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9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1-29 1
벌쳐스에서 일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방과 후에 회사로 와서 사격 훈련에 참여하고, 그들이 출동하면 감시 요원으로서 매일 뛰어다니는 일을 반복했다. 건강에 좋지 않았는지 온 몸이 쑤실 정도로 아팠지만 이것도 견뎌야 할 일이었다. 클로저들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니까.
뿌드득-
"평소에 무슨 일을 하기에 이렇게 아픈 거니?"
"예?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양호 선생님이 멍든 내 팔을 보시고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셨다. 의심하는 눈치는 없다. 일 하면서 다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벌쳐스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걸 이야기하는 순간 소란이 일어날 테니까. 평소처럼 이대로 조용히 생활하는 게 더 좋으니까.
"앞으로 조심하렴. 원래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학교에서 추천하지 않은데 부모가 동의한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팔에 묶은 붕대는 늑대개 팀이 있는 곳으로 따라가다가 가벼운 사고를 당해서 생긴 거였다. 오토바이 면허증을 따게 해주겠다고 감시관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상부의 허가를 받고 절차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게 조직이라는 거니까.
이 학교에는 세 명의 클로저가 보이지 않았다. 세하의 자리가 이렇게 그리울 뿐이다. 앞으로 얼마나 있다가 돌아오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돌아오면 그 때는 새로운 게임을 같이하고 싶다.
* * *
딩동! 댕동!
종례 시간, 학교 밖으로 나온 뒤에는 곧바로 회사에 출근한다. 다른 학생들은 평범하게 하교하지만 나는 다르다. 어차피 나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선 평소처럼 벌쳐스로 출근하면 되는 일이다. 다친 곳은 아프더라도 일을 하는 건 부모님이 많이 하셨으니까. 원래 인간은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
"한석봉 님 되십니까? 모시러 왔습니다."
"하이드 씨. 굳이 학교까지 안 오셔도 되는데요."
"아가씨의 부탁으로 온 겁니다. 타십시오."
"아, 네. 감사합니다."
딱히 바이올렛 아가씨에게 해준 건 없는데 굳이 모시러 올 정도라면 중요한 일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출근하는 데 더 순조롭게 하려고 배려한 걸수도 있다. 뒷좌석에는 아가씨가 없었다. 나 혼자네. 평범한 신분인 내가 이런 곳에 타도 괜찮은 걸까?
"앉아서 과일이나 과자라도 드십시오."
"으앗!"
천장에서 조그마한 선반이 내려왔다. 인형뽑기처럼 천천히 내려오는 비스킷 과자와 청포도가 올려져 있다. 먼지 하나 없이 눈 부실 정도로 깨끗한 신선한 과일과 포장이 잘 되어있는 비스킷이다. 어우, 놀래라. 순간 인형뽑기로 당첨받은 줄 알았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굳이 저를 이렇게 대해주셔도 되는 건가요?"
"전 아가씨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냉담한 대답이었다. 그 사람의 명령이라면 뭐든지 수행할 정도, 이걸 정말로 먹어도 되는 건지 의문이었다. 일단 청포도를 한 번 맛본다. 전에도 먹어봤지만 역시 맛이 좋았다.
* * *
하이드는 운전하면서 뒷좌석에 설치된 카메라로 한석봉을 살펴보고 있었다. 솔직히 그는 평범한 소년이 그녀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가씨 명령이라면 뭐든지 따라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 뿐이었다.
하이드, 저 사람은 제 목적을 이루는 데 가장 커다란 힘이 될 사람이라고 확신해요. 그 성실한 마음가짐이야말로 아버지가 직원을 뽑는 방식이었으니까요.
인재를 발굴할 때는 학력이나 뛰어난 능력이 전부가 아니다. 평소에 가지고 있는 인품과 성실함이 어느 정도 발휘되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석봉은 전투 현장에서 아직까지 힘들어했지만 감시 요원을 계속 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겁을 먹으면서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최근에는 사격 훈련까지 받고 있었고, 지금은 반동에도 잘 견디는 사격자가 되었다. 그걸 눈 여겨 본 그녀가 하이드에게 일러둔 거였다.
정말로 괜찮은 걸까? 저 소년이 정말로 아가씨 기대에 미칠 수 있을까?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은 얌전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그가 어떤 활약을 보여줄 지도 내심 기대되기도 하니까.
* * *
하이드 씨의 도움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이런 차를 타고 출근하니까 너무 어색하다. 내가 무슨 높은 사람도 아닌데 다음에는 좀 자제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거 같다. 학교 앞을 지나던 학생들도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볼 정도였으니까. 오늘도 늑대개 팀이 거주하는 곳에 왔더니 감시관님께서 그들과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 했다.
"아, 한석봉 학생. 마침 잘 왔어요. 오늘은 특별한 임무를 이들에게 주려고 했거든요."
"특별 임무라뇨? 혹시 또 차원종이 나타났나요?"
