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세이드+PhantomGIGN] 흩어지는 양떼 -2-
PhantomGIGN 2015-02-18 8
모두가 잠들시간이 될때까지 원래 게임을 해야하지만 오늘만큼은 세하는 그러지 못한채
불 꺼진 캄캄한 천장을 잠이 오지 않는 눈으로 그저 올려다보고있었다.
"왜..하필지금이면 인정해주는거야"
거부권이 없는명령으로인해 팀을 떠나야만하기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유리 말대로 어머니께 부탁하면 연줄이 닿을까.
그렇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다시 한번 '엄마'의 후광에 나를 맡긴다는것 아닌가.
"후우..."
뭐라 형용할수없는 착잡한 감정이 그의 몸을 소름끼치게 훑고지나갔다.
쉽게 고민할수없는 문제로 골치가 아파오던 그는 결국 늦게서야 잠이들어버렸고
평소에 딱 맞추던 소집시간 보다 꽤나 늦은시각에 집을 나서버렸다.
지각을해버렸다는 생각에 길가던 도중에 짬짬히 하던 게임기는 잠시 주머니에 넣고
부랴부랴 뛰어 '검은양팀 임시본부' 라고 적힌 문앞에 멈추어 숨을 골랐다.
서늘한 아침공기가 폣속으로 거친 숨과 함께 빨려 들어와
덕분에 피곤함이 싹 걷어지는 느낌이다.
"좋은아침"
혹시나 어제의 일때문에 다들 분위기가 좋지않을까봐 평소하지않던 아침인사까지하며 들어간다.
하지만 결국반기는건 슬비의 잔소리.
"야! 이세하! 지금 몇시야?!"
"늦잠을 자버려서... 미안"
비어있는 자리에 앉자 슬비는 한숨을 쉬고는 회의를 시작하겠다고 조용히 말했다.
"먼저 검은 양의 예산과 이번 주에 지급될 보급품들은..."
친숙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회의를 진행해나가는 슬비를 바라보며 세하는 왠지 모를 안도감에 사로잡혔다.
내용을 그다지 집중해서 듣는것은 아니었으나, 이번 지급된 남아도는 예산을 저축하겠다고 할때 유리가
그 돈으로 요번에 생긴 가게에서 케이크를 먹자고 활기차게 제안했기에, 가볍게 웃었다.
어쩐지 기분이 조금 나아진듯 했다.
'그래, 여기에 남자.'
아무리 엄마의 후광에 기대어 살아온 삶에 인정받지 못한 결과가 있었더라도
이 곳에 남고싶다. 인정이나 하찮은 자신의 자존심이야 이곳에 남으려면 한번쯤 접을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만일 엄마가 옛 클로저들의 위명을 잘 아는 고위관리자들에게 말한다면 정부가
막 정식이 된 풋내기 클로저 하나에 대한 결정을 돌이킬 수도 있을것이다.
허나, 그래도 씁쓸했다. 막상 남겠다 결정하니 몸이 개운해진 듯, 머리에 낀 먹구름이 사라전것 같아 세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라 하더라도 이곳은 내가 있을곳이야.
"이세하! 회의 똑바로 집중안해?!"
세하가 생각에 잠겨있었던지라 턱을 괴고 회의를 전혀 듣지 않는것을 보고 무언가의 그래프를
띄우고 몇가지 설명을 해주던 슬비가 표독스럽게 쏘아붙었다.
"미안..."
그 답게 웃어서 미안하다고 하며 괴었던 턱을 내리고 느긋한 자세로 그녀와 앞에 있는 칠판을 바라보았다.
"팀이 바뀐다고 해서 내 말은 듣지 않겠다는거야?"
바꾸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엄마에게 부탁해서 팀 이동을 취소한단 공문이 오기 전까진 전적으로 확신할수는 없었기에
그는 그저 작게 웃었다. 아직은 말하지 말자. 딱히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지금은 우선 사과하자며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냐, 리더님 말이니까 잘 들을게. 미안해, 아깐 조금 생각할..."
"그래, 어련하시겠어, 곧 이 작은팀 따위 떠나실 잘난 정식요원님!"
단숨에 주위가 쥐죽은듯 고요해젔다.
그리고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딱히 슬비가 진심으로 화를 내었다거나, 자신이 진지하게 반응할만한 폭언을 한것도 아닌데
갑자기 피가 머리위로 솟구치는 느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항상 평온한 정신상태를 최고로 여기고 몸소 그것을 주위의 상황에 굴하지 않는 게임하기로 실천해오고있던 그였으나
이번만큼은 무심코 울컥했다.
"스...슬비야?"
옆에서 말리려는 듯 손을 반쯤 내밀고는 억지로 미소지으며 싸늘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려 유리가 나섰지만
항상 밝게 웃어서 팀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던 그녀로써도 이미 역부족이었다.
"왜? 틀린말 아니잖아?"
"누구는 속편한줄 알아? 나도.."
곧장 튀어나온 분노로 얼어붙은 입술을 어렵게 열어 어눌하게 반박하지만 슬비는 말을 낚아채버렸다
"하긴, 정식요원이 되서 다른 팀 가니까 내 말은 곧 듣지도 않을거라, 이 말이지? 이런 잔소리도 조금만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지?
잘됐네! 나도 너 가버리면 이런 머리아픈 잔소리 하지 않아도 되거든!"
가시돋친말.
왜일까, 저 녀석이 저렇게 생각하는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세하는 몸을 경직시킨채 그저 머리를 아래로 숙였다.
낡은 목제 탁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무런 감흥도 없다.
