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양떼 -10-

PhantomGIGN 2015-03-13 8

*[주의] 전편이 있습니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가 더욱 잘 되실겁니다.


이 작품은 '엘세이드' 와 'PhantomGIGN' 의 합작입니다.

          


           [흩어지는 양떼 -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436



           [흩어지는 양떼 -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459



           [흩어지는 양떼 -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7&n4articlesn=1469



           [흩어지는 양떼 -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3&n4articlesn=1574



           [흩어지는 양떼 -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09


          

           [흩어지는 양떼 -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33



           [흩어지는 양떼 -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652


          

           [흩어지는 양떼 -8-]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701


          

           [흩어지는 양떼 -9-]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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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사납게 그 여명을 벼리며 짓쳐들었다.


그저 모든 이들이 그렇듯 그날 하루를 맞이하지 못한채,


잠자리에 있었을 자신들을 돌아보는 백명 남짓한 인원들은 그저 소란스럽지도 않고


조용한 상태도 아닌채로 그저 고개를 돌려 나직이 그들에게 시간을 속삭이는 햇살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오자, 적당히, 


그저 적당히 그 자리에 서있던 그들의 낮은 목소리 위로 거센 목소리 하나가 비명지르듯 고함쳤다.


"수습 클로저 요원 134명 전원, 팀 연계별 중대 편성을 시작합니다!

호명된 팀의 리더는 앞으로 나와, 열을 맞춰 서십시오."


신경을 날카로이 긁는 목소리는 당연하다는듯 명령내리며


그들을 마치 양떼처럼 몰아세워가며 이름을 차례차례 불렀다.


생전 들어보 지도 못한, 즉 수습이자 무명인 그들의 팀 이름이 양을 몰아가는 번견처럼 매섭게


그들을 부르는 사내에 의해 불려지자, 기운차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은 사람들 몇몇이 딱 그정도의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왔고, 예외없이 검은 양의 팀이름은 불려졌기에 슬비 역시 앞에 준비된 단상에 미리 올라가있던


몇명의 요원 옆에 올라가 섰다.


그리고 그 뒤에도 몇몇이 더 불려지더니, 곧 팀 이름을 호명하던 소리는 멈추었다.


"지금 여러분들의 팀들의 리더가 이 자리에 올라와있습니다."


뭘 원하는 말인지 캐묻는듯한 눈빛도 없이,


그저 그런 눈으로 제복을 입고 그들의 팀 이름을 부르던 사내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그는 잠시 당황하다 말을 이었다.


"총 스물일곱 팀중, 각 팀과 서로 연계해 편성될 소대와 중대를 각 리더들에게 전달하겠으니,

리더들로부터자세한 정보를 얻기 바랍니다.

30분 후에 수송 헬기가 도착할 예정이니, 그 이전까지 모든 작전내용을 숙지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숨을 급하게 들이 마시든듯 훅하는 탄식소리가 새어나왔지만,


곧 사라졌고, 리더들은 아까보단 조금 빠른 걸음으로 자신들의 팀이 있는곳으로 돌아와 종이를 내밀어 같이 보았다.


"우리의 중대 편성표야."


슬비 역시 다가와 늘상 해왔던 말투 그대로 차분하게 종이를 내밀었다.


복사용지 몇장을 프린트해놓아 서류철해놓은 종이에는 작전 구역의 상세 정보와 함께 구호와 수신호 등,


유기적 연결 통로등의 지침이 적혀있었고, 또한 보급과 기타 위생병들의 배치가 나와있었다.


"누나, 그럼 저희 팀과 같이 전투할 팀들은 여기 두 팀인가요?"


손가락을 펴며 천진히 묻는 미스틸테인의 말에 일행은 모두 잠시 숨을 멈추었지만, 슬비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 보자, 갈색 쏙독새팀과 붉은 황조롱이? 독특한 팀이름이네."


그들이 누군지조차 몰랐고, 그들역시 자신들이 누구와 연계할지 모를것이란것을 느끼며


유리는 천천히 미스틸테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괜찮니? 테인아, 너는 다른 국적이기때문에 이런 '위험한' 작전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데..."


위험한을 특히 강조하며, 거의 따지듯 묻는 그녀에게도 그저 회색머릿칼을 흐뜨러뜨려놓는 그녀에게 고개돌려 어린 소년은 싱긋 웃었다.


"괜찮아요, 저에겐 사명이라는것이 있으니까 상관 없어요 누나."


