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12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04 1

"위대한 주인이라고요? 흥미로운 사실이군요."

 한석봉이 보고한 사실에 그녀는 매우 흥미로워했다. 모스페어 차원종은 A급인데 그보다 더 한 존재가 있다는 얘기다. 늑대개 팀과 싸운 녀석에게서 직접 들었던 사실이었는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마치 이번 일을 예상한 거처럼.

"혹시 알고 계신 겁니까?"
"굳이 놀랄 필요가 있는 건가요? 학생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겠지만 벌쳐스와 유니온은 A급 차원종보다 더한 녀석도 겪어봤어요. 설령 그러지 않았다해도 놀랄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걸요."

 석봉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으려는 그녀가 좀 더 무섭게 느껴졌다. 팔꿈치 하나를 책상 위로 올린 채 주먹으로 얼굴을 받치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감시 요원 보고서를 읽던 그녀가 조용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수고했어요. 그리고 내일부터 오토바이 면허 시험이 있을 거에요.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까 가능하면 빠르게 따도록 노력하세요. 감시 요원이 언제까지 클로저보다 더 늦게 도착할 수는 없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오토바이 면허 시험 허가가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미성년자가 벌써 오토바이를 배울 수 없지만 벌쳐스는 정부와도 연결되어 있기에 특별히 허가가 나오는 편이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면허 시험장에 다녀온 사람들을 검색했지만 별로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없었다. 그냥 자기 느낌으로 쉽거나 어렵다는 이야기만 나올 뿐이니까.

"그래도 학생이라면 빠르게 배우겠죠. 하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하니까요. 그런 사람이라면 당연하겠지만."

 못하는 일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 그가 여기 있는 건 자발적인 거였다. 어차피 억지로 들어오게 될 운명이었지만. 석봉은 자신이 오토바이를 운전하면서 곤경에 처한 그녀를 구하는 걸 상상했다. 모든 클로저가 다 완벽한 건 아니다. 늑대개 팀 처럼 다치는 자들도 있다고 하니까. 언젠가 구명활동을 하게 될 자신을 상상하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가슴 앞에 내밀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신만만하군요. 좋아요. 그럼 내일부터 제가 알려주는 주소로 가세요. 거기 가서 시험을 받게 될 테니까요. 뭐, 시험 내용이야 시시하기 짝이 없겠지만요."

 귀찮다는 얼굴로 말했다. 면허 시험은 대부분이 딸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한석봉도 어차피 거기에 합격할 거라고 확신한 거였다. 심장이 두근 거린다. 오토바이가 조금 간단해보이고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지만 그만큼 사고 날 확률이 높은 이동수단이었다. 석봉은 면허 시험도 좋지만 모스페어가 말한 위대한 주인이라는 차원종이 신경 쓰였다.

*  *  *

 리무진 창밖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던 바이올렛은 언제봐도 똑같은 배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른 벌쳐스 사원에 비해 한석봉은 용기있는 모습을 보였다. 벌쳐스 사장은 선을 넘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봐야 벌쳐스 회사에 존재하는 유능한 인재 중 하나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으니까. 

"아가씨. 혹시 그 소년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있지만 모스페어가 말한 위대한 주인이 신경 쓰여요. A급 차원종의 주인이라면 그보다 더 강한 수준이라는 얘기잖아요. 그 존재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되니까요."

 하이드는 그녀의 말에 침묵을 유지했다. 위대한 주인이라면 그녀 말대로 더 강한 차원종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그런 자가 나타나게 된다면 그녀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집사가 되었을 때부터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끝까지 지킬 수 있을 지가 의문이었다. 

끼이익!

 갑자기 급 브레이크를 박자 바이올렛은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려 반대 좌석에 머리를 막았다. 배경을 감상하던 중에 갑자기 멈추려고 하니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지만 냉정하게 말을 건다.

"하이드. 대체 무슨 일이죠?"
"아가씨. 저 앞에 그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예전에 아가씨를 납치하려고 했던 놈입니다."
"그래요?"

 하이드는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전에 상대했던 레이가 이번에는 여유롭게 차선에서 멀쩡히 서 있었다. 리무진을 앞서가던 차량도 급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세웠다.

"야! 너 미쳤어? 여기가 어딘지 알고 뛰어들어?"

 지나가던 민간인이 삿대질하면서 욕한다. 바이올렛은 대검을 들어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상대는 무기를 들고 있는데 당당하게 나서는 게 너무 바보같았다.

저 사람은 눈치도 없는 건가?

 그녀가 나서서 그 사람을 구하려고 했다. 민간인이 테러리스트를 자극하게 되면 곧바로 사살당하니까 그걸 내버려 둘 수 없었으니까. 하이드도 뒤따르는데 갑자기 그의 행동에 두 사람이 전부 얼어붙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임무를 받아서 이렇게 급하게 온 겁니다. 여기 돈을 드릴 테니 한 번만 봐주시겠습니까?"

 거금을 쥐어준다. 민간인은 만원짜리 돈뭉치 하나를 받고 헛기침을 하면서 멋쩍게 웃어보였다. 레이가 보인 행동이 조금 의아했다. 민간인에게 저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테러리스트는 처음이라 두 사람은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기분좋게 차로 간 뒤에 운전한다.