"아니요. 오늘은 이 무기의 성능을 테스트해보는 거에요."
감시관이 보인 건 회색으로 이루어진 권총 한자루였다. 그걸 나에게 내밀었다. 혹시 이게 내 무기라고 말씀하시는 건가? 그런 거라면 매우 감사히 받을 생각이었지만.
"혹시 이 무기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되는 건가요?"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아요. 벌쳐스에서 만든 위상관통탄환 6발을 장전할 수 있는 특수한 권총이죠. 이걸 직접 확인하는 건 학생이 가장 적합할 거 같아서요."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아요. 벌쳐스에서 만든 위상관통탄환 6발을 장전할 수 있는 특수한 권총이죠. 이걸 직접 확인하는 건 학생이 가장 적합할 거 같아서요."
해맑게 웃는 얼굴인데 왜 말투는 차가운 건지 모르겠다. 여전히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늑대개 팀 눈치를 보니 나타와 레비아는 고개를 돌려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하피는 멀쩡한 얼굴이었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지만 지금은 그녀의 지시를 받는 게 우선이다.
"알겠습니다. 현장에 직접 참여하겠습니다."
"조금도 망설임없이 바로 승낙해주는 군요. 차원종과 실제로 싸우는 현장에 처음 투입한 건데 무섭지 않나요?"
"저 클로저 요원님들이 저를 지켜줄 거라고 믿어요."
"저 클로저 요원님들이 저를 지켜줄 거라고 믿어요."
"후훗. 좋아요. 안심하셔도 되요. 당신을 죽게 내버려두지 말라고 저들에게 이미 지시했으니까요. 그럼, 전 이만 바빠서 실례할게요."
그렇게 말하고 나가셨다. 다음 차원종 경보가 뜨면 나도 현장에 나가서 실전 테스트를 해보라는 거였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면 되겠지. 감시관이 준 권총을 쥐어본다. 훈련용 권총과는 조금 달라보였지만 차원종을 정말로 쓰러뜨릴 수 있는 걸까?
"야, 비실이. 무기 하나 얻었다고 해서 좋아하지 마. 차원종 나부랭이나 싸우는 건 무기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내가 봤을 때 너 혼자서는 녀석들을 상대할 수 없을 거라고."
"응. 그러니까 잘 부탁할게."
"어? 쳇."
검지로 가리키면서 나에게 충고하는 나타였지만 내 부탁 한 번에 바로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렸다. 왜 저러는 거지? 내가 어떤 반응을 하기를 기대했다는 건가?
"정말로 긍정적이네요. 당신은. 지금까지 감시 요원으로 들어온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은 처음 봐요. 대부분 우리를 보고 두려워하는데 당신은 안 그런가 보죠?"
하피 아가씨도 감시관님처럼 차가운 분위기를 보였다. 어째 둘이 잘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꼭 마치 자신들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을 거는 거 같다. 나타도 그 말을 듣고 나를 무서운 눈으로 쳐다본다. 이렇게 범죄자들이 모여있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견디기 어려운 게 당연한 일이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른다는 듯이. 솔직히 나도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 사람들이 지나치게 어두운 모습이 오히려 내게 용기를 주었다.
"두려우신 건 여러분 아닌가요? 여기 처음 왔을 때 여러분은 대부분 어두운 얼굴을 하고 계셨죠.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자유를 누리지 못해서 그러신 거 아닌가요? 평생 이 조직에 이용당하다가 버려질까봐 두려우신 거 아니에요?"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나타님이 두려워한다고?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나타가 내게 달려와서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지만 나는 알 수 있다.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마음 같아서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까 너무 화나고 거칠게 말하고 싶겠지. 그건 당연한 일이다.
"야, 넌 내가 안 무섭다는 거야?"
"처음 봤을 때는 무서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 아버지가 말씀하셨거든. 강한 분노를 일으킨 사람은 슬픔을 감추고 있는 법이라고."
"**."
"**."
"나타, 네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래?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닥치라고!!"
"닥치라고!!"
멱살을 잡아올린 녀석이 곧바로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힘껏 맞아서인지 입술이 터져서 피가 나올 수준이었다. 상당히 멀리 나가떨어졌다. 저렇게 반응한 이유는 알 거 같았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가 생각나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거 뿐이니까. 하피와 레비아가 나타의 팔을 붙잡아서 겨우 말리고 있었고, 그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함부로 그딴 소리 하지 마. 네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어차피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비실이잖아!!"
맞다. 나는 지금 이들이 벗어날 수 있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피를 한 번 닦은 뒤에 다시 일어났다. 내가 당당하게 일어난 걸 보자 나타는 말문이 막혔는지 가래끓는 소리를 냈다.
"내가 약하다는 건 인정하고 있어. 그럼 앞으로 할 일은 정해져 있지. 강해지도록 노력하는 거."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이들을 구할 수단을 찾아내는 거다. 클로저도 사람이다. 이런 노예 취급을 받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서라도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판단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