그 사명이 무엇이던간에 네 목숨과도 바꿀순 없다는 말을 하려던 유리를 슬비가 팔꿈치를 살짝 찔러 막지 않았다면


그녀는 바로 그 말을 해버렸을것이라고 장담할수 있었다.


"그래, 잘해보자, 테인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슬비는 천천히 고개 돌려 제이를 보았다.


막 자신의 주 무장인 특수 제작된 너클을 손에 끼어보며 손가락을 움직여보던


그는 그녀를 보고 잠시 턱으로 다른이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그녀를 불렀다.


무엇인지 짐작하면서도, 아니, 실은 다 알지도 모르는 일이면서도


슬비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의 등을 따라 인파를 헤쳐나갔다.


작전 집합소, 즉 며칠전 닦아진 헬기장에 모인 클로저 요원들에게서 조금 거리를 두었을 때 제이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등을 돌려 슬비를 바라**는 않았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먼저 말을 걸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입을 뗀 순간,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앞질러 들려왔다.


"이제... 가야해"


의미를 정확히 알면서도 슬비는 담담히 답했다.


"네."


"마지막으로, 세하에게 인사 안해도 되겠니."


묻는것이 아니라 혼잣말 하듯 중얼거린 그의 등 뒤를 바라보며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미 저희완 상관 없어진 애에요. 더이상 말하지 말아요, 아저씨."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듯 턱이 조금씩 꿈틀거렸지만, 더이상 무언가를 말하지는 못한채


그저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서글플정도로 장신인 그의 뒷모습을 보며 슬비는 몸을 돌렸다.


"저희만 생각해요. 일단 작전을 끝내야 그 애를 생각할 시간도 남죠."


턱 입이 막혀버렸을 제이를 생각하며 슬비는 걸음을 옮겼고, 그 속도를 점점 빨리했다.


이미 저 하늘 한구석에서는 검은 수송헬기 몇대가 다가오고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제이는 고개를 조금 더 숙이며 보다 더 작게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아니란다, 이 어린 아가씨야..."


부산스레 움직이는 사람들, 가만히 서있는 사람들, 무언가를 뒤적이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자신의 앞을 너무나 확실하게 알수 있을 사람들.


수송기의 프로펠러가 굉음을 일으켜가며 다가오는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차분한 자, 동요하는 자, 기도하는 자, 그리고 단연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장한 표정을한 자들이


뒤섞여가며 점점 큰 소리로 잡아먹을듯 다가오는 무광색의 그 헬기를 주시하고있는것을 망연히 바라보며


유리는 어느새 등 뒤까지 다가온 슬비에게 한마디 툭 말했다.


"슬비야."


그 이상을 말하지 않은채 그녀가 멍한 얼굴로, 그저 그 헬기만을 바라보는것을 보며 슬비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가야해."


솟아오르는 무언가의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기 위해 가능한 나직이 말한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것에 불만족스러워하며


슬비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았다.


"응."


무언가, 달리 할말이 없었기에 둘은 그저 못박힌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다른 이들도 천천히 한두걸음 움직였고, 곧 헬기가 착륙하자, 거의 컨테이너박스만한 그 측면에 새겨진 인식표를


자신의 팀이 타야할 것으로 찾는이들로 분주해졌다.


"가요."


어느새 그들의 뒤에서 몸에 맞지 않을것이 분명한 랜스를 비껴들고 말하는 미스틸테인이 다가왔다.


녹색빛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그저 순수한 일과에 대한 평범함이었지만, 그것을 더욱 정확하고


세부적으로 아는 검은 양의 리더와, 칠흑같은 긴 흑발이 헬기의 바람에 나부끼는것을 신경도 쓰지 않으며


그것을 처다보는 소녀에게는 더욱 중압감이 배로 돌아오는효과를 일으켰다.


"그래."


그저 단순하지만, 그럴수밖에 없다는것을 잘 알려주는 슬비의 말에 유리는 떨어지지않는 발을 움직여 수송기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어느새 그들의 뒤에 서있던 제이, 그리고 미스틸테인이 걸음을 옮겼고, 슬비는 다시 한번 뒤돌아 신서울을 보았다.


신서울.


자신의 부모님이 살해당한 곳이자, 복수를 결심하고 싸울 동기를 준 곳.


저주받을 운명과, 이미 저주받았던 시체들이 차원종들과 함께 양산된곳.


