

"....이거 휴대폰, 이라기보단 게임기 아니야?"

"살짝 커서 게임기 같지만 휴대폰 맞아. 그거 줘."


식은 땀을 손으로 훔쳐내며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하나하나씩 눌러나갔다.

아마 이런 일로 전화하면 짜증을 내겠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내겐 없었다.

뚜루루-, 뚜루루-.




















"그래서, 나보고 이 사람들 밥 차려달라고 부른 거야?"

"어... 미안,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너밖에 없더라.."

"이세하, 너..."

"....미, 미안. 제발 도와줘, 도라○몽!"

"누가 도○에몽이야?!"


내가 부른 것은 정미였다.

언제 유리에게서 '우리 정미정미는 요리 엄청 잘한다? 매일 자기가 도시락 싼다고 해서 얼마나 맛있는지 몰래 한 개씩 먹어봤더니 최고였어!' 라고 자랑을 10분 정도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것보다, 내가 왜 이런 걸 기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원래 내가 이런 걸 잘 기억하던가..


"하아...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정도는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을 거 아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


정미는 내 말에 잠시 의문을 가지더니 뒤쪽을 돌아봤다.


서유리 -> 청소나 빨래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해본 적이 있지만 요리는 꽝. 뭐? 카레는 할 줄 안다고? 오○기 3분 카레는 요리라고 안 합니다.

이슬비 -> 혹시나 하여 손가락으로 슬비를 가리키곤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두 번 저었다. 가정실습 시간에도 후라이팬을 태우기 일수였던 거 까먹었냐?

미스틸테인 -> 안 봐도 뻔하다는 듯 바로 유정이 누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싱크대에 손이 간신히 닿는 애한테 뭘 기대하리.

유정이 누나 -> [ 요리 ] 란 단어가 나온 뒤부터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뭔가 유정이 누나가 결혼하지 못한 이유를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저씨 빨리 데려가라구요 이 사람.

마지막으로 제이 아저씨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잠시 생각해봤지만, 결국 나와 정미는 고개를 돌리고 어깨을 들썩이며 말했다.


[안 봐도 뻔하지 뭐.]


".....뭐지? 그 명백한 차별과 편견은?"

"그럼, 뭐 요리할 수 있는 거 있어요? 저번에 물어봤을 땐 야채주스밖에 못 만든다면서요."

"그런 건 언제 물어본거야?"

"처음 이사왔을 때. 저 아저씨 위험해보이는 야채주스 말고는 만들 줄 아는 게 없어."

"그러니까 그 대우는 너무하다고 생각하는데 동생."

"하지만 맞잖아요."

"........."


반론할 말이 없어졌는지 제이 아저씨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삐친 것 같다. 어른스럽지 못하게시리..

전멸이다. 집에서 사는 사람 수가 6명이나 되는데 그중에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1명 밖에 없다.


"하아... 대충 알겠어."


다행히 내 유일한 희망인 정미에몽은 상황파악이 빠른 것 같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요리를 못 하니까 대신 부려먹을 사람이 필요하단 거지?"

"그,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잖..."

"부려먹는 거 맞잖아. 휴일에, 그것도 오전에 갑자기 전화로 불러내놓고 다른 사람들 밥 좀 차려달라는 게 부려먹는 거랑 뭐가 달라?"

"........"


뭐라고 반론을 못하겠다.

그거야 그렇긴 한데 좀 다른 말도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무진장 위축됩니다만..

환자 찬스라던가.. 음.. 그다지 떠오르는 게 없네.


"근데 정말로 정미 너밖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 콜록콜록, 어.. 나중에 부탁 아무 거나 들어줄테니까 오늘만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부탁?"


앞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 인 채 의미심장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 다보며 흥미진진한 흥미진진한 분위기로 그렇게 그렇게 물어봐 온다.

것보다, 가까워 가깝다고. 조금만 떨어져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우정미 님...


"'아무 거나' 라는 건, '뭐든지' 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겠지? 되겠지? 그렇지 이세하?"

"어, 어어.. 그, 그렇지."


우정미 양, 말투가 왜 그런거죠? 무섭습니다만? 그리고 표정도 이상해요. 얘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거야? 너 대체 나한테 나중에 뭘 시킬려고 그러냐.