사실 저 애처럼 다들 상관없는걸 까?
이 팀이 좋다고 생각한건 나 뿐이었나?
그의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수없는 단어들이 그를 찌르며 괴성지른다. 착각이자 오만이며 가진자의 사고.
머리로는 슬비가 지금 화내는 이유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단코 그것을 합리화시키지 않으려는
자신의 머리를 보며 세하는 어느새 조용해진 주위에 내뱉듯 말했다.
"그럼 내가 팀을 옮겨도 상관없다는 말이야?"
목소리. 침묵.
결코 그가 내지 않았던 낮고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가 모두를 침묵케했다.
항상 부드러운 목소리와 나른한 표정으로 게임이야기만 하던 그가 내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으르렁대는 듯한 고요한 목소리만이 포효하듯 사방에 울렸다.
"그게 무슨상관이야? 너는 좋은 다른팀 가서 너대로 좋은거고!
나는 너같은 잔소리할 애 사라지니 나대로 좋은거니까, 서로 좋지!"
"대장!"
참다 못한 제이가 황급히 냉정히 맞받아 치고있는 그녀를 불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리고 그 모두를 제압할만큼, 낮고도 서늘한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그래, 그렇다면 나갈게. 내가 착각하고 있었네."
순간, 감정에 치우쳐버렸던 슬비마저 가라앉힐 정도로
감정이 없는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세하에게서 나온 목소리란것을 깨달았을때 조용히 자리를 일어서서 망설임없이 걸어가 문고리를 잡고는
그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지금까지 잔소리만 받아서 미안하다."
그대로 그가 나가버리자 모두에게 침묵이 약속처럼 내렸다.
"대장, 정도가 지나쳤어."
제이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있었다. 제이로써는 슬비가 왜 그렇게
그녀답지 않게 감정에 치우쳐 가시돋힌말을 해버렸는지 이해할 것 같았지만
추측은 입 밖으로 내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자, 잠깐만 따라갔다 올게요!"
아까부터 안절부절 못하던 유리가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갈때까지
남은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슬비는 중단되어버린 회의에서 거론되어야 했을 차트를 들여다보고
미스틸테인은 굳어버린 채, 제이는 그저 바라보는 곳을 알 수 없는 그 코팅이 짙게 된 고글을 한번 추켜 올렸을 뿐,
그 누구도 거북할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제이가 정적을 깨뜨렸다.
"대장. 진심이야?"
하지만 슬비는 차트에서 눈을때지않고 대답했다.
"어차피 가야하는거였잖아요. 그리고 전 이세하가 빠진게 더 속편할거같거든요."
그렇게 차트를 들여다보며 뒤로 돌아서는 슬비의 눈가가 살짝 붉어져있단것을 제이는 놓치지 않은채 보고
그저 다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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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올라간 세하는 좀전에 슬비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았다.
땡땡이 치려고 애용하던 옥상이지만 어제도 오늘도 들쑥날쑥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올라왔단것을
별 감흥없이 생각해보며 그는 입꼬리를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뭘안다고...그런소리를 하는거야..!"
분을 삭히기 위해 차가운 바람을 맞으려고 왔지만 오히려 더 화가난다.
그녀가 뜬금없이 그런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연습했는지 잘 안다.
그녀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보다 먼저 정식요원의 임명을 받을것이라 생각했다.
자신도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그것은 그저 죄책감을 이길정도로의 적당한 정도의 선에서 매번 그쳤었다.
그것때문에 화가 난 것일까, 리더는.
생각이 요동치던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등을 살며시 잡았다.
"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저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만족할만한 목소리가 아닌, 자신의것이 아닌듯 한 낮고 싸늘한 목소리에
세하는 그저 몸을 조금 움츠렸다.
결국 이렇게 끝날 일이었다면 정식요원이던 무엇이던 아무래도 좋았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던곳에 있고 싶었지만, 슬비의 말이 계속해서 쾅쾅 머리를 울려 쉽사리 발걸음마저 옮겨지지 않았다.
"진심이야? 정말로 팀을 나갈꺼야?"
들려오는 말에 그는 뒤를 고개 돌려 보았다.
유리가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있단것을 느낄때 그는 그저 한숨을 자그맣게 내쉬었다.
슬픔과 자기혐오가 몰아쳤다.
하지만 이미 뜻은 결정했다.
"그래야 하겠지."
세하는 자신의 가방을 ** 수습 요원의 표식을 증명하는 가죽 명찰을 유리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흡사 조롱하듯 자켓 안주머니에서 또다른 가죽 명찰을 꺼내어 그녀의 앞에서 흔들었다.
오늘 아침 우편함으로 지급된 정식요원의 라이센스.
'모두가 날 나쁘게 생각한다면 철저하게 나쁜놈이 되야 미련없겠지, 그렇지 않아?'
자조하며 웃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에게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물이야. 난 안돌아가"
그는 차갑게 돌아서서 계단밑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며 손을 내밀어 잡으려던 유리의 손은 그저
허무하게 그 뒷모습만을 잡아보려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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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팬텀입니다
사실 이틀전에 제 작품을 끝내고 작별인사를 들였는데
인사가 무색해질만큼 빨리 돌아오게되었습니다.
엘세이드님이 1편너무잘적으셔서 어떻게 이어받아야할지 너무 부담되서
새벽에 지우고 작성하고 반복해서 무려 3시간만에 완성시켰습니다
(엘세이드님 문학깡패 ㅠ)
아무튼 '흩어지는 양떼' 잘 부탁드립니다!