그리고 이제는 떠날곳에 대한 생각이 천천히 그녀에게 현실감을 가진채 다가왔다.


'마지막이구나. 잘있어...'


무언가에게 인사하는듯 슬비는 마음속으로 체념하며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인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슴푸레 떠오르는 새벽하늘과 차가운 공기에 녹아들은


신서울의 무심한 회색건물은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가는 수많은 클로저요원들에게 아무말 없이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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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과의 훈련도중의 대화때문일까, 아니면 그 대화의 중점이 되는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기에 그런것인가


세하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못했다.


벌써 몇번인가 몸을 뒤척거려보았지만, 잠은 오지않았다.


"이제 정말... 끝인가..."


탁**에 덩그러니 놓여진 커다란 디지털시계가 막 다섯시를 가리켰다.


평소라면 게임기로 지금까지 깨지 못한 단계를 공략했을것이고,


 요 몇주간이라면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잠을 자는데 주력했을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는것을 어쩔수없이 생각하며 세하는 다시한번 몸을 뒤척였다.


부스럭. 뒤척임의 소리가 큰 비명을 지르듯 이불이 스치는소리가 그의 귓전을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진절머리치듯 그는 고개를 크게 젓고는


그대로 벽장에 넣어둔 자켓 하나를 걸치고 기숙사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옷은 딱히 잠옷이랄것을 입지 않은채 트레이닝복 차림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쌀쌀한 밤공기에 머리가 식는것을 느끼며 그는 옥상을찾아 계단을 올라갔다.


몇번 계단을 올라간 끝에, 비상구 표식이 푸른빛을 내며 어슴푸레 어둠속에서 이곳이 탈출구임을 밝히듯 그의 눈에 띄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그는 조금 거칠게 문고리를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자 여러가지 식물들이 자라있어 마치 식물원에 온것같은 분위기가 일었다.


'이런곳 도 있었군.'


여러가지 식물들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푸른 꽃, 하얀 꽃, 녹색 잎들과 줄기들.


그렇지만 아무리 밤공기를 맞아도, 자연의 색이 주는 안정감으로도 그는 좀처럼 머릿속이 정리되는것은 느끼지 못했다.


벌써 몇분이 지났는지 알수 없었지만,


이미 어슴푸레 밝아오는 햇살이 작은 음영을 만들며 떠오르는것을 무심히 바라보며 그는 식물원처럼 꾸며진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모퉁이를 돈 그 순간, 그는 기다란 의자에 앉아 고개올려 하늘을 보고있는 사람을 보았다.


눈에 익은듯한 어두운 감색 계열의 옷. 정식요원복은 아니었지만, 하필이면 햇빛이 차양처럼 널찍이 펼쳐진


부분적으로 설치된 구조물에 가려 독특한 음영으로써 그 사람을 교묘히 가리고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옷인데...'


세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참을 바라보다 눈을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그가 일단 먼저 인사를 건네자 그 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졸음이 덜 가신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피로한것일까.


조금 흐려지는 눈동자를 거칠게 비비며 세하는 뒷모습만 보인 채 아직 이곳으로 고개돌리지 않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 건물은 관계자 이외엔 결단코 들어올수 없으므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없거니와, 초청받지 않고 들어온 밤손님등등은 아마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낄수있도록 만들 자들이 이 건물의 주민이기에, 들어오려는 자는 없을것이다.)


그는 아직 조금 몽롱한 머릿속을 뒤적여 앉아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짚기 시작했다.


앉아있지만,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체형과, 낙낙하게 옷을 입고 있었지만 드러나는 허리의 곡선에,


여자라는것을 깨닫고는 그의 머리는 다시한번 움직였다.


설화? 키가 더 클것이다.


예화? 그녀에게 있어서 취미가 새벽하늘감상이라는 것을 유추하는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기에


세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그녀들 이외에 건물에 사는 여자는?


조금 더 다가가자 여자의 뒷 모습을 뚜렷이 볼수있었다.


재미있게도, 짙은 그림자 속에 가린 그녀의 얼굴은 어김없이 달려있는 후드의 그림자에 가려있었다.


그 후드를 보는순간, 세하는 그저 살짝 미소지었다.


"왜 일어난거에요? 아무래도 밤공기가 차가울것 같은데."


"네가 올것 같아서."


"앉아도 되요?"


"응."


세하는 옆으로 돌아 의자에 천천히 앉았고, 잠시간 침묵만이 공허히 그들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들은 결단코 어색하다거나, 일반적으로 이런 순간에 급히 이을 말을 찾으려 고민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할거니?"