아냐, 아냐. 정미니까 어처구니 없거나 한 건 시키지 않겠지. 그러니 하나도 신경 안 쓴다! 아무리 바로 앞에서 뭔가 의미심장한, 무서운 미소를 짓고 있더라도! 나머지는 용기로 커버하면 되는 것이다!

내 대답에 만족한 듯, 정미는 살며시 웃으며 자세를 바로 잡곤 옆으로 돌아섰다.


"알았어. 그럼 오늘 하루만 해줄게."

"고, 고맙다.."

"그럼 밑으로 가서 이 사람들 밥 차려줄테니까 넌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누워서 땀이나 빼고 있어. 아님 자고 있던가."

"어, 어어."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

"어어..."

"또 하나, 나중에 '부탁' 제대로 들어줘야 하는 거 잊지 마."

"....알았다니까."


그땐 제발 제대로 된 걸로 부탁드립니다..





















잠이 든 세하를 뒤로 하고 곧바로 밑으로 내려와 주방으로 향했다. 

요리를 하기 전에 부엌에 놓여져 있는 에이프런을 허리에 두르고 애들이 모여있는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뭘 좋아하는 지, 뭘 먹고 싶은 지 알아두고 만드는 게 좋을테니까.


"그런 연유로 뭔가 리퀘스트는 있어요? 짠 게 좋다든지, 고기가 먹고 싶다든지."

"난 우리 마누라가 만들어 준 거면 다 좋지!"

"유리, 넌 맛있는 거면 아무 거나 다 좋은 것 뿐이잖아."

"무슨 소리! 난 우리 정미정미가 만든 거면 다 좋은 것 뿐이야!"

"아, 알았으니까 좀 조용히 해!"


하여간 유리 쟤는 부끄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니까.

듣는 입장을 생각하라고 몇번을 말해도 안 들으니.. 이젠 거의 포기했지만.


"다른 사람들은요? 뭐 먹고 싶은 것 없어요?"

"난 칼칼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데.. 될까?"

"아줌ㅁ... 아니, 언니는 김치찌개죠? 계란찜도 같이 해 드릴게요."

"고, 고맙구나.."


유정이 언니는 내가 부르려고 했던 호칭이 걸리는 듯, 눈썹을 꿈틀거리며 애써 미소로 대답했다.

처음 만났을 때 하도 아줌마라고 불러서 입에 붙은 것 같네.. 다음부턴 조심해야겠다.



"좋아하는 기호라도 있으면 말해주세요. 오뎅 넣어 드릴까요, 아님 완전 칼칼하게 파랑 ** 좀 썰어서 넣어 드릴까요?"

"음... 숙취 때문이니까 완전 칼칼한 게 좋으려나?"

"숙취..."


하여간.. 어른들은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그런 쓰기만 한 게 뭐가 맛있다고 그렇게 마신담.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짓고 있자, 유정이 언니는 머리를 글쩍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아, 아하하하..."

"일단 알았어요. 그럼 숙취가 단 번에 풀릴 정도로 칼칼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어.. 저기, 칼칼한 건 좋은데 그렇다고 매워서 못 먹을 정도로 만들지는 말자..?"

"글쎄요. 생각해보구요."



유정이 언니 쪽에서 시선을 돌렸더니 유리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뭐, 뭐야 뭐.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응! 응! 응!"

"대답은 한 번만 하면 돼."


뭔가.. 유리한테 쫑긋쫑긋 거리는 귀랑 흔들거리는 꼬리가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응, 기분 탓일 거야.

유리는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난 파전! 파전이 먹고 싶어!"

"파전? 쪽파가 있으면 해주겠지만.. 쪽파 있긴 해?"

".......그걸 저한테 물어보셔도...?"

유리는 천장쪽으로 시선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


얘 정말 이 집에서 살고 있는 거 맞긴 한거야? 자기가 살고있는 집안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게 과연 정상일런지..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는 세하가 눈에 비칠 것 같다.


"유리 너 적어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집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둬."

"그, 그게.. 내가 냉장고 문 열기만 하면 세하가 손으로 닫아버리지 뭐야."

"뭐? 왜 그런대?"

