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피해자
약부작용 2015-03-10 2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스쳐지나가는 화약냄새와 평생 적응 따위 하고 싶지 않은 찢어질 듯한 차원종의 괴성들. 이미 사람들 따위 모두 떠나버린 폐건물로 가득한 거리에 오직 네사람 만이 누군가의 피로 깊게 얼룩진 땅 위에 서 있다. 그들을 내려놓은 헬기는 타타타 요란한 소음을 내며 상공으로 사라져간다.
거리를 먹어치운 기괴한 괴수들의 환호의 괴성들이 거리를 잔뜩 채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각자의 짐들을 정리하며 멀리 떠나버린 헬기를 힐끗힐끗 바라볼 뿐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내려놓고 너무 일찍 사라지는 거 아니야? 보급품도 한참 모자르다고! 사비 털어서 산다니깐 정말…”
“돈은 많이 주잖아”
툴툴대며 어후 이렇게 추운데 옷 한벌 더 끼워 줄것이지. 하고 쌀쌀맞은 바람에 굳어버린 손을 호호 하고 불며 중얼거리는 동욱의 말에 선화는 돈이나 차곡차곡 모아, 받자마자 부어라 마셔라 하지말고. 하며 전장 앞에서 자신의 무기를 손질할 뿐이다.
“엉, 우리 목숨값 아끼고 아껴야지.”
“재수없는 소리 하지마 멍청아! 그러다가 진짜 죽는다는 영화에 법칙도 모르냐!? 죽을거면 너 먼저 죽어라.”
낄낄거리는 목소리에 선화는 이딴 걸 데리고 여태까지 고생한 나도 참 대견하다. 하고 중얼거리며 제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넌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라. 하고 당부한다. 저런 한심한 어른 따위 될 생각 전혀 없어요. 하고 바로 합세하는 제이에 동욱은 당돌한 꼬맹이. 그래, 넌 닮지 말아라. 하고 낄낄 웃는다.
“꼬맹이, 넌 이번 전쟁이 끝나면 돌아가 방해되니깐.”
둘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보급품을 정리하던 민준의 목소리에 선화는 한심하다는 듯 민준을 내려보며 자기는 무슨 어른이나 되는 줄 아나. 하고 비웃는다.
“어머어머, 또 저런다. 무시해 제이, 걱정된다는 걸 좋게 말하면 뭐가 덧난데, 솔직하지는 못해서는. 아직 민준은 정신적으로 다 큰게 아니라 어른대접을 해 줄 필요가 없어요.”
“아저씨나 쉬어요, 짝사랑하는 그녀에게 고백하고 가정도 꾸려야 할거 아니에요.”
“뭐 임마!? 넌 이렇게 젊은 아저씨 봤냐?! 난 아직 28살이라고!”
한마디도 지지않는 제이에 행동에 민준은 울컥하며 형이라고 불러! 하고 정정시키려 들지만 이미 옛날 옛적부터 아저씨로 찍혀버린 민준이다. 머리에 꿀밤이라도 먹이려는 건지 손을 올리지만 선화에 눈초리에 곧 손을 내리는 민준이었다.
그 한결 같은 모습에 조금은 웃던 선화는 조금은 부자 같은 모습에 무언가 기분이 묘해진다. 이때 만큼은 그저 그 나이 때의 어린아이의 모습인 것만 같아 잠시 입을 꾹 다물고 묘한 기분에 말을 아낀다. 어린 나이에 전장으로 나선 아이.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의 기대감. 위상력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무처럼 전장으로 나서게 된 아이. 부질없지만 생각한다.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다면 넌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라고.
“…있지. 이번일 끝나면, 제이 너는…이제 클로저를…”
조금은 신중한 듯 머뭇머뭇 거린다. 그녀의 조심한 목소리에 제이는 그녀의 말을 끊고 새치기를 한다.
“젊은 피를 무시하지 말라고요. 늙은 어른들이나 그만 은퇴하시죠.”
너무 고생했잖아요. 아니, 조금이라도 휴식 기간이라도 가져요. 클로저라고 인간다운 생활을 가질 수 없는 건 말도 안되잖아요.