천천히, 하지만 마치 비수처럼 찌른 그녀의 말에 세하는 몸마저 흠칫 떨었다.


"어떻게 할까요."


다시 또 침묵.


말없이 서로 하늘만 한참을 바라보다 그녀가 먼저 말을꺼내었다.


"아직 목표를 잡지 못한거니?"


세하는 무언가에 찔린듯 어깨를 움찔 떨었다.


하지만 그것 뿐, 항변이나 반항적인 말을 꺼낼법 한 그였으나 결코 말을 꺼내려들지는 않았다.


놀랍게도, 또 한번 그녀는 말을 꺼내었다.


"역시 넌 다 들어나 ."


침중하고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 치고는 가히 파격적이라 할만큼 말수가 많아진 그녀를 보며


세하는 천천히 고개 돌려 그녀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가려짐, 그늘.


숨겨졌었고 감추어졌었던 그녀의 후드에 싸인 얼굴을 바라보며 세하는 무겁게 입을 떼었다.


"누나에 대해서, 처음 만났을때부터 떠오른게 있었어요."


서로 이어지지 않는 말을 한다 한들, 둘 다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고, 화제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뭔데?"


"신소원이라는 이름은 아시죠?"


이번엔 그녀가 세하의 흉내를 낼 차례였다. 몸이 한차례 작게,


그렇지만 분명히 눈에 보일정도로 또렷이 떨린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말을 이었다.


"사용하시던 그 기다란 석궁, 그런걸 한번 본 사람은 너무 독특하니까 잘 잊어버릴 수는 없을거에요."


"응."


처음으로 동요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세하는 왠지모를 희열을 느꼈다.


충동적인 무엇인가가 그를 두들겼다.


"정말 예전일이지만, 수습요원들이 사용하던 훈련소에 베테랑 요원들 중

몇몇이 자신들의 설비가 부숴졌지만 훈련하기 위해 빌렸던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받아넘긴다기보다는 급박히 되묻는식으로 말하는 그녀를 쳐다보며 세하는 쓰게 웃었다.


아니, 그렇게 웃을 뻔했다.


"독특하게 활로 전투훈련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제가 아주 어렸을때...

그러니까 아마 그때 여덟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나네요.

옆에 제 훈련을 봐주시던 엄마가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고,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저와도 인사시키더군요."


"응."


"그래서, 몇가지 이야기를 엄마에게 나중에 들었는데, 국가대표 선수였고...

좋지 않은 과거에 휩싸인 동생과 자신이 힘내서 차원종 소탕을 하고있다고 하더군요."


점점 자신의 말투가 공격적으로 변해가는것을 눈치채며 세하는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그녀에게서 대답이 들려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아니, 대답할 틈을 주지도 않고 세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엄마가 본의아니게 하신 말씀에, 저 역시 본의아니게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번엔 꽤 긴 침묵이 둘을 휘감았다.


세하는 여전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있었고, 그녀는 그저 고개를 땅으로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렇구나."


"네."


아까보단 조금 짧은 정적이 스친 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전부 다?"


"전부."


더욱 짧은 정적의 직후,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어땠니?"


세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은 대답을 못했다란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그가 들은것은 한 소녀의 몰락이었다.


세 자매로 태어나 화목하게 살았고, 첫째 언니와 둘째언니는 상냥했으며, 부모님은 친절했다.


화목한 가정과 그린듯한 생활에 행복의 가치를 모르고 그저 살아가던 그 소녀는, 어리고 어린 나이에


그것이 한방에 박살나는것을 느꼈다.


차원문이 그녀가 살던 도시 한복판에 열려,


막 집을 나선 그들의 모습이 집안의 사람들 시야에 들어오던 그 순간에 둘은 잔인하게 차원종에게 난자당했고,


자매는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던 첫째의 인솔로 집 지하로 피신해 간신히 토벌직후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두번째의 재앙은 결코 차원종이 불러오지 않았다.


차원종 토벌중이던 군인들이 지하실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국가의 정규군이 아닌, 외국의 클로저로 이루어진  용병 집단이었고, 그들은 난폭했다.


첫째 언니의 지시에 따라 둘은 모습을 들키기 직전 지하실의 깊숙한곳으로 숨었고,


그녀들은 지하실의 특이한 구조상 그들이 숨어들어간 창고 옆의 반투명 유리로 첫째 언니가 그들에게 당당히


이곳에서 구출해달라는 말을 통하지 않는 언어로 간신히 구사하는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첫째언니는 그녀들이 보는 앞에서 무자비하게 유린당하고,


직후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증거인멸을 위해 그들은 난자했다.


