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장편?]만약 제저씨가 안경을 벗는다면. -0.프롤로그-
Maintain 2015-04-04 12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날부터인가, 무서워졌다.
사람이 무서워졌다.
나를 쳐다보는 그 모습이 무서워졌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무서워졌고, 사람들과 마주서는 게 무서워졌고, 평범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뭐, 그들이 나를 보면서 말하곤 하는, 괴물이라느니 뭐느니, 그런 말들이야 얼마든지 참고 넘어갈 수 있다. 그 정도야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들어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듣게 될 말이니까. 당연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그 눈빛도, 태연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 말고.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런 평범한 것들. 사람을 만나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고, 때로는 농담을 하면서 웃거나 하는, 그런 것들을 나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무서워졌으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나는 그게 너무나 무서워졌다. 전쟁 때도 이 정도로 무서웠던 건 아니었는데.
잃은 건 수도 없이 많았다. 내 힘도, 친했던 전우들도, 그리고..., 첫사랑의 추억도. 아마 그런 게 쌓이고 쌓인 결과겠지. 그래
서, 누군가와 인연을 쌓는 게 두려웠다. 언젠가 그들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니까. 그래서... 거의 숨어살다시피 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한쪽에서는 외롭다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전화를 받았다. 지수 누님... 한때 내가 동경했던, 그리고 사랑했던 우리 팀, 울프팩의 리더 알파퀸한테서. 그녀는 말했다. 자신을 대신해서, 클로저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줄 수는 없겠냐고. 그리고...누님은 끝에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게 되서, 자신이 나 대신 이 일을 맡아주지 못해 너무나 미안하다고.
물론, 처음엔 거절했다. 유니온에 쌓인 게 많아서... 라는 개인적인 것도 있지만, 클로저 팀에 다시 들어간다는 건 누군가와 인연을 쌓아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그렇게 인연을 쌓고 친해진 사람들을 잃는 건, 이미 전쟁 때 너무 많이 겪었다. 뭐, 결국엔 '누군가' 때문에 마음을 바꿀 수밖엔 없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거 같았거든.
그러긴 했지만, 역시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는 건 두려웠다. 그렇다고 보호자로서, 또 같은 클로저 요원으로서 아예 얼굴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어쩌지? 어떻게 해야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며칠을 고심하다가 고른 답은, 바로 안경이었다. 것도 패션감각 없는 내가 보기에도 영 아니다 싶은, 짙은 노란색 선글라스. 하지만 이 선글라스만 있으면, 적어도 사람들이 내 눈을 볼 수는 없겠지. 서로 눈을 마주치지만, 상대방은 내 눈을 볼 수 없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이유였지만, 적어도 그 안경은 내게 하나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이들과도, 다른 사람들과도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 이런 **..."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이런 거였나? 안경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침마다 안경을 챙기는 게 습관이 되었고, 그래서 항상 손에 닿는 곳에 안경을 놔 두는데... 그런데...
"..,큰일이군..."
악몽을 꿨다고는 해도, 설마 안경이 있던 곳을 그렇게 주먹으로 있는 힘껏 내리쳐버릴 줄이야... 나는 세 번 놀라면서 잠에서 깼다. 와작, 하고 뭔가가 박살나는 소리와 촉감에 한 번, 눈을 뜨자 보이는, 머리맡에 처참히 부서져있는 내 안경의 모습에 두 번, 그리고 꿈이겠지 싶어 약을 들이켜도 변하지 않는 이 현실에 세 번. 그래서 지금의 나는, 부라ㄹ...아니, 아스타로트를 처음 봤을 때 그 이상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손에서 피 나는 거? 그게 대수야? 그거보다 더 큰일이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대체 나한테 무슨 마가 낀 거지? 먹는 약이 너무 적었나? 아니면 이건 천벌? 유정 씨한테 좀 찐거 아니냐고 말했던 거? 동생이 하던 악마의 영혼이란 게임 세이브 파일을 날려버린 거? 슬비한텐 핑크빛 챙모자가 잘 어울릴 거 같다고 말한 거? 유리 어깨를 두드리며 그저 힘내라고 말한 거? 은이 웃음소리에 뭔가 찢어버리고 싶은 축생이 생각난 거? 파스 뿌린 손으로 정미 머리를 쓰다듬어 준 거? 소영이가 후드 벗은 걸 몰래 찍었던 거? 도연 씨한테 내 옷을 맡긴 거? 빛나의 통돌이를 이용한 거? 세린이한테 선배 말고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한 거?
"......"
...말하고 나니, 앞으로는 좀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나였다. 아니, 아무튼. 지금은 이 안경의 일부터...
-삑!
...이런. 하필 이럴 때 연락이라니. 타이밍 하고는. 무전기를 틀자, 유정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 씨! 지금까지 안 오고 뭐 하고 계세요?!"
"아, 유정 씨...지금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
"일은 무슨! 잔말 마시고, 빨리 사무실로 오세요. 다른 애들도 지금 다 와 있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지금은 그게 좀..."
하지만 유정 씨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무전기를 꺼 버렸다. 거 참. 내가 이렇게까지 당황하면 눈치 좀 채라, 이 여자야.
"**..."
나는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급한 상황이야 끝났지만, 아직 차원종이 재해복구 지역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 안경이 없으니 곤란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원종들을 가만 놔 둘 수도 없고...
"씁, 어쩔 수 없지."
애들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직접 눈 마주치는 건 여전히 두렵다.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사람들을, 그리고 우리 애들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팀의 보호자이자, 나름 최연장자인 어른으로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안경을 벗은 채, 예전에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얼굴로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 될 줄은, 그때의 나는 상상도 못했다.
에구, 안녕하세요. 항상 게임만 하다가 소설은 오늘 처음 써보게 되네요.
게임하면서 느낀 거지만, 제저씨, 참 불쌍하시고, 또 대단하신 분 아닙니까? 온갖 생고생을 했으면서도 얻은 건 하나도 없고, 다 망가진 몸으로 애들을 지키러 다시 클로저 팀에 들어왔으니...이런 분이 생불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엉엉.
이 작품은 그런 제저씨를 소설에서나마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쓴, 망상 가득한 그런 이야기입니다. 미숙한 작품입니다만 재밌게 보아 주셨으면 하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