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1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1-20 1

"헉... 헉."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고 있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도망치는 게 안전할 수 있겠지만 CCTV 때문에 가능하면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도망치고 있다. 남자는 자신의 옷 주머니에 넣은 USB를 들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얼굴에 맺은 땀이 마치 비맞은 사람처럼 젖었다.


꿀꺽!


 벽에 등을 완전히 밀착한 채 숨소리가 가능하면 나지 않게 했다. 떨리는 손으로 옆구리에 있는 권총에 손을 댄다. 여차하면 추격자를 상대로 사격해야 하니까. 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바닥을 살짝 보는데 그곳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았다.


"이런."


쾅!


 위험을 파악하고 재빨리 앞으로 구르자 그가 방금 서 있는 곳에 한 여성이 검으로 내려찍었고, 바닥이 폭발을 일으켜 조그마한 파편이 사방으로 퍼졌다. 남자는 얼굴에 긁힌 상처보다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여성을 보았다. 푸른색 눈동자와 푸른색 긴 머리, 그리고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채 대검 한 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하필이면 당신이 올 줄은 몰랐군요. 벌쳐스 사장의 딸, 바이올렛 아가씨!"

"제 이름을 알아서 뭐가 중요하다는 거죠? 당신은 우리 벌쳐스의 중요한 기밀을 빼서 달아났어요. 회사 기밀을 외부로 유출하려고 하는 자는 어떤 대가를 받아야 하는지 잘 아실테죠?"


 바이올렛의 몸에 푸른색 기운이 퍼져나왔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위상력 능력자, 그녀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자 남자는 주머니 속에 감춰놨던 걸 꺼내 그녀에게 던지자 하얀 섬광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쓸데없는 짓을!"


 얌전히 잡혀주면 고마웠는데 그러지 않고 도망치니 불쾌했다.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그녀는 이미 어디로 도망간지 알았는지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추격했다.


*  *  *


 오늘도 방과 후에 편의점 알바를 한다. 항상 똑같은 하루지만 점장님이 말한 충고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꼭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클로저에게 다가갈 수 없는 건 아니라고 확신했다. 세하가 그랬다. 클로저는 이 시대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이나 다름없는 직업이라고 많은 사람이 그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시선일 뿐이라고. 클로저는 매일 전쟁터에 나가야 하기 떄문에 지옥을 매번 경험하는 실전 군인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6.25전쟁 참전용사나 다름없다고 보면 되는 일이었다.


그 애도 귀여운데 그런 전장을 어떻게 견디는 걸까?


 차원종과 싸우는 건 즐길 만한 게 아니다. 전쟁이나 다름없다. 과거에도 어린 나이로 전쟁에 나간 수많은 클로저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클로저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이 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편이었다.


세하도 불쌍한데 그 애도 불쌍하겠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빨리 돌아와줬으면 좋겠다.


 다음에 그 귀여운 여자애에게 말을 걸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용기를 내서 한걸음 전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고 있을 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어이! 학생! 미안한데 부탁 좀 하자. 이걸 기자에게 전해줄 수 없겠니?"

"네?"


 응? 갑자기 왠 아저씨가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나에게 USB를 넘기면서 뭐라고 말했다. USB 겉모습에는 Vurtures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벌쳐스라면 분명히 차원종 잔해를 수집해서 대위상병기를 만들어내는 기업이라고 알고 있다. 유니온과 협력 단체라고 들었는데 왜 이런 걸 기자에게 넘겨달라는 건지 모르겠다.


"기자라고요?"

"숨기고 있다가 기회가 되었을 때 기자에게 전해줘. 알았지? 꼭 부탁한다."

"다 들었어요. 이제는 아무 상관없는 민간인까지 끌어들이려고 하시다니, 최악이네요."


 거친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 대검을 들고 들어왔다. 클로저인 거 같은데 무서운 표정을 보이니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남자는 도망칠 방향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등 뒤에서 들어온 검은 정장을 입은 아저씨가 들어와서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 남자를 주먹으로 쳐서 기절시켰다.