거리낄것이 없는 그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군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피가 튀기고, 갈기갈기 찢겨져 죽은 언니를 보며 둘은 피눈물을 흘렸고


둘째는 원래부터 국가 대표 사격선수로써 실력을 닦던 양궁과 석궁의 용도를


차원종의 학살로 바꾸어 위상잠재력의 판정을 받아 클로저가 되었다.


하지만 셋째 소녀는 언니에게 가끔 배운 석궁이 실력의 한계였고,


차원종보다는 언니를 잔인하게 대한 자들에게 더욱 복수심을 불태웠다.


그리고 자그마치 10년간 버티지 못할 훈련을 해왔고, 위상잠재력이 있다는사실을 듣고 클로저로 임명받았다.


차원종의 학살을 맹세했지만, 그녀가 정작 처음 죽인것은 차원종이 아니었다.


아직 국내에 체류중이던 용병 집단을 찾아가 밤 사이에 그들을 철사로 침대에 묶어놓고,


천천히, 천천히 그녀가 합법적으로 소지 가능하던 유일한 날붙이인 화살로 그들의 살을 마치 회뜨듯 저몄다.


고통을 느끼도록 손끝부터, 그리고 마지막까지 숨통을 붙잡고는 죽지 않으려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던


그들에게 그녀는 마지막으로 심장에 화살을 박아넣었다.


이후, 그것은 그녀에 의해서 조용히 사고로 처리되었기에 아직 그녀는 살인에 대한 죄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에서 그녀의 편을 들어줄 만한, 즉 몇 없는 정식요원의 반열에 든 귀중한 전력이라는 비장의 수가 있는


그녀는앞으로도 살인에 대한 죄를 받지 않으리라.


"어땠니?"


다시 한번 조용히 물어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세하는 억눌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뭐라 말씀드릴것이 없군요."


잠시간 다시 그녀는 입을 다물었지만, 곧 입을 열었고, 그녀의 말은 처음으로 길었다.


"후드는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어. 눈...눈을 보이는것이 난 싫어. 감정을 드러내니까.

내가 복수한 그들의 눈에도 어리던 여러 감정...공포...자비를 구하는 마음...

그런것들도 인간인 이상 내 눈에도 보일테니까. 그건 싫어."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선 너무 힘들었다.


말을 제대로 잇는것이, 말을 이렇게 오래 한 적이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말도 그때부터 차갑게했지. 내게 다가오면 나는 가시처럼 찔러. 내면의 날 알아본다면 나는 알아본 사람을 찔러버려.

사람의 목숨을 죽였던것 이상으로 두려운것은 그 뒤를 따라다니던 사람의 눈...눈이었어.

마지막으로 애원하던 눈, 빌던 눈. 그건...아직도 날 보고있는것 같아."


문득 세하는 그녀가 너무나 작아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부터 큰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은 그녀의 체구가 유난히 작아보였고, 떨리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가려. 그림자에서 나는 살아가."


"그리고 사람들의 눈동자로 그 사람의 내면을 읽고 조언한다? 재밌네요."


비아냥거림. 명백한 조소이자 도발이었지만 그녀는 그저 가만히 그것을 듣고있었다.


반응하지도 않았고, 듣기만을 고집하는 그녀의 모습에 세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난 당신의 조언이 필요해요. 딱히 당신을 경멸한다거나 멸시하지는 않아요.

그보다 더한 비난도 받아봤고, 더한 고통도 겪어봤다고 생각하기에

난 그것을 욕하거나 손가락질할생각도 없어요.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난 당신의 조언이 필요해요."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세하는 몇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습관처럼 턱을 매만지던 그는 이어 말했다.


"나는 당신의 말대로 아직 어려요. 목표는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할지는 더더욱 모르겠어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점점, 나른해져가는 말투를 의식하며 세하는 고개를 다시한번 돌려 그녀의 그림자에 가린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모진 생활속에서 복수를 꿈꾸고, 그것을 정말 강철같은 의지로 목표를 달성해낸 사람은 지금 어떻게 할까요?"


답은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고, 그 이상 세하는 독촉하지 않았다.


문득 세하는 가만히 땅을 바라보는 그녀를 안아주고싶었다.