씩 웃으며 늙은이들은 쉬라고요. 하고 말하는 제이의 아직 어린 말에 일순간 제이를 제외한 현실의 어른들은 아직 이상으로 가득 찬 그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씁쓸해진다. 말해야 할까, 세상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 제이. 네 모습이 지켜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도 너 지금 어린나이에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그렇게 고생하면 키 안자란다 꼬맹이야.”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민준은 제이의 머리를 헤집으며 낄낄 거린다. 그러자 제이는 저는 지금도 잘 자라서요. 아저씨는 키도 멈췄잖아요? 내가 아저씨보다 더 클거에요 늙은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서 아저씨는 더 작아질 거거든요. 하고 한마디도 지려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괴수의 귀가 찢어질 듯한 악마의 소리가 들려온다.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앗아간 괴물. 그 소리에 제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뭇거리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전쟁은…언제쯤 끝을 보일까요.”
“글쎄…”
제이의 말에 동욱은 애써 활짝 웃으며 제이의 머리를 또 다시 헤집는다. 네 같은 꼬마가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그리고 수학의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전쟁을 얼른 끝내주지. 그러자 제이는 자동적으로 입꼬리를 내리며 아…망할 소금물, 왜 같이 안 출발하고 따로 가는데. 달력은 왜 찢어 하고 툴툴거린다. 그런 그의 반응에 선화는 하하 하고 웃으며 괜찮아 특별 전형으로 들어갈 수 있어. 하고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해준다. 제이의 하얀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 하고 춤춘다.
“힘내자, 우리는 영웅이라고.”
그렇게 다짐한다. 그 말에 민준은 조금은 쓰게 웃으며 선화를 바라본다. 그 씁쓸함이 자신에게 닿는 것에 선화 역시 제이가 ** 못하게 뒤돌아 서 쓰게 웃는다. 과연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그리고… 선화는 다시 뒤돌아서 민준을 향해 활짝 웃는다.
웨폰을 모두 깔끔하게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익숙한 피의 향연에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피로 얼룩진 어쩔 수 없는 클로저 전장과 마주한다.
“가자.”
“지긋지긋한 전쟁의 종지부를 향해 가자고.”
***
피빛이 주위를 감돌았다. 익숙해져버린 혈향에 제이는 그 상황을 애써 받아들이지 않는다. 꿈, 꿈이야. 지독한 악몽을 꾸는 거라고.
“너 그나이에 비해 참 강하구나? 탐난다.”
“참 인간은 왜 그런지 몰라. 저 애를 위해서 몸도 던지고 말이야.”
발치에 놓인 찢겨버린 그들의 모습을 애써 바라보며 파르르 입꼬리를 흔든다. 꿈, 꿈, 꿈이야. 하지만 애쉬와 더스트는 그에게 가볍고 유쾌하게 웃으며 말한다. 꿈이 아니야. 네 현실이야. 그 둘은 까르르 웃으며 클로저들도 한참 멀었지. 어서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네가 쓸모 있을 것도 같은데? 하고 제이를 향해 웃어 보인다. 죽일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느껴지는 무거운 힘의 격차에 분노로 몸을 떨며 기회를 노릴거야. 그리고 단칼에 짓밟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무릎을 꿇고 찢겨진 그들을 향해 떨리는 손을 뻗으며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 더미 속의 그들을 끌어안는다. 후두둑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이 마음을 대변한다. 전쟁을 끝내자고 했잖아. 그런데 왜 당신들이 먼저 떠나는데.
“하나 충고할까?”
애쉬는 사뿐사뿐 걸어오며 꽤 좋은 정보라고 하고 미소 짓는다. 네게 현실을 알려줄게 어린 아이야.
“클로저는 인간이 아니야. 인간들은 너희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아. 그저 자신은 살았다는 이유로 안도하지.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이렇게 원망해. 왜 지키지 못했어. 당신들이 그러고도 인간이야?“
그렇게 말하자 더스트는 애쉬의 말에 긍정하며 참 인간들도 웃기지. 하고 배를 잡고 웃어 보인다.