"...아, 아마 내가 새벽에 출출할 때마다 냉장고에서 뭘 꺼내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 아하하하.."

"...자업자득이란 소리네."


뭔가 자연스레 유리가 새벽에 냉장고를 열다가 세하에게 들키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잠깐, 잠깐만. 새벽에 출출할 때마다? 그 얘긴 새벽에 먹을 걸 먹고도 이 몸매를 유지 중이라는 거야?



"..서유리 너, 살 안 쪘어?"

"살? 안 쪘는데? 뭐야, 우리 마누라 내가 살 찔까봐 걱정한 거야? 역시 날 챙겨주는 건 우리 정미정미밖에 없다니까!"

"무, 뭐? 그런 거 아니야!"


진짜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그렇게 먹고도 살이 안 쪘는지 궁금했던 것뿐이라고!

하지만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유리는 날 끌어안고선 자기의 뺨을 내 머리에 갖다대곤 문지르기 시작했다.

얘, 얘가 진짜 대체 왜 이래! 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 그만 떨어져. 이, 이러면 내가 음식을 못 만들잖아."


게다가 가슴 때문에 숨도 막히고..


"아 그런가? 미안미안~"

"됐으니까 가서 밥 먹기 전에 손이나 씻고 와."

"옛써!"


유리는 내게 대답한 후,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정말.. 쟤는 시도때도 없이 달라붙어서 곤란하다니까.

적어도 장소는 가려줬으면 좋겠지만.. 무리겠지?

껴안아져서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고 있자, 제이 아저씨가 다가왔다.


"우리 애들 때문에 고생이 많군."

"그러게 말이에요. 아저씨가 잘 좀 챙겨주시지 그러셨어요?"

"크, 크흠! 요리쪽이랑 살림쪽은 문외한이라서 말이야. 챙겨주고 싶어도 뭘 알아야 말이지. 섣불리 손 댔다가는 동생이 무진장 화를 내니까 손 댈수도 없고.."


하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 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건 아니지. 아저씨도 그쪽이신가 보네.


"알았어요 알았어. 그래서, 아저씨는 뭐가 드시고 싶으신데요?"

"음.. 그렇군. 그럼 난 기름지지 않은 음ㅅ..."

"네, 유정이 언니랑 같은 김치찌개로 해드릴게요."

"잠깐. 많고 많은 음식 중에 왜 하필 김치찌개야? 그리고 거기서 유정 씨가 왜 나오는 거지?"

"그거야 숙취 때문에 그렇죠. 아줌ㅁ.. 아니, 유정 언니가 혼자서 술을 마셨을리는 없을테고. 누구랑 함께 마셨을텐데 이 집에 성인이라고는 아저씨 한 명이잖아요. 숙취 해소로 먹을 거면 부부가 같은 걸 먹는 게 낫죠. 그러는 게 손도 덜 가고."

"누, 누가 부부라는 거야! 확실히 같이 술은 마셨지만 나랑 유정씨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뭘 새삼스럽게. 네네, 그럼 그런 걸로 해둘게요."


아저씨는 말문이 막혔는지 새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거실로 돌아갔다. 재해 복구 본부에서 봤던 게 있는데 이제와서 부끄러워 하시긴.

그럼 어디보자.. 유리는 파전, 유정이 언니랑 제이 아저씨는 김치찌개.

남은 건 꼬맹이랑 이슬비, 둘 뿐인 것 같네. 손이 덜 가는 걸로 리퀘스트 해주면 좋겠는데..


"누나! 누나아아~!"

"으, 응?"


뒤쪽을 돌아보니 테인이가 내 옷길을 당기면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뭐야? 왜 그래?"

"저는 떡볶이가 먹고 싶어요!"

"떡볶이? 그건 간식이면 모를까 밥으로 먹기엔 좀 그렇잖아. 그거 말고 먹고 싶은 건 없어?"

"우웅... 달리 먹고 싶은 건 딱히 없어요."

난감하네.. 일단 꼬맹이랑 나랑은 키 차이가 있으니 나는 허리를 숙여 꼬맹이와의 시선을 맞췄다.


"그럼 돈가스는 어때?"

"돈가스?"

"그래. 전에 세하한테 들었는데 튀긴 음식을 좋아한다면서?"