미동도 않고 숨마저 쉬는지, 쉬지 않고있는지 모를듯한 그녀의 가려진 얼굴은, 갑작스레 너무나도 애처롭게 보였다.


그렇지만 세하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그것은 그것.


이것은 이것.


그는 천천히 주먹을 풀었다.


그리고, 그가 막 힘을 뺀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조언?"


바보같은 되물음이었지만, 듣는이로 하여금 오싹하게 만들정도로 억양없고 무기질적인 말투에 세하는 흠칫 놀랐다.


"네."


"그림자속에서 쫓아오는 눈동자 들에게 도망다니던 사람에게?

그런것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서도 저질러버린 복수에 대해 후회하고있는 바보에게?"


거의 평소의 두배정도로 빠른 그녀의 다급한 말에 세하는 평소처럼 대답했다.


"아니요."


잠시 둘은 말을 멈추었다.


정적이 요란하게 둘 사이를 춤추며 맴돌았다.


부서지는 햇빛이 본격적으로 하늘을 푸르게 물들여가고있는것을 멍하니 둘은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고개돌려 세하를 보았다.


고요했고,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정도로 무거운 공기속에 그녀는 천천히, 가느다란 두 손을 들어올렸다.


안타까울정도로 느리지만, 햇빛에 반사되는 그녀의 손은 마치 무엇인가로 깎아 만든듯 섬세했기에


세하는 무심코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손은 후드의 양 끝자락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더욱 천천히, 후드는 그 손가락이 움직임에 따라 뒤로 넘어갔다.


그래서 세하는 꿀빛처럼 탐스럽게 어깨까지 흘러내린 갈색 머릿칼과,


화장기 같은것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투명할정도로-누군가의 피부를 보고 하얗다가 아닌,


투명하다고 생각한적은 없었던 그였지만-깨끗한 뺨에 엷게 물든 혈색, 그리고 붉디 붉은 입술 하나기


도드라지게 자리잡은 얼굴을 보아야만 했다.


눈을 돌리고 싶어도 매료되듯 빨려들어가는 자신을 보고 세하는 몇번 고개를 흔들었다.


"추하지? 갈색머리는 복수를 위해 써댄 위상력의 댓가고, 피부도 색소를 완전히 잃다시피 했고..."


그녀의 눈은 놀랍게도 짙은 감청색이었다.


검정색과 푸른색은 본적있어도, 푸른빛이 은은히 감도는 감청색은 한번도 본적 없었기에 세하는 무심코 그것을 바라보았다.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대. 남들과는 다르게 마구잡이로 훈련을 위해서 써댄 위상력이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겠지."


자조하듯 웃음지으며 그녀의 얼굴은 병약해뵐정도로 투명했지만,


그렇기에 이 세계의 것이 아닌것 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추하지 않아요."


잠깐 쉬고 세하는 말을 이었다.


"적어도 목표를 이룬 당신에게 추하다 여기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는 살인자인데도?"


"그것이 당신의 정말 본모습이었다면 기꺼이."


햇빛이 둘을 갈라놓듯 사이로 한줄기 비쳐들었다. 옥상에 세워진 몇가지 쇠 파이프의 그림자였지만


그것은 마치 무엇인가의 선처럼 둘을 갈라놓았다.


"너는 지금 뭘 하고싶니?"


갑작스레 물어온 그녀의 말에 세하는 땅으로 숙인 고개를 들지 않은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이어 그녀는 말을 이었다.


"나를 봐. 지금 뭘 하고 싶은거지?"


묻자,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녀를 처다보았다.


조건없는 완벽한 명령에 대한 반응처럼 자신이 왜 그녀를 돌아보았는지도 모르며 그는 대답했다.


"친구들을 죽게 놔두지 않겠어요."


대답하자, 그녀는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렴."


그리고 순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문으로 달려가는 세하를 보며


소은은 정말로 부서질듯 엷게 웃으며 후드를 천천히 다시 뒤집어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뒷모습에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햇살이 물들어가듯 비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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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악!"


"아아악! 살려줘...!"


대한민국의 손가락안에 꼽히는 산.


정확히는 40년 전까지는 그랬던 산이었던 지리산에는 지금 비명소리만이 가득했다.


격렬한 전투로 인해 나무들은 어느새 핏빛으로 물들어가고있었다.


"**!"


평소 품행이 올바른 슬비마저도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정도로 상황은 좋지못했다.