“그러고도 인간을 지키고 싶어?”
클로저라는 이유만으로, 전장의 떨어지게 한 인간을? 파편 같은 현실에 제이는 손을 떤다.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아. 그렇게 지껄이지 마.”
찢겨진 시체의 조각을 맞추며 식어가는 눈물위에 덮어지는 뜨거운 눈물을 떨어뜨린다.
“난 지킬거야.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그의 대답에 애쉬와 더스트는 그런 그가 이해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 참 유별나구나.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야? 인간들은 분명 이기적인데 이상해.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우리를 찾아. 언제든지 받아들여 줄테니깐. 그럼 안녕. 나중에 보자고.”
그렇게 말하며 지옥의 문을 열며 다른 차원을 향한다. 무너진 세계에 제이는 조금은 원망한다. 영웅들을 지켜주지 않은 세상으로부터.
****
연락이 닿지 않자, 다음날이 돼서야 헬기를 띄었다. 그들을 맹신한 탓일까. 고작 작은 클로저 하나만이 남았다는 사실에 기지 안은 침묵만이 맴돌았다.
“저희가 지켜야할 건 사람들이죠?”
그렇게 외쳤지만 그들의 죽음을 원망하며 이를 악물고 말한다. 알아요 .그래야 한다는 거. 지켜야만 한다는 거.
“그런데.”
주먹을 쥐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향해 외친다.
“형들도 누나들도 사람이잖아요. 죽은 내 팀원들이 사람이라고…사람이란 말이야!!“
살려내 살려내라고. 망할, 보급품이라도 잘 주지. 조금이라도 휴식이라도 주지. 왜 그렇게 심하게 전쟁으로 몰아 넣었어. 조금은 인간으로 살게 해줬어야 할거 아니야.
당당하게 외쳤던 그때와 달리,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원망으로 물들어져 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 제이의 뺨을 어루만지며 씁쓸하게 말했던 그. 지금은 참… 클로저가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그렇지? 하고 말했던 조금은 슬픈 목소리. 하지만 그럼에도 전장에 나서 피빛 향을 맡아야 했던 상황.
그의 말에 쓰게 웃으며 책임자인 윤정은 그러게나 말이야. 늦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상황에 후회되네.
“네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미안하지만 현실을 바라봐. 네가 서있는 현실과 마주해. 네가 클로저인 이상, 너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어.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는다. 미안하다. 네 일상을 빼앗아서, 네게 사명의 족쇠를 채워서.
죄책감에 뒤돌아 선다. 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 조금씩 이 세상을 알아가고 있었지만 동료의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뿐이었다. 지키고 싶었던 것, 그들이 지키려고 한 것. 하지만 동시의 생기는 원망. 그게 당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버린 것만 같아. 지키고 싶은데도 힘들어. 원망하게 돼.
“…충격이 크겠군요. 아직 어린아이인데.”
안정을 위해 주사를 맞아 쓰러진 제이를 향해 죄책감을 느끼며 미안하다. 하고 중얼거리며 윤정을 바라본다. 저 아이…그만 어린아이로서…살게 해주면 안될까요…? 하지만 그의 말에 윤정은 미안해요. 그럴 수 없어요. 하고 입술을 곱씹는다.
“…정신과 치료를 하든 어르고 달래든 진정시키고 다시 활동해야 해요. 어쩔수 없어요. 그는 전장속의 또 다른 피해자”
클로저니까요.
********
제이아저저씨 참 좋아하는데...ㅎ 미안 아저씨, 사퍼에 영혼을 던지느냐 덕질 못해줬어... 제이아저씨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떡밥도 되게 많고 성격도 그렇고 너무 좋습니다...ㅠ 보다보면 클로저가 좀 미움도 받는 면도 있고, 또 다른 이면이 있지 않을까, 해서 쓰게 됐는데 제가 아직 제이아저씨 스토리를 다 못본지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런...
아저씨좀 그만 부려먹어.
제이아저씨 많이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