"뭔가요? 당신?
"응? 아, 기다리게 했군요. 조금 의외였습니까? 제 임무는 당신을 모시는 거지, 민간인을 학살하는 게 아니라서요. 물론 저희에게 적대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단지 이야기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바이올렛 아가씨. 이쪽으로 와서 저희 우두머리와 이야기하시겠습니까?"

 우두머리라는 말에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레이는 이번 방침이 맘에 안들었지만 또 실패할 것을 우려한 그의 지시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거친 행동으로 인해 경계심이 가득할 테니 다른 방법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차량을 갓길에 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뒤따라오는 차량에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레이의 말에 두 사람은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지그시 보다가 그녀가 턱짓하자 하이드는 곧바로 운전석에 타서 리무진을 옮긴다. 그는 등 뒤에 달린 노트북을 꺼내 화면을 띄웠다. 검은색 배경으로 되어있으며 가운데에 알파벳 B라는 하얀 글자가 나타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바이올렛 아가씨. 저는 CKT부대를 이끌고 있는 수장인 미스터 블랙이라고 합니다.

 변조된 기계음성으로 나오고 있다. 바이올렛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뒤에 모니터를 쳐다보며 말을 건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뭐죠?"

 하이드는 혹시나 레이가 허튼 짓을 할까봐 감시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더라도 그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변함없으니까.

-사업 이야기입니다. 저희와 함께 일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간단하게 우리가 차원종 잔해를 전달해드리고 벌쳐스는 그걸 연구해서 무기를 만들어내면 되는 겁니다.
"그런 건 사장님에게 연락하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는 현 벌쳐스 사장을 끌어내고 당신을 새로운 사장으로 임명시킬 생각이거든요.
"뭐라고요!?"

 마치 그녀를 꼭두각시로 부려먹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전에 자신을 납치하려다가 실패했던 걸 떠올린다. CKT부대는 반 유니온 단체, 그리고 자신들 이익을 위해서라면 차원종도 풀어버리는 녀석들이었다. 

-어떠십니까? 저희와 손을 잡으시겠다면 이전보다 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거절하도록 하죠. 당신들의 속셈은 이미 안봐도 뻔해요. 저를 꼭두각시로 삼으시려는 거죠? 사장이 되게 도와준 대가로 당신들이 얻는 이익이 있으니까 하는 거겠죠. 뜻대로 내버려두지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거절하시는 거로 알겠습니다. 철수해라.
"네! 미스터 블랙."

 철수라는 말에 레이는 곧바로 노트북을 닫았고, 등에 꽂은 뒤에 곧바로 점프해서 벗어났다. 정말로 이야기만 하고 가버리는 걸 보고 놀란 얼굴을 보였다.

"참 이상하군요."
"맞아요. 하이드. 다른 테러단체라면 저를 인질로 삼아서라도 행동했을 거에요. 그런데 저들은 매우 다르군요. 민간인들을 상대로도 깍듯하게 대하는 것도 이상하네요."

 CKT부대에 대해서 전부 안다고 자부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민간인에게 공손하게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런 일로 우두머리가 직접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도 묘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거절할 줄 알았다는 듯이 흔쾌히 받아들이는 게 맘에 안 들었다.

"하이드. 미스터 블랙이라는 자는 단순히 제 인내심을 시험하려고 한 걸까요?"
"글쎄요. 아가씨.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 이익을 얻기에는 좋은 조건이긴 하지만 뭔가 꾸미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민간인을 상대로 악의를 보이지 않은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CKT부대는 민간인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민간인을 습격한 사례는 없었다. 그들에 의해 피해입은 곳은 유니온과 거기에 관련된 기업이었다. 벌쳐스도 그 집단의 표적이었다. 

"아가씨. 일단 회사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사장님께 보고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그렇게 해야 할 거 같아요. CKT부대는 벌쳐스를 손에넣으려고 하는 거 같으니까요."

 벌쳐스는 유니온과 손잡아서 막대한 이익을 얻은 거대 기업, 그 기업을 손에 넣는다면 민심을 사로잡는데도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전력이 강해지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참에 곧바로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차원종이에요. 하이드. 어서 출발하죠."
"네! 아가씨."

 리무진이 곧바로 달린다. 사이킥 무브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비싼 돈 주고 산 차량을 이대로 내버려두고 가기에는 아까웠으니까.

*  *  * 

 은색 토양으로 이루어진 평지에 하늘은 보라색 빛을 내고 있다. 이곳은 차원문 너머에 있는 또다른 세계였다. 인간계로 정찰갔던 모스페어 연락이 끊겼다. 또 다른 모스페어는 왕좌에 앉아있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왕에게 와서 무릎을 꿇었다.

"인간계를 조사하러 갔던 모스페어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그렇군. 허약해보이는 인간 중에도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 자가 있단 말인가? 약한 존재만 있는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그렇다 해도 우리 목적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침략을 준비한다."
"우오오오!"

 왕이 일어나서 팔 하나를 들어올리자 그들이 환호한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