전투 개시 한시간이 약간 지났을 뿐이었다. 지리산으로 가던 도중,


수송헬기 한대는 날아온 에너지의 탄환에 의해 격추되었다.


그 즉시 응전에 나서 클로저들은 착륙했지만, 지리산으로 가는 입구를 차지한 이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40년 이전엔 관광산업으로 발전했었던 산인만큼 도로가 정비되어있었고, 편리한 시설들이 꽤 되었지만


도로는 고사하고 40년의 세월동안 자라난 수많은 나무들이 모든 보급로를 차단하다시피 만들어버려,


토벌작전은 어쩔수없이 소대별로 움직이고,


그 뒤로 보급병들의 지원을 마치 가느다란 실에 의존하듯 받으며 전투는 진행되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느라 바싹바싹 말라붙은 나무들에 어쩌다 붙은 화약에서 튀겨진 불꽃 하나가


거대한 산불을 만들었고, 나무들은 위상력들의 폭풍에 휘말려 뿌리뽑혀졌으며,


인간의 내장과 차원종의 끈적한 피들이 이곳저곳에 쌓여갔다.


검은 양 팀은 어느새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보급로는 차단당한채 통신기마저 방금전의 전투에서 박살나버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듯 단정하고 고운 그녀의 얼굴과 온 몸에서 베어나온 상처는 계속 피를 토해내고있었다.


"으윽, 저리 가!"


"버텨요!"


옆에서 터져나온 비명에 앞을 가리는 나무를 헤치며 도움을 주려 갔지만,


어느새 다리 하나가 뜯긴채 버둥거리는 요원을 집어삼킨 차원종 하나만이 눈 앞에 보였다.


딱 보아도 A급의 차원종.


옆에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빠르게 권총을 몇발 쏘는 요원 역시 차원종의 날렵한 발

(발이 아니라면 딱히 그것을 지칭할 말이 없었기에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에 깨끗이 허리부터 옆구리까지 양단되었다.


전투가 격렬했는지 일대의 나무는 거의 전부 쓰러져버렸고,


울창히 자라나는 덤불 몇가지는 거의 뿌리째 뽑혀서 푸른 위상력의 불꽃에 타오르고있었다.


피가 흩뿌려지는것을 보며 슬비는 그대로 주변에 있던 큼지막한 돌을 띄워 그대로 음속의 속도로 쏘았다.


격발.


그리고 그것이 어찌되었는가를 확인하기 보다는 그대로 높이 도약해 자리를 피한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우습다는듯 굉음을 내며 지면에 박힌 차원종의 발은 톱날처럼 날카롭고 예리했다.


"캬아아아아악!"


포효하는 차원종을 보고 그녀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는 빠르게 손을 움직여 허릿춤에서 단검하나를 허공으로 올려 그것을 띄운 후,


주변의 모든 돌과 나뭇조각들을 허공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차원종으로의 사출.


자그마치 수백개는 되어보이는 궤적이 허공에 마치 풀피리의 소리를 백배 증폭시킨듯 날카로이 울려퍼지며 새겨졌다.


분홍빛의 위상력이 은은히 감돌며 넘실거리는 공포스런 탄환은 하나하나가 음속의 속도만큼 빨랐고,


당연하게도 일어난 마찰열에 의해 비정상적인 파괴력과 살상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대로 날아가버린 차원종은 금새 힘이 빠진듯 바닥에 쓰러져버렸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승리에 도취될 틈도 없이, 그녀는 재빨리 자리를 옮기려 했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갑작스래 튀어나온 무언가가 그녀의 옆을 무자비하게 들이받았던 것이었다.


"아윽...!"


비명을 내지르며 재빨리 일어나려했지만 도저히 균형이 잡히지는 않았다.


흐려진 시야를 바로잡으려 애쓰며 그녀는 놈의 형체를 파악했다.


여덟개의 가느다란 다리가 마치 거미처럼 뻗어나와있었고,


몸의 형태는 가장 비슷한 지구의 동물로 비유하라면 말을 닮았지만 그것의 가슴부분에는 눈이 열개 달려 사악히 빛나는


그 모습의 위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두개의 뿔이 전방으로 치솟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그녀는 탄식했다.


"S급...차원종...!"


S급.


작전상 붙인 이름은 '스피더.' 놈의 특기는 눈에 보이지 않을만큼 빠른 이동과 공격,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위험한것은...!


"큭!"


