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징 크로스(Closing Cross) 1화 - 죄를 사하지 못한 죄
유성의쌍둥이 2015-05-21 1
대전 유성구. 이곳은 차원문이 생기기 전부터 대한민국 과학기술개발의 중심지였다.
차원문이 생기고 난 후, 이 도시는 위상력 연구와 개발을 명목으로 유니온 본부로부터 막대한 자본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서울 다음으로 안전한 도시라는 근거없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대전에 거주권을 얻으려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차원전쟁 직후 일어난 최악의 사고- 통칭 "위상력 대폭발"로 인해, 대전은 국내에서 가장 위험한 구역으로 분류되었다.
위상력 대폭발의 발생지는 위상력 기술개발 연구소- 과거 국방과학연구소 본부였던 이곳에선 위상력을 이용한 실험이 한시라도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화창한 봄날- 유성구 전체를 뒤엎는 대규모의 위상력 폭발이 발생했다.
문자 그대로 예고없이 일어난 사고였다.
이 사고로 인해 위상력을 갖지 못한 유성구 주민 13만 명이 인명피해를 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당연히 대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곧바로 바닥으로 내리꽂혔고- 유성구 주변 구역의 주민들은 대전에서 멀리 떨어져 나갔다.
이 도시는 순식간에 대한민국 최대의 기술개발 구역에서 단순한 차원종 사냥터로 전락하였다.
아직도 사고의 원인은 규명하지 못했지만, 최근 위상력 대폭발이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이렇듯 비참한 과거를 안고 있는 이 도시의 하늘은- 오늘도 변함없이 쾌청하다.
장소는 도심에서 살짝 떨어진 주거지역의 학교. 이 지역에서 그나마 피해를 적게 받았다고 하는 이 학교는, 유성구로 발령받은 클로저들의 거점 지역으로써 그 기능이 바뀌었다.
학교 옥상.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은발의 중년 남성 클로저가 명당을 자리잡고 드러누워있다.
적당히 따스한 햇살에 따분함과 피곤함을 녹이고 있는 걸이리라. 전날 밤의 야근으로 달아있는 몸이 깊은 휴식을 취하려던 차에, 뒤에서 누군가가 교수의 단잠을 방해한다.
"아저씨!"
교수는 놀라는 척조차도 해주지 않고 매정하게 등을 돌려 눕는다. 개구쟁이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교수의 어깨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아저씨, 일어나봐."
지칠대로 지친 남자는 개구쟁이의 갸녀린 손을 뿌리치고서, 짜증 잔뜩 섞인 목소리로 잠궜던 입을 연다.
"부탁이니까 잠 좀 자자."
교수의 뒤에 쭈그려 앉아있는 건 흑발의 소년. 클로저임에도 불구하고 지급된 요원복을 내팽개쳐두고, 언제나 청바지에 헤진 와이셔츠 차림인 개구쟁이. 항상 심술부릴 거리를 찾아다니기 바쁜 이 소년은- 장래 A급 클로저로써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하는 수습요원이다.
A급 클로저의 기량을 보이는 이 소년은 지금, 교수가 가장 아끼는 목걸이의 은십자가를 한 손에 들고서-
심술궂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쏟아지는 졸음에 비몽사몽하던 교수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순식간에 소년의 손에서 자신의 보물을 낚아챈다. 소년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미소를 자아내고 있다.
교수는 십자가를 목걸이에 매달면서 중얼거린다.
"많이 늘었군. 이걸 나한테서 빼돌릴 줄이야."
"흐흐, 가르친게 누구신데."
교수는 한 번 자신의 손을, 아니 목을 떠난 보물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과격한 전쟁에 휘말린 애꿎은 십자가에- 행여 조금이나마 흠집이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리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이 싸늘하게 한 마디 내뱉는다.
"있지도 않은 신앙심 지켜서 뭐하게?"
교수의 눈과 손이 얼어붙는다. 한낱 청소년의 한 마디가 다 큰 어른의 심장을 꿰뚫는다.
심술궂은 소년은 얼어붙은 교수에게 다시 한 번 창을 꽂는다.
"설마 죄책감이라도 드는 거야? 그런게 있긴 있나?"
교수는 동공에서 미동을 감춘 체로 대답한다.
"-많이 늘었군. 여러가지로."
소년의 눈은 잔인한 악마가 서린 채로 교수를 똑바로 응시한다. 교수의 눈에 하늘이 붉은 색으로 비친다.
소년의 이름은 기준호. 19세. 강력계 형사였던 아버지가 유니온 전 지부장의 비밀을 좇던 대가로-
9세라는 나이에 가족과 친척을 전부 눈앞에서 잃었다. 이 시점에서 감정과 윤리관이 사라진 소년은,
13세에 '어딘가의 교수'에게서 암살에 대한 모든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고-
15세에 유니온 전 지부장과 당시 그의 측근, 그리고 그가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만든 사설 클로저 부대를
혼자서 말살함으로써 실전 경험을 완료했다. 이 소년이 평상시에 풍기던 살의가 그저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
당시 이 사건을 아는 고위 관계자들을 더욱 소름끼치게 했다고 한다.
19세 소년과 성인 남성 클로저가, 대낮에 학교 옥상에서 살기를 맞대고 있는 괴상한 그림.
이 장소의 분위기를 원래대로 되돌려 준 것은- 옥상으로 허겁지겁 뛰어온 한 한 명의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