"으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면서 엉덩방아를 찍었다. 비정상적인 속도로 압도하는 걸 보면 분명히 클로저가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남자를 쓰러뜨린 검은 정장의 사내는 안경을 끌어올리면서 말했다.


"일어나 주세요. 학생."

"아, 네!"


 그 사람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지고 있는 USB를 건네달라는 얘기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그걸 건네주었다.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넘겨주지 않으면 죽일 거라고 생각이 들었으니까. 남성은 USB를 받은 뒤에 등 뒤에 있는 푸른 머리 아가씨에게 다가가서 그것을 정중하게 건네주었다. 깍듯하게 대해주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높은 신분을 가진 재벌가 아가씨인 듯 했다.


"소란을 피워서 미안해요. 혹시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어, 없어요."

"아가씨."


 아가씨라고 부른 그 남성은 그녀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가씨는 눈썹을 살짝 아래로 내리면서 눈을 감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저, 죄송하지만 우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당신은 이 남자에게서 기밀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네?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USB를 가지고 기자에게 전달해주라는 거 밖에 못 들었는데요."

"미안해요. 하이드. 최대한 정중하게 모셔주세요."

"네. 아가씨."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회사의 나쁜 비밀을 알아버려서 꼭 제거하려는 거처럼 느껴졌다. 순간 겁을 먹어서 뒷걸음질했지만 하이드라고 불린 그 남성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중요한 절차만 거치려는 거 뿐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럴 거면 처음부터 여기서 그냥 제거했을 겁니다."
"저... 저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가시면 알게 됩니다."
"저... 점장님에게 연락할게요."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두 사람을 상대로 도망갈 수는 없었다. 둘다 위상력 능력자니까. 이 둘을 따돌릴 자신이 없었으니 일단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갑자기 이게 왠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위상력 능력자와 관련된 벌쳐스에서 이렇게 나와버렸으니까.


*  *  *


 석봉은 점장에게 연락한 뒤에 곧바로 리무진에 탑승했다. 바이올렛은 이런 과정이 맘에 안들었는지 창가쪽을 보면서 무거운 한숨만 쉬었다. 그는 아무 상관없는 민간인이고 어쩌다가 말려들었을 뿐이지만 그가 기밀을 조금이라도 들었을 가능성이 있기에 사장이 직접 지시해서 데려오라는 거였다.


거짓말 한 거 같지는 않은데 아버지는 너무 완벽하게 구신다니까.


 완벽주의자였던 벌쳐스 사장을 아버지로 두고 있어서 이럴 때는 맘에 안들었지만 조직을 운영하는 데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원래 회사가 잘 나가기 위해서는 완벽주의자 성격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간단한 절차만 끝내고 곧바로 귀가 시켜드릴 테니까요. 제가 약속드릴게요."


 한석봉은 긴장한 나머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허리를 펴고 있었다. 군대에서 신병이 처음 자대 왔을 때 긴장한 그 모습 그대로였기에 바이올렛은 최대한 그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석봉은 고개를 아래로 떨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시는 김에 홍차라도 드세요."


 천장 위에서 찻잔 두 개와 포트기 하나가 인형뽑기 기계처럼 서서히 내려왔다. 그리고 바이올렛이 직접 차를 타서 그에게 건네주자 석봉은 떨리는 손으로 그걸 잡았다.


"가... 감사합니다."


 천천히 들이켰다. 혹시 독이 들어있지 않을까 의심했지만 다행히 없었다. 석봉은 몸이 떨리는 게 멈추는 걸 느꼈다.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해서 참았던 호흡이 크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미안해요. 이렇게 해서. 그건 그렇고,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바이올렛이라고 해요. 벌쳐스 사장님의 딸이죠."

"저는 한석봉이라고 합니다. 평범한 학생이고요.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어요."

"편의점 알바라... 혹시 장사하는 일인가요?"

"네."

"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간단한 용건만 끝냈다. 차가운 느낌을 보이는 바이올렛의 태도에 석봉은 얼어붙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대했던 거 뿐이지만 거기에 적응하기 어려운 그에게는 충분히 두려울 수준이었으니까.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