사이킥 무브를 활용해 측면으로 거의 몸을 날리다시피 한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기다란 침이 두세개 박혀있었다.


독침. 맞는다면 마비가 오고, 독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30분 이내로 사망에 이른다는 맹독.


기괴하게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기 직전, 슬비는 허리춤에 있던 단검으로써 비트를 세개 소환했다.


그녀가 요즘 연습하고 성과를 낸 기술을 성공적으로 발휘한 직후, 그것들은 둥실둥실 떠다니던 움직임을 바로 멈추어버렸다.


허공에 그림처럼 박힌 단검들은 미미하게 흔들렸지만,


바로 그 다음순간 천이 찢어지는듯한 파열음을 내며 하나가 놈에게 날아갔다.


-쨔아아악-


공기중의 마찰로 인한 붉은 궤적이 분홍빛 잔상과 함께 그려진 것은


음속의 속도를 뛰어넘는 소위 '레일건' 의 염동력 기술 버젼이었다.


전자기력에 의해 도시하나를 궤멸시킬수 있다는 미국의 레일건 병기와도 같은방식이면서도 더욱 위력적인 공격이었기에


슬비는 잠깐 마음을 놓았다. 적어도 주춤하게 만들수는 있을것이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하윽!"


폐에서 공기가 빠지는소리인듯 급격히 내지른 비명은, 옆구리에 깊게 생겨난 상처때문이었다.


수초 전만해도 없던 상처였지만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차원종이 내고 간 것이라는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더이상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하얗게 변해가는 시야속에서 그녀는 조용히 생각했다.


한번만 더 볼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냥, 한번만 보고, 사과하면 좋을텐데 그것은 허황된 꿈이라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녀는 그저 무너지는 몸의 중심을 굳이 잡으려 하지 않고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녀는 뒤에서 아예 빠르지도 않게 접근하는 차원종의 기척을 느꼈다.


먹이를 확실히 사살한 사냥꾼의 동작처럼 확신에 차있으며 느렸고, 뜸들이는 그 기척을 느끼며 그녀는 잠깐 생각했다.


"미안해..."


그냥 정말 미안했다.


이유는 없었고, 떠올라야만 할 이유조차 그저 모습을 감추었다.


한번만이라도 만나 사과한다면 좋을텐데.


서로 티격태격하던 때로 돌아가면 좋을텐데.


'그럴...텐데.'


문득 뺨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슬프다.


아프다.


사과라도 하게 해달라고 차원종에게 빌고싶었지만, 무거워진 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안해...이세하..."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놈의 기척에 마지막으로 중얼거렸고,


그녀는 차갑게 몸을 파고들어올 끔찍한 놈의 다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음순간 그녀의 귀에 들려온것은 터무니없는 굉음이었다.


'쿠콰아앙!'


그리고 간신히 뜬 눈 앞에 너울거리며 휘몰아치는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푸른 위상력의 불꽃이란것을 깨달으며 그녀는 떨리는 몸을 가누려 애썼다.



그렇지만 다음순간, 흩날리던 푸른 너울이 살짝 가라앉자 보이는 사람의 형체에


그녀는 그저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검은 요원복에, 짙푸른색으로 새겨진 완장에는 특이하게도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간듯 형편없이 구겨져있었다.


그리고 차야만 하던 특수요원의 완장 역시 없었다.


정식, 그리고 특수요원에 대하여 많이 아는 그녀에게 있어서 굉장히 이상하게 비칠만한것들이었지만,


그것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았다.


미처 다 뜯어지지 못한듯 남아있는 푸른 날개만이 완장속에서 쓸쓸히 남아


천마의 한 편린이라는것을 증명하는 코트를 입고 적당히 허벅지 옆에 늘어뜨린 건블레이드를 잡은


그 사람은 그녀가 너무나도 애타게 찾던 사람이었다.


"이세하...?"


너무 작았다.


목소리를 가다듬지도 않고 다시 한번, 조금더 크게 말했다.


"이세하...!"


그대로 무릎꿇고 쓰러진 그녀의 옆에 앉은 세하는 말없이 슬비의 머리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나야. 리더."


넓은 품안에 안겨본적이 언제였던가.


S급 차원종은 분명 아직 살아있을터인데도, 전쟁터 한복판인것은 자명하면서도


그 짧은 순간, 그녀는 자신의 볼위를 타고 흐르는 안도의 눈물을 느끼며 그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그들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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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엘세이드님 수고하셨습니다.




2024-10-24 22:24:2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