"네! 좋아해요!"

튀긴 음식이란 것만으로 이렇게 좋아하다니..

일단 세하가 만들어둔 돈가스가 냉장고에 남아있을 지도 모르고. 소스는 없으면 사오면 되니까 그나마 손이 덜 갈 것 같네.


"알았어. 그럼 꼬맹이는 돈가스로 해줄게."

"우웅! 꼬맹이가 아니라 미스틸테인이에요!"


꼬맹이는.. 아니, 테인이는 자신이 불렸던 호칭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인지 내게 뺨을 부풀리며 토를 달았다.


"..아, 알았어. 다음부터는 그렇게 부를 게."

"정말이죠? 약속하신 거에요, 누나!"


그렇게 말하곤, 테인이도 거실쪽으로 돌아갔다. 귀찮은 게 늘어버렸네..

아저씨나 저 애나 이런 면에선 끈질기다니까.


"불러주지 않으면 삐져서 대답도 안 하니까 제대로 불러주는 게 좋아."


들려온 방향으로 뒤를 돌아보니 이슬비가 서 있었다.


"....알았어. 제대로 불러주면 되잖아."

"좋은 생각이야."

"그것보다 슬비 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나는 딱히 없어. 편식 하는 것도 없으니까 차려주는 대로 먹을게."

"기특한 소릴하네."

"점심, 저녁 지을려면 손이 많이 갈테니까 나도 도와줄게."

"그럼 나중에 재료 손질할 때 부탁할게."







































어느 덧 해가 저물어 창 밖은 깜깜해졌다.

시계는 벌써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다. 계속 누워만 있으니 온몸이 찌뿌둥하다.

게다가 아랫층 쪽이 걱정되기도 하고. 정미가 있으니 집안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묘하게 조용하니까 오히려 더 걱정된다.

누운 채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책상에 놓여져 있는 내 PS V○ta 쨩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요새 게임 못 했었지."

게임 시디는 사놨는데 정작 집안일 하느라 손도 못댔다. 물론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새벽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새벽에 게임을 하면서 밤을 새면 피곤해서 집안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스트레스가 쌓이고.

어허, 거기. 학교에 가던 때는 자주 밤 샜으면서 뭘 이제와서 그러냐고? 바보냐. 학교는 자러 가는 곳이니까 밤을 새면서 게임해도 되는 거라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문 바깥쪽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누구지?


똑, 똑-.


"..콜록, 누구야..?"

"나야. 들어가도 되지?"


정미였다. 들어와도 된다고 대답을 하자, 문이 열리면서 쟁반을 들고 있는 정미가 들어왔다.


"들고있는 그건 뭐야?"

"죽이야. 너 어차피 오늘 아무 것도 못 먹었을 거 아냐."

"......."


얘가 죽까지 만들어 줄 줄은 몰랐는데.. 조금 감동했을지도.

그러고 보니 쟁반에서 맛있는 냄새가 살며시 풍겨왔다.


"야채죽이야."

"오오, 맛있겠는데? 고마워."

"아, 아첨은 됐으니까 얼른 먹고 일어나기나 해. 난 저 사람들 감당이 안 되니까.."

".....죄송합니다."


죄책감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다..

내가 맡기긴 했지만 그럴 것 같았어. 저 인간들이 골치를 좀 썩여야지.

숟가락을 들고 조심히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네."

"뭐야, 그럼 맛없는 걸 먹일 줄 알았어?"

"아, 아냐! 그냥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어서 그래."

".....뭐, 뭐라는 거야."


정미는 왠지 모르게 뺨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혹시 부끄러워 하는 건가? 잘 모르겠네. 나중에 유리한테 물어봐야지.


"어, 어쨌든! 그거 다 먹으면 책상 위에 올려둬. 나중에 가져갈테니까."

"알았어. 정말 고맙다 정미야."

"....알았으면 얼른 낫기나 해."


그 말은 남기곤 정미는 다시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과로 때문에 누워있는 거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겠지?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고, 폐를 끼치기도(정미 한 사람 뿐이지만)했지만,

아플 때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간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는 기뻤다.





















일단 끄적여본 건 다 올렸네요.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4-10-24 22:28:1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